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5

밭에 감추인 보화 같은 유교의 道 <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 학술 < 기사본문 - 주간기독교

밭에 감추인 보화 같은 유교의 道 <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 학술 < 기사본문 - 주간기독교

밭에 감추인 보화 같은 유교의 道

기자명 이은선 한국신信연구소 대표·세종대학교 명예교수
승인 2022.01.04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구호를 걸고 있는 안동시에 소재한 유교 선비정신 수련장이다. 동방의 스승 퇴계 선생(1502-1571년)을 기리고 그 정신을 널리 퍼뜨리고자 2001년 개원하였다. 지난 11월 그곳에서 일종의 가톨릭 피정 시간으로 유교 선비 수련을 체험한 대구 성당의 한 교인은 그 체험을 마치 ‘황금을 주운 것 같다’는 심정으로 토로했다고 한다. 왜 그 천주교인은 자신의 유교 선비정신과 만남을 그와 같이 황금을 주운 것 같은 경험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사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오래전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유사한 경험을 했다. 당시 유럽 기독교 문명의 중심에서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라는 큰 물음 아래서 16세기 중국의 신유교(新儒敎) 학자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을 만나면서 한 경험이었다. 그때 지도교수였던 바젤 대학의 후리츠 부리(Prof. Fritz Buri) 교수는 본인에게 가톨릭 수녀 출신 중국 여성종교학자 쥴리아 칭의 저서 『지혜를 찾아서-왕양명의 길, To Acquire Wisdom, The Way of Wang Yang-ming』을 건네주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본인은 정말 신약성서 마태복음 13장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밭에 보화가 감추인 것을 발견하고서 돌아가서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처럼 동아시아 신유교의 가르침을 큰 기쁨과 행운으로 맞이했다.

당시 서유럽에서 한국인으로서 기독교 신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면서 민족적 자존감이 많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다. 또한,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학문적 사유의 토대와 정체가 약한 것을 느끼면서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왕양명이라는 한 강력한 유학적 인격을 만났고, 그럼으로써 그 고민과 고심을 풀기 위해 나아가는 길에서 환한 등불을 만난 것 같았다. 양명은 서구 기독교사에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견주어질 정도의 전복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그때까지 본인이 기독교 초월신 신앙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겼던 큰 인격적 깨달음과 삶의 전회를 바로 기독교 유일신 하나님과는 다른 모습과 방식으로 그려지는 유교 내재적 초월(天/理)의 체험(心卽理) 안에서 유사하게 본 것이다. 또한, 이후 그 삶의 실천적 행보가 어떤 기독교 신앙인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은 것도 보았다. 물론 본인의 그 등불에 대한 이해가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 유교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특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성 생활인과 직업인으로서 살아가며 또 다른 차원을 알아가면서는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첫 만남의 충격은 여전하다. 지금 21세기 초 인류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복병을 만나기 전까지 전 지구가 서구 기독교 문명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지만, 그러나 오늘 심각한 한계가 드러나면서 다른 길을 탐색하며 그 ‘이후(以後, postmodern)’를 찾고 있다. 본인은 그 길 위에서 동방의 유교와 그 핵심 정신으로 나타나는 선비정신이 하나의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이번 회부터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라는 제목으로 격주로 연재하고자 하는 글은 이런 본인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내고 변증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것은 본인이 여전히 유교 공부에서 일천함을 벗어났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안에 보화가 담겨있다는 것을 엿보았기 때문에 용기를 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매우 유아독존적이고, 자기 우월에 빠져있는 한국 교회나 서구 가치 중심적 인류 문명에게 자기와 다른 타자를 듣는 일은 긴요하다. 그 타자 중에서, 아니 어쩌면 그 타자와 자기 바깥이라고 생각했지만, 유교 道는 특히 한국 신앙인에게는 더 오래된 스스로의 토대로서, 그래서 이미 만남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의미를 잘 알아채지 못해서 저버렸고 억눌렀고 무시했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20세기부터의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끊임없이 다른 것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하는 일에서 뛰어났던 함석헌 선생은 지금 인류가 가장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새 종교’라고 갈파했다. 그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한국 유교 전통에 대해서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가 불교, 유교를 일깨워서 다시 생기를 주어야 한다고 발설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산 힘은 늘 ‘선비(士)’에게 있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매우 중시한 ‘뜻(志)’이란 바로 ‘선비(士)’의 ‘마음(心)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선비(士)’란 ‘열(十)’에서 ‘하나(一)’를 보고, ‘하나(一)’에서 다시 ‘열(十)’을 보는 뛰어난 통찰과 통섭, 통일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교야말로 현실에 잘 이용된 종교다”라고 하면서, 앞으로 지구 인류의 삶이 크게 ‘민족’, ‘소유권’, ‘가정’이라는 “인류 사회의 캠프를 버텨 오던 세 기둥”에 대한 이해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했다. 즉 오늘 20세기 이후 인류의 삶이 이 세 기둥에 따라 크게 흔들리면서 어떻게 거기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정립하는가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날 것임을 말한 것이다.

