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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마을살이", 돈벌이 경제에서 살림살이 경제로의 거대한 전환
웹진 10호 | 마을학개론 | 2014.01.20조회수 : 4641
새해가 시작하는 그 주간에 학생들과 함께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한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일본 규슈 해변의 이토시마라는 지역에 모여 사는 이들은 과거와 미래, 자연과 사람, 생명과 생명의 끈을 이어 온 ‘오래된 미래’가 계속 되길 바라는 주민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정규직장에 다니며 돈을 버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일하는 프리랜서도 있고 전혀 돈벌이 노동을 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공통적인 점은 이들이 텃밭을 가꾸거나, 옷을 만들거나, 집을 고치거나, 요리를 하거나, 예술적 활동을 하거나, 집 관리를 하거나, 아이를 키우고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 일에 꽤 많은 시간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마을 곳곳에 자연농법을 활용한 크고 작은 밭이 있으며 건강한 먹거리를 파는 가게 겸 식당, 마을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공방들이 있고 마을 장터가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대부분이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지만 독신이거나 결혼을 하지 않은 청년들도 많고 이들은 공동으로 큰 집에 모여 살면서(share house)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습니다.
마을 안에서 실천하는 살림살이 경제의 다양한 모습
우리가 간 첫날은 마침 지역 신사들을 방문하는 신년맞이 순례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순례를 이끄는 스님은 아름다운 바닷길을 안내하면서, 순례자들에게 앞으로 태어나 이곳을 걷게 될 다음 세대를 위해 마음을 모아 걷기를 당부했습니다. 그는 북미 원주민들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늘 7세대 앞을 내다보면서 결정을 했다고 점을 주지시키면서 우리도 그렇게 살자고 했습니다. 이들이 부활시키려는 전통은 일본전통만이 아니라 전지구상에 존재했던 전통 중 지금 시대인이 되살려야 할 가치였습니다. 농부, 컨설턴트, 공정무역 회사 직원, 제과사, 접골사, 보육사, 엄마, 아버지 등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이들은 2012년에는 ‘이토나미’라는 마을 활성화를 위한 비영리 법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나누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는 오래된 진리를 자발적이고 느슨한 관계망 속에서 실현해가고 있습니다. ‘돈벌이 경제활동’도 하지만 ‘살림살이 경제’에 더 비중을 둔 마을살이를 하는 분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자연농법으로 가족의 먹거리를 자급하고 있는 카가미야 씨가 본인의 텃밭을 설명하며 흙냄새를 맡고 있다.
제가 만난 주민 몇 명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27년전에 이곳으로 이사 온 50대 중반의 가가미야미 에츠꼬 씨는 자연농법으로 가족의 먹거리를 자급하는 주부입니다. 1986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져버렸고, 당시 일본에서는 방사능 오염을 막기 위해 유럽산 수입과자를 모두 내버리는 등 난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가가미야마씨는 아기에게 위험한 먹거리를 먹일 수 없다는 생각에 자연농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가족은 남편 일터와는 멀지만 텃밭을 마련할 수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딸 둘을 그 밭이 딸린 큰 집에서 키웠습니다. 큰 딸은 중학교 때 학교를 싫어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자신은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냥 함께 즐겁게 농사를 지었는데 4년 후에 딸은 공부가 하고 싶다며 대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한 둘째 딸은 보육교사가 되어서 독립해 살고 있고 가가미야마씨의 텃밭은 이제 이곳을 찾는 우리 같은 방문객들을 위한 자연농법학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사토 가와구치 씨는 여섯 명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이자 건축 설비사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그는 40살이 넘어 보육사 자격증을 땁니다. 아이들을 위해 남자보육사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어서 직업전환을 하기로 한 것이랍니다. 살고 있는 집 아래층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조하고 와꾸와꾸(두근두근)’ 과자가게를 운영하는 두 아이의 어머니와 의기투합해서 세 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와꾸와꾸 보육 클럽’을 열었습니다. 이 보육클럽은 3년이 지난 지금, 19명의 아이들이 씩씩하게 자라는 그 지역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보육원이 되었습니다.
마사토씨는 정부 지원을 받으면 간섭이 많아서 지원을 받지 않기로 하고 정부에 ‘보육원’이 아닌 ‘보육클럽’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운영은 아이와 가족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이루어집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아 경제적으로는 여유는 없는 편이지만 부모와 이웃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에너지가 살아 있기 때문에 보육원은 늘 풍성하고 행복한 기운이 가득한 곳입니다.
