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4

서울리뷰오브북스 [2024] -특집 리뷰: 믿음, 주술, 애니미즘

서울리뷰오브북스 (계간) : 14호 [2024] - 예스24
특집 리뷰: 믿음, 주술, 애니미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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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의 불가해한 믿음을 들여다보는 여섯 편의 전문 서평,
‘특집 리뷰’

《서울리뷰오브북스》의 새로운 코너 ‘고전의 강’

『경계를 넘는 공동체』부터 『혁명과 일상』까지,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다루는 다채로운 ‘리뷰’

《서울리뷰오브북스》 2024년 여름호(14호)의 특집 주제는 ‘믿음, 주술, 애니미즘’이다. 우리는 무엇을, 왜, 어떻게 믿는가? 기성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사주팔자와 신점이 인기이고,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전화와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서도 ‘용한 곳’에 접속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인이나 경영인이 ‘주술’에 의지한다는 혐의를 받으면 지지율과 주가가 요동친다. 무당·지관·장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파묘〉(2024)가 오컬트 장르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동시에, OTT에서는 ‘사이비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많은 이들의 분노와 경악을 자아냈다. 혹자는 근대로의 이행을 ‘탈주술화’ 과정이라 했지만, 2024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주술과 함께 살아간다. 《서울리뷰오브북스》 14호에서는 이런 현실을 마주 보며 우리의 불가해한 믿음과 그 믿음의 대상들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종교학, 문화인류학, 과학학, 역사학, 자연과학 분야 전문가 6인이 머리를 맞댔다.

종교학자 한승훈은 이창익의 『미신의 연대기』를 리뷰하며 ‘미신’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기괴한 믿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답한다. 권석준 편집위원은 과학적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통해 패턴 완성이 잘못된 믿음과 광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본다. 무속 현장을 연구하고 있는 오성희는 두 여성 학자의 인류학적 무속 연구의 결과물인 『무당, 여성, 신령들』과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을 읽으며 한국 무속과 여성들 삶의 내면을 파악해 본다. 임종태(서울대 과학학과)는 지난 2월 작고한 ‘풍수 학인’ 고 최창조(1950-2024) 선생의 『한국의 풍수사상』을 다시 읽으며, 풍수라는 ‘전근대적’ 술수(術數)를 ‘현대적’ 학문으로 정립하고자 한 그의 여정을 좇는다. 심재훈(단국대 사학과)은 인신 공양과 식인 풍습이 만연했던 상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룬 『상나라 정벌』을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홍성욱(본지 편집위원, 서울대 과학학과)은 애니미즘적 감수성의 복원을 주장하는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를 읽으며 과거와 다른 현대 사회의 ‘객체’들과의 관계성을 논의한다.

이번 호부터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새로운 코너 ‘고전의 강’을 통해 현재 우리에게 닥친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할 고전을 꼽고, 그 책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는 작업을 시도한다. ‘고전의 강’이 탐독하는 첫 번째 주제는 ‘진화’이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진화는 찰스 다윈의 위대한 연구 이후,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되고 심화·발전되어 왔다. 진화심리학은 이런 지적 탐구가 낳은 한 결실이다. 정우현(본지 편집위원, 덕성여대 약학과)은 진화심리학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필독서이자 현대의 고전이라 할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을 읽으며, 유전과 도덕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검토한다.

