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플라톤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
UPDATE : 2022-10-26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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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늘 품은 한민족의 흥과 정, 서양사상과 회통해 만물 살려
‘우리’라는 흔한 말의 힘, 다툼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줘
“사익과 자기 명리에 빠지면 결국 불심도 민심도 멀어질 뿐”
“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인문 사상 종교, 중국서 꽃 피고 한국서 열매 맺어
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한국인은 ‘회통’ 능력자…4차혁명 날개 달고 한류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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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등록 :2022-06-07 18:16수정 :2022-06-08 02:32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②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가무 즐기는 ‘무당열정’에 ‘인문학 교육’, 한류에 작용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두번째는 국제한국학회 회장이자 ‘한국문화중심’ 대표인 최준식(66)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한 최 교수는 이미 1990년대 중반에 국제한국학회를 설립한 데 이어 10년 전엔 한국 문화가 중심이 된 복합문화공간인 ‘한국문화중심’(K컬처센터)을 만들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경복궁 옆 한국문화중심 사무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을 경계한다. 종교학이나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득권의 압력이 두려워 샤머니즘에 대해 애써 무시로 일관하는 것과 달리 샤머니즘, 즉 무기(巫氣)와 신기(神氣)야말로 한국인의 근본적인 기질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데서부터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샤머니즘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무속’이라는 용어 대신 ‘무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한국인의 주요 특질로 유교 인문학적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한 문기(文氣)와 무교적 신기를 꼽는다. 그는 <문기> <신기> <세계를 흥 넘치게 하라> 등 책을 통해 한류의 힘의 뿌리를 말해준다.
최 교수는 먼저 ‘한국인은 누구나 반쯤은 무당’이라고 본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를 때는 700만명이 거리로 나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온 국민이 금을 모으고, 관광버스에 타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네다섯시간 내내 날뛰고, 전국의 노래방에서 밤마다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밤새 뛰는 무당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교는 과거엔 권력과 불교와 유교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이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잡신 덩어리 정도로 폄하됐지만, 한국인은 무교를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평한다. 대표적 유교 마을인 안동 하회마을 한가운데는 당산나무가 버티고 있고, 교회에서 하는 부흥회에서 30~40분간 노래만 하다가 결국 망아경(忘我境) 속에서 통성기도와 방언을 하는 것이 굿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은 평소엔 자기 종교를 신앙하다가도 문제에 부딪히면 주저하지 않고 쉽게 무당을 찾는다는 것이다. 또 낮엔 유교 선비처럼 지내다가 밤이 되면 무당이 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화된 나라에서 무당이 여전히 20만~30만명이나 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이 <무릎팍도사>와 <물어보살>이어도 생소할 게 없는 것은 무기가 우리 피에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한류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류 뒤에는 문화적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이 최근에야 단군 이래 처음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주장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전 한국외대 교수가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라는 책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서양인들에게는 미지의 땅이었지만, 삼국시대부터 17세기까지 세계 13대 선진국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이 후진국이었던 기간은 불과 100~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인류사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만들고, 정보산업의 총아인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 오늘날로 치자면 하이테크급 기술로 고려청자를 만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같은 세계 최고 최대의 기록문화를 남기고,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인문학을 익힌 힘이 있었기에 최단시일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대금을 불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인이 가진 문기는 어디에서 왔나?
“조선의 인문학은 최고 수준이었다. 서당에 처음 가면 천자문부터 배운다. 이어 소학 같은 윤리서와 역사서를 배우고, 사서, 삼경, 주역까지 배우는 인문학적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어디 있었나.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습격한 프랑스 군인들이 허름한 민가에도 집집마다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열등감을 괜히 느꼈겠는가. 한국인은 교육에 미친 나라다. 부처나 예수가 와도 교육열을 잠재울 수 없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나라가 됐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활용할 인재들이 나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인 아이큐(IQ)는 그런 교육열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무기의 열정에다가 브레인까지 더해졌다. 그러니 2011년 한국에 와본 워런 버핏이 ‘한국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한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까지 이룰 수 있었던 힘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였으니, 미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필리핀이 아니었다. 조선은 명나라나 청나라보다 더 우수한 통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체제 안에서 공식적으로 왕을 감시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 주변에 딸랑이들만 있는 현대보다도 최고 권력자에게 ‘아니되옵니다’ 하던 시대였다. 설사 왕이 받아주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귀양을 마다치 않고 저항했던 정신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지구상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코리아를 들지 않는가.”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류에 기여했다고 보는 이유는?
“한국인은 우리 집, 우리 딸,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 남편’이라고 하지 ‘내 남편’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 남편’이라고 하면 ‘너만 남편 있냐’고 비웃는다. 물에 빠져서도 개인주의인 서양인들은 ‘헬프 미’(나 살려)라고 하지만, 한국인은 ‘사람 살려’라고 한다. 한국인은 모임에서도 형, 동생처럼 가족 호칭으로 부르며 친족공동체화한다. 그런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여서 한국의 아이돌도 연습생 시절 집단의 규율에 따라 그 힘든 훈련을 견뎌내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특징은?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게, 중국에서 압록강 하나만 건너면 언어와 말과 문자뿐 아니라 음식이나 옷차림이 달라지고, 특히 음악의 박자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통음악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은 기본적으로 4박자인데, 한국은 3박자다. 정원을 만들 때도 중국이나 일본은 철저히 인간의 손이 타게 인간 위주로 만들지만, 한국은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만들려고 한다. 뇌 구조로 비유하자면 일본은 좌뇌, 즉 논리적이지만, 한국은 우뇌, 즉 감성적이다. 일본의 전통음악계에서는 스승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퇴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판소리에서 ‘사진소리’, 즉 스승의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자유분방함과 창조에 대한 희구가 있다.”
―한국인의 가장 주요한 기질적 특징을 무기와 신기로 본 까닭은?
“한국과 중국, 일본 동북아 3국은 유교와 불교를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은 무엇인가. 중국은 도교, 일본은 신도, 한국은 무교다. 여기서 세 나라가 달라진다. 도교, 신도와 달리 한국 무교는 시종일관 노래와 춤을 종교의례로 삼는다. 외국인 제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면 일본인들은 박수 치며 논다. 한국인들이 길길이 뛰며 노는 것을 보면 ‘저렇게 노는 사람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고 놀라워한다. 유세 현장에서도 노래와 춤을 하지 않느냐. 월드컵 경기 때 집단적 망아경 속에 들어가 한국인들이 뿜어내는 열광적인 에너지를 보라. 그 무서운 신기가 지금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인의 한국 문화에 대한 태도는?
