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산농촌재단 창립 31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에 다녀왔다.
심포지움은 12시 반부터 시작한다는데 우리 동네는 버스가 몇 시간에 한 번씩만 지나간다.
시간 맞춰 그 버스를 타고 포천 시내에 가서 내려 다시 의정부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데만도 두 시간이 걸린다.
의정부역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심포지움이 열리는 교보빌딩이 있는 종각까지 가려니 아득해서 양파 밭을 만들고 있는 남편에게 태워달라고 해서 소요산역으로 갔다.
사실 어제는 우리집에 비상이 걸린 날이다.
가을에 시작하는 농사인 양파를 심기 시작했고, 평화나무농장 회원들에게 소고기 '공동구매' 발송이 겹친 날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심포지움에 참석할 엄두를 못 내다가 이번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워 참가 신청을 했다.
어찌 하다 보니 나는 유럽 농업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그들의 농업과 농촌이 장미빛만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농업 현실이 너무 어둡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그쪽을 바라보고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1991년, 지금부터 31년 전에 남편이 스위스에 1년 머문 적이 있다. 스위스 농가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는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가 남편에게 있었다.
봄에 시작하여 가을에 끝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스위스 쪽 코디네이터가 남편의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오라고 하면서 나를 초청했다. 남편이 그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알려주었다.
그는 남편과 1년 가깝게 지내면서 친해져서 나를 초청했던 것이다. 왕복 비행기 티켓도 보내주고 스위스에 오면 자기 집에 머물라고도 했다.
그때만 해도 유럽여행이 쉽지 않을 때였다.
그의 남편과 나의 남편이 일하러 나갔을 때 그의 부인은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을 이곳저곳도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고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 수업하는 모습도 보게 해주었다.
남편의 프로그램이 완전히 끝난 후에는 멀리 떨어져있는 관광지도 데리고 갔다.
유기농업을 하는 농가도 몇 곳 가 보았다.
그 때 남편에게서 들은 것 중의 하나가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농민 자격증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대학에 가려고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소수의 학생들 외에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학교에 입학하여 배운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그 제도가 농업에까지 적용되는지는 몰랐다.
남편이 함께 지낸 농가 중에 남편이 그 지역의 시의원인 집이 있었다.
아들과 딸이 각각 한 명씩 있었는데 딸은 교사가 되려고 김나지움에 다니고 있었고 아들은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 집 딸인 아니타는 그 이듬해 우리집에 와서 열흘간 같이 지내기도 했다.
그 아들이 농업학교를 다닐 때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할까봐, 곧, 농민 자격증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했다는 말을 그 엄마가 해주었다.
농업학교를 안 나오면 농사를 못 짓느냐고 했더니 못할 건 없지만 농민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을 수 없어서 농사 짓고 생활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농민에게 주는 지원금이란 게 거의 형식적이고, 있다고 해도 엉뚱한 곳으로 지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유럽의 지원금은 농민들에게 실제적으로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이후로 유럽의 농업 정책과 농업 교육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어제 마침 대산농촌재단에서 독일 농업과 농촌 관련 전문가 3명을 초청하여 심포지움을 연다고 하니 쫓아갔던 것이다.
세 사람은 각각 독일(EU)의 농업 정책, 독일의 농업 교육, 에너지 자립 성공. 이렇게 세 주제를 맡아서 발표했다.
1. EU(독일) 농업 농촌 정책에 대해 발표한 바이에른 알고이 지역의 농업국 국장이었던 요세프 히머는 첫 머리에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공무원이지만 농민 편에서 일했습니다."
유럽연합이 내념부터 앞으로 5년간 실시할 농업정책의 핵심은 녹색정책이라고 했다.
"EU의 새로운 농업정책은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할 것입니다."
유럽연합이 실현하려고 하는 내용들.
- 2030년까지 제초제와 농약 사용 50% 감소. 강가 등 민감한 지역에서는 전면 금지
- 유기농 25%. 독일 30%(독일 현재는 13%)
- 더 건강한 음식
- 농지의 10%를 생물다양성이 높은 농경지로.
소농과 젊은 농부들에게는 추가 보조금이 있다는 조항도 마음에 들었다.
질문 시간에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나라는 농업 후계자의 비율이 극히 낮은데 독일은 후계자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녀가 없는 농부는 양자를 들여 후계자로 삼거나, 자기 땅은 없지만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에게 농장을 물려주고 그에게서 사는 동안 생활비를 받거나 하기에 후계농을 걱정할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말했다.
독일 농부는 자기가 늙어서 농사를 못 짓게 되었다고 해서 농장을 다른 용도로 팔지 않는다. 자기가 죽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자기 농장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평생 농사 지은 농부의 자부심과 긍지가 있는 것이다.
2. 농민자격증, 품격과 책임.
30년간 농업직업학교의 교사였던 칼 립헤어의 발표.
이 분은 볼수록 농부 티가 나서 더 친근감이 느껴졌다.
농업학교는 학교와 농업 실습이 함께 하는 듀얼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농부가 되기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을 3년간 철저하게 받는다.
첫 해는 학교에서 이론을 주로 배우고 농장에는 1주일에 하루 실습을 나간다. 2학년때부터는 이 둘이 바뀌어 1주일 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 교육은 하루이고 나머지 4일은 농장에 나가 다양한 농사 실습을 하는데 이는 졸업학년인 3학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졸업시험이 곧 농민 자격시험이라고 했다.
3.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라는 주제로 여러 가지 재생 에너지로 800% 넘는 에너지 자립을 실현한 빌트폴츠리트의 시의원이 발표.
앞의 두 주제도 우리에게는 요원한 이야기였지만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너무도 아득한 곳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냥 감탄하면서 듣기만 했다.
그가 강조한 건 역시, 모든 재생 에너지 시스템은 시민 참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