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7

Ryuichi Nakamura is with シンイチ ツジ.
17 December 2015 ·
츠지 신이치 씨의 신간 「겁쟁이 괜찮아 "를 많은 사람들이 읽었 으면하는 것입니다. 

속도와 효율성이 최우선되어 온 시대에 "슬로우 이즈 뷰티풀」나 「느리지 좋은거야"를 쓰고 "슬로우 라이프"를 주창 한 문화 인류 학자이자 환경 운동가 쓰지 신이치 씨는 최근 '힘'과 '약점'에 대한 사색이 깊어 져 왔습니다. 

그 일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것을 읽고 내가 왜 '테러'가 증가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하지 않고 공습는 "더 큰 폭력 '으로 사물을'해결 '하려고 할의"비정상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의 중요 함 "을 재차 생각했습니다. / 

약점 어려움 / 

앞으로 너희들과 함께 "약점"에 대해 생각해 가려고 생각합니다. "약점"의 반대는 '힘'이다 (의미가있는)에서 "약점에 대해 생각 '은'힘에 대해 생각"과 분리 할 수 ​​없다. / 말해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약점」나 「강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쉽지는 않으며, 꽤 귀찮다라는 것. 네가 만약 그 어려움에 이미 눈치 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란이 어려움조차 클리어 해 버리면 더 이상 그냥, 너는 "힘"과 "약점"의 수 반은 알았다고 말할 정도니까. "약점"생각의 어려움의 대부분은 그 입구의 곳에 있다고해도 좋다. 그 어려움으로 중요한 것은 두 들어 두자. / 

어려움의 첫 번째는 아무도 "강한" "약한"라는 말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간단하고 누구나 명쾌한 뻔한 말이라고 생각 넣고있는 것이다. 는 '강약'이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하면, 그것은 "크고 작은"라든지, "장단"라고 알기 쉬운 것과 같은 것이다. 즉, 대소과 장단이 측정 할 수 있도록 어느 쪽이 강하고, 어느 쪽이 약할지도 수치에 의해 객관적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되고있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재미있다. 물론, 악력과 근육의 강도, 바람의 강도 등은 재어 수치로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지의 힘 이라든지, 욕망의 강도를 측정 할 수 없다. 즉, 힘과 약점이라는 것은 단순히 많은지 적은지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의 문제이기도하다. / 그런 건 당연하다고 너는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세상에는 강약을 단지 양적인 것으로 파악 이상한 경향이 지배적 인 것이다. 그래서 "약점"에 대해 더 잘 이해하려고 했더니,이 이상한 경향에 대해 생각도 피할 수 없다. / "강하다"는 좋은 일이야? / 두 번째 문제는 "힘" "약점"라는 당연한 말에 가치 판단이 붙어있는 것. "강하다"는 좋은 일 "약하다"는 나쁜 일이라고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굳게 결심한다. "강하다"고 말해지면 기쁘고, "약한"라고 말하면 기쁘지 않다. / 생각해 보면 이것도 이상한 일이다. 예를 들어, 일방적으로 "크고 작은"하지만 큰 것과 작은 것 중 어느 쪽이 좋을까,라고 성공시킬 리가 없다. 큰 것이 좋은 것으로, 작은 것은 나쁜 등이라고하는 것은 너무 간단한 단정했다. 큰 것이 좋다고는 할 수없고, 작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큰 가방은 작은 것에 비해 많은 것을 넣을 수있어 편리하지만, 장소도 채택하고 운반는 무겁고 불편하다. / 좋은지 나쁜지는 "때와 장소에 따라"것이다. 이 "때와 장소에 따라 '라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상대"라는 생각으로 사물의 가치가 문맥 -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 -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한편, 문맥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가치를 지닌라는 것은 '절대적'이다. / 너는 잘 "절대"라는 말을 사용 하잖아 일까. 하지만 여기에는주의하는 것이 좋다.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어떤 일이든 문맥은 본래이다. 작은 시계는 가까이 가지 않으면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벽에 거는 데 적합하지 않지만, 팔에 붙이거나 주머니에 넣어 운반하는 데 좋다. / "큰 것이 좋다고는 할 수없고, 작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강한 것이 좋다고는 할 수없고 약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 승자가 옳은 게 정말? / 김에 또 하나 덧붙여두고 싶다. 그것은 "좋은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며 나쁜 일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는 것. 즉, '좋다' '나쁘다'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 인 것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무엇이 "좋은"또는 무엇이 "올바른"하나는 다르다. "선악」나 「정사」라는 윤리적 인 가치조차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 우리들은 매일 상대가 나빠서 자신 이야말로 절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 사람끼리의 충돌을보고있다. 그리고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역시 비는 상대에 정의는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는 공동체끼리, 국가 간의 갈등과 다툼이 반복되어왔다. 싸움도 전쟁도 서로 "정확성"을 주장 가면서 결국 모두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 할 수없이 '강약'에서 결착을 내려고한다. 그리고 우승자, 즉 강한자가 제대로 패자 인 약한 사람이 틀렸다 것 같은 이미지가 생성된다. 참 이상한 이야기다. / 여하튼, 때와 장소에 따라 사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두기 바란다. 자신의 안에도, 나이, 계절에 따라 낮에는 "올바른"가 의미하는 것은 있으니까. /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너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더 조용하고 넓은 마음으로 접할 수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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辻信一さんの最新刊『弱虫でいいんだよ』を多くの人に読んでほしいと思います。スピードや効率性が最重視されてきた時代に『スロー・イズ・ビューティフル』や『ゆっくりでいいんだよ』を書き、「スローライフ」を提唱してきた文化人類学者で環境運動家の辻信一さんは、近年「強さ」と「弱さ」についての思索を深めてきました。その一部を紹介したいと思います。これを読んで私は、なぜ「テロ」が増えているのかをよく考えずに、空爆という「より大きな暴力」で物事を「解決」しようとすることの「異常さ」について考えました。そして、ひとり一人が「自分の頭で考えることの大切さ」をあらためて思いました。/


