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4

03 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하지만 내 혼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 교수신문



“…하지만 내 혼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김용준 교수
승인 2003.05.28


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지금 인제대학교 총장으로 계신 이윤구 박사님이 함 선생님을 퀘이커교도로 인도한 분이시다. 이윤구 박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당시를 회고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모든 사람들은 나를 버렸는데 이 박사는 나를 찾아왔느냐?”가 당시의 함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윤구 박사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선생님이 평소에 즐거 부르시던 ‘고목’(古木)이라는 한시의 첫구절이 생각났다. ‘古木千年枝二三 天然向東南’. 여기서 말하는 ‘’이라는 뜻이 “모든 사람들은 나를 버렸는데 왜 나를 찾아 왔느냐?”라는 말씀을 하실 때의 함 선생님의 얼굴 표정을 가리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 년이 지나서 해남에서 목회하고 있는 이준목 목사님에게 하신 편지(전집 18:98)를 보면 “‘씨ㅇ·ㄹ의 소리’는 나의 속죄과정의 하나로 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만두지는 않을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리고 “내 가슴에서는 지금까지도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그 때문에 아마 그러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을 안 것도 많습니다”라고 여전히 아픈 회한의 호흡은 계속되고 있다. 1965년 2월 6일자의 석진영님에게 보내신 편지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지나간 일을 또 한 번 생각해보오. 지나간 것도 아니오. 지나가 버릴 수가 없지 무사(武士)의 얼굴에 난 상처가 일생을 두고 말을 하듯이. 문제는 살아났나 못 났나에 있지. 다 아물고 나으면 뼛속까지 났던 상처도 자랑일 수 있고 열매를 못 맺었으면 곱던 꽃이 되려 부끄러움이지. 세상에서 그어논 금을 내가 깨뜨렸던 것이 잘못이지. 남의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이 나의 죄지.
나와 하나님과의 대결에는 다른 사람은 개입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고 그때의 나의 심경은 ‘예언자’의 서문에 썼지요.
“이젠 다 나았어요 다 잊었어요” 나는 그런 소리를 하리만큼 한 성자도 아니고 양심이 아주 없지도 않고, 영원한 고민을 하면서도 자라나는 마음이지 가능한 한 속(贖)을 해보아야지>(전집 18:159)


구약성경에 의장(義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아릿따운 모습에 매혹되어 그 여인을 범하고 그것이 탄로 날 것이 두려워 그녀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불려들였으나 의장이라 일선에서 수고하는 수하의 장병을 생각하여 귀가하지 않고 전선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을 보고 급기야는 그를 불리한 전선으로 배치시켜 전사케 한 다윗왕이 자기의 죄를 스스로 자복하고 이레 동안을 금식하며 속죄했던 고사에 함 선생님의 호읍을 비기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나는 지난 번에 함 선생님이 ‘아내 아닌 다른 여인을 범하였다’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차원에서 하는 소리요 또한 풍문에 여러 가지 말들이 오고가기는 하였지만 확실치도 않은 풍문을 여기에 옮겨 놓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다만 여기서 밝힐 수 있는 것은 선생님을 시중들면서 씨ㅇ·ㄹ의 농장에서 취사 및 살림살이를 자진 맡아 일하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나온 오 모 여인과의 사건인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알기로는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이 여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기의 은사인 김석묵 교수에게 고백한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안병무 박사와 주고받은 처절한 서신들


1960년 당시에 독일에서 학위공부를 하고 있었던 안병무 박사에게 보낸 함 선생님의 편지를 보자.


<내가 분명 죄 되는 일을 한 게 있습니다. 벌써 전부터 있던 일이지만 그것이 금년 1월에 와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알려져 문제가 되었습니다. 단식도 그래 했고 글과 말을 그만두고 모임을 중지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 할 수 없고, 한마디로만 들어주십시오. 여성문제에서 잘못한 것입니다. 놀라고 슬퍼하실 줄 압니다마는 사실입니다. 친구들 다 소식 끊어졌고 유선생도 매우 섭섭하게 여기시는 중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우선 형이 나를 친구로 계속해 대해주겠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나로서는 그럴 염치없고 형의 넓은 생각에 달렸습니다.…하지만 내 혼이 상처를 입었습니다.…나를 버리지 않거든 또 소식 주십시오 아아!>(1960년 9월 30일자)