리뷰 코너에서는 유럽의 중심에서 중국을 이야기하는 인류학자 샹바오의 『경계를 넘는 공동체』부터, 영화라는 매체의 본성과 미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영화의 이론』과 질베르토 페레스의 『영화, 물질적 유령』, 북한에 대한 통설에 이의를 제기한 김수지의 『혁명과 일상』, 월북 지식인 김수경의 생애를 톺아보는 이타가키 류타의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등,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두루 다루었다.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편집실에서 ∥ 김두얼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지적 대상으로서의 기괴한 믿음 · 『미신의 연대기』 ∥ 한승훈
패턴의 자동 완성이 주는 편안함과 쏠림 ·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 권석준
여성 인류학자들이 만난 무속의 현장들 · 『무당, 여성, 신령들』,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 ∥ 오성희
현대 지리학과 그 사상적 대안 사이에서 · 『한국의 풍수사상』 ∥ 임종태
좋은 역사가가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을까? · 『상나라 정벌』 ∥ 심재훈
애니미즘은 세상을 구원할까? ·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 ∥ 홍성욱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믿음과 단체 사진: 박찬경의 〈신도안〉에 대하여 ∥ 현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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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소한 것들의 힘 · 『경계를 넘는 공동체』 ∥ 이승철
영화의 모던한 존재론, 역사와 예술 · 『영화의 이론』, 『영화, 물질적 유령』 ∥ 김지훈
북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은 아니다? · 『혁명과 일상』 ∥ 홍제환
한 언어학자의 삶을 통해 본 남북 분단 ·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 박진호

고전의 강
도덕은 왜 유전자와 싸우는가 · 『도덕적 동물』 ∥ 정우현

문학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타자기 전쟁 ∥ 한성우
그래, 책이라도 있어서 어딘가, 내세울 것 없는 세상에 ∥ 박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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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및 편집위원 소개
편집위원 강예린, 권보드래, 권석준, 김영민, 김홍중, 박진호, 박훈, 송지우, 심채경, 유정훈, 이석재, 정우현, 정재완, 조문영, 현시원, 홍성욱 편집장 김두얼 필자 (게재순) 한승훈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왕의 수명을 줄여라』(공저), 『무당과 유생의 대결』, 『혁명을 기도하라』 등이 있다. 권석준 본지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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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번 호에서는 믿음과 회의, 합리과 비합리 같은 인간 인식의 본질적 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지,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운 많은 영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지, 나아가 인간 중심적인 세계 인식을 넘어서 사물이나 환경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상호작용해야 하는지와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을 꼼꼼히 읽고 차분하게 따져 보는 서평을 모아 보았다. 이런 기획이 맹목적인 믿음의 세계를 넘어서는 것과 아울러, 도식적 형태의 근대성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한계도 극복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 3쪽

인문사회과학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낯설고 기이하게 여겨지는 인간 문화야말로 그 첨단에 있는 연구 대상이다. 우리는 타자의 불가해한 믿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자신의 일상적 인식 체계 또한 역사적으로 구성된 범주들의 덩어리라는 것을 성찰하게 된다. 인간의 기괴한 믿음이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매혹적인 지적 대상이다.
―한승훈 「지적 대상으로서의 기괴한 믿음」, 24쪽

인류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도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범위는 더 넓어질 것이며,
그 안에는 우리 자신이 포함될 것이므로, 이상한 것을 믿는 것의 여파가 사회에 주는 영향력은 점차 축소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따른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상한 것보다 과학적 사고방식과 회의주의를 더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의 불꽃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석준 「패턴의 자동 완성이 주는 편안함과 쏠림」, 40쪽

켄달과 김성례의 작업에서 인류학적 무속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어쩌면 연구자들 자신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남성 무당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극히 소수이며 대부분 무속의 실천은 여성들과 그들 삶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남성 연구자가 여성들과 함께 살며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움이 많았다. (……) 반면, 두 여성 학자는 실제로 무속의 현장에서 여성들과 함께 살며 민족지 쓰기를 실천했다. (……) 한국 무속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살았던 두 여성 연구자의 경험은 한국 무속과 여성들 삶의 내면을 파악하는 인류학적 성과를 남겼다.
―오성희 「여성 인류학자들이 만난 무속의 현장들」, 44-45쪽

