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린뉴딜과 탈성장, 한 길인가 분기점인가?
by 녹색전환연구소 posted Sep 26, 2019
김형수(녹색당 서울시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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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IPCC 1.5도 특별보고서 발표된 후 파리협약에서 합의한 2도가 아닌 1.5도 이내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제한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전 세계 시민들은 각국 정부에 기후 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할 것을 요구하며 2050년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 즉각적인 감축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45% 줄여야만 1.5도 이내로 지구 온도 상승을 제한할 수 있다는 IPCC의 특별 보고서에 따라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10년에 불과하다. 앞으로 10년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정책은 바로 그린뉴딜 정책이다. 미국 정치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오카시오 코르테즈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버니 샌더스는 앞 다투어 그린뉴딜 정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린뉴딜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탈성장 또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대안 정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린뉴딜과 탈성장, 방향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고, 각 정책을 지지하는 진영들에서는 논쟁이 있다. 그린뉴딜과 탈성장은 인류가 초래한 온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로에서 서로 같은 길일까 아니면 다른 길일까?
그린뉴딜, 로버트 폴린의 주장
그린뉴딜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연구자 로버트 폴린을 통해서 그린 뉴딜의 주장을 살펴보자. 폴린은 실현가능한 지구적 기후 안정화 진전시키기: 탈성장 대 그린뉴딜(2019)에서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막고 지구 기후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경제성장을 하는 절대적 탈동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그린뉴딜의 기본은 GDP의 1.5 ~2퍼센트를 에너지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확대에 투자해 생활 수준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프로그램으로 요약된다.
폴린이 말하는 에너지효율 향상 프로그램이란 건물효율 개선, 대중교통 시스템 향상과 함께 에너지효율을 높인 차량 이용, 전력 송배전 손실 감소, 산업기계 효율적 운영 등을 뜻한다. 폴린은 에너지효율 향상은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같은 서비스라면 더 적은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폴린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게 한다. 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노동자에게 적당한 보상을 보장하고, 작업장 조건과 노동조합 대표성을 강화하며,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직업 기회를 필연적으로 확대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정투자라는 공적 지출로 직업의 질, 조합의 범위, 소수자들에 대한 직업에 대한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폴린은 에너지효율, 재생에너지 확대에 투자는 산업 정책을 필연적으로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한다 해도 공공기업, 사적 기업 등이 초기 자본의 흐름을 진전시키고, 프로젝트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 세제 혜택, 공공 조달 등의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탈성장 주장을 평가하는데, 탈성장은 구체적인 실현 가능한 기후 안정화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향후 20년 동안의 10% GDP 감소라는 탈성장론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2007년 ~2009년 금융위기나 대공항 수준의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성원들에게 미칠 충격이 크고, 해당 시나리오에서는 그린뉴딜 시나리오에서보다 이산화탄소배출 감축량이 적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탈성장 시나리오에서조차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시키는 것은 GDP 전체의 축소가 아니라 에너지효율, 재생에너지 부문 투자의 거대한 성장임을 지적한다. 계산상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는 급격하게 감소하지만, 에너지효율, 재생에너지 부문 투자는 GDP 성장에 기여하는데, 무엇보다 이 정도의 GDP 감소는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 감소와 실업을 결과한다고 비판한다. 탈성장은 전략적 관점에서도 재생에너지 프로젝터를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낳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탈성장, 버튼과 소머빌의 주장
마크 버튼과 피터 소머빌은 탈성장: 반론 에서 폴린을 겨냥해 직접 비판을 제기한다. 그들은 폴린이 기후변화만 강조하고 있고, 생물 다양성, 깨끗한 공기, 물, 살만한 도시, 사회적 국제적 평등을 기후변화를 완화라는 긴급성에 종속시킨다고 지적한다. 즉 현재 인간의 자원 소모에 의한 생태적 수용 능력의 한계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폴린은 금융화된 신자유주의, 수익 추구의 극대화를 비판하고 성장은 긍정하고 있는데, 버튼과 소머빌은 금융화된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 이윤율 하락에 대한 대처 방안이라는 점에서 성장이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 문제가 아닌 그것의 파생된 문제를 악당으로 오인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선진국의 성장과 탄소배출의 분리 현상인 탈동조화는 탈산업화가 되면서 탄소 배출 산업을 외부화, 국가적으로 외주화한 데서 비롯된 것이고, 물질적 관점에서 자원 소모와 경제성장의 탈동조화는 일어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버튼과 소머빌은 역사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화석연료 감소로 이어진 사례가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재생에너지가 늘면서 화석연료 사용도 늘었고, 현재와 같은 소비수준으로 재생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서 재생에너지 활용이 18배나 증가해야 한다며 폴린을 비판한다. 그리고 폴린의 정의로운 전환 프로젝트는 화석연료 산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이윤 추구나 자원 개발이나 채굴은 석유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와 이윤 추구는 분리되어야 하고, 생태적 수용 한계 내에서 인간의 필요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축소가 꼭 빈곤층에 고통을 주는 게 아니라 부와 소득의 집중에 강하게 연결된 배출을 축소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당장의 미래는 아닐지라도 지구의 생태적 수용 능력 한계 내에서 인간의 필요를 충당해야 하며, 전 지구적 경제의 물질적 규모 감소와 평등한 통제, 배출 감소가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불필요한 산업생산, 에너지 소비, 도로 공항 투기적 고층 건물 등 건설, 화석연료에 의존적인 농업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통한 열 생산, 전기차를 통한 교통, 시멘트와 철을 사용하지 않은 건설, 종생태학의 원리를 따르는 농업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린뉴딜 비판에 대한 폴린의 반박
버튼과 소머빌에 대한 반론은 아니지만 폴린은 탈성장론자들의 비판에 답하면서 여전히 구체적 정책이 없음을 지적한다. 그는 일본의 예를 들며 일본 경제는 90년대 성장 없는 초 저성장 시대를 지났지만 이산화탄소배출량이 전혀 줄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GDP 감소가 탄소배출 저감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지 않음을 제시한다. 또 인도를 예를 들면서 탈성장론자들은 개발도상국의 탈성장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인도는 경제성장과 함께 탄소배출을 많이 한다는 점을 들며, 인도 같은 나라에도 절대적 탈동조화 그린뉴딜이 필요함을 제시한다.