<지난 18일 일이 터진 후 하루도 평안한 날 없어요. 일반 세상에서는 아직 모르지만 친구들은 내 잘못을 아니 데모를 한거요. 그래 어디 산 속으로 들어가라는거요. 나도 그리 생각해요. 하지만 그리 아니되는 점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왔지요. 외국행도 그래 생각한 거요. 글을 써라 말을 해라 내 실속 모르는 사회는 자꾸 요구하지요. 매일 몇 사람 혹 청년 혹 원로들이 오지요만 속을 이야기할 수도 없고. 사회 형편으론 내가 뭐라거나 말해야 할 사정인 것도 알지만 이 이상 더 속임의 생활을 할 수도 없고. 유선생님, 또 여러 친구들도 다 내가 근신해야 할 것을 말씀들 하지요. 거래는 통 없지요. 참 연옥이에요.…

여하간 나는 나를 봐라, 나 선 곳은 대산정(大山頂)이다.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나는 옷을 입었지만 거짓 옷이다. 사실은 벗은 몸인데 남의 옷을 빌어 입었다. 나는 파리하고 병든 몸이다. 나는 속이 썩었다. 나는 죄를 지었다. 살(殺), 도(盜), 음(淫)을 다했다. 그러므로 오늘 끌려 나왔다. 내가 민중 대표할 수 없지만 다시 생각하면 이것이, 이 무지 빈곤 죄악 허위 이것이 우리 민중이다.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생의 의지 있다. 또 내 뒤에 내 자녀 있다. …
안형, 나는 지금 말을 하고 장내 소연해지는 것 보고, 도망하듯 왔어요, 무서워서가 아니라 보기 싫어서, 싸움을 말라, 이 사람이 죽게 된 사람, 제발 좀 말라 했는데 아니 봐주어요. 우리 친구들도 나 용서 아니하나봐요. 그래서 맘을 걷어 잡을 수가 없어요 죽겠어요. 죽진 않아야지 재생해야지, 친구 친구! 없어요. 죄를 사하고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만이 친구인데 없나봐요, 나는 한 사람이 필요해요, 내 맘을 알아줄, 붙들어줄 한 사람! 예수가 있다 하지만 성경에 있는 예수 무얼 해요, 산 피가 도는 구체적인 예수만이 나를 위로하고 사하고 살리지, 없나봐요,>(1960년 10월 9일자)

<나는 그동안 맘이 조곰 살아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동안 조그마한 책을 번역했지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벌써 7년 전에 누가주어 읽고 좋아서 남께도 권했는데 이번에 나 자신이 그로 인해 원기를 얻었기에 남에게도 나눠주려고 한 것이지요. 그의 ‘예언자’는 셈식이 아니고 매우 많이 인도적입니다. 그림이 좋아서. 보신 일이 있으신지? 약 1백면 가량되는 시입니다. 그리고는 그의 ‘예수전’이 있는데 그것을 번역했으면 합니다. 특색 있습니다. 풍부한 상상으로 산 예수를 그립니다. 그러나 그의 전기를 읽으면 단순한 시적 상상만은 아니고 매우 영감으로 된가 봅니다.
나 자신이 내부에서 세계사적 결전을 해야 합니다. 그래 나는 이번에 말하다가 현대 교인은 유다도 못되고 바리새도 못되고 빌라도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번 유다에 대한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예수의 이면이다, 예수와 유다라는 두 손바닥이 마주쳐서 십자가란 울림이 나왔다, 유다는 인간적 참을 한거다, 그는 예수를 현명적(懸命的)으로 따랐다, 그래서 아닌 줄 알게 되면 죽여라도 버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천국문에서 제일착으로 환영나오는 것은 유다일 것이라 합니다. 천국 문에 가서 매달려 있는 유다의 자살한 몸을 아직 보는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갈 것입니다. 유다 문제 해결하고 나야지, 인간이 곧 유다 아니오? 인간을 버릴 수는 없지 속죄란 그래서 있는 것 아닐까? 예수는 누구보다도 유다의 죄를 속했지, 유다는 억천번 예수를 팔고 억천번 용서를 받을 것이오.…예수나 석가의 가르침을 이제 와서야 겨우 묘연한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또 어떤 것이 나올까? 나와야 합니다. 이 의미에서는 재림입니다. 또 예언자식으로 오겠는지 이 매스컴 시대에 다른 무슨 형식이 되겠는지 나도 모르나 하여간 새 말씀은 나와야 할 것입니다. …> (전집 18: 23이하)

‘예언자’의 서문과 죄인 함석헌의 호읍


우리는 이상의 함 선생님의 개인적인 편지를 통해서 나락에서 부활의 활기찬 부르짖음을 듣게 된다. 우리는 다시 한번 ‘예언자’의 서문에 나타난 죄인 함석헌의 호읍을 읽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