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4

백승종 정치와 종교 에리히 프롬

 백승종

정치와 종교

에리히 프롬을 꺼내어 다시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재발견했습니다. <<사랑의 기술>>의 일절입니다. 

"권력에는 합리적 신앙이 없다. 권력에 대한 굴복, 또는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권력에 무조건 굴복하기 바쁘고, 누군가는 손 안에 들어온 권력을 지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거겠지요. 권력이야말로 삶을 빛나게 하는 무기라고 믿어서 그런 것일 테지요.

 "많은 사람에게는 권력이야말로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겠으나,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성취한 것 중에서 가장 불안정한 것이 권력임을 입증한다."

기막힌 통찰이군요. 과연 그렇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권세도 십 년을 못 간다”라고 하였습니다. 권력을 상징하는 권세 권(權)이란 글자는 본래 “임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상한 정치 권력과 달리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종교입니다. 권력 따위는 풀잎에 맺힌 이슬 정도로 보기도 하고, 정치 권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상극이어야 할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서로 부둥켜안고 야합할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어이없는 상황인데요. 에리히 프롬은 그 점을 뭐라고 했을까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과 권력은 상호 배척한다. ... (그러므로 종교가) 권력에 의지하거나 권력과 결탁할 때 부패하고 만다. ”

가변적이고 다분히 자의적인 현실 권력을 비판할 때 종교에 의미가 있습니다. 종교 기관 또는 종교인이 구질구질한 현실에 영합하여, 권력자를 미화하고 두둔하면 그런 종교야 말로 현실을 왜곡하고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회악이 되고 맙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저는 물론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관심은 권력자가 되는데 있지 않아요.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이 집권하여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일이 없도록 비판하는데 제 관심은 국한됩니다. 특히 독재자의 후예를 자처하는, 시대착오적인 무리가 함부로 요설을 늘어놓지 못하게 막는데 한정된 정치참여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정치 참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2022. 12. 27.) 해가 지나가도 역시 똑같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