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1

希修 영적(?) 성찰/수행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

 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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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성찰/수행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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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가 자주 충돌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첫째로, 종교는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고 또 당장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는 나 자신 어떻게 더 나은 인간이 되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그 최우선 관심사이기 때문. 남을 바꾸는 일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는 종교도 있고. 그리고 둘째로, 대부분의 영적 전통들에서는 이승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표면 아래에 어떤 섭리 (그것이 신의 계획이든 업이든 뭐든)가 부분적으로나마 작용하고 있다고 믿기에, 운명 결정론까지는 아닐지언정 일단은 그 섭리의 존재를 인정하고 불평불만하지 않는 것을 현실 개선을 위한 노력의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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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불평불만이나 남 탓 하지 마라,"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넌 왜 그리 부정적이냐?" 류의 얘기가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혹은 오히려 피해자의 '회개'/'참회'를 권하는 폭력!으로 귀결될 위험성도 다분. 이런 행동은 성직자조차 극도로 조심해야 할 일이건만, (1) 성직자도 아닌 사람이, (2) 사회적 이슈 관련하여, (3) 영성 관련 입장이 자신과 동일하지도 않은, (4) 그리고 그 이슈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운동가/실천가 혹은 제3자에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언론탄압처럼 작용할 수도 있는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 그런데 류시화 시인의 12월 3일자 게시물에서 그런 의도치 않은 부작용의 가능성이 보여 불편했던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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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전쟁을 싫어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평화를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나는 더 좋아할 것이다. ... ... '거위털 패딩이 싫다'라고 말하는 대신 '손으로 뜨개질한 네팔산 스웨터가 좋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나는 만나고 싶다. ...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나는 불행한 것이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행복한 것이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싫어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부여받은 예민함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위대한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자기 주위에 벽을 쌓는 쪽으로 그 재능이 쓰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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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싫어한다 말하지 말고 평화를 좋아한다 말하라고 테레사 수념이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사실은, "환경보호가 좋아요"라는 시위보다 "탄소배출을 줄이자"라는 시위가 좀더 효과적이지 않겠는지. 암튼, 종교적 성찰/수행과 지구라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병행하는 일 혹은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마치 서커스 외줄타기처럼 어려울 수밖에. 그러니 이 문제는 오롯이 각자의 사적인 문제로 남겨두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특정 종교 단체 내부에서 그 종교의 신자들끼리 상호작용하는 상황이 아니라 종교 밖 맥락에서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상호작용할 때는, 가급적 법과 상식에만 근거하여 비판을 하든 논쟁을 하든 요청을 하든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고. 전혀 다른 두 층위를 뒤섞어 남에게 강요하거나 남 억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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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최소한 초기불교에선 긍정을 위한 긍정을 가르치지 않는다. 초기불교 관점으로는 긍정을 위한 긍정은 오히려, '망상'이나 '긍정 에너지가 가져다 주는 감각적 즐거움에의 집착'이라고까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7911976579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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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ye Tak 希修 긍정 에너지가 가져다주는 감각적 즐거움에의 집착 이 말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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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당장 기분 좋고 마음 편한 것이 중요하기에 모래 속에 머리 파묻고 현실 부정하는 타조같은 어리석음 + 뭔가 좀 심오해 보이고 싶은 허영, 이 둘의 결합이 바로 '긍정을 위한 긍정' 아닌가 싶어요 - 전부는 아니지만 적잖은 경우. 아, 나 왜 이리 '부정적'이고 '예민'하며 '삐딱'까지 한지 말이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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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ye Tak 希修 심오해 보이고 싶은 허영 이거 보니 생각나는 사람 있네요... 제 눈엔 뭐그렇게 심오한거 같지 않은데 주변 반응은 엄청 깊이가 있고 철학적이고 내면이 꽉 차있고 등등등 이랬거든요. 이걸 보고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그 사람이 듣고싶어하는 말을 놀랍도록 잘 캐치한다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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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Jihye Tak 소비자의 필요와 기호/취향에 민감해야 팔리니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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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ye Tak 여자라 만만하니 공개적으로 고나리질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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