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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 철학을 잊은 과학에게 과학을 잊은 철학에게
장회익 (지은이)추수밭(청림출판)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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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요?
612쪽
152*223mm (A5신)
1101g
ISBN : 979115540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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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과학자들을 넘어 인문학자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는 물리학자인 장회익 명예교수의 신간이다. 저자가 여든이 넘는 삶을 돌아보며 일생을 천착한 연구 여정을 200자 원고지 2,000매 분량의 이 한 권으로 모아 정리했다.
저자는 근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스승으로 삼아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시킨 이들과 그들의 학문을 《심학십도》의 형식으로 정리해 지성사의 흐름을 조망한다. 구체적으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여헌 장현광부터 뉴턴, 데카르트, 스피노자, 볼츠만,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등 인물 중심으로 인간이 학문을 발전시켜간 길과 저자가 평생을 탐구해온 연구 주제들을 포갬으로써 인류가 어떻게 앎의 지평을 넓혀갔고, 동시에 그들의 어깨에 올라탄 저자 자신이 어떻게 공부를 심화시켜갔으며 지금에 이르러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를 아울러 정리했다.
목차
책 머리에 왜 ‘자연철학’인가?
여는 글 《성학십도》와 〈심우십도〉
퇴계의 《성학십도》|퇴계의 학문편력|《성학십도》의 성격|곽암의 〈심우십도〉
제1장 소를 찾아 나서다: 앎의 바탕 구도
[역사 지평] 근대 학문의 싹 《우주요괄첩》|여헌의 생애|《우주설》과 〈답동문〉|성역 없는 학문 세계|내 안에 있는 이로 천지만물의 이를 비추다|대지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 [내용 정리] [해설 및 성찰]
제2장 소의 자취를 보다: 고전역학
[역사 지평] 데카르트의 ‘놀라운 학문’|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데카르트가 토대를 세운 물리학|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거인|기적의 해 1666년|사과는 왜 떨어지나? [내용 정리] [해설 및 성찰]
제3장 소를 보다: 상대성이론
[역사 지평] 두 번째 기적의 해|아인슈타인의 지성은 어디서 왔나?|4차원 세계의 선포|또 한 번의 도약 [내용 정리] 두 사다리의 상대적 기울기|상대속도로 본 4차원 시공간의 의미|아인슈타인의 두 기본 명제들|시간 간격의 상대성과 고유시간|4차원 속도와 4차원 운동량|4차원 상태와 상태 변화의 원리|일반상대성이론 [해설 및 성찰]
제4장 소를 얻다: 양자역학
[역사 지평] 취리히 대학의 한 세미나실|“그는 거대한 장막의 한쪽 귀퉁이를 들어 올렸습니다”|파동함수가 의미하는 것은? [내용 정리] ‘상태’의 함수적 성격과 맞-공간|양자역학의 기본 공리|상태 변화의 원리, 슈뢰딩거 방정식|사건의 유발 및 측정의 문제 [해설 및 성찰] 이중 슬릿 실험|‘상호작용-결여’ 측정
제5장 소를 길들이다: 통계역학
[역사 지평] [내용 정리] 거시 상태와 미시상태|엔트로피와 열역학 제2법칙|온도의 의미와 그 활용|자유에너지와 ‘변화의 원리’ [해설 및 성찰]
제6장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우주와 물질
[역사 지평] [내용 정리] 아인슈타인의 우주방정식|우주의 물질 생성과 그 변화|은하와 별의 형성 [해설 및 성찰] 물고기 우화|우주를 이해한다는 것
제7장 집에 도착해 소를 잊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역사 지평]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슈뢰딩거의 책에 담긴 내용 [내용 정리] [해설 및 성찰] 생명의 놀라움과 ‘온생명’의 발견|온생명의 개념 정립|생명의 자족적 단위
제8장 사람도 소도 모두 잊다: 주체와 객체
[역사 지평] 스피노자를 찾아서|스피노자의 출생과 성장|스피노자의 파문|가상의 시나리오|데카르트의 《성찰》|데카르트와 엘리자베스 공주의 문답|스치노자의 대안 [내용 정리] 객체적 양상과 주체적 양상|집합적 주체의 형성|온생명도 의식의 주체인가?|삶이란 무엇인가? [해설 및 성찰] 자유의지에 대한 크릭의 견해|슈뢰딩거의 의식론|의식은 오직 하나인가?