얼마 전 작고한 최창조(1950-2024)를 추모하는 기사에서 풍수지리학자 김두규(우석대 교양학부)는 그를 이전까지 “‘술(術)’로 치부되던 풍수”를 “당당하게 ‘학(學)’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인물로 평가했다. 생전에 최창조는 자신을 “풍수 학인(學人)”이라 부르고는 했는데, 스스로도 진지한 학문으로서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풍수라는 ‘전근대적’ 술수(術數)를 ‘현대적’ 학문으로 정립하고자 한 그의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임종태 「현대 지리학과 그 사상적 대안 사이에서」, 55쪽

물론 헤이든 화이트의 ‘임플롯먼트(emplotment,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줄거리를 갖춘 하나의 이야기로 조합하는 것)’ 개념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역사가 허구라고 합의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진실 추구라는 역사학의 명제를 포기할 수 없다면, 설사 역사가가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증거를 제시하는 데 어느 정도라도 꼼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 국내의 독자들이 이 서평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면서 고대 중국의 다양한 자료가 빚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일단을 즐기길 바란다.
―심재훈 「좋은 역사가가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을까?」, 82-83쪽

지금 우리가 골머리를 앓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자, 또 우리의 삶을 지속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테크노사이언스의 결과물들. 정말 난처하고 곤란하고 가끔은 사랑스럽고, 그렇지만 위험한 괴물들, 키메라들, 잡종들, 사이보그들. 우리를 닮았지만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옷과 냄새가 다른, 절하고 기도하는 방법이 다른 낯선 이방인들. ‘우리의 애니미즘’은 이런 존재들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침울하고 의심 가득한 것에서 생동감 있고 생명력 있는 것으로 만드는 감수성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애니미즘’에서 배울 태도는 이것이다.
―홍성욱 「애니미즘은 세상을 구원할까?」, 96쪽

신도안은 특정한 지형지물을 기반으로 하는 기대의 공동체다. 카메라는 계룡산 자락에 위치했던 수천 개의 종교 집단들 대신 개인들을 궁금해한다. 그리고 여전히 영상이 만들어진 시점에 살아남은 개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이동하는 차의 창밖으로 향하는 카메라는 여전히 이름들을 포착한다. 하나의 이름이 아닌 여러 개의 이름이다. 계룡산 용화사 연화굿당, 단군성전, 해운암, 사랑의 씨튼 수녀회와 씨튼 영성의 집. 말뚝을 박듯이 거리에 새겨진 간판은 여전히 흩어진 이름들을 보여 준다. 수천여 개의 종교가 다른 지도자들을 모셨던 이질적 땅이다.
―현시원 「믿음과 단체 사진: 박찬경의 〈신도안〉에 대하여」, 111쪽

번역이라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책은 서로 다른 언어의 판본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에 대해서도 번역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된 책은 서로 다른 물성을 지니게 된다. 책 제목, 부제만 해도 표지에 각기 다르게 옮겨져 표기되며, 표지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번역에는 원본을 배반하는 실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원문 중심의 직역을 하더라도 의미 전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또 도착어를 고려해 지나치게 생략하거나 의역함으로써 오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하나의 책이 번역될 때 그 물리적?시각적 형태는 어떻게 번역될까.
―구정연 「사건으로서의 번역」, 116쪽

〈책하고 놀자〉의 가장 큰 매력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프로그램 제목을 먼저 말한다. 독서는 엄숙한 학습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기쁨을 얻는 쾌락의 향유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하고 놀자〉의 지향점은 ‘읽고 들어도 재밌고 안 읽고 들어도 재밌는 책 방송’이다. 방송을 듣고 독서에 흥미를 느껴 도서관에 가거나 책을 구입했다는 청취자들의 사연을 접할 때, 프로그램 작가로서 가장 뿌듯하다.
―강의모 「오늘도 행복한 동행, 책 한 권 잊지 마세요」, 131-132쪽

이 책은 무엇을 주장하는가를 넘어, 그 주장이 어떻게 제시되는가를 보다 세심히 살펴봐야 하는 책이다. 아마도 이미 주어진 개념적 도구들로 사회 현상을 분석해 나가는 기존의 사회과학 글쓰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끊임없이 쏟아지
는 ‘사소한’ 사례들과 행위의 방대한 더미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일 것이다. 책을 통해 한 공동체의 역사를 독자가 직접 체감하도록 하겠다니, 저자는 왜 이토록 무모해 보이는 기획을 시도한 것일까?
―이승철 「사소한 것들의 힘」, 137쪽

