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에 대한 오해 #5. 나보다 남을 우선하는 것이 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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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앞에서 무조건 자신을 낮추고, 자신보다 남을 더 위하며, 매사 남의 생각을 따르고 남의 비위를 모두 맞춰 주어야 '무아'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에고가 너무 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 역시 초기불교의 관점과는 꽤나 거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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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인간이 이 세상 전체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라고, 그 누구도 타인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다고, Rājan Sutta는 인정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예외적인 면이 있지만, 인간이 말하는 '사랑'은 사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상대를 소비하는 행위'라 볼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a). 이런 상호 간의 소비가 상호 합의에 의한 것이며 그 합의대로 이행되고 그 과정에서 쌍방이 보람을 느낄 때를 '건강한 관계'라 부르며, 그렇지 않고 일방적 소비/학대가 될 때 '불건강한 관계'가 되는 것. 이걸 인정하고 기억해야 서로 조심하며 존중할 수 있고, 그러지 못 하면 죽고 못 산다며 결혼해 놓고는 원수되어 이혼하는 것. 그러나 부처님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말씀하시지도 않고 인간의 현실을 미화하시지도 않는다. Charlotte Joko Beck 선사 역시, 무아는 self-centered도 아니고 타인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other-centered도 아니며 그냥 centered일 뿐이라고 했다. (불교에서 'centered'는 자기호흡에 대한 관조를 단 1초도 놓지 않는, constant mindfulness를 의미.) 그러니, 자신보다 남을 우선하라는 가르침이 불교의 무아라는 생각은 오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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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 어른대접 않는다고 야단치자, 우리 승단에서도 당연히 어른을 공경하는데 어른은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아니라 지혜가 있어야 어른이건만 내 눈에 지금 여기서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라고, 부처님 제자가 그 노인에게 대놓고 말하는 일화가 잡아함 20권 547경에 나온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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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생토록 수행한 노인들도 세상에 수두룩하건만 새파랗게 젊은 수행자인 그대가 어떻게 감히 해탈했다고 주장하는가?라고 Pasenadi라는 왕이 부처님을 힐난하자, 나이와 지혜는 무관하다, 깨달음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건 유일하게 본인뿐이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장면도 Kosala Saṃyutta에 나온다 (c). (이 일화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나 혼자 fully 깨달은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것에도 방증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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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수행하는 이는 남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섬기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겸손 강박'은 2번에 이어 3번에서도 무참히 깨진다. (그렇다고 3번 일화를 "부처님의 잘난 척"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세상 모두가 자신 앞에서 굽실거리지 않으면 불안/불편해 못 견디는 열등감과 오만이 결합된 꼬인 마음일 뿐. 부처님은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하셨을 뿐.) 암튼 우리가 생각하는 종류의 겸손이 불교에서도 중요하다면, 2번이나 3번 같은 사례들, '오만방자'와 '에고'라는 것의 전형으로 보이는 이런 사례들은 아예 경전에 나올 수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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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위 세 가지 경우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남보다 낮추거나 무조건 남을 편하게/기분좋게 해 주려는 노력이 불교의 가르침과는 퍽 다르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으라고 불교는 가르치는 것인가?하면 물론 그것도 당연히 아니다. 마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찍을 때 portrait 모드로 찍으면 주인공 얼굴만 또렷이 나오고 그 외에는 흐릿하게 나오듯이,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나'라는 대상/주어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데, 그러지 말고 촛점을 과정/술어에 두고서 매사를 impersonal 하게, '나의 이익/즐거움/소망'의 관점이 아닌 오직 '인과'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라는 것이 바로 불교의 무아라고 나는 이해한다 (d). 'not selfish/arrogant'는 이런 전환의 결과일 뿐 무아의 목적은 아닌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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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런 오해들을 갖게 된 이유는 그럼 무엇일까? 한 쪽 극단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반대쪽 극단으로 무작정 달려가는 우리의 맹목성 때문 아닐까 싶다. 불교의 업이론은 "과거 업도 미래 업도 니 컨트롤 밖이고 니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의 니 행동뿐이니 매순간의 현재에서 탐진치 없는 선택을 하라"는 것이 요지. 다시 말해, 매순간 짓는 선업을 그동안 축적되어 온 과거의 업에 추가함으로써 운명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 라는 얘기. 업이론 자체 내에 이미 '가능성'과 '희망'이 내재되어 있건만, 그러니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이미 충분히 긍정적!이건만, 우린 비관적/부정적인 내용도 무조건 비틀고 왜곡하여 억지로 낙관적/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무아도 마찬가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쉬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긴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남을 우선시하고 나를 낮추는 데에 있지 않다. 나의 이기심이나 남의 이기심이나 '수준 낮'기는 매한가지이건만, 나의 이기심에 복종하여 사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면 남의 이기심에 맞춰 내 삶을 사는 일이 대체 어떻게 '현명한' 일이 될 수 있겠는지? '나는 겸손한,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집착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자기중심주의의 뒷면일 뿐, 여전히 '과정/술어 아닌 대상/주어에 대한 집착'이라는 one and the same 동전인 것. '내가 남보다 위'라는 생각뿐 아니라 '내가 남보다 아래'라는 생각 역시 conceit (자만)이라고 아비담마 (e)가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며, 우리가 생각하던 식의 겸손이나 사랑 대신 사무량심으로 충분한 것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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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Our bodies need physical food for their well-being. Our minds need the food of pleasant sensory contacts, intentions, and consciousness itself in order to function. If you ever want proof that interconnectedness isn't always something to celebrate, just contemplate how the beings of the world feed on one another, physically and emotionally. Interbeing is inter-eating. As Ajaan Suwat, my second teacher once said, "If there were a god who could arrange that by my eating I could make everyone in the world full, I'd bow down to that god." But that's not how eating works."
https://www.accesstoinsight.org/…/thani…/purityofhear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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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존경은 지혜에 비례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3643054006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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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http://www.suttas.com/8203chapter-3-kosala-samyutta-with-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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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무아와 윤회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15007984869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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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자만 => #20.
https://www.facebook.com/photo?fbid=924118681293549&set=a.906304756408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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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용서와 자비희사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095805154124900
4崔明淑 and 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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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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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soo Hong 나의 즐거움을 위해 상대를 소비하는 행위.. 뼈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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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Sungsoo Hong 부처님은 사랑/pema에 대해 부정적이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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