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과 위로의 연대 – 웹진 「대산농촌문화」
세계농촌기행
쌀밥과 위로의 연대1 개월 전에 by 정은정
협동과 연대로 전환하는 동아시아의 농農
글·사진 정은정
중국 중산 치시마을 풍경. 이번 연수 지역은 쌀의 나라들이다. ⓒ대산농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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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과 연대로 전환하는 동아시아의 농農’ 연수를 마치고, ‘세계농촌기행’ 원고 의뢰를 받고나니 새삼 막막해졌다. ‘세계농촌기행’이라는 제하에 맞춰 글을 쓰는 일이 난감해서다. ‘동아시아’를 세계라고 호명하는 일이 있었던가. 동아시아인인 우리의 인식 속에서도 동아시아는 언제나 변방이다. 한국은 서양의 기준에서 ‘극동’이었으므로 세계는 유럽이나 미국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무엇보다 농업 분야에서 우리가 보고 싶어 했던 세계 농촌은 농업 선진지라 부르는 유럽, 호주, 미국 등지일 때가 많았다.
그간 대산해외농업연수에 지원을 해보고 싶었다. 다만 한국농촌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유럽이나 호주의 사례는 몇 가지 충돌 지점이 있었다. 스케일의 차이가 크고 지역적 맥락이 워낙 달라 다녀오더라도 질문이 풍부해질 것 같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 내 관점에서 관찰 지표가 있다면 음식(문화)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먹거리 현실은 대륙 간 이동을 통한 글로벌푸드시스템이라 하더라도, 미국산 밀가루로 수제비와 칼국수를 해 먹는 한국의 지역적 맥락처럼 음식에는 지역과 사람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런 점에서 서양 요리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많이 부족해 실제로 무언가를 먹고 있어도 그 지역 사람들이 왜 이렇게 먹고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번 대만과 중국 화남 지역에서 있었던 연수는 짧은 비행시간, 비슷한 낯빛의 사람들이 있는 곳. 밥과 반찬을 먹고 국을 끓여 밥을 먹는 곳. 그러므로 짓는 농사도 비슷하고 시장에서 사고파는 푸성귀도 엇비슷한 모습을 지닌 곳일 테다. 이 정도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중국 광저우와 대만의 음식 다큐멘터리 정도만 보고 떠난 연수였다. 그간 유럽의 직불제, CSA, 로컬푸드 정책 등등 글에 간접인용도 많이 해왔지만 정작 동아시아의 농촌이야말로 ‘먼 나라 이웃나라’도 아닌 그냥 ‘먼 나라’였다.
잘 먹는 일이 배우는 일 – 쌀과 밥에 기대는 삶의 연대
대만과 중국의 광둥은 밥을 지어 먹는 지역이다.
이번 연수 지역은 쌀의 나라들이다. 대만과 중국의 광둥은 밥을 지어 먹는 지역이다. 농사의 결도 수도작과 채소에 기반한 경종농업에 맞춰져 있을 것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곁들이는 반찬의 품새에도 공통의 분모를 만든다. 밥과 반찬을 함께 먹으며 단백질은 콩과 식물의 음식인 된장이나 간장을 활용하며 닭과 오리를 길러서 먹는다. 그리고 쌀과 누룩으로 술을 담가 먹는 공통의 ‘쌀 문화권’이라 배우고 가르쳤지만 눈과 입으로 확인한 적이 없어 종종 한계를 느꼈었다. 살면서 먹어본 중화요리라고는 짜장면과 탕수육 언저리일 뿐이다. 한국에서 먹었던 중국, 혹은 중화요리는 한국화된 중식의 범주에 가깝기 때문에 연수의 목표는 우선 잘 곱씹어 먹는 것으로 두었다. 이번 연수에서 음식점 선정에 신경을 썼다고 들었다. ‘맛집’의 범주는 당연히 아니었다. 무엇을 함께 먹을 것인가. 이것은 곧 이 모임과 배움의 결을 결정하는 일이다. 해외농업연수라는 목적에 맞게 연수단이 먹었던 음식은 가급적 지역의 사람과 땅을 거친 음식들이었다.