이 두 권의 책이 상영되는 스크린은 영화가 모던함과 맺는 특별한 관계다. 그 관계의 원천은 영화의 사진적 속성, 즉 카메라를 통한 변화하는 현실의 기록을 재료로 삼고 그 기록을 움직이는 이미지의 지속으로 전환하는 영화의 고유한 역량이다. 『영화의 이론』은 이와 같은 역량으로 인해 영화가 20세기 사회의 모더니티에 참여하는 기술적, 미학적 예술일 뿐 아니라 모더니티의 매혹적이고도 파괴적인 양면성을 감각하고 이해하는 데 핵심적임을 주장한다. 『영화, 물질적 유령』은 영화의 사진적인 역량이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영화 이미지의 현전과 부재 모두를 이끌면서도, 바로 이와 같은 역설적 공존을 통해 영화 예술이 모더니스트 예술의 폭넓은 전통에 생산적으로 기여해 왔음을 밝힌다.
―김지훈 「영화의 모던한 존재론, 역사와 예술」, 152쪽

통설에 대한 이의 제기는 바람직하며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문제는 통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축적된 논리와 근거를 뛰어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혁명과 일상』도 통설에 대한 이의 제기라는 측면에서 신선했지만, 통설의 논리와 근거를 뛰어넘어 설득력을 지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저자의 의욕이 너무 앞섰기 때문은 아닐까?
―홍제환 「북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은 아니다」, 176쪽

한반도는 20세기에 큰 비극의 무대이기도 했고, 냉전 체제에서 양극 사이에 낀 위치라는 특수성도 있고,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를 연구할 때 너무 거시적인 세계체제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 한반도에 살면서 행위했던 사람들을 장기판 위의 졸로 보는 듯한 태도를 지닌다면 부적절할 것이다. 반대로 민족주의에 지나치게 사로잡혀서 시야를 한민족에만 한정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을 도외시한다면 그 또한 곤란할 것이다. 이 둘 사이에서 주체와 환경 양쪽을 균형 있게 고려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을 중시하면서 한반도를 연구해 왔고, 이를 ‘비판적 코리아학’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그의 그러한 연구가 맺은 귀중한 결실이다.
―박진호 「한 언어학자의 삶을 통해 본 남북 분단」, 189-190쪽

진화는 인간의 본성을 결국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일부의 바람대로) 진화를 ‘진보’라고도 볼 수 있다면 진화심리학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절치부심하며 더 진화할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같은 꿈을 꾸는 다른 학문 분야의 방법론과도 과감히 손을 잡을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진화하는 구조를 섣불리 오판해 학계의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도록, 대중의 필요에 영합해 과학과 소설의 경계를 함부로 넘나들며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도록.
―정우현 「도덕은 왜 유전자와 싸우는가」, 222쪽

이 싸움은 모두가 승리자이고 궁극적으로는 세종이 승리자이다. 타자기 싸움의 초점은 빠른 속도와 예쁜 글꼴에 맞춰졌는데 이는 결국 한글 때문이다. 글자는 자음과 모음 두 벌인데 소리는 초성, 중성, 종성 셋이다. 그런데 종성은 다시 초성을 쓰니 어찌 보면 둘이다. 타자기 전쟁을 벌인 이들은 결국 세종이 낸 숙제를 붙들고 머리를 싸맨 것이다.
―한성우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타자기 전쟁」, 233쪽

개인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한국형 SF의 특징은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두드러지며 차별과 빈부격차에 관한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적었다. 그렇게 답변을 쓰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는데 불현듯 ‘나도 차별과 빈부격차에 대해 쓰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혔다. 며칠간 생각한 후 나는 질문지에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내가 차별과 빈부격차에 대해 쓰는 이유는,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박해울 「그래, 책이라도 있어서 어딘가, 내세울 것 없는 세상에」, 235쪽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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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특집 리뷰:
믿음, 주술, 애니미즘


