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7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지적 겸손도가 떨어지면 '꼰대'가 된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지적 겸손도가 떨어지면 '꼰대'가 된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지적 겸손도가 떨어지면 '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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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19.04.06. 오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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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맞다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은 '지적겸손도'가 낮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능력도 떨어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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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렸는데도 자기가 맞다고 빡빡 우기는 사람들 때문에 비용이 발생하는 사례를 자주 보곤 한다. 목소리만 큰 한 사람 때문에 뻔히 틀린 방법을 그대로 하게 되는 경우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서로 감정이 상해 싸우기 마련이다. 우기던 사람은 일을 그르치고 나서도 이게 사실 '다 ○○때문'이라고 비난을 외부로 돌리는 추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일을 더 대규모로 그르치기 때문에 우기는 것의 비용은 더 커지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의 우기는 특성은 바람직하지 않을때가 많고 따라서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고려할 줄 아는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 긍정심리학지에 실린 엘리자베스 크럼레이 멘쿠소 미국 페퍼다인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지적 겸손함이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참과 거짓을 잘 구분하고, 자기가 맞다고 우기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적다. 반대로 지적 겸손도가 낮은 사람들은 시시비비를 잘 가리지도 못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맞다고 우기는 일이 많다.

연구자들은 언어, 수학, 논리적 사고력, 공간지각력 등의 테스트에서 지적 겸손도가 ‘낮은’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확인했다. 이들은 실제보다 자신의 위치를 과대평가하며 자기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나는 적어도 평균은 갈 것이기 때문에 내 밑으로 50%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고 방식이 그런 경우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틀리면 자신이 나서서 교정해 주어야 한다거나 자신에게는 사람들을 ‘계몽’ 시킬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사람들은 나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배워야 한다. 나의 의견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 “나는 나의 의견을 널리 전할 사회적 의무가 있다”, “나는 높은 자리에 앉아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상상을 즐겨한다”, “세상 사람들이 나처럼만 하면 세상은 지금쯤 더 나은 곳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멍청한 사람들이 많다” 등의 문항에서 지적 겸손도가 낮은 사람들이 더 높은 정도로 ‘그렇다’고 응답했다.

반면 이들은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에 비해 가짜로 지어낸 사건·인물과 실제 존재했던 사건·인물을 구분해내는 능력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야구공과 방망이가 총 110달러인데 방망이가 공보다 100달러 더 비싸다면 공의 가격은 얼마인가”같은 간단한 문제를 더 많이 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은 픽션과 논픽션을 잘 구분하고 문제도 더 잘 풀었다. 이들은 또한 어렵고 복잡한 문제 풀이를 즐겨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며 모르는 것이 있다면 힘이 들더라도 꼭 알아내고 싶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성공이나 돈 등 어떤 ‘보상’을 위해서 공부를 하기보다 정말 그것을 알고 싶기 때문에 공부하는 편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서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닌다던가 다른 사람들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경향은 덜 보였고 자신의 능력 수준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한 인식을 보였다.

정리하면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 틀리면서도 목소리는 커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꼰대질을 하고 다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지적 호기심은 낮고 눈에 띄는 보상이 없다면 배움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래도 여전히 자신은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을 무시한다는 것. 이런 현상은 교육수준과 상관 없이 나타났다.

이렇게 아는 건 없지만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고통을 퍼트리고 다니기 때문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등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뭘 잘 모를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배움의 시작이기도 해서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가고 점점 더 사회에 보탬이 되지만 지적 겸손도가 낮은 사람들은 발전 없이 주변 사람들만 괴롭힐 가능성도 있겠다.

Krumrei-Mancuso, E. J., Haggard, M. C., LaBouff, J. P., & Rowatt, W. C. (2019). Links between intellectual humility and acquiring knowledge.?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