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2

김용옥·박맹수·백낙청 '동학의 길'을 찾다…창작과비평 2021가을호 스캔커피

 계간지 창작과비평이 이번 가을을 맞아 동학의 길을 묻는 특별좌담과 촛불혁명의 새로운 진전을 내다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특별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에는 철학자 김용옥을 비롯해 박맹수와 백낙청이 함께했다. 이들은 서구 중심의 고답적 사유를 격파하는 뜨겁고 실천적인 토론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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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1

[북 리뷰 044] 백낙청 도올 김용옥 박맹수 세계사상으로서의 동학 논한 거장의 대화 - 창작과비평 2021 가을호 특별좌담


[독서생활]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백낙청, 도올 김용옥, 박맹수 원광대 총장의 '특별좌담'이 나온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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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걸 읽으려면 창비 잡지의 전자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다. 좌담의 영상이 나오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잡지의 글은 좌담 후에 글을 더 부첬다고 한다.
- 그런데 좌담의 영상은 아니지만, 맛보기 같은 20분짜리 영상 리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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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 리뷰 만을 보고 말하자면,
1] 동양 사상이 서양 사상을, 그리고 동야 문명이 서양 문명을 능가하는 세계사적 터닝 포인트에 와 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2]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인물이 동학의 수운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도올의 <동경대전>의 재조명이라고도 말해야 할 것같다.) 그 만큼 한반도의 위치가 중요하게 되었다고 한다.
3] 그리고 종교로 보아서는 당연히 서양 사상, 서양 문명의 중요한 역할을 한 기독교의 위치가 내려가는 한 면, 올라가는 종교가 한반도의 동학인데, 동학을 이어가는 주체는 천도교나, 증산도가 아니라 원불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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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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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도올의 <동경 대전>은 지난 1월달에 구입하여 다른 책들과 함께 선편으로 부치려고 부산에 종이 상자에 담겨저 있는데, 우체국에서

Kang-nam Oh 김하태 박사님과 변선환 박사님의 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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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태 박사님과 변선환 박사님의 편지(1)
오늘 서류 정리를 하다가 김하태 박사님과 변선환 박사님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두 분을 잘 아시는 분들을 위해 그 편지들을 여기 옮겨 보겠습니다. 이제 제가 썼던 페이퍼나 메모지, 편지들을 없애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편지들은 그대로 없애기가 아까워 여기라도 기록에 남기고 싶습니다. 정대위 박사님, 김재준 박사님, 유기천 박사님 등에게서 온 편지들도 있는데,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발견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라도 발견되면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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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단 김하태 박사님 편지를 먼저 옮깁니다.
제가 1990년 11월 17-20일 미국 New Orleans 북미 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에서 “The Encounter of Confucianism and Christianity in Korea: Past and Future”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한 copy를 김하태 박사님께 전해드렸는데, 그 논문을 꼼꼼히 살피시고 답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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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91
오강남 교수께,
전번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meeting 때문에 南加州에 오박사가 오셨을 때는 매우 반가히 뵈었습니다. 그리고 New Orleans 會議 때에는 제가 가지 못하여 유감됩니다.
실은 Dr. Andrew Park을 만났을 때 말이 오박사로부터 내게 보내는 편지와 article을 받아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못 전한다고 했었는데, 그것을 찾아서 제가 보내 주어 잘 받아 보았습니다. 이것을 보기 전에 L.A.에서 나오는 The Christian Herald 紙에 한국말로 發表된 것을 읽었고 또 보내주신 English article도 읽었습니다.
우선 儒敎에 關心을 가지시고 硏究하심을 고맙게 여기오며 그 article은 comprehensive하고 잘 조직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Sagehood and Metamoia의 비교는 좋은 着想이라고 보는데, 그 article의 性質로 보아서 그 点을 더 展開시키지 않은 줄 알지만, 이 두 개념의 關係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갔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곧 이 두 개념을 表示하는 共通分母를 制定하고 그것에 대한 유교적 表現과 기독교적 表現의 特異性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제 생각은 이 둘 관계 뿐 아니라 佛敎의 깨달음도 亦是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끊임없는 건투와 進展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南加州 金夏泰 拜
1360 Arbolita Dr.
La Habra, CA 90631
U.S.A.
오박사 article에 교정할 것이 있습니다.
1) p. 11. footnote #3에 유동식, 한국의 종교와 기독교 (Seoul: The Confucian Literature Society, 1965)라 했는데, The Confucian이 아니라 Christian이 아닐까요?
2) p. 19. first line에 C. Thinking Together라고 했는데, 여기에 “C”가 아니라 “D”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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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를 보니 꼭 30년 전에 쓰신 편지이군요. 제가 전에도 어디에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宗敎와 基督敎>(1959)인가 <現代人과 宗敎>(1961)인가 하는 책에서 종교의 궁극 정점은 신비주의라는 말씀이 제 학문적 여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최초로 김박사님을 뵌 것은 1971년 미국 미주리 주 Saint Louis에 있은 ‘북미기독학자회의’에서 였습니다. 그 모임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식사 기도 부탁을 받으시고, 퀘이커 대학인 Whittier College에서 배우셨다고 하면서 말로 하는 기도 대신 잠시 같이 명상하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 모임에서 제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주시고 좋은 평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 자주는 아니지만 학회나 제가 L.A. 가게 되면 뵙기도 했습니다.
특히 <김하태 박사 나심 아흔돌을 기리는 글모음, 궁극의 실재를 찾아서, 2005>를 준비하는 분의하면 김박사님이 저의 글도 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면서 기고를 부탁했습니다. 주로 그의 제자들의 글이 실린 그 글모음에 직접 제자도 아닌 저에게 특별히 부탁하셨다고 하여, ‘신비주의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만남’(63~76)이란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졸저 <불교, 이웃종교로 읽는다>의 부록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 무엇으로 다시 만날까? - 김하태 박사님의 90회 생신에 붙여” 실려 있습니다.
제자 가르치던 학교네 Peroy라는 심리학 교수가 있었는데, 그 교수는 자기가 Whittier College에서 공부할 때 김하태 박사님에게서 배웠는데, 자기 알고 있는 철학, 특히 동양철학은 모두 김 박사님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하고, 김 박사님을 존경하여 자기 주례를 부탁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김 박사님은 실로 세계적인 학자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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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006년도에 펴낸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를 출판사에 부탁하여 보내드리도록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읽으시고 용기주는 답을 해주셨습니다. 그 편지는 못 찾겠고 제가 김 박사님께 보내드린 답신이 컴퓨터에 있어어 덧붙입니다.
1360 Arbolita Drive
La Habra, CA 90631
김하태 박사님께
5월13일자로 보내주신 귀한 편지 감사하게 잘 받았습니다. 제가 방학이라 학교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 집 주소로 우송해 준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느라고 시간이 걸려 이렇게 답신이 늦은 것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책이 현암사로부터 박사님 앞으로 직접 우송되었고, 더욱이 받으시고 그 두꺼운 책을 완독하셨다니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 긴 책을 읽으시느라 수고를 끼쳐드린 것을 생각하여서입니다.
아무튼 읽으시고 격려의 말씀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 힘써서 잘 하라는 말씀으로 알고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불교와 기독교의 사상적 비교"를 통하여 불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게 되길 빌어봅니다.
아무쪼록 박사님, 건강하시고 후학들에게 계속 지혜와 용기의 원천이 되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저도 내년 봄이면 완전히 은퇴를 하게 됩니다. L.A. 가는 길이 있으면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7월 14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오강남 드림