한 길인가, 분기점인가
폴린이 현재의 총체적 생태적 위기를 이산화탄소 혹은 온실가스 배출 문제로 초점을 맞추는 경향은 분명하다. 기후 위기가 일으킬 총체적인 생태적 파국도 있지만,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뿐만 아니라 자원소모 자체가 일으키는 생태적 과부하를 고려했을 때 화석연료나 발전 부문에 초점을 맞춘 저탄소 기획은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탈성장론은 근대 문명의 성장 지상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적확히 지적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의 즉각적인 실천 계획들을 그린뉴딜론 만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인류가 마주한 위기에 대응할 시간은 부족한데, 인류가 나가야 할 큰 흐름에 대한 논쟁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저탄소사회라는 방향은 동일하지만, 무엇을 위기로 인식하고, 문제의 근원을 보는 시각에서는 그린뉴딜과 탈성장은 최종 도착지가 다를 수 있다. 그린뉴딜은 기존 성장지상주의적 산업 문명의 체질 개편 내지는 일자리 확충에 국한될 수도 있고(체제 유지의 알리바이), 탈성장론은 실천과 계획 없는 비판에만 머무르거나 현실화되지 못한 담론으로만 머물 수도 있다. 상호 비판과 경쟁을 통한 대안의 정교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양쪽을 모두 긍정하자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방향은 탈성장에 둬 지구의 생태적 한계 내에 인류의 필요를 충당하도록 경제를 축소시켜 가야 할 것이다. 다만, 전환 사회로 진입하는 마중물이자 단기적 이행전략으로 그린뉴딜을 택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본다면 그린뉴딜을 보다 더 산업 문명 비판적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탈성장의 기획과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폴린의 그린뉴딜에서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상품의 생산과 소비, 이를 거래하는 시장의 역할이 강조 전제되어 있고 임금노동시스템 유지 또한 전제되어 있다. 성장을 요구하는 시장 시스템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자급, 자립의 역할이 강조되는 농업과 농작인 삶이 더 풍부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 또 임금노동 체제 자체가 변화되는 시점에서 임금노동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본소득론 또한 결합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Robert Pollin, Advancing a viable glogal climate stabiliztion profect: Degrowth versus the Green New Deal, 2019 Union for radical political economics,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2019 vol 51(2) 311-319
Robert Pollin, Degrowth versus Green New Deal: Response to Julet Schor and Andrew Jorgenson, 2019 Union for radical political economics,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2019 vol 51(2) 3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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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BurtonPeter Somerville, Degrowth: A defence, New Left Review 115, 95-104
탈성장론과 그린성장론을 들여다보고 싶다.
기후위기를 비롯한, 인류 존속의 위기에 대한 체감이 이상할 정도로 낮은 원인이나 탈성장이나 그린성장이 뿌리내리기 위한 동력, 문명전환과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변동과의 괸련 등에 대해서.
이 글에 소개된 논의들 속에는 이런 부분들이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삶의 목표, 행복에 대한 심층의 가치관 변화를 어떻게 도모하는냐는 것은 이런 논의가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논의로 되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까?
지금의 단계에서 추진하려면 노사관계나 실업이나 복지에 대한 전망에 대해 정치 경제적 설득이 가능하고 유력한 정치세력이 이 전망들로 표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 인류의 급박한 위기에 대응하는 목소리가 거의 안보일 정도로 약한 것이야말로 우리의 아픈 실태다.
만일 위기가 급속하게 닥치고 사람들의 인문적 토대와 정치 경제의 제도와 의식이 문명전환의 방향으로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는 공멸하거나 그것을 피하기 위한 어떤 형태의 생태 독재가 불가피할 수도 있을텐데 이것은 또 다른 재앙으로 될 것이다.
단지 그린성장이냐 탈성장이냐 같은 기술적ㆍ제도적 접근만으로는 어렵고, 근본적이기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더 알아봐야겠지만.
문명전환의 동력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검토되어야할 그린성장이나 탈성장에 대해.
그리고 4차 혁명과의 연동에 대해 폭넓은 연계 속에서 다방면의 노력들이 집중되어야할 것 같다.
녹색당이 이런 면에서 보다 주도적이고 적극적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새벽에 이 글을 보며, 들었던 느낌이다.
# 이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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