제9장 본원으로 돌아가다: 앎이란 무엇인가?
[역사 지평] 아인슈타인의 권고|세계의 신비는 이것이 이해된다는 것이다 [내용 정리] 주체가 지닌 조직의 구성과 기능|의식적 앎과 비의식적 앎|앎의 대상과 이에 대한 앎의 서술|예측적 앎 작동의 단위 과정|지식과 정보는 어떻게 얻어지는가?|전형적 앎의 몇 가지 사례|보편이론으로서의 동역학동역학의 구조에 대한 메타이론적 성찰|앎의 집학적 주체|끊임없이 네 앎을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네 앎의 너를 죽일 것이다 [해설 및 성찰]
제10장 저잣거리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온전한 앎
[역사 지평] 주돈이의 〈태극도설〉|[내용 정리] 무극이면서 태극이다|태극이 나뉘어 음양이 되고 또 변화를 일으켜 오행이 된다|사람의 정신 안에 앎이 생겨나고…|성인이 사람의 바른 자리를 세운다|군자는 이를 지켜 길하고 소인은 이를 어겨 흉하다|시초를 찾아보고 종말로 돌아오니 삶과 죽음의 이치를 알게 된다|상세한 앎과 온전한 앎|온전한 앎의 뫼비우스의 띠 모형|온전한 앎의 한 모습|온전한 앎이 보여주는 것 [해설 및 성찰]
부록 제3장 보충 설명 상대론적 전자기이론
제4장 보충 설명 δ‐함수와 푸리에 변환
제5장 보충 설명 햇빛이 가져오는 자유에너지
제6장 보충 설명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우주론으로
권말 부록 간결한 수학 해설|수학 기호와 부호|그리스 문자와 발음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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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이 땅에서 어느 시기에 참이치를 찾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아마 무수히 많을 것이다.
“과학자는 철학을 모르고, 철학자는 과학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과학’을 ‘성공한 철학’이라고 놓고 이 문장을 다시 읽어보자. “‘성공한 철학자’는 철학을 모르고, 철학자는 ‘성공한 철학’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된다. 서양에서는 ‘앎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철학’이라 했고, 동양에서... 더보기
제1장 《우주설》에 나타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근대 서구 과학이 그 내용을 어떻게 채워왔는가를 알아본 후 다시 제10장에서 이 모두를 〈태극도설〉의 구도와 비교해 논의함으로써 ‘삶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의 학문 전통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 문화의 풍토에 바탕을 놓고 그간 서구 과학이... 더보기
“사물은 왜 모두 땅으로 떨어질까요. 그리고 사물이 땅으로 떨어진다면 정작 땅은 어디로 떨어지는 것일까요? 이 구각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무엇과 닮은 것이기에 이 큰 땅을 품고 있는 것일까요? 이 큰 땅을 하늘의 대기가 버텨주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대기는 또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일까요? 혹시 이를 떠받혀줄... 더보기
뉴턴과 아인슈타인 사이에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기묘한 공통점 하나를 본다. 이유는 좀 다르지만 두 사람 다 16세에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중략) 이 소중한 지적 성장기에 혼자의 힘으로 학문에 도전해본다는 것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필수적 경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을 준다. _제3장 소를 보다 ... 더보기
아인슈타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양자역학이 홀로서기에 충분할 만큼 자연스런 공리체계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중략) 그러나 자연의 조화가 맞-공간 속에 운동량-에너지를 숨기고 있었음을 찾아낸 이후, 시공간의 4차원 구조를 찾은 것과 같은 감명을 받았고 내 눈을 가렸던 커다란 장애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을 얻었다. 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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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장회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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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고체물리학 연구(논문 〈GsSb의 에너지밴드 구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연구원과 루이지애나대학교 방문교수를 거쳐 30여 년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겸임교수로 참여했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초빙교수로서 경희대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물질, 생명, 인간: 그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 《온생명과 ... 더보기
최근작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정보혁명>,<융합 인문학> … 총 51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추수밭(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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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너의 화는 당연하다>,<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등 총 117종
대표분야 : 심리학/정신분석학 18위 (브랜드 지수 35,99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의 당대 지성 장회익 교수의
평생 연구 여정에 대한 총정리!
