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책 <한국무교의 문화인류학> (2018, 소나무)과
내가 번역한 로렐 켄달의 책 <무당 여성 신령>( 2016, 일조각)
두 책의 리뷰가 서울리뷰어브북스 최근호에 실렸는데, 리뷰어가 리뷰 말미에
나의 책 제목 '무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다.
요즘 세태를 반영하고 있어서 여기서 나의 '무교론'을 변명하려 한다.
나의 저서에서 무속 보다는 'cultural forms' ' traditional vernacular lived religion'로서 무교라는 용어를 썻는데,
리뷰어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의 통상적인 '종교' 정의를 기준으로 굳이 무속을 '무교' 라고까지 부를 필요있냐고 약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일종의 사회과학적 편견이다. 말귀를 못알아듣는다고 할까. 아마 요즘 무속연구가들은 (한국무속학회에서 발간하는 '한국무속' 학술지를 예를 들자면) 내가 굳이 '무교'라고 타이틀을 바꾼 것이 불만인 것 같다 (나도 그 학술지에 기고할 때는 무속 이라는 학회 공통어를 쓴다! 기회주의자이다).
물론 내가 종교학과 교수라 자기정체성을 내세우기 위해서 굳이 무속을 '무교'라고 이름을 바꿔부른 것도 하나의 이유다. 유동식 교수 같은 연세대 신학교수가 쓴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책 제목을 본따서 자신있게 무속을 '무교'라고 부르긴 했다. 신학자가 무교라고 부르는데, 인류학자가 주저할 것도 없다 뭐 그런 배짱이었다. 여담이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의 무교현상은 하나의 사회현상이고, 정말 '종교적'이다. 기독교나 불교와 다른 종교현상이라는 것이다.
길가 곳곳에 있는 교회나 절에 다니고 유교제사하는 한국인이, 일상에서 다급한 일이 닥쳣을 때 가끔 무당이나 점쟁이, 유사종교인을 찾아 상담하는 수준의 비제도화되고, 경전이 따로 없고, 집단시위를 할 단체도 없고, 무당의 능력에 위계질서도 없다.
70년대 박정희가 근대화에 저해되는 미신이라며 의도적으로 아무 힘이 없는 무당이나 마을이나 가정의 민간신앙을 '미신타파'의 대상으로 정하고 파괴한바 있으나, 80년대 들어 전두환이 민심을 끌려고 국풍을 일으키고, 국가무형문화재 그런 식의 명예직을 지역민간신앙의 대표로 수여한바 있어서 김금화를 비롯 몇몇이 한때 위세를 떨치긴 하지만, 실효는 없다.
무당은 모시는 신이 다 다르고, 굿 공연 방식도 조선팔도 지방에 따라 다 다르다. 그러니 누가 더 높고 낮은지 위계를 평가하기 어렵고, 무당들 스스로 이런 시도 하지 않는다.
무교의 모든 신령들은 옥황이나 산신, 용신, 어느 신들도 각자 기능이 다를 뿐 완전히 개별적 권능(sovereignty)을 가질 뿐이다. 인류학자 임석재 교수는 일찌기 1970년대 이를 한국 무교의 '병립신관' 이라고 했고, 2023년 한국민속학 77집에 유명한 권헌익 교수는 임석재의 병립신관이 가진 평등성 equality을 부르노 라투르의 코스모폴리틱스 cosmopolitics 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2천년 유럽문명을 창조한 유일신관의 기독교나 부처와 보살과 같은 깨달은 자의 절대적 초월능력에 의존하는 불교와 달리,
어떤 신령의 우월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거나 권력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 무교적 병립신관은, 한국의 무당을 사회적으로 초라하게 만든다.
서울 골목에서 '사주' 점쟁이 작은 간판걸고, 도심의 소음방해죄 때문에 쇳소리내며 굿도 못하고, 서울 변두리 수유리 낙성대 숲 상업적 굿당에서나마 굿소리 내는 그런 별로 대중적이지 않은 민간종교 folk religion이다.
전국민 교회아니면 절에 다니는 근대화된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종교전통이라 안타까운 심정이다.
영화 '파묘'나 드라마에서 괜힌 잡스런 엉터리 귀신불러내는 가짜무당들,
아니면 예술가들 행위예술에 참여하는 연예인 만신들 현상이 진짜 코리언 무속이라고 리뷰어는 보고싶은가보다.
미디어연구라면 모를까 인류학 전공이라면 제대로 공부해야하지 않을까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수료한 리뷰어는 학술적 샤머니즘 academic research of shamanism 공부좀 더 했으면 좋겠다.
자연과 문화,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world의 관계의 양식에 대한 탐구가 바로 인류학이죠. 한달전 로마에서 열린 세계샤머니즘학회에서도 라투르의 코스모폴리틱스 개념이 샤머니즘의 존재론적 이해에 활용되고 있더군요. 샤머니즘을 엑스타시 기술로 정의햇던 엘리아데는 진작에 잊혀졋구요. 한국은 샤머니즘을 엘리아데식으로 이해하고 있죠. 샤머니즘을 미신, 접신, 빙의 기술로 경멸하면서, 괴기영화나 음산한 파묘같은 영화 미디어, 그리고 천공도사 같은 엉터리술사와 연결시켜 보는데 크게 오도하고 있죠. 학자들이 바로잡을 필요가 있어요.
인류학의 많은 이론은 아메리카, 아마존, 아프리카 원주민의 토착종교 연구에서 시작되었어요. (**굳이 샤머니즘'이라고 통칭을 써서 일반적으로 묘사했지만, 사실 지역적으로 역사적으로 너무 성격이 달라서 더 이상 '샤머니즘'이라고 하면 안되요. 샤먼은 시베리아 토착민의 사제를 일컫는 말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도 아마존 원주민의 샤먼의례와 신화 분석에서 시작햇고. 현재 한국의 인문학 철학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에두아르도 드 카스트로, 필립 데스콜라, 등 존재론적 전회의 이론은 모두 아마존 정글과 시베리아 몽골에 사는 원주민의 샤머니즘 의례를 분석한 인류학자들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에요. 유명한 권헌익 교수의 캠브리지 박사논문도, 시베리아 오로촌 부족의 샤머니즘과 생태우주론이었어요.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과 경계를 넘어서려는 인류학자의 철학적 사유가 만들어낸 존재론적 전회이고 기후위기와 재앙을 이겨낼 미래의 우주적 세계관이, 이른바 샤머니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로마에 있는 Sapienza University Eurasia Archive 에 본부가 있는 ISARS ( International Society for Academic Research of Shamanism) 학회에서 나오는 정규 학술지 Shaman 의 존재를 소개합니다. 서강대 도서관에서 정기구독하고 있으니 찾아보세요. 새로운 이론이나 연구방법론이 계속 나오는 정규학술지이다. 그 외에도 Journal of Folklore Research도 있다. 서구에도 엘리아데 이후 shamanism에 대한 오해가 많아서 10년전부터 샤머니즘 연구는 storyworld, narratology로 분류되며 narrative culture, 이런 학술지에서 논문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전통적인 American Ethnologist, Journal of Ritual Studies 이런 학술지에는 아마 1/4이 토착문화의 종교, 실제로 사람들의 신앙행위를 분석하는 연구가 많다. 이런 부류를 vernacular religion 이란 이름으로 부르지만, 내용을 들어가 보면 기존의 샤머니즘 연구에 속한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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