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7

알라딘: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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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반양장본
  • 260쪽
  • 128*190mm
  • 280g
  • ISBN : 9791195163892
주제 분류 
책소개
자연농의 대가 가와구치 요시카즈와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의 대담을 엮은 책. 쓰지 신이치는 국내에 느림, 작음, 소박함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를 반성하고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슬로라이프로 잘 알려져 있다. 가와구치 요시카즈는 무농약, 무제초, 무경작의 자연농 원칙을 농업에 적용하여 하늘과 땅과 사람의 관계 단절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의 가능성을 연 자연농의 대가이자 구루로 알려져 있다.

뜻을 같이 하는 두 사람이 만나 나눈 말들은 결코 소박하고 겸손하거나 자화자찬식 대화가 아니다. 자연농의 개념과 의미, 예술론, 삶과 죽음, 지구와 인간, 생태계, 공존과 상생,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넘나들며 대전환기의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해 진지하게 나누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자연농 매뉴얼이 아니라 자연농을 통해 본 삶과 문화의 반성과 통찰로 이루어져 있다.
책속에서
  • P. 6 미국의 농민사상가 웬들 베리의 말을 빌리면, 우리 현대인은 생활의 대부분을 대기업이 “대행”하도록 권리를 넘기고 생활인에서 일개 소비자로 전락했습니다.
  • P. 15 본래 농민이 밭에 씨를 뿌릴 때에는 아무런 불안이 없습니다. 마음 놓고 안심할 수 있으므로 즐거운 것입니다.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지금을 살아간다. 현재 안에는 과거도 미래도 떨어지지 않고 들어와 있다. 대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 98 “마른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보고 놀라기보다 살아 있는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보고 놀라라.”
  • P. 104 키우는 방식이 잘못되어 있는 건 강한 생명을 품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큰 문제입니다. 물론 안전성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가 심신에 해를 끼치
    는 것이라면, 육체가 쇠퇴하고 정신이 황폐해지며 생명력이 약해질 것입니다. 서서히, 확실히…… 말입니다. 물질문명, 과학문명, 도시문명, 소비문명에 몸을 맡김으로써 우리의 심신은 이미 현저하게 쇠퇴해 있을 것입니다. 완전한 생명이 깃들지 않은 먹거리 또한 쇠퇴를 앞당기는 하나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한 점에서 자연농은 자연에 가까운 재배 방식이므로 작물은 훌륭한 생명이 완전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의의와도 관련 있지요.  접기
  • P. 134 가와구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농의 특징은 “저것을 한다.”, “이것을 해야 한다.”라는 덧셈식 발상이 아니라 “그것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뺄셈식의 발상이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은 하지 않는다. 땅을 갈지 않고 풀이나 벌레를 적으로 삼지 않고, 가져오지 않고 내보내지 않는다. 노자의 “무위자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가와구치 요시카즈 (지은이)   
1939년생.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농사를 시작하여 23년간 현대식 농법을 따랐지만 농약과 화학비료로 심신이 상하면서 1978년부터 ‘땅을 갈지 않는다’,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다’, ‘풀이나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를 3원칙으로 하는 독자적인 자연농의 세계를 열다. 1991년부터 ‘아카메 자연농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신비한 밭에 서서》《자연농이라는 삶의 방식(대담집)》《자연농―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세계》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자연농의 대가와 문화인류학자가 땅을 갈지 않고, 농약을 치지 않고, 비료를 주지 않는 자연농의 삶을 통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의 친구로서 살며 자연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다!

화학에서 자연으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추악함에서 아름다움으로, 인공에서 자연으로, 자멸에서 상생으로, 거대 세계에서 지역 사회로, 대전환의 시대에 다가온 새로운 삶의 방식, 자연농!

자연농의 대가와 문화인류학자가 만나다
이 책은 자연농의 대가 가와구치 요시카즈와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쓰지 신이치는 국내에 느림, 작음, 소박함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를 반성하고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슬로라이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이라는 인간관을 상실하고, 자연을 그저 “외부 환경”이나 “자원”으로 이해하고 착취하는 것에 강력한 문제 제기를 해왔다. 자연과 인간의 분리에서 시작된 근대화는 자연을 파괴하고 사회를 황폐하게 하고, 인간을 종합적 생활인에서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시켰다. 그는 그 치유 방법으로 현지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함으로써 지역 사회를 지탱하게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고 유대를 강화하는 지역 사회 속의 삶의 방식을 주장해왔다.
가와구치 요시카즈는 무농약, 무제초, 무경작(밭을 갈지 않음)의 자연농 원칙을 농업에 적용하여 하늘과 땅과 사람의 관계 단절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의 가능성을 연 자연농의 대가이자 구루로 알려져 있다. 쓰지 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자연 속에서 사는 삶, 자연을 통해 이해하는 삶, 자연의 일부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탐욕과 추악함으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풍요로움과 행복함, 평화로움을 만끽하는 삶을 고민해왔다.
따라서 뜻을 같이 하는 두 사람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 나눈 말들은 결코 소박하고 겸손하거나 자화자찬식 대화가 아니었다. 자연농의 개념과 의미, 예술론, 삶과 죽음, 지구와 인간, 생태계, 공존과 상생,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넘나들며 대전환기의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해 진지하게 나누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자연농 매뉴얼이 아니라 자연농을 통해 본 삶과 문화의 반성과 통찰로 이루어져 있다.