오직 공부로 이야기하는 학자의 삶과,
그렇게 팔십 해를 축적한 앎의 사유를 한 권에 담다
과학자들을 넘어 인문학자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는 물리학자인 장회익 명예교수의 신간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가 출간되었다. 저자가 여든이 넘는 삶을 돌아보며 일생을 천착한 연구 여정을 200자 원고지 2,000매 분량의 이 한 권으로 모아 정리했다.
고전역학에서 마음에 대한 탐구까지…
인간이 앎의 지평을 넓혀간 과정을
열 가지 결정적 장면으로 엮어낸 ‘모든 지혜의 역사’
왜 자연철학인가?
철학에서 과학이 나뉘기 이전부터 시작해 다시 철학과 과학이 만나기까지,
열 가지 전환점으로 보는 인간이 사유한 앎의 여정
이 책에서 저자는 근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스승으로 삼아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시킨 이들과 그들의 학문을 《심학십도》의 형식으로 정리해 지성사의 흐름을 조망한다. 구체적으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여헌 장현광부터 뉴턴, 데카르트, 스피노자, 볼츠만,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등 인물 중심으로 인간이 학문을 발전시켜간 길과 저자가 평생을 탐구해온 연구 주제들을 포갬으로써 인류가 어떻게 앎의 지평을 넓혀갔고, 동시에 그들의 어깨에 올라탄 저자 자신이 어떻게 공부를 심화시켜갔으며 지금에 이르러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를 아울러 정리했다.
그 과정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첫째, 형식적으로는 자연과학과 철학이 분리되기 직전 자연철학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 다음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지나 생명을 다시 정의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 지혜의 역사를 〈심우십도〉에 빗댄다(*곽암의 〈심우십도〉는 한 개인이 진짜 자신, 또는 진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소년이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열 가지 장면으로 그린 우화다).
둘째, 내용적으로는 이론물리학에서 시작해 ‘앎’과 ‘생명’이라는 탐구 주제를 평생 붙든 끝에 철학적 성찰에 도달하게 된 스스로의 연구 인생과 그 성과를 앞서 이야기한 인류 지성사에 포갠다. 즉 근대 이전 자연철학에서 시작해 세분화된 오늘날 분과 학문들의 갈래를 역사상 인류가 그랬듯이 단계별로 차근차근 섭렵한 다음 앎의 큰 줄기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지금에 이르러 다시 분과 학문으로 갈라지기 전인 통합 학문으로서의 자연철학으로 돌아간다. 인류가 나아가는 지적 여정은 지향과 지양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책에서 소개되는 지성사의 열 가지 전환점은 독립적으로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맥락을 형성하며, 저자 또한 공부의 과정에서 그 맥락을 차근차근 좇아간 끝에 통합적 앎이라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며 지금까지의 흐름 너머로 나아간다. 이 책의 제목이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인 까닭이다.
