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더 케어 컬렉티브/정소영, 『돌봄선언_상호의존의 정치학』(니케북스, 2021)
더 케어 컬렉티브/정소영, 『돌봄선언_상호의존의 정치학』(니케북스, 2021)
2023년도 여름에 불교환경연대에서 주최한 “죽임의 경제에서 생명살림의 경제에로” 심포지엄에 참여해 공부한 적이 있다. 하루에 4시간씩 2시간 강의 10강좌를 5일 동안 수강했다. 그때 권범철 선생에게서 ‘돌봄경제’란 말을 처음 들었다. 그는 돌봄을 사회의 중심으로 가져와야 하며 연봉과 사회적 가치는 반비례한다고 말했다.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 저소득 노동자, 사회적 재생산 노동자들, 돌봄 노동자들이 사실 높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맞아 그렇게 봐야 하는 건데... 바로 설득당했다. 기독교에서 말해 왔던 가치와 윤리를 경제학에서 더 설득력 있게 현실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돌봄’이란 제목이 새겨진 책을 틈나는 대로 봤다. 『돌봄과 인권』 『돌봄의 시간들』 『기후돌봄』 『돌봄 민주주의』 『돌봄의 사회학』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 등이 출간되었다. 지금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전환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정말 필요한 사고의 전환과 행동을 촉구하는 책이라 생각되어 한 권 한 권 읽어나가고 있다. 『돌봄선언』은 ‘돌봄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문을 열어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신학에는 목회학이란 분과가 있는데, 목회적 돌봄을 뜻하는 ‘pastoral care’이고 독일어로는 인간 전체라는 의미의 ‘영혼돌봄’(Seelsorge)이다. 사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임금의 입을 빌어 하신 말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말씀은 곧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한 ‘돌봄’에 관한 말씀이 아닌가.
우리는 절대 돌봄이 필요한 자들, 영유아, 유년기의 어린이들과 노인들, 자기를 돌보는 시기(청년기), 서로 돌보는 시기(커플기), 돌봄이 배치되어야 하는 시기(장년기)를 보내면서 산다. 돌봄은 결국 ‘서로돌봄’이며 ‘함께돌봄’이다. 인간만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 식물, 돌과 바위, 개천과 강물과 바다, 공기와 하늘도 돌봐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그것들이 우리 인간을 말없이 무상으로 돌봐왔다.
“돌봄의 위기는 지난 40년 동안 특히 심각해졌는데, 이는 많은 나라가 수익 창출을 삶의 핵심 원리로 보편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다. 이는 곧 금융자본의 이익과 흐름을 조직적으로 우선시하는 반면 복지국가와 민주적 절차와 제도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을 의미했다.”(13~14쪽)
이 책은 전체 6장으로 되어 있다. “돌보는 정치”(1장), “돌보는 친족”(2장), “돌보는 공동체”(3장), “돌보는 국가”(4장), “돌보는 경제”(5장), “세상에 대한 돌봄”(6장). 돌봄은 상품이 아니라 실천이며 핵심 가치이고 새로운 정치와 경제의 기반이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영어의 care는 보살핌, 관심, 걱정, 슬픔, 애통, 곤경을 의미하는 ‘caru’에서 왔다. 단어의 이중적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요구와 취약함을 전적으로 돌본다는 것, 그래서 생명의 연약함과 직면하는 것이 어렵고 지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57쪽)
“우리는 돌봄과 연민의 힘이 시장화된 개인의 이기심보다 항상 앞서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보편적 돌봄 모델은 이러한 경제적 모순의 해소를 향한 가장 중요한 단계다.”(143쪽)
“사회와 지구에 대한 염려가 이익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151쪽)
“팬데믹은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데 결정적인 필수 기능들을 극적으로 또 비극적으로 조명했다. 간호사, 의사, 택배기사들과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의 노동을 말이다.”(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