“마지못해 지지말고 시원하게 져주라”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마지못해 지지말고 시원하게 져주라”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마지못해 지지말고 시원하게 져주라”

등록 :2021-09-01 08:00수정 :2021-09-01 08:01
조현 기자 사진
조현 기자

순천사랑어린학교마음공부 선생님 이현주 목사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해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두번째 인생멘토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선생님인 이현주 목사(77)다.


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선생님, 이현주 목사. 사진 조현 기자

이 목사는 기독교서회, 크리스찬아카데미, 성서공회에서 일하다 울진 죽변교회, 철원 반석교회 등에서 잠시 목회했으나 대부분 각지를 떠도는 백수로 지내며, 동화를 쓰거나, 성경과 불경과 인도 힌두, 유학, 노장을 비롯한 동서양 종교를 넘나드는 고전을 해설했다. 특히 말년의 무위당 장일순과 대담집인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펴냈으며, 동화작가 권정생과도 각별히 교유했다.



고향인 충북 충주에서 40년을 함께 산 부인과 2011년 사별하고, 3년 뒤 음악가 출신인 현재 부인을 만나 결혼해 전기도 전화도 없는 강원도 철원 1100고지에서 한해를 지내며 성서를 새롭게 읽고 쓴 원고를 뒤늦게 정리해 최근 <관옥 이현주의 신약읽기>(삼인 펴냄)를 출간했다.



이 목사는 5년 전 순천으로 옮겨 살고 있다. 자신을 ‘아버지’로 부르는, 김민해 목사의 초청에 응했다. 이 목사는 제자이자 자식과도 같은 김 목사가 설립한 이 학교에서 초·중과정 아이들,학부모,인근주민들과 함께하는 마음공부를 이끌고 있다. 이 학교공동체에서 이 목사는 관옥이라는 호를 딴 ‘관옥할아버지’로 불린다.



지난달 13일 전남 순천 해룡면 순천만가에 있는 순천사랑어린학교에서 이 목사를 만났다. 그는 사별한 부인과 재혼한 부인과의 삶을 스스럼없이 소개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과거 바람을 피웠던 이야기는 물론 스승이자 절친인 무위당 장일순이나 동화작가 권정생이 자신에게 해준 따끔한 충고까지도 마치 남 이야기하듯 들려주었다. 진솔한 말과 담담한 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푸르렇다.