여헌 장현광의 《우주설》에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까지
물리학자가 철학적으로 들려주는 학문의 결정적 순간들이 지닌 의미
“사물은 왜 모두 땅으로 떨어질까요. 그리고 사물이 땅으로 떨어진다면 정작 땅은 어디로 떨어지는 것일까요? 이 구각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무엇과 닮은 것이기에 이 큰 땅을 품고 있는 것일까요? 이 큰 땅을 하늘의 대기가 버텨주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대기는 또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일까요? 혹시 이를 떠받혀줄 기氣라도 있는지요? 혹은 땅을 지탱할 또 다른 땅이 있는지요? _장현광의 〈답동문〉 중에서.
예를 들어 이 책의 첫 번째 챕터 〈소를 찾아나서다〉에서는 여헌 장현광의 저서 《우주설》과 〈답동문〉을 통해 조선에서도 근대 학문이 태동할 뻔했던 지점들을 짚었다.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장현광은 1666년 바닥을 굴러다니는 사과를 관찰하던 뉴턴과 같은 질문을 훨씬 먼저 떠올렸다. 즉 ‘모든 사물은 왜 땅으로 떨어지는가? 나아가 그렇다면 땅은 어디로 떨어지는가?’라는 물음을 〈답동문〉에서 제기한 것이다. 물론 장현광은 뉴턴과는 다르게 그 질문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모른다’라는 답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으로 책을 끝맺는다. 그러나 이와 같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장현광의 태도는 포항 구석의 한 선비가 근대 학문의 태도를 보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뉴턴과 데카르트가 연 고전역학부터 양자역학, 통계역학 그리고 저자가 탐구해온 생명의 구조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열 번째 챕터에서 지금까지 훑어 내려간 인류 지성사를 주돈이의 〈태극도설〉의 구도와 비교해 논의함으로써 삶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의 학문 전통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살피고자 했다.
나아가 저자는 이러한 인류의 지혜가 도약한 열 번의 결정적 장면과 자신이 걸어간 독보적인 공부의 경지를 합쳐 퇴계 이황이 작성한 《성학십도》를 변주한 ‘심학 10도’라는 표로 간단하게 도식화했다.
셋째, 구조적으로는 지성의 변곡점 열 가지를 담은 각각의 챕터들이 모두 세 개의 층위 안에서 전개되도록 구성했다. 즉 첫 번째는 ‘역사 지평’으로, 인류 지성사의 진행 과정 속에서 어떤 계기로 어떤 지적 폭발이 탄생했는지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나간 역사적 층위다. 두 번째는 ‘내용 정리’로, 저자가 이러한 역사에서 태어난 새로운 학문들의 핵심을 어떻게 짚어내고 또 정리했는지를 종종 정교한 수식을 곁들여 소개하는 내용적 층위다. 세 번째는 ‘해설 및 성찰’로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쉽게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흐름들이 지닌 의미를 보다 깊게 고민하고자 했다.
과학을 모르는 철학자와 철학을 모르는 과학자들의 세상에서
한 노학자가 스스로의 삶으로 이야기하는 ‘진짜 공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가 집필된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른바 ‘전문가 바보’가 생겨난 오늘날 학문 토양에 대한 반성이다. 언젠가부터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앎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천착한 아주 좁은 분야 외에는 모르는 것이 미덕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를 학자로서의 겸양이나 또는 엄밀함을 추구하는 태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철학자는 자연과학을 몰라도 상관없고, 과학자는 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전혀 지장 없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철학에서 자연과학이 분리된 이후 본의 아니게 ‘앎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진 철학이 간직했던 학문 지향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기존 분과 학문들을 연결 짓는 이른바 통섭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근대 이전 자연철학 본류의 지향은 간직하되 오늘날 학문의 대략적인 전모를 담아낼 새로운 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당연히 쉽지 않은 작업이며 한 개인의 성취로 완성될 수 있는 범위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이 그러한 새로운 앎의 틀에 대한 몸 풀기, 맛보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앎’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가?
