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노동으로 풀무질한 원경선 원장 별세
공동체·생명 운동 평생 투신...1월 8일 100세에 흙으로 돌아가다
기자명 임안섭
승인 2013.01.09 23:10
▲ 공동체 운동과 유기농업의 산 증인 원경선 평화원 원장이 타계했다. '풀무원 농장' 설립자이기도 한 원 원장은 1월 8일 오전 1시 49분경 노환으로 향년 100세에 별세했다. (사진 제공 풀무원)"공동체를 하는 것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다.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모인 것은 집단이기주의다. 자급자족하고 남은 것은 이웃을 위해 내놓아야 한다."
공동체 운동과 유기농업의 산 증인 원경선 평화원 원장이 타계했다. '풀무원 농장' 설립자이기도 한 원 원장은 1월 8일 오전 1시 49분경 노환으로 향년 100세에 별세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이며, 장지는 인천 강화군 파라다이스 추모원이다. 장례는 풀무원홀딩스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9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다.
'한국 유기농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원 원장은 한평생 공동체 운동을 펼치며 나누는 삶을 실천했다. 평신도가 수평적으로 직제를 담당하는 '형제단(brethren)' 소속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고, '씨알 농장'을 일군 함석헌 선생과 교류하며 농사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나눔과 자급자족을 강조하며, 평생 생명 농사를 지으면서 이웃 사랑과 생명 존중의 정신을 남겼다.
고인은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여섯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잃고 농군의 길로 들어섰다. 1955년 한국전쟁 후 마흔을 넘긴 나이에 경기도 부천 땅 1만 평을 개간해 풀무원 농장을 지어,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해 공동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풀무원'이라는 이름은, 대장장이가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듯이 농장 식구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농사일로 풀무질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뜻으로 지었다.
▲ 원경선 원장은 평신도 중심의 형제단 소속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고, 함석헌 선생과 교류하며 농사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나눔과 자급자족을 강조하며 생명 농사를 지었다. (사진 제공 풀무원)
공동체는 초기에 가난 구제를 목적으로 삼았다. 차차 공동생활을 하며 바른 삶을 배우는 교육장으로 바뀌었다. 오전에는 성경 공부와 교양 교육을 하고, 오후에는 양계법과 영농 실습을 했다. 공동체에서 바른 삶의 방식을 배우고 농사 현장으로 간 사람만 100명이 넘었다.
원 원장은 일본 기독 농민이 모이는 '애농회'가 발간하는 잡지에서 유기농에 대한 글을 읽고 일본 유기농의 선구자인 고다니 준이치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한 원 원장은, 1976년 경기도 양주로 풀무원 농장을 옮겨 유기농사를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유기농 단체인 '정농회'를 만든 것도 이때다.
'인간 상록수'로 불리는 원 원장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꼭 실천하며 살았다. 1961년부터 2006년까지 열린 교육으로 유명한 경남 거창고등학교 이사장을 지냈다. 거창고는 군사정권 시절 교육 당국과 마찰을 빚으며 세 번이나 폐교 위기에 몰렸으나, 그때마다 원 원장은 "타협하느니 차라리 학교 문을 닫는 것이 인격적으로 바른 교육을 하는 것"이라며 버텼다.
▲ 원경선 원장은 1955년 경기도 부천에 풀무원 농장을 지어 공동체를 하기 시작했고, 1976년 유기농사를 시작했다. 2004년에는 충북 괴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농장 근처에 '평화원'이라는 공동체를 세워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사진 제공 풀무원)공동체 운동에서 출발해 생명 운동을 해 온 그의 삶은 국제 구호 활동과 환경 운동으로 뻗어 나갔다. 1990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에 참여해 가난한 이들을 돕는 운동에 동참했다. 1992년 78살의 나이에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세계 환경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유기농 실천 운동에 대해 강연했다. 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산하 기구로 시작한 환경개발센터의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2004년에는 충북 괴산으로 풀무원 농장 거처를 옮기고, 농장 근처에 '평화원'이라는 공동체를 세웠다. 거기서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원 원장은 유기농업을 통해 환경 보존에 이바지한 공로로 1992년 녹색인상, 1995년 유엔 글로벌 500상,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8년 인촌상을 수상했다.
원 원장의 장남 원혜영 의원(민주통합당)은 1981년 아버지의 정신을 따라 풀무원을 창업, 30여 년이 지난 현재 연간 매출 1조 5000억 원이 넘는 식품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풀무원은 충북 괴산의 연수원 로하스 아카데미에 기념관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 가기로 했다.
원 원장은 일본 기독 농민이 모이는 '애농회'가 발간하는 잡지에서 유기농에 대한 글을 읽고 일본 유기농의 선구자인 고다니 준이치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한 원 원장은, 1976년 경기도 양주로 풀무원 농장을 옮겨 유기농사를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유기농 단체인 '정농회'를 만든 것도 이때다.
'인간 상록수'로 불리는 원 원장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꼭 실천하며 살았다. 1961년부터 2006년까지 열린 교육으로 유명한 경남 거창고등학교 이사장을 지냈다. 거창고는 군사정권 시절 교육 당국과 마찰을 빚으며 세 번이나 폐교 위기에 몰렸으나, 그때마다 원 원장은 "타협하느니 차라리 학교 문을 닫는 것이 인격적으로 바른 교육을 하는 것"이라며 버텼다.
▲ 원경선 원장은 1955년 경기도 부천에 풀무원 농장을 지어 공동체를 하기 시작했고, 1976년 유기농사를 시작했다. 2004년에는 충북 괴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농장 근처에 '평화원'이라는 공동체를 세워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사진 제공 풀무원)공동체 운동에서 출발해 생명 운동을 해 온 그의 삶은 국제 구호 활동과 환경 운동으로 뻗어 나갔다. 1990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에 참여해 가난한 이들을 돕는 운동에 동참했다. 1992년 78살의 나이에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세계 환경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유기농 실천 운동에 대해 강연했다. 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산하 기구로 시작한 환경개발센터의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2004년에는 충북 괴산으로 풀무원 농장 거처를 옮기고, 농장 근처에 '평화원'이라는 공동체를 세웠다. 거기서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원 원장은 유기농업을 통해 환경 보존에 이바지한 공로로 1992년 녹색인상, 1995년 유엔 글로벌 500상,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8년 인촌상을 수상했다.
원 원장의 장남 원혜영 의원(민주통합당)은 1981년 아버지의 정신을 따라 풀무원을 창업, 30여 년이 지난 현재 연간 매출 1조 5000억 원이 넘는 식품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풀무원은 충북 괴산의 연수원 로하스 아카데미에 기념관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