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억압된 개인의 욕망을 해방하는 과정이 근대 이후의 대세다.
그것이 개인주의ㆍ자유주의ㆍ자본주의ㆍ자유민주주의의 심층의 바탕이다.
이것을 거스르는 실험들은 실패하거나 왜곡되었다.
국가와 시장도 이 바탕에서 운영된다.
그런데 지금 개인의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는 것이 되돌아와 자신이 그 일원인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지고 생명의 위기로 되고 있다.
국가와 시장이라는 주류 흐름에도 큰 변화가 요구되고 있고, 새로운 인간ㆍ사회ㆍ문명을 지향하는 운동들이 주류의 변화를 이끌어갈 추동력으로 발전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생명ㆍ평화ㆍ생태ㆍ마을ㆍ협동 ㆍ자치 ㆍ개벽 등의 운동들이 단지 틈새운동에 머무르지 않고 주류 흐름을 바꾸는 동력으로 되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할까?
철학적 사변적 관념적 테마가 아니라, 절박한 실존적 위기와 만나고 있다.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는 방향은 실패한 실험들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공멸을 막기 위해 생태전체주의나 독재가 불가피하게 출현한다면 그것은 디스토피아의 괴기한 모습일 것이다.
과연 인간의 보편적 의식이 자기 중심적 욕망을 넘어서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이라는 자각에 이를 수 있을까?
억압된 욕망을 해방하는 과정을 지나 그 자기중심적 욕망 자체로부터 해방하려는 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억압된 개인의 욕망을 해방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 욕망 자체의 부자유를 보편적으로 자각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다.
다른 말로 하면 물질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가 그 억압되었던 자기중심적 욕망을 풀어놓는 과정과 결합되어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되는 것이 인간의 궁극적 자유 즉 관념계의 자유가 현실적이고 보편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조건으로 보았다.
축의 시대의 성현들이 도달한 자유가 보통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역사의 진행, 한 때 나는 이것을 '보통 사람들의 성인화'라고 생각하면서 유토피아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왔다.
그런데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즉 그렇게 되기 전에 공멸하거나 디스토피아의 모습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과연 자기중심적 욕망 그 자체가 자유의 질곡이라는 자각이 상당히 발전한 물질적ㆍ사회적 토대 위에서 보편적 흐름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욕망의 억압이 아니라 욕망의 해방이 새로운 사회와 문명의 바탕으로 진전될 수 있을까?
21세기의 2차 르네상스(축의 시대의 르네상스에 이어서)가 이 땅에서 발흥하는 꿈은 한낱 몽상으로 그치고 말 것인가?
나는 어떤 경우라도 비록 몽상으로 그칠지 몰라도 그 꿈을 안고 그것을 향해 한걸음이라도 가까이 걸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하늘이여, 그런 복을 저에게 허용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