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요가
[펌] 인도사상의 정수, 베단타 철학
- 정통사상의 두 갈래
육파철학 가운데 니야야, 바이셰쉬카와, 상키야, 요가는 단지 명목적인 의미에서 정통사상일 뿐이다. 다시 말하여, 이 네 학파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정통사상이 아니라, 단지 베다에 반(反)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정통사상의 범주에 들 뿐이다. 이들은 베다에 의거하여 세계관을 정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베다를 해석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베다를 자신들의 교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엄격히 말하여, 육파철학 가운데 베다에 직접 의거하는 정통사상은 오직 미망사와 베단타뿐이다. 이 두 학파는 처음부터 정통사상으로 출발했으며, 따라서 처음부터 지극히 종교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에 비하여 니야야, 바이셰쉬카와, 상키야, 요가는 하나의 철학체계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통사상으로 받아들여졌을 뿐이며, 종교와 관련을 지니게 되는 것도 상대적으로 나중의 일이다.
- 두 미망사
넒은 의미의 베다는 만트라(讚歌), 브라흐마나(祭儀書), 아란야카(森林書), 그리고 우파니샤드(奧義書)를 포함한다. 이 중에서 앞의 둘은 제사편이라 불리며, 뒤의 둘은 지식편이라 불린다. 제사편과 지식편은 논리적인 순서에서 전/후의 관계를 지니기 때문에, 제사편에 근간을 둔 철학을 푸르바 미망사라 하고 지식편에 의거한 철학 전통들을 웃타라 미망사라고 한다. 나중에 웃타라 미망사는 베단타라는 이름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푸르바 미망사는 간단히 미망사라고 호칭되었다. 이와 같이 육파철학 가운데 베단타와 미망사는 짝을 이루는 두 학파로 인정되지만, 상키야와 요가 혹은 니야야와 바이셰쉬카와의 관계와는 달리 그 둘의 관계는 보완의 관계라기보다는 선후의 관계라고 해야 한다.
- 베단타의 철학사상
미망사는 주로 제사 행위를 다루며 근본적으로 브라흐마나 문헌에 의거하고 있음에 비하여, 베단타는 지식 혹은 통찰에 관심을 지니며, 그것의 교의들은 우파니샤드에 의거한다. 그러나 베단타 또한 베다의 권위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것은 미망사의 연구가 그 자체의 철학에 대한 예비 지식이 된다고 본다. 또한 베단타는 미망사에서 확립된 인식방법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체의 철학체계 내에 흡수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망사와 직접적인 관련을 지닌다.
베단타의 근본 경전은 바다라야나의 <베단타 수트라>(일명 <브라흐마 수트라>)이다. 그것은 우파니샤드의 견해들을 아주 간결한 경구 형태로 용의주도하게 종합하고 있다. 가끔 의미가 명쾌하지 못한 구절들도 있으며, 주석의 도움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베단타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번도 하나의 체계로 통일된 적이 없었던 것도 궁극적으로는 <베단타 수트라> 자체의 다의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베단타 수트라>는 다른 학파들에서와 동일한 의미에서 근본 경전이 아니다. 베단타 철학은 <베단타 수트라>뿐만 아니라, 그것의 모체가 되는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에 그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베단타 수트라>의 제1장은 브라흐만과 어떤 경전들의 관계를 확립한다. 브라흐만은 탐구의 목표이며 우주의 원천으로 긍정된다. 제2장은 우파니샤드로부터 도출되는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관계에 대한 개념들의 일관성을 다루면서, 다른 학파들의 교의들을 비판하고 있다. 제3장은 지식, 숭배, 실천 수행을 통한, 브라흐만의 실현을 위한 수단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제4장은 브라흐만과의 마지막 혼융이 일어날 때까지 영적인 상승의 연속적인 단계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부여한다. 이러한 해석을 확립하기 위하여 인용된 우파니샤드의 구절들 가운데서 <찬도기야 우파니샤드>가 가장 빈번하며, 그 다음으로는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와 <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이다. 이 우파니샤드들은 비교적 고대에 속하는 우파니샤드들이지만, 바다라야나는 <카타 우파니샤드>와 <슈웨타슈와타라 우파니샤드>도 인용한다.