새로운 틀에 담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앎의 지평
또 하나는 한국의 당대 지성이 ‘온전한 앎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붙들어온 평생의 연구 과정을 중간 정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폴 고갱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대표적인 철학적 화두다. 따라서 무수한 책에서 다뤄오면서 더러는 조심스럽게 결론을 짓고 더러는 답을 유보한 채 더 큰 질문으로 나아갔다. 물리학에 바탕을 둔 이 책 또한 이러한 철학적 질문으로 회귀하지만 그 과정이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론물리학의 바탕에서 복잡한 수식과 정교한 사유의 틀을 활용해 자연과학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찍이 인간의 자아를 양자역학적 파동함수로 규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는데, 저자는 이러한 가설을 그저 철학적 흥밋거리로만 보지 않고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검토한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단순히 한 노학자가 그간의 업적을 책 한 권으로 그러모아 서랍식으로 정리하는 데 그친 결과가 아니다. 저자는 2003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연구 활동을 꾸준하게 지속해 더욱 깊은 경지로 사유와 고민을 진전시켜갔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성과들을 모두 담았다. 예를 들어 그간 저자가 꾸준하게 이야기해온 ‘온생명’과 ‘낱생명’을 대중적으로 풀어 다른 연구들과 연결 짓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생명의 정의를 내릴 때 자유 에너지가 태양으로부터 지구로 직접 쏟아진다는 과거의 주장을 입증해 2018년 《Physica A》에 등재되기까지 한 최근 논문의 성과까지 반영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에서 분리된 자연과학이 다시 철학을 들여다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지혜의 역사책이자, 온전한 앎을 추구하며 철학적 질문들을 자연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한 과학 저술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여든이 넘도록 평생 공부를 지향해온 저자 자신이 오직 공부로서 스스로를 이야기한 ‘개인’이 드러나지 않은 공부 자서전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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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 장회익 - 동서양의 철학 그리고 과학
우리는 학창시절 물리, 생물, 화학, 지구과학으로 나뉜 과학 과목을 공부했었습니다. 저는 생물과 화학을 선택했었는데 물리와 지구과학은 계산할 것도 많고 복잡해서 싫었습니다. 심지어 나는 절대 못한다고 생각했었죠. 대학에 가서 생화학을 배우면서도 여전히 생물과 화학은 별개의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러 과학 서적을 읽다 보니 과학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이것은 좋고 이것은 싫다고 선을 딱 그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점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물과 화학을 완전히 갈라놓고 생각하기 어렵듯이 물리나 지구과학(이라고 말하는 우주과학) 또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반드시 미덕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시대에서 살아가다 보니 과학을 네 가지로 분류해서 공부했던 건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해서였으며 실제로 그렇게 사분화된 사고를 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과학을 철학과 합쳐서 생각합니다. 책 소개를 읽을 때만 하더라도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철학자라고 알고 있는 데카르트 역시 과학자였으며, 과학자로 알고 있던, 철학자라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 역시 철학자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5 원소설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던 많은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증명하기 위해 수학, 과학을 이용했고, 새로운 이론을 발견해낸 과학자들도 철학 하여 사고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도출해냈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솔직히 쉬운 책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장회익 교수는 12세기 곽암 선사의 심우십도와 16세기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에서 착안, 이 책의 흐름을 정했습니다.
처음엔 동양 철학과 사유가 나오는 바람에 그걸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아니 실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쉬운 책을 주로 읽어온 제 탓입니다. 장회익의 글이나 문장은 쉬운 말로 쉽게 쓰여있었습니다. 제가 모자라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책을 읽다가 블로그 이웃 중 몇 분이 떠올랐습니다. 그분들이라면 이 책을 쉽게 읽어나가실 텐데...
