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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의 '이천식천'과 윤리적 채식주의_박현지(서강대 철학과 3학년)
혼돈나라추천 0조회 920.12.24 1
최시형의 '이천식천'과 윤리적 채식주의
서강대 18학번 철학전공 박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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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이 동물을 비윤리적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의 채식주의는 종교적 이유로 고기의 종류를 제한하는 등의 풍경과는 다르다. 이는 단지 고기를 섭취하지 않는 일에 달린 것이 아니다. 공장식 축사 등의 보편화에 따른 동물의 삶의 파괴 문제는 채식주의 지지자들의 가장 강력한 근거 중 하나이다. 이에 착안하여 이 보고서에서는 해월 최시형(1828~1898)이 제시한 ‘이천식천(以天食天)’ 개념이 채식주의의 사상적 근거를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최시형에게 하늘은 만물과 이원론적으로 구분되는 절대적 지위를 가지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생동하는 것이다. 하늘, 즉 천지나 자연은 만물의 생성·변화 그 자체이자 그것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생명은 하늘의 이러한 특성이 형체를 갖고 표현된 것이며, 모든 생명 속에 하늘이 있다. 이러한 바탕이 녹아 있는 ‘이천식천’ 개념은 우리가 음식을 먹는 행위가 ‘하늘이 하늘을 먹는 것’과 같음을 의미한다. 한 동물이 다른 동물을 먹는 일은 단지 약육강식의, 포식자-피식자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는 상생이며, 자연 전체의 성장이다. 최제우의 인간 평등은 최시형에게로 나아가 생물의 평등까지 엿볼 수 있도록 확장된다.
이는 얼핏 보아 다른 생물을 먹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서론에서도 지적하였듯, 문제는 육류 섭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업화 이후의 인간은 육류를 비롯한 다양한 식용 생물의 양식 방법에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우리는 점차 생산성의 관점에서 동물을 다루게 되었으며, 동물을 마치 인간을 위해 작동되는 살아 있는 기계와 같이 취급하게 되었다. 최시형이 ‘이천식천’ 개념에서 주장한 바는 또한 먹는 행위의 신성성이다. 마치 우리 안에 하늘이 있는 것과 같이 만물 속에도 하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만물의 귀함을 깨닫고 공경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오직 우리의 만족과 이익만을 위해 마구잡이로 다른 종들을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동물이 동물을 먹는 일은 상호적이다. 서로가 평등한 위치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착취이다.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해주는 식량에 감사하거나 그것을 존중하기는커녕 더욱 빠르고 많은 생산만을 위해 동물의 존엄을 해치고 있다.
‘이천식천’은 최종적으로 나의 희생까지도 포함하게 된다. 우리가 자연을 누리고 그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나 또한 내려놓아 자연과 만물에 보탤 줄 알아야 한다. 최시형의 이 독특한 세계이해 방식은 만물의 상호성을 성찰하는 법을 잊은 현대에 비로소 큰 의의를 준다. 지금까지 다양한 학자들이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고 그 대안으로 윤리적 채식주의를 제안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은 법과 과학을 동원한 윤리학적 논증들을 근거로 삼고 있다. 최시형의 사상은 자연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위치와 책임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시야를 조금 더 넓게 가지고 우리의 식생활, 그리고 구조적 문제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