<베단타 수트라>에 대한 현존 최초의 주석은 샹카라(8세기)의 것이다. 그러나 베단타 철학을 체계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인물은 <만두키야카리카>의 저자인 가우다파다이다. 전통적으로 그는 샹카라의 스승의 스승으로 전해지지만, 샹카라보다 약 3세기 이전의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우다파다의 중심교의는 불생설(不生說)이다. 이에 의하면 전체 세계는 단지 가현에 불과하며, 어떤 것도 결코 실로 생겨나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브라흐만 이외의 어떤 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전체 세계는 꿈같은 환영이기 때문이다. 가우다파다가 여러 우파니샤드들 중에서 <만두키야 우파니샤드>를 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 우파니샤드에서 논의되는 아트만에 대한 네 가지 상태들을 주석하면서 본질적으로 각성상태와 몽면상태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자연스럽게 도출하고 있다(<만두키야카리카>ⅱ.4).
<만두키야카리카>의 마지막 장(章)은 가우다파다와 불교의 친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은 앞의 3개 장을 합한 것과 거의 동일한 길이로 되어 있으며, 때로는 그것이 가우다파다 자신의 주석이 아니라 어떤 불교도의 기술이 가필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나중에 샹카라에 의하여 발전되는 여러 견해들의 단초를 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가우다파다는 인과의 개념에 대한 비판과 마야의 교의를 통하여 경험의 환영적 본질을 확립한다. 마야라는 말은 베다 시대에는 창조 행위를 의미했으며, 심지어 <베단타 수트라>에도 단지 한 번밖에 언급되지 않으며, 여기서도 이 말의 의미는 가우다파다가 부여하는 의미, 즉 세계와 브라흐만의 관계의 설명불가능성 그리고 세계의 환영적 비실체성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남인도 케랄라출신의 브라흐민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샹카라는 어떤 이원성도 부정하고 오직 브라흐만을 유일한 실재로 주장하는 불이론(不二論) 베단타의 창시자로 알려진다. 분명히 짧은 생애(전통적으로 788-820)를 통하여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철학적 저술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견해들을 직접 널리 펼치는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의 주저는 <베단타 수트라>에 대한 주석이라 할 수 있지만, 또한 <바가바드기타>와 다수의 우파니샤드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했으며, 독자적인 저술로 <우파데샤사하스리>를 썼다.
정통 브라흐민으로서 샹카라는 베다의 권위를 받아들이지만, 베다의 구절들 사이에 외견상 나타나는 모순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해석상의 장치, 즉 진리의 두 차원에 대한 개념을 도입한다. 경험적 실재의 낮은 차원에서 세계는 존재하며, 인격신 이슈와라의 창조적인 주관 하에 상키야의 양식에 따라서 전개된다. 그러나 절대적 실재의 높은 차원에서 전체 세계는 비실재이며, 무지와 관련된 환영이며, 모직 브라흐만만이 실로 존재한다.
따라서 현상 세계의 다양하고 유한한 실체들은 본질적으로 브라흐만, 절대자와 동일하다. 그들의 다수성과 개별성은 무지가 절대자 브라흐만에 가탁(假託)된 결과이다. 그러나 마치 우리가 어두컴컴한 헛간에서 새끼줄을 보고 그것을 뱀으로 착각하여 깜짝 놀랄 때, 우리가 새끼줄에 환영적인 뱀을 가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지각과 경험은 `어떤 것'에 대한 것이며, 무(無)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지각할 때마다, 그것은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변의 세계를 지각할 때, 우리는 어떤 것을 지각하지만, 우리의 잘못은 그것을 브라흐만과 다른 어떤 것으로 착각하는 데 있다.