예를 들어 회사를 다니며 혼자 자유롭게 살았던 비혼 여성 이마무리 사토코 씨는 은퇴 후 일주일에 한 번 이곳에서 아이들 식사 준비를 맡아 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 않던 편인데, 보육클럽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 존재인지를 알았다면서 아이들로 인해 노후에 삶의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들도 자신의 일정에 따라 수시로 보육활동을 도울 수 있고 프리랜스인 부모들 중에는 일당을 받고 이곳 일을 돕기도 합니다. 보육클럽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자라게 하는 곳이자 많은 사람들을 서로 엮어내는 마을 허브인 것입니다.
▲ 시의원에 출마한 후지몽 씨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그의 아내와 동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지역 멋쟁이인 후지몽 부부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예술가 부부입니다. 생태주의적 전환의 방식을 삶을 살다가 최근 남편 후지이 요시히로씨가 녹색당 후보로 시의원에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별명이 후지몽인데 그는 일본정치는 좌우로 대립한 상태에서 굳어버렸다면서 다시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치라고 말했습니다. 이토시마에는 물론 생태주의적 전환을 하려는 새로운 주민들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대대로 그곳에 터를 닦고 살아온 전형적인 농부가족도 있고 일반적인 회사원 가족도 있습니다. 그는 그런 지역주민들이 자민당과 반자민당으로 양분되어 있지만 적어도 자연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자는 점에서는 같은 생각을 한다면서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을 장터에서 선거운동을 한 셈인데 선거운동의 하이라이트는 후지몽 씨의 기타반주의 맞추어 그의 아내 레이코와 동료들이 평화를 기원하면서 아름답게 훌라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망가진 세상에 대항하여 ‘지속가능한 전환마을’을 노래하다
▲ 이토시마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
학생들의 쉐어하우스가 소개된 잡지(왼쪽), 이토시마의 젊은 예술가들(오른쪽)
이토시마의 이야기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이토시마에서 우리가 보고 온 ‘마을살이’의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지속가능한 전환 마을transition town’의 삶의 모습입니다. 영국에 있는 토트니스(Totnes) 마을주민들은 2020년 경에 석유생산이 정점(Oil Peak)을 이룬다는 소식을 접하며 석유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마을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목적 아래 다양한 삶의 활동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연농법으로 텃밭을 만들고, 토종 종자를 보호하며, 집과 정원을 공유하고 그 지역에 맞는 나무들을 심고, 가까운 지역에서 나오는 먹거리를 활용하는 ‘푸드 마일리지’ 운동도 합니다. 이런 전환 지역에는 어김없이 조금 일찍 이런 전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활동해온 촉매자/촉진자(animator/facilitator)들이 있습니다. ‘이토나미’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든 분들처럼 말입니다. 다양한 목적을 위한 품앗이와 두레 등 단골 관계가 활발해지고, 때로 이런 활동은 협동조합과 마을기업으로 발전합니다. 자연스럽게 지역경제가 튼실해지고 사람살이가 안정되는 것이지요. 이런 전환을 해낸 분들이 사는 것에 대해 별로 불안해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대형 사고는 이미 수십 차례의 사고들이 난 후에 일어난다고 하인리히 법칙은 말합니다. 경고를 계속 무시할 때 터지는 것이지요. 지구는 초대형 사고들이 터지는 시점에 접어들었습니다. 2011년 9.11일 2996의 인명을 앗아간 세계 무역센터 폭격사건, 2008년 뉴욕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11년 3. 11 후쿠시마 사건은 모두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물신주의와 맹목적 과학기술주의와 토건주의가 초래한 결과이지요. 보이는 성과와 효율만 강조하면서 돌봄과 양육을 무시해온 근대 ‘사냥꾼들’에 의한 역사는 이제 그 종말에 다다랐습니다. 그 체제가 여전히 굴러가고 있다는 것에 절망하는 이들이 있지만, 거대한 수레바퀴를 단번에 멈출 수는 없는 것이지요. 서서히 그 수레바퀴는 멈출 것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출 힘은 지속가능한 전환마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 기존의 집을 개조해서 만든 학생들의 쉐어하우스(왼쪽), 종종 청년들의 장터 마르쉐가 열린다(오른쪽)
서울에서도 전환마을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와 좀 차이가 있다면 시기 때문이지요. 유럽이나 일본은 한국보다 경제성장도 빨랐고 경제 침체도 빨랐습니다. 유럽 사회,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예외적으로 경제선진국 대열에 섰던 일본은 1980년대 경제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그 때부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특히 1986년대 체르노빌 원전폭발 사태는 위기 인식을 명확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서 카가미야마씨의 경우에서처럼 삶의 방식의 전환을 결심하는 이들이 늘어났던 것입니다.