弱さの難しさ/

 これからきみたちと一緒に、「弱さ」について考えていこうと思う。「弱さ」の反対は「強さ」だ(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る)から、「弱さについて考えること」は「強さについて考えること」と切り離すことができない。/

  言っ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弱さ」や「強さ」について考えるのは易しくはないし、なかなか面倒だ、ということ。きみがもし、その難しさにもう気づいているなら、幸いなことだ。というのは、この難しさのことさえクリアしてしまえば、もうそれだけで、きみは「強さ」や「弱さ」のことが半分はわかったと言えるくらいなのだから。「弱さ」について考えることの難しさの大半は、その入り口のところにある、と言ってもいい。その難しさとして、主なものを二つ挙げておこう。/

 難しさの第一は、だれも「強い」「弱い」という言葉を難しいと思っていないこと、単純で、誰にでも明快な、わかりきった言葉だと思いこんでいることだ。では「強弱」がどんなふうにわかりやすいかと言えば、それは「大小」とか、「長短」とかがわかりやすいのと同 じだ。つまり、大小や長短が計測できるように、どちらが強くて、どちらが弱いかも数値によって客観的に示せる、と考えられている。/
  でも、もちろんそれはおかしい。確かに、握力や腕力の強さ、風の強さなどは計って数値で示すことができるかもしれないが、意志の強さとか、願望の強さを計測することはできない。つまり、強さや弱さというものは単に多いか少ないかという量の問題ではなく、質の問題でもある。/

 そんなのはあたりまえだときみは思うかもしれないが、しかし、世の中には強弱をただ量的なものとしてとらえる変な傾向が支配的なのだ。だから、「弱さ」についてよりよく理解しようと思ったら、この変な傾向について考えることも避けて通れない。/

「強い」のは良いことなの?/

 第二の問題は、「強さ」「弱さ」というあたりまえの言葉に、価値判断がくっついていること。「強い」のは良いこと、「弱い」のは悪いこと、とされていて、ほとんどの人がそう思いこんでいる。「強い」と言われればうれしいし、「弱い」と言われればうれしくない。/

  考えてみれば、これもおかしなことだ。例えば、先にあげた「大小」でも、大きいのと小さいのと、どちらがいいか、なんて決められるわけがない。大きいことが良いことで、小さいのは悪いことなどというのは、あまりに単純な決めつけだ。大きいことが良いとは限らないし、小さいことが悪いとは限らない。大きいカバンは小さいのに比べて、たくさんのものを入れることができて便利だが、場所もとるし、運ぶのには重くて不便だ。/

 良いか 悪いかは、「時と場合による」のだ。この「時と場合による」というのが肝心だ。これは「相対的」と呼ばれる考え方で、ものごとの価値が文脈——つまり、他 との関係——によって異なることを言う。一方、文脈に関わらず、いつでもどこでも、同じ価値をもつ、というのは「絶対的」だ。/

  きみはよく「絶対」という言葉を使うんじゃないかな。でも、これには注意した方がいい。考えてみればすぐわかるように、何ごとにも文脈はつきものだ。小さい時計は近寄らないと時間がわからないので壁にかけるのには向いていないが、腕につけたり、ポケットに入れて運ぶのにはいい。/

 「大きいことが良いとは限らないし、小さいことが悪いとは限らない」と言えるとすれば、同じように、「強いことが良いとは限らないし、弱いことが悪いとは限らない」と言えるはずだ。/

勝者が正しいって本当?/

 ついでに、もうひとつ、つけ加えておきたい。それは、「良いことがいつも良いとは限らないし、悪いことがいつも悪いとは限らない」ということ。つまり、「良い」「悪い」もまた絶対的ではなく、相対的な価値なのだ。時と場合によって、社会的、歴史的な文脈によって、何が「良い」か、何が「正しい」か、は異なる。「善悪」や「正邪」といった倫理的な価値観ですら、絶対ではない、ということだ。/

 ぼくたちは日々、相手が悪くて、自分こそが絶対正しいと主張し合う者同士の衝突を見ている。そして実際の歴史を見てみれば、やはり、非は相手にあり、正義は当方にあると主張する共同体同士、国家同士の対立や争いが繰り返されてきた。けんかも戦争も、互いに「正しさ」を主張し合いながら、結局どちらも自分の「正しさ」を証明することができずに、「強弱」で決着をつけようとする。 そして、勝者、つまり強い者が正しく、敗者である弱い者が間違っていたかのようなイメージがつくり出される。実に変な話だ。/

 ともあれ、時と場合によって、社会によって、時代によって、人によって価値観が異なることもある、ということを心に刻んでおいてほしい。自分自身の内でさえ、年齢によって、季節によって、日によって、「正しい」の意味が変わることはあるのだから。/

そう考えれば、他の人たちがきみとは異なる価値観をもっていることに対しても、もっと穏やかで広い心で接す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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