여기서 샹카라는 일체는 공(空)이라고 선언하는 중관불교의 부정주의를 피하고자 고심한다. 또한 샹카라는 그의 몇몇 추종자들과는 달리 아비디야의 본질이나 그것의 장소에 대한 정의내림을 피한다. 아마 여기에 내재된 논리적인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비하여 그의 제자 수레슈와라는 아비디야가 아트만에 의존하며 아트만에 속한다고 선언하며, 이 문제는 결국 아드와이타가 두 갈래로 분지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샹카라 자신에게 아비디야의 본질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비실재라면 우리는 그것에 속박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러나 만일 그것이 실재라면 브라흐만은 유일한 실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샹카라는 또한 설명불가능성의 개념을 인과의 문제에 적용시킨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인들이 전환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결과들은 사실상 가탁된 것이며, 따라서 실재도 아니고 비실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상들은 브라흐만에 대하여 단지 환영적으로 독립적일 뿐이며, 따라서 브라흐만의 본질적인 동일은 개별적인 현상들의 다양함에 의하여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파도가 일어났다 스러진다 해도 바다의 자기동일성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 비유 또한 샹카라의 사상이 단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샹카라는 브라흐만의 유일한 실재를 주장하기 위하여 세계의 궁극적인 실재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개아는 실재와 현상의 결합이다. 그것이 아트만 혹은 브라흐만인 한에 있어서 그것은 실재이지만, 한정되고 유한한 점에서 그것은 현상이다. 이 상황에서 샹카라는 "당신이 바로 그것이다"라는 우파니샤드의 언급을 사용한다. 이를 통하여 그는 브라흐만으로서 아트만인 순수 의식을 드러내기 위하여 개별과 초월의 양립불가능한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도달되는그 둘의 동일을 논증하고자 한다.
샹카라는 브라흐만에 대한 어떤 적극적인 언급을 주저한다. 이것은 브라흐만의 절대성에 대한 한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주요 저술들에서 적어도 그는 후기 아드와이타의 유명한 공식, 즉 브라흐만은 삿트(有), 치트(意識), 아난다(歡喜)라는 도식적인 기술도 회피된다. 실로 그는 브라흐만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ⅱ.3.6)는 선언에 명백히 동조적이다. 아무런 규정성도 띠지 않는 무속성 브라흐만은 정확히 말하여 아무것도 긍정될 수 없는 존재의 초월 상태이다. 그러나 브라흐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신적인 추구의 목표, 해탈이다. 해탈은 참된 지식, 자신과 브라흐만이 사실상 동일하다는 직관에 도달할 때 성취된다. 이 구원의 지식은 지난 업을 소멸시키며, 생해탈의 상태를 가능하게 한다.
역설적이게도 샹카라의 절대적 불이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베단타 내부에서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라마누자(12세기)의 제한적 불이론으로 구체화된다. 베단타를 유신론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 그는 샹카라의 절대자가 우파니샤드나 <베단타 수트라>에서 가르치는 브라흐만과 다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열망에도 부합하지 않는 메마르고 차가운 추상관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주로 <브라흐마 수트라>에 대한 주석과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주석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베다르타상그라하>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라마누자 베단타의 중심 주제는 샹카라의 가현설(假現說)에 의하여 격하된 인격신 이슈와라의 절대성을 회복하고 세계의 실재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정통 바라문철학과 대중적 차원의 박티(信愛)종교를 종합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박티를 해탈의 궁극 수단으로 간주하는 라마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인격신 이슈와라를 하범(下梵)이라 하고, 그것을 무속성 브라흐만(上梵)의 하위에 두는 샹카라의 입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박티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슈와라를 궁극적 실재로 보지 않는 한, 박티가 해탈의 궁극적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라마누자에게 이슈와라는 곧 유속성 브라흐만이며, 무속성 브라흐만은 추상적인 관념에 불과하다. 브라흐만은 무한하며 완전한 속성을 갖추고 있으며, 세계의 동력인이면서 동시에 질료인이다.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점에 대하여 라마누자도 샹카라와 동일한 입장이다. 그러나 샹카라에게 브라흐만은 어떠한 규정성도 띠지 않는 순수한 동일이지만, 라마누자에게 브라흐만은 우리의 경험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존재들의 유기적인 통일이다. 이른바 브라흐만뿐만 아니라 세계와 개아 또한 궁극적으로 실재하며, 이 셋은 순수 무차별적 동일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유기적인 통일이라는 의미에서 일원(一元)이다. 이런 의미에서 라마누자의 일원론은 한정불이론(限定不二論)이라고 불린다.