“너무 모른다. 전세계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무지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오해를 시정해주지도 못한다.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대취타’를 불러 전세계 아미들이 한국의 전통악기와 음악을 궁금해해도 국악을 모르니 설명을 못 해준다. 블랙핑크가 ‘하우 유 라이크 댓’이란 노래를 부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어 세계 팬들이 한복에 관심을 가질 때 한복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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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사상 종교, 중국서 꽃 피고 한국서 열매 맺어
등록 :2022-07-06 08:00수정 :2022-07-06
[이것이 K정신이다]
③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과 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세번째는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과 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다.
이동준(85)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겸 유학대학원장,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장을 지냈고, 한국사상연구원 설립자이자 원장이다. 그의 집안은 한국 철학의 기둥이다. 부친 학산 이정호(1913~2004)는 ‘정역’(조선 후기 김항이 <주역> 원리를 독자적으로 이해해 주창한 역학사상) 연구의 일인자였다. 학산의 애제자이자 도반이고, 이 교수의 손윗동서인 류승국(1923~2011) 전 정신문화연구원장은 우리 문화의 원류인 동방문화를 밝힌 주역이었다. 이 교수의 딸 이선경(55) 박사는 대만국립정치대학에서 주역을 연구한 뒤 <한국주역대전> 편찬팀장을 거쳐, 차기 주역학회장으로 선임된 상태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과천에서 부녀를 만났다. 이 교수가 지어 40여년을 산 단독주택은 학산이 말년에 함께 머물고, 류승국이 자주 드나들던 집이다.
학산은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선어과를 거쳐 의예과에서 의학도 공부한 수재였다. 해방 뒤 일석 이희승이 서울대에 국문학과를 재건하자며 그를 세번이나 찾아왔으나 응하지 않았다. 대신 계룡산에 들어가 3년간 정역을 만든 김항의 조카 덕당 김홍현으로부터 정역을 전수하였다. 그가 세상에 드러낸 정역은 조선의 패망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적 자존감이 꺾인 한민족에게 희망의 싹을 틔웠다. 우리나라가 세계 변화의 중심이 되어, 조화로운 화합 시대인 후천 시대로 세상을 이끈다는 정역은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국수주의자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쯤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한류가 세계를 휩쓸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 교수는 사상과 문화에 대해 “중국에서 꽃이 활짝 핀다면 한국에선 열매를 맺는다”며 한국 정신을 ‘다양성의 조화’라고 결론짓는다.
정역 연구의 일인자였던 학산 이정호.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한국 사상은 오랜 세월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상반된 길을 달렸지만, 궁극적으로 이질성의 통합과 다양성의 조화라는 특징을 지녔다. 천지인 삼재라든가, 유불도 삼교를 포함한 풍류도 등 고대 정신에도 포용성과 통합성이 두드러진다. 또한 형이상의 정신과 형이하의 물질의 양면적 사고가 깔려 있으며, 어느 일면으로 기울어지다가도 다시 양면으로 통합하는 성격을 지닌다. 유불도(교) 모두가 이 땅에 들어온 뒤 그랬다. 한국 사상이 지향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의 존엄과 인격의 존중이다. 그것이 한국인의 성격과 가치관의 중핵이다.”
그는 또 “한국인들은 평화와 인(仁·사랑)을 지향하면서도, 기질적으로는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무사도 정신이 지배하고, 중국은 좋아도 싫어도 ‘하오하오’ 하며 원만한 군자를 지향한다면, 한국인은 백이숙제와 같은 의리학파가 뿌리내려 불의에 항거하는 선비정신이 강하다. 그래서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지만, 돈을 준다고 해서 반드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돈을 줘도 ‘누굴 거지로 아느냐’면서 돈을 내던지는 게 한국인이다. 학문을 하면서도 목숨을 내거는 게 선비다. 가치중립을 지향한다면서 누군가 자기 새끼를 죽이고 있는데도 ‘난 <중용>이나 읽을게’ 해선 선비라 할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과 700명의 의사를 보라. 700명은 무사나 농부가 아니라, 모두가 선비였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싸운 것이다.”
이선경 박사는 “우리나라엔 경학 고문헌 가운데 역(易)에 관한 것이 가장 많을 정도로 고대부터 정신의 저류에 주역을 비롯한 역의 사유 방식이 흐르고 있었고, 근대에 정역의 등장으로 또 한번 사고 전환의 일대 계기를 맞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문일답이다.
1975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명륜당에서 류승국의 박사학위 수여식 때 학산 이정호와 류승국 전 정신문화연구원장.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한국 철학에 역이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고 보는 까닭은?
이선경(이하 경) “한국, 한국인의 사유 방식에서 역학적 사고방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훈민정음과 태극기를 봐도 그렇다. 류승국은 갑골문을 통해 상고대 동이의 ‘인방족’과 ‘어질 인(仁)’이 한국사상문화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어질 인(仁)’의 인도주의는 단군신화, 최치원 풍류도, 성리학의 태극, 훈민정음, 동학의 인내천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정역에서는 황극이라는 인간론으로 점을 찍었다. 중국에서 황극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표준이었지만, 정역이 말하는 황극은 보통의 인간이 절대주체로 선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18째 아들인 담양군의 13대손인 연담 이운규로부터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남학 창시자 광화 김치인, 일부 김항 세분이 동문수학했다고 하는데?
이동준(이하 준) “연담이 세분을 불러서 이걸 하라고 했다기보다는 최제우는 선도를 중심으로 법을 펴고, 김치인은 불교를 중심으로, 김항은 유교를 중심으로 법을 펴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은 다 알 수 없다. 연담은 실학자 이서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06년 ‘학산 이정호와 정역’에 대해 학술 발표를 하고 있는 류승국.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정역은 어떻게 공부를 했나?
준 “학산과 도원(류승국) 등 8~9명이 계룡산 향적산방에 모여 밤엔 영가(음·아·어·이·우 노래)를 하고, 무도(춤)를 했다. 무도를 하다 신명이 나면 튀어 오른다. 영가 무도를 하면 동물과 자연물도 감응한다고 했다. 영가를 하면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가 찾아왔다가 사람이 눈에 띄면 휙 사라진다고 했다. 겨울에 나가 보면 눈 위에 큰 발자국이 있었다.”