푸젠성 페이티엔마을 농가식당에서 나온 미주米酒.
10박 11일 동안 수많은 음식을 먹었다. 모두 기억나지 않지만 공통의 물리적인 행위는 남았다. 밥과 반찬 그리고 국을 마시는 일이었다. 최소한 10가지 이상의 접대 음식이 나오는 푸젠성 농가 음식이든 광둥의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든 제각각의 물성을 제거하면 최후에는 ‘밥을 먹음’이라는 공통의 행위가 남곤 했다. 오래도록 벼농사를 짓고 밥을 지어먹는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푸젠성 페이티엔마을 농가식당에서 나온 미주米酒는 양은 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맛은 천안의 ‘연미주’를 비롯해 쌀을 기본으로 삼는 쌀 술의 풍미와 색감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쌀로 빚은 것들은 맛의 문양紋樣도 담음새도 비슷했다. 이번 연수에서 먹었던 농가의 현지 음식들은 여러 번 깎여나간 시중 음식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었다.
경운기를 끌고 농로를 지나는 한 농부.
대만 이란현 선거우마을 한가운데 경운기를 끌고 농로를 지나는 한 농부를 보았다. 연수 참가자들은 길 가장자리로 피하면서 경운기에 길을 터주었다. 이런 풍경도 이제 점점 잊혀 가고 있다. 속도와 마력을 높인 트럭과 트랙터로 농촌이 재편된 지 이미 오래다. 사람은 떠나고 그 틈을 기계로 메워온 한국 농촌의 시간을 대만에서 만났다.
사람들은 농촌(고향)을 떠나고, 도시민들은 쌀밥을 예전만큼 먹지 않는다. 이렇게 쌀을 주식으로 삼는 나라의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은 대만이나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열대 기후로 이모작이 가능한 대만이지만 이모작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논둑에는 작은 사당을 마련해두고 풍년을 기원하고 있다. 모두 비전이 없는 산업이라 여길 때도 그들은 끝까지 남아 모내기를 하고 풍년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 마음의 결이야말로 말言의 연대를 넘어선 마음心의 연대일 것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한국 농민들도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한국의 생산자 농민들은 유독 논과 밭의 구획과 시비施肥에 관심을 두곤 했다. 논에 물을 대었으니 어김없이 쌀농사를 지어 밥을 지어 먹으면서 살아갈 동아시아 농農의 운명을 그들은 함께 지고 있었다. 끝내 소멸할 수 없는 쌀밥을 먹는 마음과 몸의 문제는 왜 농업정책의 영역이 아니란 말인가. 이런 농촌과 농민의 ‘삶’의 문제를 지금의 농정당국은 경제적 손익계산에만 가두고,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체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농촌에서도 볼 수 있었던 익숙한 풍경.
위로의 연대
연수란 낯선 사람을 낯선 공간에서 만나 새로운 시간을 창출하는 일이지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질문을 만들어 오는 것이다. 이번 대만과 중국 화남 지역의 연수는 선진지연수라기보다는 협동과 연대의 현장, 그것도 ‘동아시아적 가치’ 탐색이 가능한지를 보고 오는 것이었다. 대만과 중국의 정치·경제적 역량과 한계 속에서 농촌이라는 공간과 농업이라는 산업이 어떻게 고군분투하는지를 서로 배웠고 익히는 과정이었다.
인린생태농장과 중산치시생활농장과 슈미생태학교는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서 도시가 아닌 농촌으로 들어간 청년농업인들의 사례다. 그들은 생태지향의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고 농사를 지으며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결기도 보았다. 중국 농촌에서 절대로 대세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흐름이 만들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국의 극심한 경쟁과 생태 파괴가 이런 흐름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광저우의 CSA 그룹과 협동조합 활동가들은 한국의 농업 정책과 농촌 문제, 무엇보다 한국 연수 참가단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의 농업, 농촌, 농민은 어떻습니까?’. 서로의 갈증이 느껴졌다.