“이번 호에서는 믿음과 회의, 합리와 비합리 같은 인간 인식의 본질적 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 이런 기획이 맹목적인 믿음의 세계를 넘어서는 것과 아울러, 도식적 형태의 근대성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한계도 극복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두얼, 「편집실에서」 중에서

과연 근대화는 탈주술화·합리화의 과정이었는가? 하이테크놀로지의 시대에도 주술은 여전히 우리 곁에 밀착해 있다. 여전히 주술과 ‘미신’은 합리적 판단을 요구받는 정치경제적 결정권을 지닌 권력자들의 친밀한 이웃(정신적 지주)이며, 대중에게도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하고 있다. 한편, 합리성이나 과학이 지배자의 논리로 매도되거나 진리의 상대성이라는 잣대로 공격받고, 사실관계와 동떨어진 가짜 뉴스, 음모론, ‘사이비 역사’, ‘유사 과학’이 삽시간에 확산되고는 한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정보 및 소통의 증대는 이런 편향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키는 듯하다. 그 반대편에는 비근대적 사유 방식이나 영적 현상들이 충분한 성찰 없이 비난받거나 매도당한 역사가 있는데, 근래에는 생태적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해법으로 애니미즘과 같은 비근대적 세계관의 복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미신’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기괴한/이상한 믿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운 많은 영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지, 나아가 인간 중심적인 세계 인식을 넘어서 사물이나 환경과 어떻게 관계 맺고 상호작용해야 하는지와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을 꼼꼼히 읽고 차분하게 따져 보는 여섯 편의 서평을 모아 보았다.

“인간의 기괴한 믿음이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매혹적인 지적 대상이다.” 한승훈(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종교학)은 「지적 대상으로서의 기괴한 믿음」에서 기우 의례, 인육 포식, 풍장, 구타 치료, 백백교 등 일제강점기를 형성한 ‘미신’들을 살펴보는 이창익의 『미신의 연대기』를 리뷰한다. 저자가 제기한 ‘미신의 논리’와 ‘미신의 사회학’이라는 화두를 좇으며, 한승훈은 근대적 종교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불가해하고 위험한 대상으로 분류된 ‘미신’이 제거되고서야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정상’적인 종교가 출현하게 됐음을 지적한다.

“패턴의 엉뚱한 자동 완성은 간혹 비과학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권석준(본지 편집위원,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은 「패턴의 자동 완성이 주는 편안함과 쏠림」에서 과학적 회의주의자이자 《스켑틱(Skeptic)》의 발행인인 마이클 셔머의 대표작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다룬다. 권석준은 인간 지능의 핵심 중 하나인 ‘패턴의 완성’이 어떻게 비과학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하며, 유사 과학, 사이비 역사, 창조설 등을 반박한다. 나아가, 저자의 원칙인 과학적 사고방식과 회의주의를 재삼 강조한다.

“두 여성 학자는 실제로 무속의 현장에서 여성들과 함께 살며 민족지 쓰기를 실천했다.” 오성희(서울대 인류학과 박사과정 수료)는 「여성 인류학자들이 만난 무속의 현장들」에서 무속의 현장으로 뛰어든 두 명의 여성 인류학자, 로렐 켄달의 『무당, 여성, 신령들』과 김성례의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을 소개한다. 한국에서 무속의 실천은 대부분 여성들과 그들 삶의 영역에 존재한다. 오성희는 저자들의 시선을 따라 한국 무속과 여성들 삶의 내면을 파악한다.

