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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의식’과 주체사상의 ‘의식’은 어떻게 다른가?
427시대 ・ 2019. 9. 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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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의식’과 주체사상의 ‘의식’은 어떻게 다른가?
이정훈 연구위원
- 사람의 의식세계, 사람의 마음은 무엇을 따라 움직이나?
근대 맑스주의 유물론이 자연과 사회개조에 관한 이론을 토대(하부구조)와 상부구조 상호조응 차원에서 해명했다면, 현대 유물론인 주체사상은 맑스주의의 중심 내용을 인정하며 이를 다시 주체-대상(세계)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재정리했습니다. 의식이 물질의 반영이란 정의를 넘어 ‘의식세계’의 내용과 기능에 대해 전면적으로 심화 발전된 견해를 제시합니다.
이에 따라 사람의 의식과 활동의 상호관계, 사상과 감정의 상호관계, 지식과 사상의식의 차이, 사상의식과 의식 일반의 관계 등 사람의 의식 영역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 새롭게 전면적으로 이뤄집니다. 관념론과 부르주아 철학의 단골 주제에 머물던 의식과 정신심리 현상에 대한 유물론적 연구가 본격화돼 이론적 기초를 쌓은 거죠.
의식일반과 사상의식에 관한 주체사상의 정의와 해석은 매우 정밀하고 체계적이어서 처음 보는 사람은 외려 이해가 잘 안 될 지경입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의 의식을 크게 지식, 사상의식, 감정의식(심리의식)으로 형태를 구분합니다. 지식과 감정은 현실반영의 형태이고 그 자체는 사상이 아닙니다. 감정의식은 대상(세계)에 대한 정서적 반영이며, 지식(체계)은 대상을 논리적으로 반영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들 의식의 3가지 형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사상의식이란 사실입니다. 맑스주의 의식개념이 주로 객관세계 반영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주체사상은 사람자신(사람의 요구)을 반영하는 측면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게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이고, 또 그런 요구와 이해관계를 사상의식이 반영했기에 그 사람의 지식의 내용과 감정도 규제합니다. 즉 사람의 인생과 전반 활동을 규제합니다.
자연계의 운동과 다르게 사람의 모든 활동은 결국 자기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하려고 이뤄지기에 사상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활동은 없습니다. 사람이 눈을 통하지 않고 세상을 볼 수 없듯이 자기 요구를 자각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발현하는 사상의식을 통하지 않고는 활동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상의식을 통해 자기가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걸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맑스주의에서 사상(이데올로기)이 객관적 세계, 계급 현실을 반영한 철학, 정치경제학, 과학적 사회주의에 관한 지식의 체계로 구성된 데 비해
주체사상에서 사상은, 의식이 객관세계의 반영임을 인정한 기초 위에,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복합적으로 반영해 세상과 자기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사상-이론-방법의 사람중심의 서술 체계로 발전합니다.
사상의식은 그래서 세계나 사람에 관한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사람자신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자각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입장, 각오와 결심, 신념과 의지 등을 다 포괄하는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사상의식은 지식과 감정을 동반합니다. 어렵게 말하면 사상의식은 감정과 지식을 자기 발현(표현)형식으로 합니다. 즉 지식에 이해관계가 반영될 때 그것은 단순 지식이 아니라 사상적 견해가 되고, 감정이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뚜렷이 표현할 때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상감정, 사상의식이 됩니다.
사람의 ‘의식성’이 동물과 구별되는 사람의 근본 특성의 하나인데, 의식에서 결정적 작용을 하는 게 ‘일반지식’이 아니라 ‘사상의식’임을 말하는 겁니다. 뇌의 의식작용에서 자기 요구와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과 실현 의지가 그 사람을 움직이는 핵심요인이 되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모든 활동을 사상의식의 충동과 작동에 의해 시작하고, 목적을 세우며 이를 달성하려 활동을 조절, 통제합니다. 이는 사람의 활동이 무엇으로 시작하고 진행되며 끝맺게 되는지에 관한 유물론적인 첫 해석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의 활동은 무엇인가를 실현하려는 요구(이해관계)로부터 시작하며, 그 요구는 사회적 실현과정을 통해 충족되고 구현됩니다. 사람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곳엔 언제나 그 활동에 담긴 요구와 이해관계에 대한 사람의 뚜렷한 자각이 넘쳐납니다. 그게 공부든, 취업이든, 아니면 임금투쟁, 동아리활동, 돈벌이, 자선사업, 사회운동 등 모두 마찬가집니다. 사람의 활동이 뇌의 핵심기능인 사상의식을 통해 추동된다는 사실을 예를 들어 설명하죠.
부동산 투기를 하는 사람이 분양권을 얻으려고 밤샘노숙을 하는 풍경은 그들의 행위가 철저하게 이해관계에 따른 것임을 보여줍니다. 강남권 학부모가 자식 사교육에 열성인 것도 사교육 투자와 자식의 미래 사회적 지위가 비례함을 잘 알고 있어서지요. 자본가가 거래처를 뛰어다니는 건 이윤이란 자기 요구와 이해관계를 정확히 자각하기 때문이고 노동자가 이윤을 합당하게 분배하자고 투쟁하는 것도 자기 계급의 처지와 이해관계를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건 사상의식의 내용과 관계없이 사상의식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투쟁이 자신의 생활처지 개선을 넘어 전민중적 요구를 내건 경우엔 보다 높은 정치적 자각과 이해관계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습니다. 결국 장사든, 투쟁이든, 사업이든, 뭐든 사람을 충동, 추동하는 근본요인은 절박한 요구에서 비롯되며, 그런 활동을 밀어가는 힘 역시 이해관계에 대한 높은 자각에서 나옵니다. 열의, 열정은 높은 자각의 산물인 셈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사상의식에 의해 반응하고 활동합니다. 사상의식을 연구하는 건 일반적이고 생활적이며, 사람의 인생과 활동의 핵심을 파악하는 중요한 과학적 접근법입니다.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마음의 내용을 결정하는 게 바로 사상의식입니다. 사람의 사상의식의 상태와 수준의 정서적 표현이 바로 사람의 마음인 거지요. 사상의식은 운동권 논리나 정치이론상의 개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는 혁명운동이 사람의 실천에 관한 가장 과학적인 이론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견한 사람의 의식세계에 관한 새로운 견해입니다. 사상의식은 정치적이고 고급한 고상한 그 무엇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의식의 한 형태이며, 일상적이고 생활적인 개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