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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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한국인권뉴스 최덕효 대표님께 드리는 질문.
24 December 2014 at 18:12


김기원 교수의 글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혁과 진보라는 두 가지 키워드인데요. 여기서 좀 더 파고들 필요는 있겠다 싶습니다.


사실상 제도란 것이 인식을 생산하는 이상 제도의 변혁은 매우 중요하지만, 만일 그 제도가 제도를 위한 제도이거나 혹은 의도는 좋으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제도라면 오히려 인식보다는 음지를 생산하게 됩니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얘기죠. 이미 다들 아는, 현 시행중인 성매매 특별법의 폐단이 그런 것이겠습니다.


제도는 누군가 그것을 이용하여 누군가의 기본권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최후 방어선이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누군가의 기본권을 신장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도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지는 않으나, 우리 모두는 국가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신념에 동의합니다. 이것을 향하여 내딛는 모든 발걸음을 가리켜 진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문제제기에 들어가겠습니다.


1. 제도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신장시키는 데 복무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신다면 이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성매매라는 행위는 "성적 인신매매"의 줄임말로써, 그 자체로 "사람의 몸을 사고판다"는 뜻이 됩니다. 마르크스의 설명을 그대로 따온다면, 자본은 노동행위에 의해 양산되는 가치들을 기각함으로써 소외를 불러온다고 합니다. 즉 노동으로부터의 인간소외가 발생하지요. 그렇다면 성매매에서 발생하는 소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다른 어떤 노동행위에서도 자본의 주된 매입대상이 되는 것은 모두 "노동력"이 되는데 반하여 성매매 행위는 "인간의 몸"입니다. 성매매를 노동이라 파악하는 관점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성매매 종사자는 "성매매라는 노동행위"로부터 소외될 뿐만아니라 "자신의 몸"으로부터도 소외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신체에 대한 권한마저도 기각되는 것을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한 성매매 행위의 개념이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매매는 자본의 권력이 인간에게 침식하는 가장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성매매 행위에 대해 이러한 분석을 해내지 못한 것은 그가 보수적이고 당대의 성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앙드레 고르는 마르크스가 당대의 시대 저변에 흐르는 사상의 총아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이해합니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자기생활에서도 썩 보수적인 편이었으니 노동 소외에 따른 인간 소외를 이끌어낸 자신의 탁월한 논변으로 성매매 행위를 분석하지 못했을 법합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였는지도 사실 의심스럽고요.


각설하고, 이렇게 볼 때 성매매 행위는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든 행위들 중, 인간의 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자본의 침해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념적인 논변이지만, 관념은 반드시 실천의 경험 속에서 나오고 또한 실천은 관념적 논변의 육화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김기원 교수 역시 자신의 글에서 "괜찮은 직업"이라는 인식을 가진 여성들조차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떳떳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라는 근거를 들어 말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러한 규범적 인식을 굳이 근거삼지 않더라도 멜리사 펄리가 2004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9개국 854명의 성매매 여성(스트립 클럽, 맛사지, 거리매춘) 중 68%가 치명적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감안해 보면, 노동행위로서의 성매매가 인간에게 어떤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비단 스트립 클럽, 맛사지, 거리매춘의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일 자체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는 여성들은 많습니다. 집적적 관리매춘의 형태 즉 집창촌에서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경우에도 그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난해 직접 면담했던 여성의 경우 실제 손에 쥐는 돈은 대략 한달에 8백에서 9백만원 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비를 지나치게 하여 돈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왜 소비가 지나친 것 같은가" 하는 제 질문에 그 여성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아무리 업소에서 하는 일이라지만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알겠나. 손님들 중에는 별의 별 것들이 다 있다. 우리 업소는 시설이 좋아 그나마 때리고 할 수는 없지만 모욕을 줄 때도 많고, 지가 교수네 의사네 하며 알아달라고 징징거리는 것들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런 비위 일일이 맞춰주고 나면 죽을 맛이다. 돈 쓰는 것밖에 달리 스트레스 풀 일도 없다."