“풍수라는 ‘전근대적’ 술수(術數)를 ‘현대적’ 학문으로 정립하고자 한 그의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임종태(서울대 과학학과)는 「현대 지리학과 그 사상적 대안 사이에서」에서 풍수지리학자 고 최창조 선생의 1984년 작 『한국의 풍수사상』을 다시 읽는다. 『한국의 풍수사상』은 출간 당시 ‘술’로 취급받던 풍수를 ‘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은 고인의 대표작이다. 임종태는 풍수를 현대적 학문으로 재정립하고 현대 서구 지리학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적 지리 사상을 모색한 최창조 선생의 지적 여정을 살펴본다.

“자료로 입증할 수 없는 고대사의 많은 영역은 공백으로 놔두는 게 미덕일 수 있다.” 심재훈(단국대 사학과)은 「좋은 역사가가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을까?」에서 2022년 중국에서 출간되어 고대사를 다룬 책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리숴의 『상나라 정벌』을 리뷰한다. 저자는 신석기 시대부터 부족국가와 초기 국가 단계를 거쳐 하·상·주 단계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에 걸친 중국 초기 문명의 성격을 규명하며, 그 핵심에 살육과 인신공양 제사, 카니발리즘을 두었다. 심재훈은 비판적 독해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중국 고대사를 재구성한 저자의 시도가 노출하는 고고학적 디테일과 문헌 기록의 오용을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접하는 존재에게서 생명력과 활력, 관계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홍성욱(본지 편집위원, 서울대 과학학과)은 「애니미즘은 세상을 구원할까?」에서 유기쁨의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를 읽는다. 홍성욱은 생태 위기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자연환경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애니미즘의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한다. 그러나 애니미즘이 세계를 이해하는 합리적 방식이었던 과거와 현대인의 환경·일상은 상이함을 지적하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접하는 존재에게서 어떻게 생명력과 활력, 관계성을 발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시의성 있고, 심도 있는 서평들이 이어진다.

이승철(서울대 인류학과)은 「사소한 것들의 힘」에서 인류학자 샹바오의 대표작 『경계를 넘는 공동체』를 리뷰한다. 이승철은 『경계를 넘는 공동체』에서 그려지는 저장촌의 역사뿐 아니라, 이주민들의 삶의 내밀하고 사소한 면들을 독자가 직접 이해· 경험하게 하고, 나아가 ‘체감’하게 하겠다는 저자의 기획을 고찰한다. 이승철은 저자가 제안한 두껍고 조밀한 연결망 개념에 기반한 사회의 도경 그리기가 지니는 의의를 인정하는 한편, 그러한 도경에서 빠진 노동자와 여성의 자리, 저자의 위치성, 이 도경을 틀 짓는 액자와 이를 조망하는 ‘경계’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을 제기한다.

김지훈(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은 「영화의 모던한 존재론, 역사와 예술」에서 영화 사회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영화의 이론』과 영화학자·영화평론가 질베르토 페레스의 『영화, 물질적 유령』을 함께 읽었다. 두 권의 무게감 있는 영화 서적을 통해 김지훈은 영화 매체의 본성이 무엇이고, 그 본성은 다른 예술과 어떻게 구별되며, 어떤 영화들이 그 매체의 미적 가능성을 가장 잘 실현하는가를 탐구한다.

홍제환(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은 아니다?」에서 제임스 팔레 한국학 도서상 수상작 『혁명과 일상』을 다뤘다. 저자 김수지는 오늘날 북한의 비극은 비극은 그들이 택한 체제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탓에 벌어졌음을 주장하며, 혁명 기간 북한 주민의 일상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홍제환은 통설에 대한 이의 제기의 필요성과 의의를 인정하는 한편, 이 책이 노출한 변화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와 특수한 경험의 성급한 일반화를 지적한다.

