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0

극기복례 - Google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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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복례 ( 克 己 復 禮 ) 자기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갈 것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자기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갈 것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논어』「안연편(顔淵篇)」에서 공자가 제자인 안연에게 인(仁)을 실현하는 방법을 설명한 말이다.
2017. 12. 10. — 극기복례는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천하의 바른 예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연산군 이후 극기복례의 용어가 나타난다.
한자표제: 克己復禮
2012. 1. 29. —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의 실천이란 뜻이다. 안연이 보다 자세한 가르침을 청하자 공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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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복례 (克己復禮)


유교 개념
자기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갈 것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정의
자기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갈 것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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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논어』「안연편(顔淵篇)」에서 공자가 제자인 안연에게 인(仁)을 실현하는 방법을 설명한 말이다. 오늘날의 말로 바꾸어 말하면,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자아를 의지로 극복하여 예법을 갖춘 교육적 인간상인 군자(君子)의 이상으로 돌아감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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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극(克)’이란 이긴다는 것이고, ‘기(己)’란 몸에 있는 사욕을 말하며, ‘복(復)’이란 돌이킨다는 것이고, ‘예(禮)’란 천리(天理)의 도덕적 법칙[節文]이다.


사람의 충동은 예와 의로써 조정해야 하는데, 자기의 욕망을 예의로써 나날이 극복하는 길이 사람됨의 길[仁]이 되고, 나아가 이를 사회적으로 확충시키면 곧 도덕사회가 된다고 본다. 도학의 근본 목적은 바로 인을 구하는 데 있기 때문에, 이 ‘인’의 참뜻을 알면 천지만물의 하나됨을 알게 되고, 하늘과 사람의 교섭에서 하나로 통관하는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한다.


이황(李滉)은 극기복례의 길은 ‘천리를 따르고 인욕을 멀리하는(存天理遏人欲)’ 데에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해서는 거경궁리(居敬窮理)주1의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같은 극기복례의 태도는 바로 구도적 정신과 결부된다.


이이(李珥)는 선조 때 명나라 사신 황홍헌(黃洪憲)의 요청으로 「극기복례설(克己復禮說)」을 지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인’을 이루기 위해 ‘의(義)’나 ‘지(智)’가 아닌 예의 회복을 언급한 이유로 ‘예’가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라는 점을 제시하였다.


한말의 곽종석(郭鍾錫)은 『논어』에서 ‘극기복례’의 효과로 “하루를 극기복례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올 것이다.”고 한 데 대해, ‘하루’를 ‘천하’와 같이 큰 것과 대응시켜 말한 의미는 『대학장구(大學章句)』 격물보망장(格物補亡章)에서 “하루아침에 시원하게 꿰뚫리면(豁然貫通), 모든 사물의 겉과 속이나 자세하고 거친 것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고 한 주자의 말과 같은 뜻이라고 보았다. 즉, 극기복례의 의미에는 한 사람이 하루를 극기복례하면 그에 따라서 ‘천하의 사람’이 ‘극기복례’하게 되는 확산적 성격의 이해와 달리, 하루아침에 ‘활연관통’하게 되는 질적인 상승적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극기복례의 실천조목인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動).”의 ‘사물(四勿)’은 일상의 행동지침으로 선현들의 생활 속에 실천되었고, 서원의 기둥이나 벽에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非禮勿動(비례물동)’은 명나라의 마지막 숭정제(崇禎帝: 의종)의 글씨로 충청북도 괴산군 화양동 석벽에도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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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논어(論語)』
『퇴계집(退溪集)』
『율곡집(栗谷集)』
『면우집(俛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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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1
주자학에서 중시하는, 학문 수양의 두 가지 방법. 거경은 내적 수양법으로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서 바르게 가지는 일이고, 궁리는 외적 수양법으로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정확한 지식을 얻는 일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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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복례(克己復禮)


주요 정보
대표표제 극기복례
한글표제 극기복례
한자표제 克己復禮
관련어 공자(孔子), 안연(顔淵), 사욕(私慾)
분야 문화/인문학/유학
유형 개념용어
집필자 김봉곤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극기복례(克己復禮)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연산군일기』 1년 12월 26일, 『선조실록』 8년 10월 24일, 『숙종실록』 24년 9월 15일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라는 공자의 가르침.


