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4

[조한혜정의 마을에서]푹 쉰 후 슬슬 재난학교를 만들자



[조한혜정의 마을에서]푹 쉰 후 슬슬 재난학교를 만들자
기사입력2020.02.23.




지난 한 달은 평소 안 보던 뉴스를 부지런히 챙겨 보면서 지냈다. 전 지구적으로 일어난 두 사건, 곧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와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이 안겨준 기쁨 사이를 오가면서 말이다. 2002년 사스 이후 심심하면 출현하는 바이러스 탓에 세계는 비상에 걸렸고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던 인간들은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쉽게 잡힐 것 같던 바이러스가 밀집된 종교 집단의 의례와 만나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는 불안과 공포로 인한 사회 해체에서 올 것이다. 음식점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살길이 막막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인간, 호모 사피엔스 종의 충실한 일원인 나는 본능적으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궁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 가지 방안을 찾아낸다. 

하나는 일단 푹 쉬자는 것이다. 오스카상 수상자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자주 ‘역동적 코리아’를 언급했다. 바로 그 역동성은 세계 최고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을 탈진시킨 조건이었다. 과로로 인해 현재 한국 생산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모임들이 취소되고 어수선한 석 달 정도는 모두가 푹 쉬자.

봉준호 돌풍을 재난 직시하는

글로벌 캠퍼스로 받아안는다면

재난학교·공공 인프라 만난다면

서울은 세계서 가장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가 될 것이다

두 번째 할 일은 기본소득제도를 실현시키는 일이다. 제대로 계산해서 실행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선진국도 못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오스카 시상식 장면을 떠올려보자. 시상식에서 세기의 지성 백인 남성 노년 감독들에게서 역력한 피로감을 본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근대화의 불을 지핀 서구 백인 사회는 늙어가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봉 감독은 폭발적 에너지의 화신이었다. 아직은 변화를 향한 역동적 에너지가 남은 한국에서, 그리고 빈부격차를 소재로 대박을 친 영화를 만든 나라에서 기본소득제를 먼저 시행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세 번째로 할 일은 재난학교를 만드는 일이다. 재난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함께 풀어가고자 의지와 소통의 능력을 가진 시민들이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미 자발적으로 코로나19 위험지구 지도를 그려 올리고 안전도를 확인할 사이트를 제공하는 시민적 활동이 시작되었다. 소셜미디어상에서 지구 주민들이 벌이고 있는 엄청난 정보 공유와 연구 활동의 진화를 상상해보자. 이런 움직임을 재난을 다루는 학교로, 그들이 서로 연결되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확장해나가면 어떨까? 그간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들이 모두 재난을 다루는 영화임에 주목해보자.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에 이어 <기생충>에 나오는 상징만 읽어도 무모한 근대기획의 실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근대를 넘어서 인간과 인간, 여타 생명체와 인공지능(AI)이 더불어 살아갈 ‘포스트 휴먼’ 시대의 훌륭한 텍스트들이다.
재난학교의 학생은 0세부터 100세까지. 학생들은 각자 선 자리에서 자신이 풀어야 할 재난을 알아간다. 전염병이 돌면 모여서 손 소독제와 마스크를 만들고 대책을 강구한다. 예측불허의 상황이 와도 서로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고 안전망이 되어준다. 이들의 활발한 교류는 선물경제와 사회적 창업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동네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재난학교에서 어린이들은 누구보다 현재의 재난 상황에 대한 정확한 감을 가지고 돌파할 힘을 가진 존재들이다. 반려견과 소통하는 만화책 <너와 추는 춤>이나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물건 10가지> <툰베리의 금요일>와 같은 책을 어른들과 함께 읽고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시민들이다.

재난학교는 기존 제도화된 학교 안에 둥지를 틀 수도 있고 동네 카페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주말학교나 방학 중 캠프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간 시민들은 북카페, 북클럽 등 학습을 할 많은 공간을 만들었다. 정부에서도 도시 재생과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크고 작은 공간들을 마련해왔다. 특히 서울시는 마을 공동체 지원센터에서 우리 동네 키움 센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자율적인 주민 모임들을 지원해왔다. 재난학교 시민들과 시민공무원과 공공 인프라가 제대로 만날 수 있다면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이 일으킨 돌풍을 재난을 직시하는 글로벌 캠퍼스로 받아 안을 수 있다면 말이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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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댓글



jody****댓글모음
어수선한 이시기에 넘 희망적인 글입니다 ㆍ어려울때일수록 정치게임하려는 귄력에 눈이먼 자들의 글보다 더욱 다와오는 인간적 글입니다
2020.02.23. 22:56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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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i****
이름이 네 자냉? 뭐지? 이상한사람이네
2020.02.24. 05:25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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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댓글모음
한가한 소리...코로나 바이러스 규모 재난에 시민운동 끌어대는 낭만은 시대착오...민주화투쟁시대 지적 수준에서 퇴화한 머리로 국가 경영하려는 문재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