―정역이란 무엇인가?
준 “김항이 36살 때 연담 이운규에게 화두를 받고 54살에 정역의 세계를 깨쳤다. 복희 문왕 팔괘는 봄여름, 정역은 후천 시대인 가을 결실기를 제시한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간방(艮方)이 정역에서 중심이 되면서 간방 중심의 세상이 열리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봄여름 성장기엔 경쟁이 심해 모순이 대립해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다툼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어른이 된다. 그런 여름이 가야 가을이 온다. 진(팔괘의 ‘震’, 현실에선 중국)이라는 것은 번성하고 화려하게 드러난다. 정역에서 보면 중국이 꽃이라면 우리나라는 열매다. 중국에서 핀 꽃들이 여기에 와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단군 이전 ‘구이’족이 가진 동방문화의 기반에서 유불도와 기독교까지 받아들여 통합했다고 했는데?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이 부친인 학산 이정호가 역의 원리로 밝혀낸 훈민정음의 원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준 “강자가 약자를,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의 모순과 갈등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정역에서는 조양율음(調陽律陰, 음양의 조화)의 시대가 온다고 봤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음의 시대가 지나면 양의 시대가 도래한다. 고려 시대엔 가요와 문학이 발달했다. 조선 시대는 고려의 문화예술을 당하지 못했다. 반면 고려는 조선 시대의 철학을 당하지 못한다. 고려는 악이 발달했고, 조선은 예가 발달했다. 고려 말에 자유로움이 심해져 너무 문란해지니 조선 시대는 예법으로 다스린 것이다. 그러자 학문·철학은 발달했지만 부드러움은 사라졌다. 다시 뼈에 살을 붙여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음악, 무용, 연극 등 예체능이 보완되어야 영육쌍전(정신과 육신의 균형 있는 발전)으로 온전해진다.”
―학산이 말한 훈민정음의 핵심은?
준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制字解)에 ‘천지의 도는 하나의 음양오행일 뿐’이라고 했다. 해례본은 역리와 성리학으로 설명되니 언어학만으로 해명이 어렵다. 1940년대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엔 훈민정음의 원리를 알 수 없었다. 1970년대 초 국립중앙도서관이 세계에 알릴 첫번째 우리 책으로 훈민정음을 정한 뒤 이창세 관장이 국문학자들을 찾아다녀도 역학을 모르니 제대로 해설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일석 이희승이 대전으로 학산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훈민정음의 구조 원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정음 글자에는 음양, 오행, 천지인 삼재 그리고 하도의 원리가 들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뿌리 깊은 인도주의 정신 및 영육쌍전 사상이 뼈대가 되는 원리가 담겨 있다.”
2019년 미국 캔자스대학에 방문교수로 간 이선경 박사가 한국 사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태극기의 원리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경 “류승국이 ‘우주 만유의 근원이 태극인데, 내 주체가 남의 주체이니 남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 것은 기초적인 설명이다. 태극 모양은 동지부터 하지까지 밤낮 길이의 변화를 말한다. 45도 각도로 줄어들고 늘어나는 비율을 그리면 자연의 리듬을 따른 태극 문양이 된다. 태극 문양은 우리 고대부터 있었다. 태극을 중국 것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음악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틀이지 피타고라스가 만들었다고 그리스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역도 보편적인 사유의 틀이다. ‘기원이 어디냐’보다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 무엇을 변화시키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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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등록 :2022-08-03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④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한학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네번째는 김언종(70)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다.
한글전용이 대세를 이루고 한자는 갈수록 읽을 기회조차 줄고 있다. 그러나 한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다. 국회에서도 이모(이아무개)를 이모(어머니의 자매)로 혼동하는 일이 벌어질 만큼 한자를 모르면 여전히 언어 소통에 장애가 크다. 전국의 지명과 산과 강이 하나같이 한자 뜻으로 이뤄졌고, 이름도 한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수천년 역사와 고문헌, 문학도 절대다수가 한자 기록문이다. 한자와 유학을 두 다리 삼아 살아온 김언종 교수를 지난달 26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서재 도가재(道可斎)에서 만났다. 도가재는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인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공자를 꼽을 정도로 천생 유학도다. 한국고전번역학회 회장과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평생 한문을 업으로 삼은 그는 <한자의 뿌리>, <한자어 의미 연원사전> 등의 저서와 <한자의 역사>, <역주 시경 강의>, <혼돈록> 등의 역서를 낸 한학자다.
하지만 왕십리역 부근의 오피스텔에 자리한 서재에서 전자칠판을 비치해놓고, 멋진 모자를 쓴 채, ‘한잘알’이란 유튜브도 혼자 운영하며 현대식으로 한자 공부를 하길 그는 권한다.
“여전히 국어사전도 70% 이상이 한자어다. 가령 분수나 대수, 기하학 같은 수학 용어들도 한자를 알면 이해가 빠르다. 한자를 모르면 뜻은 모른 채 소리만 따라 하는 앵무새가 될 수 있다.”
그는 “한문 뜻글자는 칡뿌리처럼 곱씹으면 씹을수록 진국이 우러나기에 철학적·인문학적 사유를 깊게 해서 샤머니즘 감성에 치우친 한국인의 감성적 기질을 이성적으로 보완해주었다”며 “산골까지 서당이 생겨 당대 유럽보다 오히려 지식층을 두텁게 해서 케이(K)인문의 틀을 다져주기도 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를 한자나 유학 근본주의자로 알면 오해다. 그는 유학의 본고장 안동 출신이면서 다산 정약용이 변화를 거부한다며 칭했던 ‘안동답답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가 하면, 유학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김언종 교수의 서재인 도가재 편액. 김언종 교수 제공―우리에게 유학은 무엇인가?