서양 철학 쪽으로 가니 좀 편해졌습니다. 한자, 한자어 때문이었나 봅니다. 한자 공부를 해야 할까요. 아이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읽으면 되는 걸 굳이 적어가며 이해해보겠다고 공식을 따라 쓰고 대입해가며 읽은 저는 뭘까요. 이 책을 읽으시는 분께 처음엔 그냥 쭉 읽어나가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서 다시 읽을 때는 천천히 깊게 철학 하며 읽으라 권합니다.
이 책은 열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장에서 철학 이야기, 철학자 이야기, 철학 혹은 과학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대개 물리나 수학 이야기를 하는데요. 인문과 과학을 넘나들며 아우르는 책입니다. 과거 뉴턴이나 데카르트도 이런 식의 사유를 했을 것 같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고민하다가 탄생하는 위대한 발견들. 아인슈타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상대성이론 같은 거, 제가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이런 과정들에 의해 탄생했다는 걸 보며 역시 범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이야기'형식을 취하고 있고, 또 특정 분야의 사전 지식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으나, 불가피하게 일정 분량의 수학적 표현들마저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수학적 표현 그 자체가 중요한 지적 성취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에, 힘이 든다고 해 수학적 표현을 피해가는 것은 산을 안내하는 자가 산을 피해가는 길만 안내하려는 태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p.8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서양의 철학자, 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입니다. 그들의 이론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이름만은 친숙해 만나면 반가웠습니다.
여현 장현광의 <우주설>에서부터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 볼츠만 등을 책에서 만나며 그들의 철학과 함께합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도 이해 가능하게 서술하였다 했지만, 첫 번째, 물리 수업을 제대로 들었을 것. 두 번째,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 필요조건일 듯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책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특히 물리 관련 지망하는 학생에게는 좀 더 넓은 시야를 줄 수 있을 책이었습니다.
맨발에 가슴 풀어헤치고 저잣거리 들어서니
흙투성이 재투성이라도 얼굴엔 함박웃음 가득하다.
신선이 가졌다는 비법이 없어도
마른 나무 위에 곧바로 꽃을 피우는구나.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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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2019-09-15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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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전역학은 자연계에 적용되는 변화 원리를 찾아내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돌이 날아간다’라고 할 때 돌의 ‘특성’을 지칭할 개념과 돌의 운동을 지칭할 ‘상태’ 개념이 구체화되어야 의미 있는 서술 및 예측이 가능하다. 돌이 날아가는 현상에 대해 대상의 특성은 보이는 그대로의 돌이 아니라 숨겨진 성격인 질량과 이것이 받는 힘에서 찾아야 하고, 대상의 상태 또한 겉모습이 아니라 서술에 적합한 위치와 운동량으로 삼아야 한다.