중국의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대도시로 나가지 않고 농촌에 남은 젊은 농업인들의 고군분투를 확인한 것이야말로 ‘위로의 연대’가 아닐까 싶었다. 한국의 연수 참가자들 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민주화가 여전히 요원한 중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생태지향적이며 마을공동체를 지키는 일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가장 근본적인 민주주의 행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활동가들도 오랜 활동으로 심신이 지치고, 무엇보다 한국의 농촌 현실에서 과연 대안을 세우고 그 계획을 진척시킬 전망이 없다 아프게 고백하곤 했다. 농촌사회학 연구자로서 한국의 농촌운동가(혹은 활동가)들의 소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어서 그 고백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은 농산물 수출국가인 중국의 농촌의 형편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고, 중국의 지역 내 양극화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이자 곧 농촌문제다. 광저우 시내는 그 어떤 도시보다 세련되고 화려했다. 거대한 쇼핑몰에는 애플 매장과 스타벅스, 글로벌 패션브랜드들이 들어차있고 입성이 화려한 사람들은 쇼핑에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반면 중국 내에서 농촌과 농업, 농민은 중국 국적의 내부 이주민일지도 모른다. 중국이 쏘아 올린 세계화의 본질은 ‘농민공’의 희생을 발판 삼고 있다. 중국 내에 이주노동자인 농민공의 국적은 중국이지만 내부의 이주노동자로 전 세계의 값싼 일회성 소비재들을 생산하고 공급한다. 내 아이폰으로 찍은 수많은 사진도 중국에서 생산된 것이다. 집에 있는 성모자상도 중국에서 만들어졌고,세계 크리스마스 시장의 소모품들도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정작 종교의 완전한 자유가 허용되지 않은 사회에서 종교 물품마저 생산된다. 이것들은 본래 호미와 낫을 들었던 농민공들 손에서 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동아시아 농촌 모두 1차 산업은 ‘경제적 가치 없음’이라 판결 받고 가차없이 버려지고 있다는 방증이자 세계의 소비자들이 중국 농촌의 희생을 먹고 산다는 뜻이다.
사루비아꽃과 맨드라미가 자라고 있는 흙집.
세계화는 고르게 작동하지 않는다. 한 국가 내에서도 가장 먼저 떠밀리는 곳은 농촌이다. 중국은 농산물 수출을 많이 하지만 농촌에서의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는 대만, 중국,그리고 한국도 마찬가지임을 서로 확인했다. 희망을 확인하는 일보다 각자의 실망과 절망을 확인하는 순간 묘한 위로를 얻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어’라는 말만큼이나 서로를 위로할말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세계시민’이라는 아무도 포함하지 않은 말들에 갇히지 않고 각 나라의 농민, 그리고 생태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이었다. 하여 이번 연수를 ‘위로의 연대’라 이름 붙이고 싶다. 눈물은 힘이 세지 않은가.
간담회마다 시간 제약으로 하지 못한 질문이 ‘네트net’를 타고 연수가 끝난 뒤에도 흘러온다. ‘파파고’나 ‘구글’이라는 세계화의 상징symbol을 통해 가장 지역적인 ‘농農’에 대한 질문이 오고가는 중이다. 한국 참가자들 중에서는 교류회를 준비 중이기도 하고 연수의 경험을 살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글로, 방송으로 알리고 있다. 이런 행위 자체가 가보지도 못할 곳의 여행기가 아니라 동아시아 농촌의 고민과 가능성을 한국에 소개함으로써 서로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시래기가 담벼락에서 조용히 말라간다.
한국 농촌이 버려버린 시간이 남은 곳
개울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푸젠성 용띵의 ‘토루’에는 곶감과 엿을 팔고 있었다. 오래된 농촌 마을 페이티엔마을을 휘도는 개울에서는 한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꽃무늬 작업복과 차양 모자가 집집이 걸려 있고 시래기가 담벼락에서 조용히 말라가는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루비아꽃과 맨드라미가 자라고 있는 흙집의 풍경 또한 낯설지 않았다. 여기에 한국 농촌이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 버려버린 시간이 남아있다. 동시대 동아시아인이 지닌 농촌 연대의 감각으로 이 시간을 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 정은정:
농촌사회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대학에 시간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치킨展」(2014),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2018)가 있으며,
백남기 농민 투쟁기록을 담은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2018)가 있다. 경향신문에 ‘지금, 여기’를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