“유학이 2000년간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교 국가인 조선시대의 식자들은 3경(시경·서경·역경)까지는 다 능숙하게 알지 못해도, 사서(논어·맹자·중용·대학)를 안 읽은 사람은 없었다. 공자는 차별 없이 남을 자기처럼 아끼는 살 만한 대동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공자의 생활철학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만 한다면 계층 차이와 상대적 빈곤, 전쟁 같은 세상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된다. 그러나 유학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고급 공무원들과 국민의 20% 정도 되는 양반들의 이념에 머물렀다. 조선시대 백성의 40~50%는 노비나 상민이었는데, 차별받는 이들이 유학을 좋아할 리 없었다. 공자는 대문 밖에 나가면 모든 사람을 귀빈으로 대하라고 했다. 그가 ‘똥 푸는 사람’이어도 말이다. 백성들을 부리더라도 황제가 제후를 대하듯 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중봉 조헌을 비롯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노예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한양에서 벼슬을 하면 통상 200~300명의 노비를 거느렸다. 다산 정약용조차 <목민심서>에서 ‘민란을 쉬 진압하지 못하는 것은 노비 숫자가 적기 때문’이라고 했을 정도다. 아버지가 양반이더라도 어머니가 천한 신분이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한 종모법을, 서얼 출신인 영조가 종부법으로 바꿔 양반인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게 한 뒤 노비가 적어져서 민란을 진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임진왜란도 지도층들이 싸운 것이 아니라 서애 류성룡이 꾀를 내어 노비들에게 면천을 시켜주겠다고 구슬려 노비들을 동원해 극복한 면이 있는 것이다.”
―유학은 왜 제사와 문화엔 남았지만 국민들의 마음에서 멀어졌나?
“조선시대 유학의 영향은 고급 공무원과 양반들에게만 해당됐다. 조선의 지배자들이 공자의 뜻을 거슬러 노비와 상민, 서얼, 여성을 차별하고, 자기들만이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오히려 무속과 무속화한 불교에서 위안을 얻었다. 사마천의 <사기>의 ‘공자세가’를 보면, 야합이생(野合而生)이라고 했다. 70살 가까운 아버지 공흘과 10대 후반의 어머니 안징재가 야합, 즉 정상적인 혼인이 아닌 관계를 가져 공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공자야말로 처는커녕 첩의 자식도 못 된 셈인데, 공자를 하늘처럼 받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차별을 자행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유튜브 ‘한잘알’에서 논어를 강의하고 있는 김언종 교수. 유튜브 ‘한잘알’ 갈무리―공자의 유학이 왜 변질되었나?
“공자는 휴머니스트이자 유머가 풍부한 분이었다. 그런데 주자는 강력한 불교를 밀어내기 위해 공자를 석가모니와 같은 절대적 초월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공자의 부드러운 유머를 지우고, 의도적으로 공자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공자의 제자였던 자로와 번지마저 희화화시키기도 했다. 빈천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공자는 가난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며 안빈낙도를 권했다. 그런 실천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여섯번이나 했으며 훗날 다산이 ‘청백리의 표상’이라 칭송했던 오리 이원익은 ‘물질은 남에게 양보하고, 정신적인 것을 가져라’ 하며 이를 실천했다. ‘힘든 일엔 앞장서고, 나눠 먹을 때는 뒤에 서라’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다산을 비롯한 탁월한 인물들이 실학을 주창했는데 조선은 패망했다. 한국실학학회 회장도 한 다산 전공자로서 이를 어떻게 보는가?
“노론과 남인 집권세력에서 소외된 이들이 실학파와 이용후생학파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소외돼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시대를 극복해보려 애를 썼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쳐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했다. 성호 이익의 책도 출판조차 되지 못하고, 다산의 책이 출판된 것도 1930년대에 와서였다.”
한학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조선 패망 이유를 어떻게 보는가?
“견제세력이 없으면 나라가 힘들어진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아무리 바른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으니 속이 터져서 49살에 돌아가신 것인지도 모른다. 훌륭한 인재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어도 그걸 활용 못하니 국란을 맞은 것이다. 서인 가운데 노론들이 막 나갈 때 젊은이들이 소론을 만들어 견제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이미 숙종 때부터 막 나가 더 일찍 망했을 수 있다. 영조·정조 때까지는 그나마 당파가 있어 견제가 됐다. 뱀눈은 앞만 보지 위와 옆을 못 본다. 순조 때부터는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세도정치로 견제세력이 사라져 뱀눈들이 지배했다. 일제 식민사관이 가르친 대로 당파싸움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다. 왕 앞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던 선비 정신이 사라지고, 당파와 견제와 비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뱀눈들이 전횡을 일삼다가 망한 것이다. 나도 아내가 견제하지 않았으면 좋아하는 막걸리만 마시다가 몸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시대에도 한자가 필요한가?
“한 정치인이 무운을 빈다고 한 것을 두고, ‘승리하기를 빈다’가 아니라 ‘운이 없기를’이라고 해석해 웃음을 산 적이 있다. 한자 뜻을 모르면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안 쓰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다. 한자 뜻을 알면 기미독립선언서를 한글로 읽어도 뜻을 알 수 있지만 한자를 모르면 읽을 줄 알아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이 중국과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데도 왜 한문을 함께 쓰겠는가. 우리도 한자를 2000자만 알면 나머지는 유추해서 알 수 있어서 그 유익함이 무궁무진하다. 세종대왕이 말한 ‘어린 백성’ 즉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않으려면 한자를 알 필요가 있다. 한자는 2000년 이상 우리나라에서 국어 구실을 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 세계 속에 한자는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한국인들이 ‘음주가무’에 능한 기질대로 영화와 드라마, 케이팝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만약 한자 공부를 해 깊이를 더한다면 철학과 문학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드날릴 수 있을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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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익과 자기 명리에 빠지면 결국 불심도 민심도 멀어질 뿐”
등록 :2022-08-31 08:00수정 :2022-08-31 09:28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⑤ 40여년째 은둔 수행중인 현기스님
눈도 막고, 귀도 막고, 마음이 목석이 될 만큼
진심을 가지고 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일념이 중생의 병을 낫게 합니다.
누가 누구를 시킬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승려들까지도 약자들을 패대기치고,
힘 있는 사람에게만 붙는 것은 왜일까요?
돈 없고 권력 없는 그 민심이 곧 불심인데.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섯번째는 지리산 상무주암에 40여년째 은둔 수행 중인 현기(82) 스님이다.
경남·전남·전북 3도 800리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예부터 금강산·한라산과 함께 신의 거처인 삼신산의 하나인 민족의 영산으로 꼽힌다. 국립공원 1호이기도 하다. 지리산은 태초의 여신인 마고할미의 전설을 품고 있다. 천왕봉엔 마고할미를 모신 성모사가 있고, 노고단은 마고할미에게 매년 제사를 지낸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다름을 아는 산’(지리산·智異山)이란 이름처럼 동과 서, 호남과 영남이 함께 어우러지고, 다른 종교·사상까지 품는 어머니 산이었다. 불교에서는 지리산을 지혜의 상징인 대지문수사리보살의 줄임말로 여기고, 문수보살이 1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이 산에 깃들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롭게 된다고 믿는다.