라마누자는 개아 및 세계와 브라흐만의 유기적인 관계를 몸과 영혼의 관계로 설명한다. 다시 말하여 인간과 세계는 브라흐만의 몸이다. 브라흐만과 세계의 관계는 또한 기체(基體)와 속성, 통제자와 통제받는 자, 주인과 종, 양태를 지니는 자와 양태, 전체와 부분 등의 관계로 설명된다. 이와 같이 여러 범주들의 짝으로 설명되는 브라흐만과 세계의 관계에서 라마누자의 강조는 무엇보다도 브라흐만과 세계의 존재론적 연속성이며, 이것은 결국 개아와 세계가 브라흐만과 마찬가지로 실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샹카라와 라마누자의 차이는 인식의 문제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난다. 샹카라는 인식을 고차적인 것과 저차적인 두 종류로 나누고, 고차적 인식에서는 인식자와 인식대상과 인식 작용 사이의 구분이 사라진다고 본다. 이에 비하여 라마누자는 인식이란 항상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내포하므로 인식주체나 인식대상과 동일시할 수 없으며, 인식주체가 없는 경우에는 인식대상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라마누자는 궁극적으로 해탈의 상태에서도 개아의 개별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샹카라는 개별성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본다. 라마누자의 입장에서 보면 해탈의 상태에서 개아는 브라흐만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브라흐만적인 존재가 될 뿐이다.
라마누자가 해탈의 수단으로 강조하는 박티는 우파사나(念想)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며, 지적인 색채가 상당히 농후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베단타 수트라>에 대한 주석에서 박티 이외에 신에의 절대적인 귀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박티에 이르는 준비단계 혹은 박티와 동일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후대에 이르러 매우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며, 13세기에는 이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라마누자의 추종자들이 남북의 두 종파로 분열되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북인도의 바다갈라이종파는 프라팟티를 단지 해탈에 이르는 한 가지 방법으로 보며, 따라서 그것을 선택의 문제로 취급한다. 또한 이들은 마치 새끼 원숭이가 어미 원숭이에 착 달라붙듯이 인간의 노력이 구원의 본질적인 요인이라 하여 `원숭이 이론'을 주장하였다. 이에 비하여 남방의 텡갈라이종파는 다분히 대중적인 특징을 보이며, 오직 프라팟티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새끼 고양이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입으로 물어 옮기듯이, 인간의 노력 없이도 신은 절대귀의하는 사람을 구원한다는 `고양이 이론'을 주장한다.
라마누자를 분기점으로 베단타는 실재론적인 경향으로 주도되며, 다분히 종파적인 색채를 띠면서 전개된다. 라마누자 이후의 베단타를 대표하는 사상가로는 우선 마드와(1238-1317)를 들 수 있다. <전철학강요>(全哲學綱要)의 저자로 유명한 그는 라마누자의 베단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원론적(혹은 다원론적) 실재론의 입장에서 독자적인 베단타 철학을 수립했다. 본질적 불일불이론(不一不異論)을 주장했던 님바르카(14세기)는 후기 베단타 학자들 가운데 라마누자의 사상과 가장 가까운 철학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발라바(1473-1531)의 순수불이일원론이나 차이탄야의 불가사의불이일원론 등을 통하여 라마누자의 유신론적 베단타 사상이 계승된다. 동인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차이탄야는 크리슈나-라다숭배의 열광적인 종교운동을 주도하며 박티 종교의 부흥에 큰 공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