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어느 길을 걸을까?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4.07.09
한남대 명예교수
길을 갈 때 우리는 언제나 갈림길에서 망설이게 된다. 어느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가? 선택하기 전에는 선택의 가능성이 무수히 많지만, 그러나 그 중 어느 한 길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미리 어디를 가야 한다는 목적이 확실히 설정되어 있다면 갈림길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지 않겠지만, 우리 인생길은 결코 그렇게 어디를 가야 하는 것처럼 분명한 길이 앞에 깔려 있지 않다. 물론 어디로 가겠다고 목적이 설정되었다 할지라도, 일단 어느 길로 접어들면 거기에 또 다른 갈림길이 나타나서 다시 결정해야 할 상황에 맞부딪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 선다. 아니, 그 갈림길에 선다기보다는 갈림길 자체가 내 삶인지 모른다. 그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여 가는가 하는 것이 내 삶인지 모른다. 설령 누구인가가 겉으로 보기엔 그냥 자연스럽게 그 길을 선택하여 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길을 가는 그는 내심 깊은 확신과 목적에 따라서 그 길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평탄한 길을 잘 걸어온 듯한 내 앞에도 언제나 많은 갈림길이 있었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왜 어찌 그 길을 선택하였을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집에서 나서서 동구밖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가 있는 곳까지는 두 길이 있었다. 하나는 동네를 가로질러 가는 마을 길이요, 다른 하나는 나무다리를 건너서 논둑길을 따라 가는 길이었다. 나는 논둑길을 즐겨 걸었다. 학교를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느티나무 밑에서는 선배들이 언제나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다 모아놓고 때가 되면 줄을 맞추어 학교로 갔다. 신작로를 따라 가야 하기에 안전하게 가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집단으로 하는 것이 싫었다. 그때 나는 아이들이 느티나무 밑에 모이기 전이나, 이미 학교로 떠난 뒤에 자주 신작로길 대신 조금 높게 쌓여 있는 뚝방길을 따라서 가기를 즐겼다. 무엇이 나를 그런 길을 선택하게 했는지 모른다.
또 내 인생길에는 훨씬 더 많은 갈림길이 내 삶에 언제나 놓여 있었을 것이다. 상급학교에 진학한다든지, 어떤 과목을 더 공들여 공부한다든지, 언제 어떤 것을 읽고 쓴다든지, 누구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늘 갈림길에서 선택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때로는 내 스스로, 때로는 어떤 강요에 의하여 선택하였을 것이다. 그러할 때 나는 어떤 길을 어떤 원칙에 따라서 어떻게 선택하였을까? 나는 물과 바람을 따라 사는 삶이면 참 좋겠다고 언젠가부터 생각했다. 물길은 항상 낮은 데로 나있다. 항상 물은 낮은 데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 자연스러움이 좋다고 생각해 왔다. 노자 도덕경을 읽을 때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아주 잘 사는 것은 마치 물과 같다고 했으니. 그리고 또 내가 좋아하는 바람은 어디로 흐를까? 빈 데로 흘러간다. 꽉 찬 데는 피하고 바람은 언제나 텅 비고 틈이 있는 곳을 찾아 흐른다. 좋고 나쁘고 선하고 악한 것을 고르지 않고 그냥 빈 곳으로 흐른다. 그렇게 하여 온갖 소리를 다 낸다. 그것처럼 나도 살고 싶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나 젊었을 때는 가능하면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다. 사상체계도 그랬다. 이리저리 헤맨다. 그러나 험하고 낮고 더럽고 힘드는 길을 선택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물론 때때로 가다보면 험하고 더럽고 낮고 힘드는 곳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냥 우연일 뿐, 내가 그러한 길을 선택하여 만났던 것은 아니다. 그곳으로 가면 그런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알아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가능한 한 넓은 길 평탄한 길을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길을 택하면 그리 가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으로는 좀 개척이 가능한 곳, 모험할 수 있는 곳, 힘들어도 의미가 있는 곳을 선택하고 싶었겠지만, 실제로 내 발길이 잡은 방향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지 않았을까? 저것을 따라가면 분명히 가시밭길이나 자갈길을 갈 것이라고 판단될 때는 그 길을 버리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가능한 한 그러한 고난의 길이 아닌 길을 찾으려고 애를 쓰지 않았을까? 그러나 삶의 길은 한 번 방향을 잡았다고 하여 그 길로 쭉 가는 것은 아니다. 편안할 것이라고 판단되어 선택한 길을 가다보면 또 거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또 다른 상황들이 다가온다. 가는 곳마다 끝없는 갈래길이 수도 없이 많이 펼쳐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고, 어떤 집단도 나라도 사회도 다 그렇겠지.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때 그때 골라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묘한 힘에 의하여 내가 그곳으로 인도된 것이 아닐까 느낄 때도 많다. 물론 내가 골라서 간 길이지만, 분명히 나 혼자만이 결정한 것이 아닌, 그 어떤 힘의 작용으로 그 길을 내가 간 것이 아닐까? 그 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때대로 할 수만 있다면 정의롭게, 사랑스럽게, 평화롭게, 정직하게, 부드럽게, 서로 어울리면서, 아름답고 낭만스럽게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하고 싶다. 그런데 어떤 때는 편하고 쉬운 길을 가겠다고 선택하면 맘이 매우 불편할 때도 있다. 그 때는 어렴풋이 내 속에 자리잡은 어떤 삶의 원칙이나, 옳다고 여겼던 것과 어긋나는 길을 내가 선택했던 것이 아닐까? 그와 다르게 어떤 때는 좀 힘들고 고난스러운 길을 따랐는데, 몸과 삶이 편하지 않지만 맘은 아주 편안한 것을 느낀다. 이 때는 분명히 내 속에 있는 어떤 기운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지금 매우 힘든 길을 뻑뻑하게 맘 편하지 않게 가는 느낌이다. 사람들 맘 속이 편안할 어떤 힘에 따라 가는 사회문화의 정착은 어떻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