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
인(仁)에 대한 대표적인 문답이다.
장수에서 처음으로 논어 함께 읽기를 할 때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눈 대화를 소개해 본다.
<안연이 인에 대하여 묻자 공자 말하기를,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곧 인이 되는 것이니,하루 극기복례면 천하가 다 인으로 돌아간다.인(仁)이 되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은 것이지어찌 남으로 말미암은 것이겠는가?”
“그 세목을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제가 비록 불민하지만 그 말씀을 실천해 보겠습니다.” (12/1)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 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 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 극기라고 하면 힘든 훈련이나 참을 인(忍)자가 생각나요.
- 결국 부자유나 고통을 이겨내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의미의 극기도 필요하다고 봐요. 우선은 부자유스러울지 몰라도 결국은 자신의 자유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겠어요.
- 그런데 그런 훈련 같은 것은 일시적인 효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 더구나 신세대는 구세대와 달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구속받지 않고 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잖아요.
- 결국은 훈련이나 강요에 의한 극기는 요즘 세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고 봐요.
- 그렇다면 결국 바람직한 것은 자각에 의한 극기라고 보는데요.
- 그렇지요. 자기를 넘어서는 것,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것이 궁극적인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하겠지요.
-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자유’를 누릴 만큼 누리다 보면 그것이 큰 부자유로 된다는 것을 알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귀에 안 들어오지요.
-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도 그런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요.
- 극기의 진정한 의미는 결국 아집으로부터의 자유이겠네요.
-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복례(復禮)도 현대적 의미로 보면 새롭게 생각되는 것이 많아요.
- 전에는 복례라 하면 ‘마땅히 지켜야할 예의규범을 잘 지키라’는 식으로 뭔가 의무 같은 것으로 들렸거든요. 하기 싫어도 해야 할 그 무엇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아요.
- 그렇지요. 유교나 공자에 대한 편견이 많은 것 같은데요. 그 동안 도덕 교육이나 윤리 교육도 그런 쪽에서 이루어져 온 것 같기도 하구요.
- 그러다보니 현실의 행동과 관념상의 윤리가 서로 다르게 되는 것이지요. 심하게 표현하면 인격의 분열 같은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지요.
- 즐거운 일은 아니지요. 그런데 공자께서는 예를 즐기신다는 말씀을 여기저기서 하시거든요.
-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대인들에게도 어울리고요.
- 어떻게 예로 돌아가는 것이 즐거울 수 있을까요.
-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되는 것’이 예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결국 다른 사람과 사이가 나쁘면 자기가 제일 괴롭고 부자유스러운 것 아닌가요.
-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실전에서는 잘 안되요. (웃음)
- 즐기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차로 외출하다가 원촌 마을을 지날 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자주 뵙는데요.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요즘은 서로 웃는 얼굴로 목례를 해요. 그것만으로도 참 즐거워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차츰 그런 인사를 확대하고 있어요. 제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 하루 극기복례를 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아요.
- 정말 here and now의 세계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항상 다른 사람 때문이라는 핑계가 떠나지 않는데, 이것을 완전히 벗어버리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몰라요.
- 늘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잘 안되니까 의식해서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하루라도. (웃음)
- 그 하루가 결정적인 출발로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자기로부터 출발해서 자기로 돌아온다는 말이겠네요. 일상의 삶 속에서 조금씩은 경험하잖아요.
-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말씀을 전에는 너무 방관자적인 소극적인 말로 들었는데요.
- 그렇게 듣기 쉬운 것 같아요. 그런데 자기로부터의 적극적 실천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남의 흉보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나요. 그것에 동조하는 자신을 느낄 때가 있어요.우선 자기로부터는 그런 말을 들으려하지 않고, 다른 말로 하면 그 흉보는 이야기를 듣고 즐기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가담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 비례(非禮)를 묵인하거나 피하거나 방관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네요.
- 그렇다고 생각되네요. 오히려 자신이 먼저 ‘비례를 행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 그것을 시정할 수 있겠지요.
- 사회를 변혁하는 것과 자기를 변혁하는 일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사고방식을 갖지 않으면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기로부터 인(仁)을 실현하여 천하의 인(仁)을 실현해간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진리가 아닐까요?
-특히 외적인 변혁과 성장을 추구한 근대 문명이 위기에 봉착한 지금, 예(禮)를 자연과의 관계로까지 확대한다면 이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되는 것 같습니다.
- ‘자기중심성을 넘어서 자연과 상생하는 문명으로 전환하라!’는 메시지로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