이처럼 대상 ‘특성’과 ‘상태’를 규정하고 나면, 어떤 존재자의 운동을 서술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해답을 추구한다는 말과 같게 된다. 존재자 ‘특성’, 곧 질량과 이것이 받는 힘을 일단 알아냈고, 또 이것의 현재 ‘상태’, 곧 현 시점에서의 위치와 운동량을 관측을 통해 알아냈다고 할 때, 미래 시각에서 상태 값은 얼마인가 하는 물음이다. 뉴턴 고전역학의 핵심은 바로 이 일반적 방식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참고로 운동량은 물체의 질량에 의존하지만, 물체의 위치와 속도는 처음 위치와 속도에 의존할 뿐 물체 질량에는 의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중력을 받는 물체의 운동 궤적은 그 질량에 무관하게 초기 속도와 위치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초기 위치 및 속도 크기와 방향에 따라 낙하 운동, 포물체 운동이 되고, 또 초기 속도가 일정한 값보다 커지면 쌍곡선 형태의 궤적에 따라 지구에서 영구히 벗어난 운동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고전역학과 달리 양자역학은 위치와 운동량으로 상태 개념을 설정하는 것이 부적절하며, 위치와 운동량은 오히려 ‘진정한 상태’가 외부와 접촉에 의해 그 성격 일부가 드러나는 ‘흔적’에 해당한다. 양자역학 초기에 입자라고 여겨졌던 존재물(예컨대, 전자)은 파동성을 가진다는 특성이 알려졌지만, 이것이 수면 위 파동이나 음파와 같이 실제로 시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의 파동이 아님은 확실했다. 대상은 파동적으로 행동하지만 그 위치를 측정해보면 여전히 한 점에서 충돌하는 입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물질이 입자성과 더불어 파동성을 지닌다고 하는 이른바 이중성 논지를 펴기도 했지만, 이것은 빛이나 물질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고, 이들의 ‘상태함수’를 나타내는 성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곧이어 이것이 대상 입자가 시공간 안에서 관측될 확률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으나, 실제 물체가 어느 시공간 안에 ‘있으리라’ 추정하는 통상적 확률과도 그 성격을 달리한다. 실제로 이 파동 값은 실수가 아니라 복소수로 표시되기에, 이 값의 절대치 제곱은 대상이 그 지점에서 ‘발견될’ 확률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다가 점차 이것은 물질 분포나 확률을 직접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술하려는 대상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임이 밝혀졌고, 이것을 대상의 ‘상태함수’라 부르게 되었다.
상태함수가 의미하는 바는 대상이 ‘어느 시점에, 어느 위치에서 존재할 확률이 얼마냐’하는 시공간 분포를 말한다기보다는, 대상이 ‘어느 위치에 존재할 확률이 얼마냐’ 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즉 대상은 어느 시점에서나 확률 1로 존재함을 전제로 하고, 단지 공간적 변화만을 보려는 입장이다. 이렇게 얻어진 상태함수를 통해 그 대상 관련한 모든 물리량을 산출해내는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다.
상태함수를 통한 대상 존재의 서술은 결코 사건 자체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대상이 지닌 ‘사건 야기 성향’만을 말해준다. 결국 이러한 사건야기 성향을 지닌 대상이 ‘사건유발 능력’을 가진 외부 존재자와 조우하게 될 때 두 가지 형태(입자성 혹은 파동성)의 사건이 실제 발생하며, 그 각각에 대한 확률 및 결과로 대상 및 외부 존재자에 나타날 변화를 명시해주는 것이다. 심지어 관측을 했느냐 안 했느냐 와도 상관없는 일이다.
양자역학이 밝혀낸 가장 새롭고 중요한 사실은 고전역학처럼 존재물의 상태가 위치와 운동량 값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태함수’로 규정된다는 사실이다. 상태함수의 전형적 형태는 존재물 그 자체가 ‘위치와 운동량을 지니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상태함수로 표현되는 ‘상태’에 있을 뿐이며, 이것에 대해 관측되는 모든 성질, 예컨대 위치와 운동량은 상태함수를 통해 일정한 방식으로 도출되는 구조를 가진다.
하지만 고전역학에 오류가 있다기보다는 양자역학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단순화된 부분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양자역학 세계의 존재론적 구조는 ‘상태 층’과 ‘사건 층’ 두 가지 층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상태 층’이라 함은 주체가 접하는 모든 대상이 ‘상태’만의 형태로 존재하는 층위로서, 이는 실재 일부를 대표하는 것이기는 하나 어떠한 관측에도 직접 포착되지 않는, 말하자면 수면 이하 세계와 같은 존재를 말한다. 이에 비해 ‘사건 층’이라 함은 사건 또는 빈-사건의 총체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오직 이것만을 통해 대상 존재가 외부와 관계를 맺게 되는 층위에 해당한다. 이는 말하자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세계를 의미하는데, 인식주체는 오직 이 층위에서만 대상과 어떠한 교섭을 취할 수 있다.
