希修 < 불교에 대한 오해 #8. 무아는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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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를 글자 그대로 '내가 없다'로 해석하는 건 아무래도 와닿지 않고 윤회와도 모순되니, 그래서 대개 "영혼 같은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뜻"이라고들 말한다. 물론 이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이런 해석으로는 '잠정적인, 현세에서의 나'에 대한 집착의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 한다. "죽으면 썩어질 몸, 즐겨!"를 외치는 쾌락주의자들도 불교의 무아 교리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틀린! 결론이 도출되며, 결국은 자기중심주의를 부추기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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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물고기에게 거북이가 아무리 산속 짐승들에 대해 설명해 줘도 물고기로서는 믿기 힘들다. 높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2차원의 존재들은, 자신들을 훤히 내려다 보는 3차원의 존재들을 '神'이라고 여길 것이다. 창문까지 폐쇄된 31층짜리 감옥인 윤회계에서도 5층에 불과한 인간의 수준에선, 옥상으로 탈출하여 해방된( =해탈한) 부처님이 하는 어떤 얘기도 이해 불가일 뿐. 숲 전체에 있는 모든 나뭇잎들(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중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몇 장의 나뭇잎( = 苦의 문제)에 대해서만 가르치겠다, 라고 부처님이 애초부터 밝히신 것도 이런 이유 (SN 56.31). 그리고 '나'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 해탈한 존재들은 어떤 식으로 존재하느냐, 우주의 시작과 끝이 무엇이냐 등에 대해서는, 고와 고의 해결에 오히려 방해만 되니 이런 문제들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변은 아예 하지 말라고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명시하셨다 (SN 44.10, MN 2, MN 72, MN 63). 물고기가 산속 짐승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듯, 해탈 이전의 존재들로서는 아무리 고민한들 이해불가이니 그러신 게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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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계로부터 탈출하려면 탐진치를 완전히 끊어야 하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무수한 집착들중 가장 강력한 집착이 바로 '나'집착. 그러므로, 미적분을 배우려면 사칙연산부터 시작해서 1, 2, 3차 방정식을 차근차근 배워 나가야 하듯, 수행도 단계적 체계적 접근을 해야 한다. 우선은 '선업을 쌓아야 내!가 이승에서 행복해지고 다음 생에 좋은 곳으로 윤회하며 해탈에도 점점 가까워질 수 있다.'라는 유치한(?) mundane level (A)에서 시작하여, 그 후엔 주체 아닌 행위에만 촛점을 두고서 오온(五蘊) 비롯 매사를 인과의 관점에서만 impersonal하게 파악하면서 팔정도의 8요소를 계발하는 transcendental level (B)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팔정도의 8요소를 모두 완성!하고 나면 final level (C)에 이르게 되며, 이 시점에서 비로소 '나' 포함 모든 관념과 노력마저 놓음으로써 해탈이 성취되는 것. (8요소를 완성하기도 전에 처음부터 매사 무작정 '내려놓자'만 주입/암기하는 건, 강 건너편에 도달하기도 전에 배에서 내려 물에 빠져죽는 결과가 될 뿐. MN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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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더룸'이라는 유툽 채널에서는, 각 화장품 회사의 직원을 돌아가며 초대하여 자기 회사/브랜드의 제품들을 홍보하는 기회를 준다. 단, 촬영 시작시 어떤 단어가 쓰여 있는 헤어밴드를 그 직원에게 씌우는데 그 직원은 이 단어를 보지 못 하며, 이 단어를 말할 때마다 경고음이 울리기에 홍보 직원은 해당 단어를 추측으로써 피해 가면서 제품 설명을 해야 한다. 이 영상을 보고서 나는, "삶은 '나'라는 단어를 가급적 말하지도 생각지도 않아야 이기는 게임 같은 것이라고, ‘not self’ 가르침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는 얘기를 반복해 들을수록 우리의 머리엔 코끼리 이미지가 점점 더 깊이 각인된다는 George Lakoff의 얘기처럼, 내가 자기중심적이 아니려고 해도 우리의 모든 생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 우린 도저히 자기중심적 시각을 빠져나올 수 없다.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결심조차 '나'를 중심에 놓은 것이기에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라는 이 딜레마. "나라는 것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도 "나라는 것은 없습니까?"라는 질문에도 부처님이 침묵만을 지키신 것 역시 이런 이유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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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 '너,' '그들' 같은 주체 대신 행위에만 관심두자는 것이 Thanissaro 스님의 무아 해석이고, 매사를 a series of events로 파악하자는 것이 Bodhi 스님의 무아 설명이며, impersonalization이 바로 무아라는 게 Vimalaramsi 스님의 주장이다. 다음은 SN 21.2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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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 "우리의 스승인 부처님에게 어떤 변화 (죽음을 의미)가 생긴다면 사리풋타 존자님은 그로 인해 슬픔, 탄식, 고통, 번뇌, 절망 등의 영향을 받으실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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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풋타] "부처님이 오래 사신다면 무수한 존재들을 위해 물론 훨씬 더 좋은 일이겠지만, 스승님께 어떤 변화가 생긴다 해도 내게 슬픔, 탄식, 고통, 번뇌, 절망 등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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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
(번역 i) "That must be because Venerable Sāriputta has long ago totally eradicated ego, possessiveness, and the underlying tendency to conceit. ... ..." https://suttacentral.net/sn21.2/en/sujato...
(번역 ii) "Surely, it's because Ven. Sariputta's I-making & mine-making and obsessions with conceit have long been well uprooted ... ..." https://www.accesstoinsight.org/.../sn21/sn21.002.th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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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elf'/'no conceit'를 'to take impersonally'로 해석해야만 이해가 가는 경으로서, 이렇게 본다면 아비담마에서 왜 "'내가 남보다 위'라는 생각도 '내가 남보다 아래'라는 생각도 모두 conceit"이라고 말하는지, "무아는 self-centered (자기중심)도 아니고 other-centered (타인중심)도 아니며 just centered"일 뿐이라는 Charlotte Joko Beck 선사의 얘기는 또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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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A, B, C중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 '나를 완전히 내려놓는' = '배에서 내리는' 것은 배가 강 건너편에 안착이나 하고 난 후에 할 일. 8요소를 완성하지도 못 했는데 에고없는 사람인 척 행동하는 건 강 한가운데에서 배에서 내리는 꼴. 아직 강을 건너는 동안은 자신에 대해 정직하고 자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편이 오히려 수행에 도움된다고 타니사로 스님은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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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한 오해 #7. 남 집착이 Not Self, No Conceit'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31489532554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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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uth of Rebirth"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74027482969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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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radox of Becoming"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2300657140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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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 하루 삶에 만족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 법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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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希修
‘무아’ 적용의 한 예.
"박원순을 빼고 봐야 보인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
여성운동 동지가 박원순을 보내는 방법 - 시사IN
SISAIN.CO.KR
여성운동 동지가 박원순을 보내는 방법 - 시사IN
여성운동 동지가 박원순을 보내는 방법 -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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