상무주암에서 보이는 지리산.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러나 어찌 지리산뿐일까. 전국 곳곳의 명산엔 하늘과 도(道)가 통하기 위해 심산유곡에 은거하며 치열하게 수도한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어디나 수도처였다. 그래서 불교학자이기도 한 문광 스님은 한반도의 풍수를 수도자가 좌선하는 모양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육체적·현실적 쾌락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일하고 전쟁하는 데 쓰는 에너지 이상으로 하늘과 자연과 소통하며, 정신적 깨달음을 위해 심혈을 쏟는 수도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은 우리나라 말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뭇별처럼 많은 이들이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은거하며 수도했던 지리산에서 현대에 들어 가장 오랫동안 은둔하며 수행한 자가 머문 곳이 해발 1100m 고지 상무주암이다. 지난 4일 현기 스님이 홀로 40여년을 지낸 상무주암에 오르는 길은 설렘이 고행으로 바뀌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백무동 계곡을 거쳐 마천면 삼정리에서 상무주암에 오르는 직선 길은 시종일관 급경사다. 음식물이 귀한 심산에서 수행하는 노승을 위해 음식을 메고 가다 보니, 경사는 덜하지만 멀다는 영원사 뒷길을 택해 올랐다가 조난을 당할 뻔했다. 때마침 장맛비까지 만나 천신만고 끝에 상무주암에 도착했다.
현기 스님의 참선 정진하는 모습. 조현 종교전문기자
“스님은 어찌 이런 곳에 머물러,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합니까.”
중생의 푸념에, 현기 스님은 “스스로 그런 것을 난들 어찌하겠는가”라고 껄껄 웃으며, 지리산 같은 품으로 맞는다. 암자의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가 중생의 갈증을 녹인다. 갈증과 갈애가 깊지 않다면 어찌 이토록 시원한 감로수를 맛볼 수 있을까.
“한번 (깨달음이) 확연하면 다시 어두워지지 않는데, 어찌 다시 어두워진 것입니까?”
현기 스님이 죽비를 날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상무주암에 올라온 사람 가운데 이렇게 산을 몇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한 이는 처음이라는 것이고, 더구나 16년 전이긴 하지만 두번이나 왔던 길을 이토록 헤맸으니, 죽비가 아니라 몽둥이라도 맞고 정신을 차려야 할 터였다.
“백일청천(白日靑天·밝은 해가 비치고 맑게 갠 푸른 하늘) 대낮에 꿈을 꾼 것이 아닙니까.”
“원래 누구나 청정한 법신(法身·진리의 몸인 붓다)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번뇌망상에 물들어 미망으로 헤맬 수 있습니까?”
“지금 그대에게서 나는 그 소리, 그 소리엔 아무런 때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꿈을 꾼다면, 어떻게 그 꿈에서 깰 수가 있습니까?”
“눈만 뜨면 됩니다.”
“대낮에 눈을 뜨고도 현혹돼 코 베이는 게 중생의 미망 아닙니까.”
“그렇게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사람은 눈을 막아야 합니다. 큰 절에 가면 차안당이 있는데, 차안(遮眼)이란 ‘눈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눈도 막고, 귀도 막고, 마음이 목석이 될 만큼 염불이나 화두를 진심을 가지고 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일념이 중생의 병을 낫게 합니다.”
상무주암 한쪽에 있는 삼층석탑. 조현 종교전문기자
현기 스님이 40여년 전 이곳에 홀로 올라와 일체의 세연을 끊고 정진한 것도 눈과 귀를 막고 일념 정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상무주암 마당 한쪽엔 조그만 삼층석탑이 있다. 현기 스님이 고려 고종(1192~1259) 때 각운 스님에 관한 설화를 들려준다.
각운 스님이 이곳에서 선서(禪書)인 <선문염송설화> 30권을 쓸 때다. 이 고지에 올라올 때 가져온 붓이 다 닳아 더는 글을 쓸 수가 없었는데, 한겨울 눈이 내려 산에서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때 족제비 한마리가 마당에 와서 열반했다. 그 족제비를 묻어주고, 그 꼬리를 붓으로 삼아 명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각운 스님이 설화를 완성하자 붓 끝에서 물방울처럼 사리가 떨어져 내렸다. 삼층석탑은 그 ‘필단(筆端)사리’를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음)을 말해주는 설화다.
상무주(上無住)의 상(上)은 부처도 발을 붙일 수 없는 경계요, 무주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다. 상무주암 마루에 앉아 스님과 문답을 나누는 사이 ‘지혜의 나툼’ 반야봉 위로 구름이 흘러간다. 법신이란 상(相)에도, 번뇌망상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푸른 하늘에 허공법계가 열린다.
현기 스님이 손수 개간해 가꾼 밭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 불교의 상징 같은 존재인 고려 보조지눌국사는 상무주암에서 수행해 깨달음을 얻고, 이곳을 ‘납승귀납처(衲僧歸納處) 천하제일갑지(天下第一甲地)’라고 했다고 한다. 누더기를 입은 청빈한 이가 수도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현기 스님도 손수 산을 개간해 공양하며 살아왔다. 그 신산한 삶을 나뭇등걸 같은 손이 말해준다. 그사이 밖은 몰라볼 정도로 변했지만, 이 깊은 산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처음 올라왔을 때만 해도 아침이면 눈밭에서 무슨 동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큰 발자국이 발견되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발자국은 사라지고 오소리와 족제비만 남았다. 두번은 지리산에 방사한 곰이 공양간 문을 열고 들어오고, 어느 때는 노루가 자주 밭을 헤집어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날 낮엔 모처럼 진주에서 상무주암을 찾은 두쌍의 부부가 스님이 만들어 평생 가꾼 경사진 밭에 울타리를 두르는 울력을 했다. 노동한 불자들의 중노동을 위로하는 기자의 말을 옆에서 들은 스님이 말했다.
