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5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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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1 hr ·



크리스마스 새벽이군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당신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십니까?』


그저께부터 읽기 시작한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라는 책의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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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1년경 동인(東人)세력이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세 가지 양상이 나타났다.
첫째는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이 정(正)과 사(邪), 즉 바름과 간사함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본래 동인과 서인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입장이 다를 뿐 , 정사(正邪)로 구분되지는 않았다. 이때부터 동인 일부는 서인을 공공연히 ‘소인(小人)’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소인’이라는 말은 예사 용어가 아니었다. 이 단어는 문정 왕후 사망 후 조정에 진출한 신진사류가 명종 대 훈척계 인물들을 가리킬 때 썼던 용어이다. 소인은 정치적 대화나 타협 대상이 아닌 싸워서 격퇴시켜야할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둘째는 구신(舊臣) 중에서 동인에 가담하는 사람이 속속 둥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서인을 공격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보상 받으려 했다. 때문에, 그 말이 더욱 공격적이었다.
셋째는 이전까지 비교적 중립적 입장에 있었던 김우웅, 이발, 류성룡 같은 인물들이 당파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선조 11년에 잇었던 사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 바로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들과 이이(李珥) 사이에 의견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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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是非)와 정사(正邪)는 차원을 달리하는 구분이다. ‘시비’는 특정한 상황이나 문제에 대한 판단 내용에 국한될 뿐 판단 주체에 대한 규정은 아니다. 때문에 사안에 따라 시(是)와 비(非)의 주체는 달라질 수 있다. ‘비’즉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해서 그 판단 주체가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정사(正邪)’는 개별 상황을 뛰어넘어 판단주체의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다. 그리고 정(正)과 사(邪)의 차원에서 비로소 군자와 소인이 구분되었다. 소인은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아닌 제거되어야할 대상을 뜻했다>
<동인과 서인의 갈등이 심화되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동인과 서인의 보합(保合), 조제(調劑)에 대한 논의도 동시에 등장했다. 조제란 정파간 세력 균형을, 보합이란 대화합을 뜻했다.
조제보합론은 조정에서 동인이 자신의 주도권확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물리쳐야할 논리였다. 특히 동인과 결합한 구신(舊臣)에게 조제보합론은 대단히 위험한 주장이었다. 그들을 조정에서 축출시킬 수도 있는 논리였다. 이이(李珥)가 조제보합론을 들고 나오자 동인 측은 크게 반발했다.
이미 현실은 조제보합론의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조제보합론은 사림(士林)의 오랜 이상과 정체성을 담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조제보합론이 가진 힘의 원천이었다>

450년 전 역사가 요즘 우리 현실과 겹쳐서 읽힙니다.
저는 이조(李朝)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서로 정통이라고 주장한 논리의 근거가 된 유학(儒學)에 대해서도 공부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뒤늦게 공자를 접하고, 이 책을 선물 받아 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올라옵니다.

이이(李珥)가 다음 장(章)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성탄절과 연말을 지내면서 이 책을 보게되는 행운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