이것을 건강한 정신이라고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컨대, 성매매 행위를 노동으로 보았을 적에도, 성매매 행위가 '인권'이라고 부르는 가치와 양립하지 못한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이론적으로 모두 증명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매매 자체가 인권과 양립할 수 없다는 근거가 되는 다른 실증연구들도 있습니다. 합법화가 되어있는 독일의 경우만을 보겠습니다. 멜리사 펄리를 비롯한 여덟 명의 연구자가 발표한 <Prostitution and Trafficking in 9 Countries>에서 밝히길, 성매매업 종사기간 중 약물 투여를 경험한 여성은 전체의 70%에 달하였습니다. 성매매업의 사유화 및 알선행위만을 금지하는 캐나다의 경우는 95%입니다. 거의 100%에 달하지요? 2013년 5월호 슈피겔Der Spiegel에서는, 2002년 독일에서 성매매를 합법화할 당시 강제 인신매매 등 성매매로부터 파생되는 범죄가 줄어들 것을 예상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동일한 기사는 슈피겔온라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실증적 사실과 이론적 추론에 따라 성매매란 그 자체 내적 구조가, 성매매업으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범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앞서 제도란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형님은 당사자주의를 말씀하십니다. 당사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습니다.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것에 큰 불만이 없으며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아실 것입니다. 제가 면담했던 여성은 모두 17명이었습니다. 정자동 업소에서 일하는 6명을 포함하여 성남과 용인지역에서 11명, 서울 강남과 송파에서 일하는 여성이 6명이었습니다. 이들 중 12명(13명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은 성매매업 자체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왜 그만두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배운 게 도둑질"이란 대답을 하였습니다. 여쭙겠습니다. 이것은 당사자의 목소리가 아닌지요?


그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벗어나도 딱히 대안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발제문으로 주신 김기원 교수의 글에서는 근본적 해결방안으로 "개혁"과 "진보"를 말하였습니다. 즉 수요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남성들의 접대문화가 개선되도록 사회 시스템을 개혁하고, 성매매 여성들이 그 업종에서 벗어나더라도 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길이라는 것입니다. 김기원 교수는 현재의 성매매 특별법이 단순한 공식적 거래량 감소에만 효과가 있을 뿐 실질적 효력이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2007년에 나온 한국 인권보고서에서도, 성매매 특별법이 거래량 감소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유사 성매매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의 성매매 특별법이 도덕주의의 발로이며 제도를 위한 제도에 다름아니라는 형님의 지적에 백분 동의합니다. 또한 저는 현재의 성매매업 종사 여성들 중 다수가 생활고로 인하여 그 업종에 들었다는, 한국인권뉴스에서의 기사를 접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매매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그들의 죄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도 그러하고, 구글에서 검색하여 찾아볼 수 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례로 미루어 보건대, 설령 성매매업을 도덕주의적으로 죄악시한다 하여도,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경직된 도덕주의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도덕적 태도는 그들의 죄를 묻기 전에 그런 죄에 그들이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현재의 성매매 특별법(비록 이것이 제정되기 전에도 판매자든 구매자든 똑같이 처벌대상이긴 하였으나)의 도덕주의적 태도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성판매자와 구매자 모두를 처벌하는 형태에 저는 반대합니다.


물론 저는 성매매 행위가 해묵은 도덕관념에 의해 죄악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만일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인권이라는 가치와 양립할 수 없는 행위라면 기본적으로 부정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는 만일의 경우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해치는 일에 대하여 방조하는 요소가 생길 때조차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도덕적 죄악시가 아니라, 도덕의 영역 이상의 기본적 인권의식과 관련한 것입니다. 이것마저 도덕주의라고 해야 한다면 한국인권뉴스는 그 이름부터가 도덕주의적인 것임에 다름아닙니다. 그 어떤 당위도 없어야 한다면 도대체 인권뉴스에서는 무엇을 당위 삼아 부르짖으려는지요. 성매매 행위를 부정하는 데서 오는 여러가지 사회적 요인들이 우려된다면, 그러한 요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개혁"과 "진보"를 주장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성매매 특별법은 반드시 개선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앞서 여러 실증연구와, 그와 상호적 관계 속에서 개진한 이론적 논의 등은 결국, 판매행위 비범죄화, 그리고 구매행위에 대한 강력처벌, 더불어 음성화를 방지하기 위한 개혁과 진보라는 실천강령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합법화는, 이미 거듭 반복하였으나, 그것이 기본권의 사각지대를 조성할 공산이, 이론적으로 보아도 실증적으로 보아도, 농후하기에 현 상황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하나씩 쪼개어 말씀을 주셔도 좋고, 한꺼번에 이것처럼 길게 써주셔도 좋습니다. 다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기사 링크를 줄줄이 걸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형님의 의견을 원합니다. 형님께서 걸어주시는 기사들 중 제가 모르는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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