“나무 천수천안관자재로다. 관세음보살님은 천수천안, 즉 손이 천개고 눈이 천개여서 관자재(세상 모든 것을 잘 보살핌)라고 합니다. 다 자기 얼굴에 자기 눈, 자기 귀, 자기 손발을 가지고 관자재하게 일하는 것이니, 누가 누구를 시킬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제 그도 중노동이 힘에 부치는 노승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 그는 꽃이 피면 꽃이 피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좋았지만, 지금은 눈이 녹고 봄 햇살이 비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신만은 여전하다. 상무주암의 수행자들은 새벽 2시면 모두가 깨어난다. 새벽 3시면 3배로 간략히 예불을 마치고, 선(禪) 수도처답게 누구나 참선한다. 홀로 있으나 함께 있으나 변함없는 수도승의 일상이다. 2시간의 새벽 참선을 마친 뒤에도 여전한 어둠 속에서 뭇별들을 조우할 수 있다.
“바깥세상에서는 이익과 명리를 위해 달리는데 스님은 왜 이토록 오랫동안 척박한 곳을 지킨 것입니까?”
“지킨 것도 아니고, 오랜 것도 아니고, 별로 할 게 없고, 쓸모 없는 중이다 보니, 그런 게지요.”
지리산 해발 1100m 고지에 있는 상무주암.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러나 어떻게 안과 밖이 둘이겠는가. 보조국사는 상무주암에서 견성한 뒤 무신 집권과 몽골의 침략으로 극심한 사회혼란과 타락한 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하산해 불교혁신운동인 수선결사를 결행했다.
“정치인과 언론인뿐 아니라 승려들까지도 약자들을 패대기치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게만 붙는 것은 왜일까요?”
그 물음 속에서 뭇 중생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까지 거둘 수 없는 은둔승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는 “돈 없고 권력 없는 그 민심이 곧 불심”이라며 “사익과 자기 명리에 빠지면 결국 불심에서도 민심에서도 십만팔천리 멀어지게 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더구나 “이제 시공을 넘은 과거·현재·미래와 9만리 먼 곳이 이 휴대전화 하나에 다 담긴 이치를 수천년 전부터 화엄경이 다 설파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 본마음인 보광명지(普光明知·널리 퍼진, 빛과 같은 밝은 앎)를 깨달으면 굳이 수만리 밖에 나가지 않아도, 시공간이 자기 손안에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은둔 암자와 도시, 번뇌망상과 깨달음,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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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흔한 말의 힘, 다툼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줘
등록 :2022-09-28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⑥ 이기동 전 성균관대 대학원장
이기동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여섯번째 성균관대 유학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낸 이기동(71) 교수다.
이기동 교수는 성균관대 유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공부한 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대만 국립정치대학과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그는 최근 <유학 오천년>(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을 정리해 5권의 책을 펴냈다. 이 방대한 저술은 동국 18현 중 한 사람인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하서재단의 김재억 감사가 “재단이 뒷받침해줄 테니 ‘유학 오천년’을 총정리하는 집필을 해달라”고 부탁해서 이뤄졌다. 하서재단이 수많은 유학자 가운데 그를 선택해 중국·한국·일본·베트남의 유학사상과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게 한 것도 의미 있지만, 이 ‘유학 오천년’의 출현은 새 시야를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유학이 중국의 학문이라는 관점을 되풀이하기보다는, 한민족이 유학과 동양학의 주체라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그는 동아시아 가치의 주축인 유학의 발원이 중국이 아니라 고대 동이족이 살던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미 3년 전 <환단고기> 해설서를 펴낸 바 있다. 단군을 비롯한 한민족의 고대 역사와 철학을 담은 <환단고기>는 주류 사학계가 위서라며 금기시해서 학자들이 언급하고 싶어도 사이비 학자로 찍힐까 두려워 언급하기를 꺼리는 책이다. 그런데도 대표적인 동양철학자 중 한명인 그가 책까지 펴낸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그의 성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도 남의 말만 듣고 금기시하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환단고기>를 제자들과의 공부 모임에서 우연히 함께 읽으면서, 그동안 수십년간 학자로서 풀리지 않던 유학과 철학의 의문들이 단박에 해소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한민족 고대 철학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정신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을 인자(仁者·어진 이)와 지자(知者·지혜로운 이)로 분류하는데, 둘은 삶의 원리가 다르다. 애초 한국인은 인자다. 인자는 본질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을 만났을 때 ‘너다, 나다’ 분리하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쓴다.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아니까. ‘사랑한다’도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고 하지 않고 그냥 ‘사랑한다’고 한다. 왜 ‘아이’와 ‘유’를 생략하는가. 사랑하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반쪽을 만나면 ‘반쪽 같다’는 의미로 ‘반갑습니다’라고 한다. 인자와 달리 지자는 ‘나는 나, 너는 너’로 철저히 상대와 나를 분리한다. 철저하게 ‘나는’을 강조한다. 이들은 남남끼리 사니, 기본적으로 삶이 경쟁이다. 따라서 물질적으로는 발전하고, 서로 이기려고 무기도 개발해 발전하지만 너무 경쟁만 하고, 서로 멀어지다 보니 외로워진다. 모두를 ‘하나’로 보는 우리와 달리, 각각 남남이라고 하면 열명이 모이면 10분의 1, 100명이 모이면 100분의 1, 70억명이 모이면 고작 70억분의 1이다. 그러니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을 별로 문제시하지 않는다. 또 남남은 마음보다 몸 중심이다. 따라서 배가 고플 때는 내 몸 챙기려 열심히 사는데, 배가 부르고 넉넉해지면, 잠깐 살다가 마는 몸이란 존재에 대해 허무주의에 빠진다. 그러면 외로움을 못 견디고 마약 중독자가 되기도 한다.”
이기동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그는 <오징어 게임>이나 <수리남> 같은 드라마나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같은 아이돌 등 한류가 뜨는 배경에는 이런 한국인의 독특한 ‘우리 정신’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인은 본래 ‘하나’와 ‘우리’라는 의식이 강하다. 어질 인(仁)을 보면 ‘두 사람’이란 뜻이다. 미국이나 일본·중국에서 지내봤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술 생각이 나면 혼자 술집에도 가고 식당에도 간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원래는 좀체 홀로 안 가고 함께 갈 친구를 찾는다. 한국 드라마에선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빠지면 목숨을 던지곤 한다. <미스터 션샤인>(tvN)을 보면 한 여자를 세 남자가 사랑하는데, 한 여자를 위해 세 남자가 모두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남자들이 죽는 장면을 보면 그들은 행복해하며 죽는다. 이를 보면 나도 저런 사랑 한번 받아 봤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남남끼리 경쟁과 다툼에 지친 세계인들에게 이처럼 하나 되는 사랑은 열망을 불러온다.” 다음은 이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통상 한국인을 ‘한’(恨)의 민족이라고 하는데, 그 한은 외침을 많이 당해 생긴 것이라는 설이 많은데 그런가?
