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8

이병철 사회운동가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남은 날들을 생활수행인으로 살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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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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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오늘의 내 생각/
아침에 페북을 여니 지난 해의 오늘 남미여행을 마무리하며 썼던 글이 떠 있다. 다시 읽어보니 새롭다. 이 여정의 끝에 이제껏 내 자신의 정체성 하나로 규정해왔던 사회운동가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남은 날들을 생활수행인으로 살겠다는 다짐의 글이 실려있다. 그런 다짐 후의 일년이 지난 나를 다시 돌아본다.

 
-어제 리오에서 4시간 걸려 빌라 마리아라는 주도의 인근 산속에 있는 아난다마르가의 센터에 하루 묵고 다시 아침 5시부터 서둘러 한 시간 거리의 빌라마리아시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상파울루행 버스를 타고 8시간을 달려 공항으로 간다. 오늘 밤 비행기편으로 귀국이다. 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에 젖은 공항의 불빛이 아련하다.
출발과 도착일을 포함하면 27일의 여정, 올 한해, 연초의 한달을 그렇게 보낸 셈이다. 이제 짧은 남미여정 소식 나눔도 마무리할 시간이다.
이번 남미여정은 요가와 명상과 채식을 중심으로 하면서 남미 지역의 아난다마르가 공동체 순방을 겸한 것이다.
그 나름의 의미가 충분했던 여행이라 싶다. 언제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모든 여행에서, 아니 남은 인생의 그 모든 만남에서 낯섬을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과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다시 마음 모은다. 그렇다. 삶이 곧 여정인 이 생에서 그 모든 날들이 설렘과 기쁨으로 그리 충만하기를.
 
이제 나에게, 그리고 페북에 인연해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는다.
 
명상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이른바 깨달음이나 깨어남을 위한 그 모든 수행을 포함해서 묻는 것이다.
내 생각을 말하기전에 당신의 생각, 의견을 먼저 듣고 싶다. 명상이란, 깨달음이란, 수행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 명상이란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그 전부를 다 포괄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난다마르가에서는 명상과 요가를 하나로 본다. 정확하게는 요가 안에 명상과 아사나(체조)와 채식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요가란 합일이고 대자유를 의미한다. 아트만과 브라흐만과의 합일, 근원, 지고의 의식과 하나되는 것이다. 그것을 무한한 빛과 사랑과의 합일이라 해도 좋겠다. 또는 더 단순하게 하느님과 하나되는 것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온전한 자유함, 대해탈, 열반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에 이르기 위한 방편으로 몸의 정순함을 위한 음식(오신채를 배제한 순수한 채식, 음식은 각기 그 자체로 고유의 성질, 에너지를 갖고 있다. 정순한 몸을 위해선 정순한 에너지/파동을 가진 음식물의 섭취가 중요하다)과 아시나(체조)를 통해 우리의 몸과 그 몸에 깃들어 있는 50여 가지의 성향을 컨트롤하는 호르몬과 림프액의 조절하고 내면의 나(아트만, 내면의 신성 또는 참나)를 만나기 위한 명상을 필수 과정으로 삼고 있다.

왜 이런 요가, 또는 명상이 필요한가.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 질문을 좀 더 단순화하자. 명상 또는 수행이 당신의 행복과 건강한 세상을 일구어가는 데 필요한가?

그렇다. 이제는 자기 수행, 그 깨어남 없이 개인이나 사회의 진보,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달리 말하면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제는 인류의식의 진화없이는 불가능하다. 전환과 깨어남은 둘이 아니다. 깨어남, 자각 또는 각성없이는 인류문명의 전환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환이란 의식의 각성에 다름아닌 것이다. 결국 현존 문명을 지탱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비롯한 이 모든 것들의 본질인 물질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의식의 진화 뿐이라 할 수 있다. 이 단순한 명제가 곧 '물질에서 의식으로'일 것이다.
샤드비푸라, 영적인 정치지도자의 필요성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수행이 필요한 집단이 바로 정치인들이라 할 수 있다. 저들의 의식, 영성이 깨어나지 않는한 저들이 하는 그 모든 일들이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 바탕이 물리적 힘의 추구에 있는 까닭이다. 권력과 부패는 쌍생아이다. 권력의 추구와 물질적 부의 추구는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그것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엔 권력과 부에 정치가 지배된다. 이른바 빙의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권력/정권욕에 눈멀었다고 할 때가 곧 그것이다. 정치인과 영성, 그게 가능할까. 무망한 일이라 싶기도 하다. 선거판이라 부질없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이른바 사회운동 하는 이들에게 기대하는 것 뿐이다. 개인의 각성과 사회적 변혁의 추구, 이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길을 향한 노력이다. 이제 그 길을 구체적으로 찾고 실행해야 한다.
각설하고, 그동안 줄곧 이어온 생각의 하나이지만 자신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로 이제 사회운동가라는 한 생각으로부터 생활수행인이라는 생각으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자각한다. 출가수행자로 살기엔 너무 늦었으니 남은 날을 그렇게 걸어가기로 마음 모은다. 그 길에서 사회적 영성을 어떻게 일구어갈 것인가를 도반들과 함께 찾아가야겠다. 이런 생각의 정리가 이번 남미여정이 내게 남긴 선물이라 여긴다. 해야할 과제가 더욱 구체화되고 선명해졌다. 이번 여정을 함께 한 도반들께, 그리고 이 여정이 이루어지게한 가족들에게 다시 감사드린다.
오브리가또.
무차스 그라시아스.
(2016.02.08. 상파울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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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인근

아이고 윗칸에올린글이왜이리로 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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