박진호(본지 편집위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는 「한 언어학자의 삶을 통해 본 남북 분단」에서 인류학자 이타가키 류타의 ‘비판적 코리아 연구’의 실천인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을 리뷰했다. 박진호는 북한에서 언어학자로서 족적을 남긴 김수경의 특수성과 분단을 경험한 지식인으로서 그가 겪은 생애의 일반성 두 측면을 두루 살피며, 남북 분단이 한 개인 및 학자에게 끼친 영향을 성찰한다.
고전의 강

‘고전의 강’ 첫 번째 주제, ‘진화’
“진화는 인간의 본성을 결국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이번 호로 첫발을 떼는 코너 고전의 강에서는 오늘날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을 꼽고, 현재의 시각에서 심층적인 독해를 시도한다. 고전의 강에서 다루는 첫 번째 화두는 ‘진화’이다. 정우현(본지 편집위원, 덕성여대 약학과)은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학술적·대중적 영향력을 떨친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을 톺아보며, 인간의 도덕성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규범을 유전자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한지, 진화심리학은 성차별을 정당화하며 과연 과학적인지 등을 규명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박찬경의 영상 〈신도안〉은 하나의 세계다.
‘〈 〉’를 떼어 낼 때 신도안은 계룡산 부근 지역을 일컫는 이름으로서 현실에 존재한다.
신도안이라는 글자 앞뒤로 ‘〈 〉’가 붙을 때 그것은 박찬경의 작업이 된다.”

믿음에 대한 사유와 성찰은 이미지 리뷰 코너 ‘이마고 문디’에서도 이어진다. 현시원(본지 편집위원, 시청각 랩 대표)은 「믿음과 단체 사진: 박찬경의 〈신도안〉에 대하여」에서 박찬경 작가의 6채널 영상 작업 〈신도안〉(2008)을 리뷰한다. 현시원은 박찬경 작가의 시선을 따라 수백 개의 종교 단체가 뿌리내렸던 계룡산 자락의 ‘신도안(新都內)’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믿음의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던 믿음과 시간이 지난 후 그 세계 바깥으로 빠져나온 이들의 의심을 응시한다.

디자인 리뷰

“번역이라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책은 서로 다른 언어의 판본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에 대해서도 번역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리뷰에서는 구정연(리움미술관 교육연구실장)이 「사건으로서의 번역」이라는 제목의 디자인 비평을 썼다. 구정연은 리투아니아 출신 미국 독립 실험영화 감독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작가들과의 대화』의 세 가지 판본(영어판, 한국어판, 중국어판)을 비교하며 원서와 번역서의 디자인에 관해 사유한다. 한 권의 책이 번역될 때 그 물리적?시각적 형태는 어떻게 번역되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하는 구정연은, 책을 옮기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개입, 해석에 주목한다.

북&메이커: 출판의 낭만과 일상

북&메이커에는 18년째 SBS 러브FM 〈김선재의 책하고 놀자〉를 맡고 있는 강의모(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오늘도 행복한 동행, 책 한 권 잊지 마세요!」가 실렸다. 강의모는 〈책하고 놀자〉의 구성과 제작 과정, 〈책하고 놀자〉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역할을 소개한다. 라디오 부스의 풍경과 라디오에서 ‘책을 말하는’ 이들의 일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문학에는 한성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와 소설가 박해울의 에세이가 실렸다.

한성우는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타자기 전쟁」에서 일제강점기의 천재 음악가, 감옥살이를 하다 모진 고문에 전향해 말년에 친일을 하다 생을 마감한 도례미(都禮美)와 조우한다. 한성우는 그의 삶의 여정을 좇으며,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기 위해 경쟁했던 이들의 고민과 노력을 이야기한다.

박해울은 「그래, 책이라도 있어서 어딘가, 내세울 것 없는 세상에」에서 ‘SF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당신은 왜 차별과 빈부격차에 대해 글을 쓰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답변을 한다. 이때 작가는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던 경험을 떠올린다. 작가는 그곳에 살며 차별·불평등과 마주하고, 현실을 벗어나 픽션의 세계로 도피했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

‘어떤’ 책을 ‘왜’, 어떻게 읽을 것인가? 2020년 12월 0호로 출발하여 2024년 봄, 창간 3주년에 이른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7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를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물리학, 생물학, 법조, 북디자인,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7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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