앞으로 연재될 유교와 기독교와의 대화도 주로 이와 유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우리의 유교 이해에서도 먼저 그 유교 문명의 발단이나 전개 역사 등을 살필 때 한국 유교를 단순히 중국 유교로부터의 피동적인 수용자와 수혜자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잘 언술 되지 않았지만, 더욱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역할과 기원에 대한 탐색, 그 전개에 대한 고유한 역할 등을 언급할 것이고, 이러한 일을 통해서 우리의 대화는 지금 인류 문명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관건이 되는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 물음에 대해서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 물을 것이다. 두 번째 ‘소유권’과 관련한 탐구는 오늘 인류 문명이 온통 빠져있는 지독한 유물주의와 경제 제일주의, 그를 통한 자아의 무한 팽창과 번영에 대한 욕망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과 관계된다. 이것은 우리 궁극의 가치와 그에 다다르고자 하는 길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느냐와 긴밀히 연결될 것인데, 오늘 한국 교회의 탐욕과 물질주의에 대해서 우리의 오래된 미래로서의 유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마지막 ‘가정’이나 ‘가족’에 대한 물음과 관련해서는 지금 시급한 실존적 물음이 된 성(性)과 몸, 가족적 삶과 돌봄, 보살핌이나 탄생과 떠나감, 집 등에 관한 물음이 탐색 될 것이다. 이 물음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유교 측에 대한 현대 서구 페미니즘으로부터의 비판과 달라짐이 요청될 터인데, 이에 대해서 유교 道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 높은 파도 앞에서 응전하면서 그러나 단지 일방적인 들음만이 아닌 오늘 ‘고립’과 ‘외로움’을 세기의 특징으로 규정하는 서구 페미니스트들에게 무엇인가 말해줄 것이 있는지 등을 돌아보고자 한다. 여기서도 둘의 대화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21세기 인류의 삶은 이제 더는 어떤 초자연적인 神의 이름이나 초월 이야기로 좌우되지 않는 급진적인 탈종교화의 시간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여기 지금에서의 모든 초월적 차원의 탈각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도 함께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참으로 풍성하게 영적인 초월’을 찾아 나서고자 한다. 거기서 유교의 道가 줄기차게 여기 지금의 지극한 일상과 평범, 정치나 교육과 같은 구체적인 세간(世間)의 삶에서 초월과 궁극을 찾는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나 ‘극고명이도중용(極高明而道中庸)’을 말하는 것이 시선을 끈다. 그래서 이러한 모든 정황을 더는 어떤 초월 神에 관한 이야기(神學)가 아니라 여기 지금 우리의 진정한 눈뜸과 새로운 인식(信學)이 가장 긴요한 관건이라는 의식에서 이번 연재의 부제로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를 가져왔다.



이은선(李恩選) 교수는 세종대학교를 명예퇴직하고 지금은 현장(顯藏) 아카데미 <한국信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21세기 인류 문명의 전환을 위해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지속하면서 종교(聖)와 정치(性), 교육(誠)의 통합학문적 시각에서 한국적 신학(信學)과 인학(仁學)의 구성을 탐색한다. 지은 책 중에는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한국 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2009), 『한국 생물生物여성영성의 신학』(2011), 『생물권 정치학 시대에서의 정치와 교육-한나 아렌트와 유교와의 대화 속에서』(2013),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2016), 『환상과 저항의 신학』(공저, 2017), 『세월호와 한국여성신학』(2018), 『3·1운동 백주년과 한국종교개혁』(공저, 2019),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2020),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 읽기』(2020), 『한국전쟁 70년과 ‘以後’교회』(공저, 2021), 『李信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공저, 2021) 등이 있다.

이은선 한국신信연구소 대표·세종대학교 명예교수 cnews1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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