“중국에 <독단>이란 책이 있는데, 그 책에 ‘천자’(天子·하늘의 아들)라는 말은 이적(夷賊·오랑캐)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다. 오랫동안 동이족에게 뒤처졌다가 전성기로 나아가던 중국인들은 동이족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동이족을 오랑캐로 낙인찍었다. 그런데 동이족은 모두가 다 천자라 칭했는데, 중국에선 황제에게만 갖다 붙였다. 목은 이색은 ‘천인무간’(天人無間·하늘과 인간 사이엔 간극이 없음)이라고 했고, 퇴계 이황은 천아무간(天我無間)이라고 했다. ‘하늘과 나 사이엔 간격이 없다’는 뜻이다. 동학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했다. 이처럼 내가 하늘인데 현재 이 모양이라면 원래 하늘 모습을 회복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렵다. 그것이 한으로 나타나 수양을 철저하게 해서 본래 모습을 회복하려고 한다. 우리 문화는 한을 푸는 한풀이 문화다. 서양 문명에 물들어 돈을 벌고 권력을 쥐어야 한이 풀릴 줄 알고 치열하게 열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한은 그렇게 해서 풀리지 않는다. 한국인의 한은 우리가 하나라는 본질인 한마음을 회복해야 풀린다. 그것이 원효의 ‘일심철학’이고, 퇴계와 수운의 철학이기도 하다.”
―주류 사학계가 인정하지 않은 <환단고기> 해설서를 낸 이유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함)은 주자학의 핵심인데 <환단고기>에서는 하늘의 마음을 성이라 하고, 이것은 ‘살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즉 하늘은 만물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명쾌한 말이 있는가. 만약 위서라면 누구나 다 아는 말을 뒤집을 수 없다. 너훈아는 나훈아와 비슷하게 노래를 부르지 전혀 다르게는 안 부른다. <환단고기>를 너무 국수주의적으로, 고토를 회복하자는 민족주의적 시각으로만 본 이들 때문에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의심받게 된 측면이 있지만, <환단고기>는 민족을 넘어 드넓은 철학을 담고 있다. <환단고기>에서 너무나 놀라운 철학들을 계속 발견하게 되면서, 왜 남의 말만 듣고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가 학자로서 참회를 했다. 기독교를 욕하는 사람들 가운데 4복음서도 안 읽어보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논어>도 안 보고 유교를 욕하는 분들도 있다. 적어도 학자라면 한번 읽어보고 비판도 해야 한다. 예컨대 추사 서책이 새로 나와 종이 감정사가 보고 추사 때 종이나 먹이 아니니 가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예가가 보니 추사 글씨가 틀림없다. 그래서 상세히 살피니 쥐가 갉아먹은 부분을 후대에 덧대기도 했다는 것이 판명될 수 있다. 따라서 추사 글씨를 감정할 때는 종이나 먹 감정사가 아니라 서예가의 감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환단고기>도 그동안 철학자가 감정하지 않았다. 철학적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환단고기>를 보고 나서는 한국인이 더 위대하게 보인다. ‘이런 위대한 철학을 가진 민족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현대 지구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이다.”
―보통 현대인들에게 학문이란 지식을 쌓는 것이라고 할 텐데, 마음공부라고 보는 까닭은?
“몸 중심, 마음 중심의 세상이 반복되는데 서구 근세 철학이 세계를 지배한 뒤로는 몸이 중심이 됐다. 하늘 마음을 부정하고, 인간의 마음이 몸속에 있다고 규정하면, 너와 나의 마음은 몸이 다르니 달라져 버린다. 하나가 아니다. 그래서 상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현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몸이 다르니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욕심을 채우려고 하니 다투게 되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전개된다. 그래서 규칙과 법을 만들고, 지식을 쌓아 싸움에 대비한다. 그러나 행복하지가 않다. 결국 불행에서 나오려면 마음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욕심도 있지만 본래 마음, 하늘 마음, 세상 전체를 하나로 여기는 우리라는 마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 본래 마음을 회복하는 마음공부야말로 진정한 학문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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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품은 한민족의 흥과 정, 서양사상과 회통해 만물 살려
등록 :2022-10-26 07:00수정 :2022-10-26 07:24
조현 기자
⑦ 이정배 목사. 이은선 명예교수 부부
강원도 횡성 현장아카데미에서 이은선·이정배 교수 부부.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일곱번째는 이정배(67) 목사(전 감신대 교수)와 이은선(64) 세종대 명예교수 부부다.
지난 17일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갑천로 760번길 깊은 산골 현장아카데미를 찾았다. 부부 신학자와 인연이 깊던 류승국(1923~2011·전 정신문화연구원장) 교수가 작명한 ‘현장’은 주역 계사전의 현저인(顯諸仁) 장저용(藏諸用)에서 따온 말로, ‘천지의 도는 일상의 쓰임 속에 감춰져 있어서 사람들이 매일 쓰면서도 알지 못하고, 인(仁)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의 진리만을 내세워 다른 주장들을 배척하며 갈등하지 않고, 사람과 삶과 자연의 도와 조화하기 위한 신앙과 학문을 지향하는 곳이 바로 현장아카데미다. 부부가 현직에 있던 20여년 전 화전민이 살던 집과 땅을 인수해 주말마다 땀 흘려 개간하고, 나무를 심어 단장한 이곳은 수도원 문화가 부족한 개신교의 옹달샘이 될 만하다.