개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논어(論語)』「안연(顔淵)」에서 안연이 인(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예의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라고 한 말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극기복례의 구체적인 조목으로 공자는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廳 非禮勿言 非禮勿動]"는 4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즉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에서 예에 맞도록 생활하여야 도덕적인 표준에 부합하며 남을 배려하는 인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기복례의 전통적인 해석은 송대의 주희가 제시하였다. 주희는 극(克)을 이김, 기(己)를 자신의 사욕, 복(復)은 돌아감, 예(禮)를 천리의 절문(節文)이라고 하였다. 사적인 욕망의 절제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공인하는 합리적 행동 질서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조선에서도 성리학이 발달하였던 선조 이후 극기는 곧 사욕을 극복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주희와는 달리 청대의 대진(戴震)은 욕(欲)은 성(性)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사(私)가 개입되는 것이 문제라고 보고, 극기복례는 자신의 사욕을 제거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욕도 함께 이루는 것이 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극기복례는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천하의 바른 예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연산군 이후 극기복례의 용어가 나타난다. 즉 연산군이 성종 사후 불교식 재를 지내려고 하자 경연에서 시독관김수동(金壽童)이 극기복례라는 구절의 해석을 빌려 그 잘못을 지적하였다. 즉 예란 천하에 바른 것이니, 국왕이 천하를 거느리는 도리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무조건 선대의 것을 따라하는 것이 예가 아니라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예라고 하였다(『연산군일기』 1년 12월 26일). 이후 선조 때 이이는, 사람의 성품은 본래 선하지만 사욕 때문에 천리를 회복하지 못하는데, 안연은 극기복례하여 사욕을 극복하고 성품을 온전히 하였다고 언급했다(『선조실록』 8년 10월 24일). 숙종 때에는 형조 참판이봉징(李鳳徵)이 극기복례에 대하여 사욕을 제거하는 것이 복례의 근본이고, 복례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 된다고 강조하였다(『숙종실록』 24년 9월 15일).


이처럼 조선시대에 극기복례는 개인의 사욕이 아닌 공적인 예로 돌아갈 것을 촉구할 때 주로 쓰이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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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극기복례
중앙일보
업데이트 2016.12.20 

이덕일
역사평론가
『논어』 ‘안연(顔淵)’ 편은 안회가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하는 것(克己復禮爲仁)”이라고 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의 실천이란 뜻이다. 안연이 보다 자세한 가르침을 청하자 공자는 “예가 아니거든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는 사물론(四勿論)을 제시한다.


 맹자(孟子)는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인의 실마리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의의 실마리고, 사양하는 마음이 예의 실마리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지혜의 실마리다(惻隱之心,仁之端也. 羞惡之心,義之端也. 辭讓之心,禮之端也. 是非之心,智之端也)”고 말했다. 이것이 인간 성선설의 근거인 사단(四端)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이 네 가지 실마리가 있기 때문에 본래 선하다는 것이다. 그중 예(禮)는 사양하는 마음이다. 사양은 내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이다.


 사단(四端)과 대립되는 것이 희(喜)·노(怒)·애(哀)·락(樂:구[懼]라고도 함)·애(愛)·오(惡)·욕(欲)의 칠정(七情)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安鼎福)은 ‘상헌수필 상(橡軒隨筆上)’에서 “칠정 글자에는 심(心)자가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마음 심자가 많이 들어가는 칠정(七情)대로 행하면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시끄러운 여러 문제들은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예(禮)의 총체적 실종에 있다. 연일 터지는 각종 비리 사건에 다이아몬드 게이트까지 가세한 것은 이 정권 사람들에게 국가와 국민에 대한 기본적 예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대기업이 커피·빵집·순대·떡볶이까지 넘보는 것이나 대기업 소유의 기업형 수퍼마켓(SSM)이 구멍가게와 전통시장 영세 상인들의 생계 수단을 잠식하는 행위도 비례(非禮)임은 물론이다.


 조선 후기 수구적 유학자들이 기득권 수호를 위해 예학(禮學)을 악용하면서 잘못 알려져 그렇지 예(禮)는 기본적으로 남과 더불어 살자는 공존의 지혜다. 나도 먹고 싶지만 남에게 양보해야 서로가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공존의 철학이다. 모두가 칠정(七情)대로 살면 인간은 짐승이 되고 세상은 지옥이 된다. 이를 방지하자는 것이 예(禮)고 사양지심(辭讓之心)이다. 공자는 “하루라도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다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극기복례(克己復禮) 네 자를 책상 앞에 써두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이 보인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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