따라서, 일상 경험하는 세계는 당연히 ‘사건 층’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자체만으로 서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그 바탕에 ‘상태 층’을 깔고 있으며 ‘상태 층’에 의해 조정되는 외피에 해당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원론적으로 고전역학에서도 성립한다. 고전역학에서의 상태 또한 ‘상태 층’을 형성하며, 구체적으로 관측되는 물리량이 ‘사건 층’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외부 관측 장치와 아무런 교섭이 없는 한, 고전역학에서도 대상의 상태를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고전역학에서는 상태 자체를 관측하는 물리량 값(위치와 운동량)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이러한 구분 자체가 현실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의불식간 이 두 층위를 하나의 존재론적 실재로 묶어버리고, 물리적 실재로서 별도의 ‘상태 층’을 수용할 여지를 아예 배제해버린다. 따라서 고전역학 관점에서 보면 약자역학에서 나타나는 ‘상태 층’을 수용할 별도의 존재론적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존재론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 대해 ‘비실재론’이라든가 ‘도구주의’라는 명칭으로 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반면 양자역학을 통해 마련된 중층적 존재론 관점에서 보면, ‘상태 층’이라고 하는 그동안 묻혀 있던 새로운 층위의 존재가 선명한 구분을 가지고 밝혀진 셈이며, 그간 실재 세계라고 여겨졌던 현실세계가 실은 ‘사건 층’이라고 불려야 할 실재의 한 구성 층위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2.
특수상대성이론은 원칙적으로 빛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론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순수하게 시간-공간에 관한 이론이며, 단지 시간과 공간 변수들이 하나의 보편 상수 c를 통해 4차원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빛이 하필이면 이 보편상수 c에 해당하는 속도로 움직이게 되는 것은 시간-공간이 지닌 성격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다.
사실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보편상수 c, 곧 광속 불변의 가정은 우리 직관에 크게 위배된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두 좌표계에서 모두 같은 값을 가진다는 것을 가정으로 내세웠다. 예를 들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를 시속 99킬로미터로 가는 차에서 관측하더라고 여전이 이것이 시속 100킬로미터로 가는 것으로 관측되는 일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를 기준으로 할 때 앞 차는 시속 1킬로미터로 달렸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린 것이 아니다. 사실 칸트는 시간과 공간 개념이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이른바 직관 형식으로 우리 사고를 지배하는 ‘바탕 관념(아 포리아)’이라고 했지만, 아인슈타인의 ‘광속 불변’은 바탕 관념에서 크게 벗어난다.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 4차원을 형성한다는 데 있다. 실제 3차원 공간은 눈에 보이고 몸으로 더듬을 수 있는 사물을 담고 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차원인 시간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과 관계되며, 특히 3차원 공간에 수직하게 또 하나의 축을 세워 서술할 그 어떤 단서도 잡을 수 없다. 그런데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18세기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친 가우스 시대부터 허수 단위 i(i^2=-1)가 알려졌고, 이것이 실수축에 수직 방향으로 또 하나의 축인 허수축을 구축하면서 가우스 평면이라는 2차원의 복소수 공간이 이루어짐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허수 공간은, 설혹 ‘허수’라 지칭되기는 하지만, 실수 체계와 무관하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좀 더 수학적 정합체인 ‘복소수’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간의 한 차원을 1차원 실수 공간에 대응시킨다면, 시간은 허수 공간에 대응됨으로써 공간-시간의 2차원 구조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공간은 서로 수직인 세 개의 실수축을 지닌 3차원 공간에 해당되므로 시간은 이들 모두에 수직인 허수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4차원 시공간을 이루게 된다. 4차원을 이룬다는 말 속에는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지는 평면상 모든 방향이 대등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서 대등하다는 것은 이 평면상 어느 방향을 기준 축으로 설정해서 관측하더라도 자연법칙이 동일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평면상에 서로 다른 기준 축을 택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속도를 지닌 관측 계를 택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4차원 시공간을 이룬다는 말 속에는 이미 ‘모든 자연법칙은 관측자의 속도에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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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9-23 공감 (1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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