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3

이선근 유교가 실은 3 . 1혁명에서 상당히 중요한 정서적 바탕일 수 있다는 요지



(5) 이선근




이선근
13 hrs ·



_ 후기

모든 글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선비의 글이라면 그 글은 여러 번 다시 읽어,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우고 또 뜻의 깊이를 더 깊은 곳에서 만나야 할 것이다. 아마도 선비 된 글은 그 글을 썼던 정성만큼 여러 번 읽어야만 내 안에서도 깊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하면 그분들의 글이 내 안에서도 공명하여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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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일보학교에서는 이은선 선생님의 “3 . 1운동 정신에서의 유교(대종교)와 기독교 — 21세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의미와 시사”를 읽었다. 나는 지난봄 계절에도 한 번 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읽으면 두 번째가 된다. 그런데, 마치 담은 낮으나 문이 여럿 달린 전통 고택에 들어간 것처럼, 글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무척 신비롭고 고고했다.

이 글은, 흔히 3 . 1혁명에서 배제된 종교 혹은 사상이라고 생각되어왔던 유교가 실은 3 . 1혁명에서 상당히 중요한 정서적 바탕일 수 있다는 요지로,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정신으로부터 20세기 초 신흥 종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독립항쟁과 세계평화에 미친 영향을 종교사상사적으로 차근차근 짚어내고 있다:

“유교의 역할이 의병 활동 등과 더불어 앞으로 전개될 모든 독립항쟁 운동에 밑받침이 되었다 ...”(27)

“3 . 1운동과는 관련 없다고 여겨지는 유교가 그 이전의 세찬 의병 운동의 정신적 근거였고, 이후 동학, 기독교, 대종교의 등장과 응전에 한결같은 공의의 원리로서 출발점이 되었음을 …”(47)

조선 후기 선비들은 기꺼이 목숨을 내고 재산을 내어 의병을 일으키고 민중들과 함께 겨레의 독립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애썼다. 단지 무력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기저에 있던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독립과 평화의 의지를 민중의 삶에 선언하는 종교운동으로서 사방 곳곳에 쏟아지듯 일어섰다.

이것은 각각이나 각각이 아니고 하나이며, 그것도 다만 하나가 아닌 참으로 각각의 온통이다. 100년의 3 . 1혁명은 바로 이 온통의 소리인바 천지를 쩌렁쩌렁 우는 독립과 평화의 울음이다. 그러나 이 소리의 시제는 현재 미완료 시제로 작금에도 여전히 민생의 독립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멈춤 없는, 우리 내면에 살아 우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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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선비정신’이란 무엇인가? 어찌하여 500년을 줄곧 엘리트 지배계급이었던 선비가 권력과 힘의 몰아치는 압력에 솔깃하여 따르지 않고 선비의 순수한 정신으로만 그것들에 마주하여 고고하게 저항했을까? 그들은 마치 지방 향교의 낮은 담에도 불구하고 높이 오르는 주름진 곡선을 닮았다.

내 질문에 선생님은 선비에게는 ‘계급’이 없다고 답해주셨다. 아뿔싸, 어찌 나는 ‘인격’과 ‘학문’과 ‘경륜’을 무겁게 생각하는 군자의 도를 계급 이후로 생각했을까. 그들에게는 계급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들은 오로지 인의 도에 의한 생명을 귀하게 맡아 사는 뿐이다. 그러니 학식이 있고 관직이 있다고 한들 그들을 유산 지배계급으로 단순하게 정의하는 것은 옳지 않으리라.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선비’는 적고 ’계급’은 강력하기에 나라를 팔아먹고도 이 힘 저 힘에 붙어먹는 못돼먹은 이들이 있는 것 아닌가. 비록 그들이 학식과 관직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선비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정신이 없으니 진짜 선비가 아니며 다만 도적일 따름이다. 이들을 숭상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 또한 그저 소인배라 할 것이다.

정신은 하나의 반복에서 가라앉는 추락에 멈추지 않고 다시 뛰어오르는 상승으로 솟구친다. 이는 마치 가슴에서 뛰는 박동에서와같이 쿵 . 쾅 . 쿵 . 쾅, 뛰는 몸의 울음소리로 알 수 있다. 그러니 이렇게 우는 이들이 모두 선비이다. 학식이 있고 관직이 있어서가 아니라, 몸에서 정신으로 울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람의 품격이며(인격), 배움과 앎의 바름이며(학문), 기쁨과 슬픔을 사는 관계(경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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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류에 흔들려 돈과 권력을 쫓아다니는 소인배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인의 도를 따라 민생의 독립과 세계의 평화를 사는 군자가 될 것인지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내면에 선비의 정신이 박동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다 군자로 살리라. 하나, 자신을 속인다면 겨우 소인배나 다름이 없으니, 우리는 매일 깨어 선비정신을 성실히 들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선비라 할지라도 경륜(수덕과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인제 보니, 얼어 죽은 소년도, 생선을 파는 여인도, 벽돌을 나르는 청년도, 높은 곳에 오른 아비도, 박스를 줍는 노인도 모두가 다 군자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계급을 모르는 군자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소인배가 아니니, 그들의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한다. 쿵 . 쾅 . 쿵 . 쾅, 우는소리를 내 심장에서 들어야 한다…

오늘은 대한 독립 만세, 만세, 만세, 세계 평화 만세, 만세, 만세를 외치며 죽어간 소녀와 여인과 청년과 아비와 노인의 100년의 하루, 온통의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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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고맙습니다. 오늘에도 여전히 작동되어야 하는 참된 선비정신에 대해 잘 지적해 주셨네요. 그런데 그 선비정신이 오늘 21세기 유가 그룹에서 잘 작동되지 않는 것 같아 많이 유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잠깐 써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