반면 한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겪으면서 비로소 성장의 한계를 깨닫고 우리가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는 위기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근대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거친 한국의 경우, 노동 강도와 불행 지수 등 여러 가지 OECD 지표가 가 말해주듯이 그 위기의 정도는 더욱 심한 편입니다. 층간 소음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멘붕 상태로 외톨이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폭증하는 현실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교육 시장이나 보험회사의 경쟁 판에 휘말려 과도한 학원비와 보험료를 내느라 과로하는 국민,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셔틀에서 피로해진 아이들, 하우스 푸어와 워킹 푸어, 나날이 불행한 신조어들만 생기는 피로한 ‘토건국가’에서 '마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되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위기를 직시하고 소통하려는 의지, 곧 지역적 삶의 회복력 regional resilience을 갖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불행한 ‘토건국가’에서 행복한 ‘마을살이’로
위기의 정도가 심각해서인지 서울에서는 시 정부가 시민들의 마을살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앞에서 ‘와꾸와꾸 보육클럽’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한 점과 대비 되는 점이지요. 무언가를 새로 만들고 살려내기보다 관리감독에 익숙해진 관이 얼마나 ‘마을살이’를 잘 지원할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앞으로의 국가는 토건사업이 아니라 사람살이 쪽에 적극 지원하는 것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일 겁니다.
이토시마의 전환적 마을살이가 키워낸 젊은 주민 후지몽 씨가 1월 말 시의원 선거에 당선되면 ‘와꾸와꾸 보육클럽’도 관의 지원을 기꺼이 받는 식으로 제도를 바꾸어내려고 노력을 하겠지요. 그런 면에서 서울시가 산적한 대도시의 문제를 마을살이의 개념으로 제대로 풀어낼 수 있다면 위기에 처한 현 지구주민들을 위한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되는 것일 테지요. 인구 1천만이 넘는 초대도시에 웬 마을이라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지만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은 동네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노인을 돌보고 호혜적 경제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런 기억을 갖고 있기에 오히려 서울에서의 전환마을 운동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토시마에 함께 갔던 한 학생들이 작별의 시간에 말했습니다. “이렇게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가득 모인 곳에 있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쉐어 하우스 (공동주택)에서 키운 닭을 잡기 전에 따뜻하게 안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게 했습니다. 그 닭 한 마리를 구워서 30여명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 기억들을 안고 돌아갑니다.” “행복하기 위해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필요한 것은 신뢰하는 사람관계라는 것,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갑니다.”
이제 우리는 일상의 삶을 보기 시작합니다. 일상의 실천 속에서 에너지 문제를 풀고 안전한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마을의 안전은 CCTV와 고용된 순찰대원들이 아니라 서로 믿고 사는 이웃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좋은 교육은 비싼 돈을 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터에서 친구와 동네 형들과 언니, 할머니 할아버지와 만나서 신나게 놀고 관계를 맺는 와중에 이루어지는 것이고요. ‘경쟁과 적대의 자아’를 형성시킨 사람은 ‘멘붕’에 빠지기 쉽지만 ‘협동적 자아’가 발달한 사람은 자존감이 높고 안정적이며 창의적입니다. 자연농법을 이용한 지혜로운 텃밭 일구기부터 요리,아이보기, 집수리하기 등 각자 남들과 나눌 재능을 키워가는 주민, ‘자기계발’과 ‘자기 책임’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남과 고민을 나눌 줄 아는 사람, 대대로 이어질 탄생과 죽음의 의례에 참여하며 7대 후손들을 위한 자원을 보존하고 풍성하게 가꾸어가는 행복한 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더불어 하는 기쁨을 만끽하는 나날이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미소를 짓는 시간보다 진심으로 친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웃과 함께 상부상조 하면서 서로가 비빌 언덕이 되어 오순도순 지내는 ‘마을살이’의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글과 사진_
조한혜정(서울시 마을공동체위원회 위원장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