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4

Namgok Lee 기존 정당 간의 연합정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연합정치’를 강령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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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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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을 ‘통합과 전환’이라고 표현해 왔다.
통합은 ‘사회통합’과 ‘연합정치’를 의미하고, 전환은 ‘정치전환’과 ‘문명전환‘을 의미한다.

둘 다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용어나 태도를 넘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용어나 태도로 나아가는 것이 그 동력(動力)을 강화하는 것으로 된다.
부정적인 태도는 상호 악순환에 빠져들기 쉽고, 확증편향의 퇴행적 편가름의 늪에서 인류적 위기와 나라의 위기를 헤쳐나갈 동력을 잃기 쉽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자기 주체성을 잃고 휩쓸려 망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 가운데 안타까운 현실의 하나다.

내가 동학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감시와 비판’은 동학 정신을 현대에 살리는 ‘최저선(最低線)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인 ’집강소‘를 현대에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무엇 무엇에 반대한다’는 그 내용을 ‘이렇게 이렇게 하자’는 표현 속에 담아내는 운동이 진전해야 한다.
‘사회통합’은 실재하는 진영 간의 갈등과 대립을 어물 어물 봉합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성공할 수도 없다.
그 대립과 갈등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인간의 보편적 선의지(善意志)를 바탕으로 해결하는 문화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인문운동’과 ‘종교’가 이 역할의 큰 담당자다.
책을 왜 읽고, 종교를 왜 갖는가?
확증편향과 편가름, 증오와 분노를 확대하는 방향이라면 그것은 ‘이슬’을 ‘독(毒)’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연합정치’는 고질적인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지양(止揚)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 즉 계급(계층)문제, 경제문제, 민족문제, 국가 문제 등을 지금까지와 같은 정치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마련한 성과들을 살려 ‘전환’과 ‘도약’의 밑천으로 쓰지 못하고 버리는 안타까움이 있다.

지금 우리 정치는 일대 분수령에 서 있다.
자체 정화력(淨化力)과 진화력(進化力)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기존의 양 대 정치세력은 남의 칼을 빌려 스스로의 환부를 도려내는 듯한 모습으로 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언젠가 양대 정당이 진화해서 연합정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난망(難望)이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근래 나는 지역정당과 같은 새로운 정치운동에 주목을 하게 된다.
자치나 분권운동을 적극적인 정치운동으로 하자는 것에 관심이 간다.

그 것은 풀뿌리정치운동의 진화를 통해 ‘저항으로부터 권력으로’라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지방정부(행정부와 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권력은 ‘강제(국가 권력)’나 ‘매수(경제권력)’가 아닌‘설득과 공감’에 바탕한 시민(또는 사회)주체권력이다.
 현실과 먼 이상으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어디선가 이런 모델들이 나타나면 꽉 막힌 정치를 뚫어내는 거대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목하는 다른 하나는 지금과 같은 기존 정당이나 정치문화로는 어려운 ‘연합정치’를 이런 정당 속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있다.
기존 정당 간의 연합정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연합정치’를 강령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당연한 가치로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문명전환을 추구하는 녹색정치’ 삼자(三者)를 포용하고 융합하는 정강과 정책을 담을 수 있는 정당이 그것이다.
이런 내용을 갖춘 지역정당이 지방정부를 구성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우리공동체의  오랜 정치사에 큰 변혁의 물꼬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단히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지금의 꽉막힌 정치 현실과  절박한 시대적 요구는 어쩌면 현실로 성큼 다가오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과 확산력이 애매한 기존의 소수 정당들과 자체 정화력과 진화력이 허약한 양대 정치세력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사람들이 헤쳐 모일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지역정당운동이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현실정치와는 무관한 인문운동가를 자처하는 노인이지만, 나는 인문운동을 통해서 ‘정치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원화되고 일상적인 활동과 삶의 현장들이 ‘정치’로 되는 ‘새로운 질’의 정치와 정당을 그려보는 요즘의 심경을 적어본다.


6 comments
양재석
선생님의 말씀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어둡다는 것이고
현실가능성이 있다면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전자에 손이 더 가고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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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양재석 현실이 어두울수록 빛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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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근
이 울림이 유장한 흐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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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국
지금 우리 지식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中道나 中庸에서 말하는 中에 대한 해석이 지극히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지평에 머무르거나 같은 中을 말하지만 서로 차원이 다른 논의나 말을 하는데 그것을 같은 범주의 말로 치환해버리는 범주오류(Category Error)를 너무나 쉅게 빠져버리는 경향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중은 좌우의 문제도 있지만 상하의 문제도 있으며 좌우 상하를 제대로 융합,내지 통합해냈을 때 的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지식 즉알음알이의 말이 지혜의 언어를 차원이 다른 지혜의 언어를 꺼집어내려 소위 토론하는 현실이 우리의 지적풍토라고 나는 생각합니다.십자가의 언어를 평면에다가 끌어내려 버리면 거기에 애시당초 구원은 없으며, 구원을 받을 정신적 깊이도 없는 겁니다.
진짜 깊은 공부와 성찰이 없는 우리 지식인사회와 대학,종교가 병들었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할 생각조차 없는 것이 우리사회를 진짜 희망이 없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건 아닌가? 삼가 두려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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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권오국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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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국
이남곡 거친 말에 공감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진짜 큰 사랑으로 깊이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공부 또 공부하고 정진해야할 사명이 이 나라의 지식인들과 사회의 정신적 리더들에게 있다. 그들이 못하면 누구라도 나서서 반듯이 해야할 일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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