가와구치 요시카즈, 자연스레 자연농의 삶을 택하다
가와구치 요시카즈는 2차 대전 후의 궁핍한 농촌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비록 생활은 어려웠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 속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감각을 익혔다. 그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생활의 현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학업과 예술에 대한 갈증을 이기지 못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미술 공부를 하기도 했다. 농부라는 현실과 예술가라는 꿈 사이의 괴리와 열등감에 괴로워하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그린 그림들이 자기현시욕과 집착으로 가득 차 있으며 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예술에서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대한 미추의 분별력이 생기게 되었다. 현대 예술뿐만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집착과 탐욕, 자기현시와 자기착취라는 추악함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편 그는 무분별한 농약 사용으로 인해 간이 손상되는 등 최악의 건강 상태에 빠졌는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연농이라는 농업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농업 방식 중의 하나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에게 농업이란 현대 사회의 추악함을 버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과정이며, 가장 아름다운 것에 종사하는 기쁨을 누리는 행위인 것이다.

자연농, 생명의 길, 사람의 길, 자기 자신의 길
가와구치 자연농의 특징은 농약을 치지 않고, 비료를 주지 않고, 최소한의 행위를 빼고는 제초를 하지 않으며, 밭을 갈지 않는 것에 있다. 그는 쓰지 신이치와 마찬가지로 관행농과 유기농이라는 산업으로서의 현대식 농업은 “10의 에너지를 투입하여 1의 결과를 얻는 행위”이며 자연 안에서 영위하는 삶이 아니라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산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대규모 생산을 위해서 또는 높은 부가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하는 농업은 자연과 조화로움을 이루며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행위가 아닌, 자연과 인간 스스로를 대상화하고 파괴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으로서의 농업이 아닌 산업으로서의 농업 또한 다른 제조업이나 금융업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생활인에서 이익 실현의 도구인 소비자로 전락하게 만들고 진정한 풍요로움과 행복을 없애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가 밭을 갈지 않는 것은 지극히 분명하고 단순한 이유에서다. 땅은 갈면 갈수록 더욱 딱딱해져 식물이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잘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땅이 딱딱해지면 부드러운 흙, 식물, 미생물, 바람, 공기, 햇빛이 모두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나누며 성장하는 자연 상태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초하고, 농약을 뿌리고, 비료를 주고, 다시 땅을 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이다.

뺄셈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의 자연농
문화를 뜻하는 영어 Culture와 경작하다(Cultivate)가 같은 어원을 갖는 것을 되새겨 본다면, 경작을 부정하는 자연농은 분명 새로운 삶의 방식(way of life), 즉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모델이자 키워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새로운 실험이나 상상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있던 삶의 흐름인 것이다. 옛날 유럽인들이 막대기로 구멍을 뚫어 옥수수를 심는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들의 농업을 보고 “디거(Digger)”라 부르고 밭을 갈지 않는다며 경멸했지만, 선주민들은 거꾸로 유럽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도 그 흐름을 찾아볼 수가 있다. 유럽인들이야말로 눈앞의 효율성이나 일시적인 수확량에 집착하기 때문이었다.
자연농은 자신의 생명과 생활을 자연에 맡겨두고, 그 대답을 기다리며, 그 속에서 사는 삶의 한 방식이다. 땅을 갈고 농약과 비료를 뿌려 생산의 극대화를 노리는 행위를 빼버림으로써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무익하고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중지하고 자신의 생명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다른 생명을 온전히 지켜내는 대안적 삶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연농의 삶이란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 안에서 평화롭고 아름답고 풍성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현대 비즈니스에서 지역 사회의 자립 경제를 위하여
자연농을 자연과 인류를 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가와구치는 모든 사람이 당장 모든 직업과 하는 일을 버리고 자연농의 삶으로 뛰어들라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자연농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젊은이에게 자연농을 하지 말 것을 권하기까지 한다. 쓰지 신이치와 마찬가지로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연, 삶, 죽음, 문화, 사회를 자연농이라는 모델을 통해서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느림과 기다림을 받아들이고, 탐욕과 집착을 빼버리고, 공존과 상생을 추구하는 자연농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먹을것의 자립, 지역 경제의 자립,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 강화, 건강한 음식을 통한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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