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1

[김조년] 나에겐 가을서리 같고, 남에겐 봄바람 같이 < 금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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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나에겐 가을서리 같고, 남에겐 봄바람 같이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4.01.09


어려서부터 집안의 어른들이나 학교 선생님들께 참 많이 듣고 스스로 그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것이 있다. ‘나에겐 가을 들판에 내리는 서리(추상·秋霜) 같이 엄하게 하고, 남에게는 훈훈한 봄바람(춘풍·春風)처럼 하라’는 무서운 말이다. 요사이는 기후가 많이 변해서, 또 사람들이 추위나 더위를 이겨내는 기술을 많이 개발하여 자연이 주는 그대로를 오롯이 받아들여야 했던 때와는 전혀 달라져서 이 말을 받는 느낌도 상당히 많이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가을들판에 서리가 내리면 어느 정도 싱싱하던 농작물들은 후줄근해지고 성장을 끝낸다. 가을서리는 그런 면에서 보면 무서운 형벌이다. 채찍이다.

그것처럼 사람이 사람답게 제대로 자라고 살려면 자기 자신이나 제 식구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의 잘못에 대하여는 가을 서리처럼 무섭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남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는 모든 것을 녹이고 포근하게 감싸서 언 것을 녹이고 새싹을 틔우게 하는 훈훈한 봄바람처럼 대하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참 좋았다.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도 좀 해 보았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많이 느낀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내 눈에 들어있는 대들보 같이 큰 흠을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들어 있는 아주 작은 티끌을 보고 나무라는 놀라운 능력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내 몸에 묻은 똥을 보지 못하고, 남의 옷에 겨가 살짝 묻은 것을 아주 더럽다고 심하게 나무란다.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과는 달리 자라면서 내가 익힌 실제 생활은 이렇게 거리를 많이 하고 있었다. 어느 한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상당히 넓고 많은 사회분야에 늘펀하게 깔려 있는 것이 그런 것인 듯하다.

요사이 나는 많은 사람들을 참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 중에 두 사람을 압축하여 보게 된다. 그들을 보면서 인생을 참 어렵게 사는구나 하는 참 안쓰러운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하나를 볼 때는 저 인생이 왜 저렇게 곤고하고 힘들어야 하는가 하는 아픈 맘을 가진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도 받지만, 그에 못지않게 심하게 욕먹고, 경찰과 검찰에 의하여 굉장히 심하게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고, 그러다가 심지어는 목에 칼을 받아 생명의 큰 위험에서 기적같이 살아났다는 그 사람을 볼 때, 왜 저 인생이 저렇게 힘이 들까 맘 깊은 곳에서부터 아픔을 함께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저러한 어려움이 파도처럼 겹쳐서 다가오는 데 왜 그는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보겠다고 자기 몸을 단련하면서 살까?

그런가 하면 또 한 사람은 남의 몸과 맘속에 붙은 작은 먼지까지도 탈탈 털어보는 삶을 그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살았던, 그래서 온 몸과 마음이 그렇게 남의 잘못을 찾고 벌주는 것이 일생일대의 과제로 알고 사는 사람도 내 눈에는 참 불쌍하게 보인다. 뭐 할 일이 없어서 남의 잘못이나 파고 캐는 일을 제 사명으로 삼고 사는 인생을 어떻게 귀한 일을 한다고 칭송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는 그런 삶 때문에 나라의 일반 사람들의 삶까지도 책임 지는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그 부인과 주변 사람들에 아주 지저분한 일들이 많다고 언론과 사람들이 말한다. 그렇게 남의 잘못을 파내는 탁월한 능력과 눈길이라면 자기 자신이나 주변에도 추상같은 엄혹함으로 다스려 공정한 삶을 스스로 살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어서 그 높은 자리에까지 올려놓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는 엄정하지 않구나 하는 판단을 하게 하는 일이 일어난다. 남에게는 엄격하지만, 자신과 주변에는 봄바람처럼 훈훈하다는 판단을 하게 하는 일을 그는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그의 화면에 비치는 얼굴에는 평온함이나 안온함이 보이지 않고, 불안과 분노와 짜증이 가득히 보인다. 그 때 저 인생도 참 불쌍한 존재로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한 개인의 비리를 잘못 수사하거나 수사하지 않았다고 국회에서 특별검사법을 만들어 수사해야 한다는 것은 보통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에서는 대통령 부인이 저지른 일에 대한 공식 수사가 없었다고 하여, 특별검사를 동원하여 수사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는 그 법을 즉각 거부하였다. 모든 정치행위에 진실성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이른바 국정책임자는 자기 전 존재로 참을 실현하므로 국민을 교육할 의무가 있다. 공인이라면 자신과 주변을 깔끔하고 깨끗하게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어떤 불미스러움이 자신이나 주변에서 일어났다면 철저하게 털고 나가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그는 이번 자기 부인에 관련된 문제로 일어난 그 일을 수사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가장 큰 공공한 권력을 사사로운 일을 지키는 데 사용한 못된 사례가 될 것이다. 자기와 관련된 문제를 자기가 결정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는 제척사항에도 벗어나는 일이다. 상대방이 졸렬한 정치행위로 했다고 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참의 길로 가는 자세를 보여야 했다. 공공함을 좁은 사사로움으로 처리한 그 인생이 참 불쌍하게 느껴진다.

한 인생에 대하여는 왜 그런 곤고한 삶이 끝나지 않고 지속될까 안타까운 맘이 들면서 그 고난의 음침한 굴을 속히 벗어날 수 있기를 빌고, 또 한 인생에게는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너무 큰 자리에 앉아서 허덕이는 그 모습을 볼 때 참 슬프고 안타깝다. 여기는 내가 앉을 자리가 아니요, 이 옷은 내가 입을 것이 아니다 하고 훌훌 벗어던지는 그 인생의 놀라운 기적을 볼 수 없는 것일까? 다시 나에게는 가을서리 같고, 남에게는 봄바람 같은 삶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