이정배 교수는 감신대 교수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장, 한국조직신학회장, 한국문화신학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직을 역임했다. 이은선 교수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여성신학회 회장, 한국유교학회와 양명학회 부회장을 거쳤다. 부부는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계승한 프리츠 부리 교수의 지도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를 공부한 변선환·신옥희 부부의 뒤를 이어 기독교와 유교의 대화를 공부했다. 따라서 윤성범(1916~80)과 변선환(1927~95)이 연 토착화 신학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미의 보수 신학이 이식돼 주류를 형성해 전세계에서 가장 배타성이 높은 한국 개신교 풍토에서 ‘열린 신학’을 하기란 ‘닫힌 신학’을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힘이 드는 일이다. 부부의 스승 변선환은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며 종교 다원주의를 주창했다. 그러나 교회 권력을 쥔 보수 목사들은 1992년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한 그의 말만을 부각시켜 그를 ‘적그리스도’, ‘사탄’으로 매도하며 중세식 종교재판을 감행해 감신대 학장과 목사직, 교수직에서 파면당하게 하고 강제출교시켰다. 달걀로 거대한 바위와 싸우던 변선환은 몇년 뒤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변선환은 떠났지만 그가 ‘노다지’(금광)이자 ‘노터치’(내 제자들만은 손대지 마라)라고 한, 부부를 포함한 제자들은 오는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종교재판 30년, 교회권력에게 묻다’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부끄러운 기독교 역사를 공론화할 계획이다.
이은선 교수의 선친으로 신학자·목사이자 화가, 토착적 영성가였던 이신(1927~81)은 변선환과 ‘절친’이었다. 부부는 변선환과 이신의 주선으로 맺어졌다. 현장아카데미엔 이신이 탐독하던 고서적을 비롯해 동서양을 가리지 않은 수천권의 장서들이 빼곡하다. 크리스천이면서도 동서양 사상의 진수를 꿰뚫었던 유영모(1890~1981)와 함석헌(1901~89) 사제를 따르는 이들답다. 이정배 교수는 다석 유영모의 유고집으로 밤을 지새우며 다석 사상을 정리해 <빈탕한데 맞혀놀이>와 <유영모의 귀일신학>을 펴낸 바 있고, 이은선 교수는 함석헌이 창간한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부부 신학자에게는 외래 종교가 아닌, 한국인의 심성 속에 애초 있었던 기독교를 발견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토착적 기독교 사상·영성가들의 가르침과 삶이 녹아 있다.
부부를 비롯한 한국문화신학회 회원 20명은 한류 초기인 2011년 이미 <한류로 신학하기>란 책을 펴낸 바 있다. 당시 후학들은 한류가 ‘한국적인 본질’보다는 세계의 것을 합친 ‘하이브리드’(혼합물)여서 세계에 잘 먹히는 것 아니냐는 반박을 하기도 했지만, 공간적으로 세계와 혼종된 것도 있으나, 시간적으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혼종된 것도 있으니 그 차원에서 한류를 신학적으로 살펴보자는 데는 동의해 논의가 진행되면서 출간에 이르렀다.
“돌덩이처럼 백년 천년 잘 변하지 않을 만큼 자아동일성을 가진 것들도 있지만, 처음엔 조그만 것이 다른 환경과 만나 덧붙여지며 확대되는 동일성도 있다. 그것마저 부인하면 이스라엘 민족에서 시작된 조그만 정체성이 확대되어서 오늘날 거대한 기독교 문명을 이룬 성경도 다 부인할 수밖에 없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산골에 있는 현장아카데미.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런 이정배 교수의 말을 이어 이은선 교수는 “종교학자 황필호 교수가 한국인들은 종교를 바꿔도 개종(改宗)한 것이 아니라 종교를 덧붙인 가종(加宗)이라고 했는데, 유교인이나 불교인이 기독교를 만나면, 불교적으로 생각한 것을 다 버리고 새롭게 기독교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고, 그 이전 것에 새로움을 더했다”고 보았다. 통상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과 동학의 개벽사상을 유교와 단절시켜 이해하지만 이은선 교수는 서학도 동학도 모두 유학의 내적 발전으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 기독교도 다르지 않다. 유교 선비들 가운데 크리스천이 된 이들은 유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 인격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동기를 기독교에서 얻으면서 유교적 이상을 좀 더 빨리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열린 생각은 특정 종교나 종파를 넘어 근원을 찾는 성향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은선 교수는 “죽으면 천당 아니면 지옥에 간다는 식의 현대 한국 기독교의 단차원적 신앙이 교권주의자들의 사유 없는 신앙과 목회자 타락을 부추긴 한계를 노출했다”며 “소위 성직자나 지식인만이 아니라 모두가 군자가 되고 성인이 되는 길을 추구한, 선조들의 유교적 사유를 회복해 사유하는 신학이 될 때 과거의 한국 종교사상뿐 아니라 미래 과학 문명과도 보다 더 잘 회통되는 기독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배 교수는 “기독교인들이 이 땅을 선교한 것 같지만 이 땅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의 말처럼,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였다가도 본질을 잃으면 거부하는 것처럼 기독교도 받아들였다가 버릴 수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적 고유성을 흥과 정으로 정리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엔 단군 신화와 같은 천지강림신화와 박혁거세 신화와 같은 난생설화가 동시에 있다. 산의 수렵문화에서 나온 천신신화와 농경문화에 나온 난생신화가 함께한다. 하나는 초월적이고, 하나는 내재적 발전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배 교수는 “이 두가지에서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인간이 하늘과 땅과 하나다)이 나왔다”며 “대종교를 연 나철과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신채호가 지닌 한민족 고유사상의 맥을 이은 다석 유영모도 이 사상을 통해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인간들도 모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라며, ‘없이 계신 하나님’을 인간 개개인의 마음(바탈)에서 찾아 누구나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면서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고 전했다.
“우리는 인간이 본래 하늘(하나님)을 품고 있으니, 신(神)이 (안에서) 난다. 신나면 흥이 발동한다. 고통이 심해져 흥이 단절되면 한이 된다. 흥이 깨진 상태가 한인 것이다. 그 한을 치유하는 것이 정이다. 이 정은 기독교적 공동체성과 만난다.”
이정배 교수는 “우리 안에 하늘 의식이 있었기에 기독교의 하늘을 이해하고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며 “초월적 하늘(신)만이 아니라, 사람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동학과 같은 내재적 천(天)을 받아들일 때 기독교가 한국의 문화와 더 깊게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은선 교수는 “흥이나 풍류보다 더 근원적인 한국정신은 생(生·살림)”이라며 “유교에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만물을 살리는 마음)이 있는데, 만물을 관장하는 이치인 리(理)에 대한 우리 민족의 생각은 ‘만물을 살리는 생리(生理)’였다. 기독교의 성령의 역사도 살아 있는 역동적 살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박경리의 <토지>에서 볼 수 있듯이 고난 속에서도 공동체와 주변 사람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항상 같이하며 어떻게든 살려내 고난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참된 꽃을 피워내는 살림 의식이 우리에겐 있다”고 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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