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시간에 학생들과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이현주 목사. 사진 순천사랑어린학교 제공

굳이 변명하지않고 고집하지않는 모습에 마음건강법이 담겨있었다. 그는 “이기지 말고, 지라”고 했다. 약자에겐 할아버지가 손주와 씨름에서 벌러덩 자빠지듯이 져주고, 강자에게는 마지못해 지지말고, 속시원하게 져주라는 것이다. 그는 ‘이제 네가 이겼으니 네 마음대로 해라’고 깨끗이 항복하는게 예수가 들어가는 ‘좁은 문’이고, ‘죽음으로써 사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마음공부 선생님으로 마음공부를 이끌고 있다. 그런데도 ‘마음을 굳이 다 알려고 애쓰지않아도 된다’고 했다. 자동차 운전을 잘 하면 되지 정비사처럼 엔진까지 다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을 너무 알려 애쓰지 말고, 마음을 잘 쓰라’고 권유했다.



어떻게 하는게 마음을 잘 쓰는 것일까. 그는 “한가지 생각, 한가지 관점에 목메지 말고, 이리도 생각해보고, 저리도 보라”고 했다. ‘저놈은 원수’같아도 다르게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모세는 ‘한 대 맞으면 한 대만 때려라’고 했고, 예수는 ‘맞으면 똑같이 때리지말고 다른 식으로 해보라’고 했듯이 내가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도 달라보인다는 것이다. 일문일답이다.



-아이들과 하는 마음공부는 어떤가.

“주로 만나는 아이들이 중학생 정도니 손자, 손녀뻘이다.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지 않다.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와 한자리에서 이야기 주고받는 자체가 아주 행복한 일이다. 마음공부를 이끄는 게 아니고 함께 마음공부를 한다.”



-재혼한 부인과 소소한 일상을 <월간 풍경소리>에 늘 공개하는데, 행복한가.

“먼저 간 아내와 40년 같이 살았다. 세상을 떠나기 전 옛이야기를 하면서, 아내가 ‘나한테는 당신이 전부였다. 그런데 당신한테는 내가 전부가 아니었다던 것같다’고 했다. 바로 수긍을 했다. ‘당신한테 내가 전부였다는 것은 몰랐는데, 나는 너무 할일이 많고, 당신한테 전념할수 없었다. 하늘이 다시 기회를 주면, 오직 당신 하나만 중심으로 사랑이 뭔지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럴 마음도 있었다. 한 인간을 나의 전체로 삼고, 산다는게 뭔가를 느껴보고싶었다. 지금 만나 사는 친구에게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아주 고마운 일이다.”






-<월간 풍경소리>에 공개한 일기에 꿈 이야기가 가장 많은데, 일부러 꿈을 기억하는 꿈수행을 하는가.

“환갑이 되던 해 평생 말을 너무 많이 했으니, 침묵해보자고 소위 말하는 묵언을 해 1년간 말하지않고 살아봤다. 그 때 매일 꿈을 꿨고, 기억이 나서 1년 365일 하루도 빼지않고 꿈을 기록했다. 고수가 되면 꿈도 원하는대로 꿔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다. 온갖 꿈을 꾼다.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포르노도 나온다. 세상의 어떤 경험도 실은 나쁜 것은 없다. 꿈에서 겨울에 허허벌판을 헤매다가도 퍼떡 일어나 깨면 안온한 방에서 자고 있다. 그 꿈을 꾸지않았으면 지금 이 자리가 얼마나 편안한지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쁜 꿈, 즉 악몽은 없다. 삶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하는가.

“코로나에 관계없이 옛날부터 종교가 하는게 그런거 아닌가. 무엇보다 생각이 중요하다. 그러나 내 생각이라도 내 마음대로 안 될때가 많다. 생각을 바꿀줄 아는게 좋다. 저 놈이 나를 해꼿이했다는 생각에만 고정돼 있으면 관계가 변화될 수가 없다. 이건 나쁘다는 생각을 바꾸지못하면 쳇바퀴 도는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어제와는 달리 생각해보고, 달리 살아볼 필요가 있다. 모세는 ‘한 대 맞으면 한 대만 때려라’고 했다. 예수는 ‘맞으면 똑같이 때리지말고 다른 식으로 해보라’고 했다. 내가 관점을 달리하며, 세상도 달라보인다.”



-마음공부모임에서 ‘제 마음을 모르겠다’는 한 학생의 질문에 ‘제 마음을 알려하지말고, 어떻게 쓸지를 생각하라’라고 한 이유는.

“냉장고를 샀다고 냉장고에 대해 다 알아야 할 필요 없다. 몇가지 기능을 알고, 고장나면 수리기사에게 맡기면 된다. 자동차도 운동할 수 있으면 되지, 엔진을 다 알 필요는 없다. 대신 자기 마음을 잘 쓰도록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평생 가슴에 담고 산 질문이 있었나.

“사랑이란 무엇인가가 내 질문이었다. 이젠 어지간히 답을 얻었다.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 세상에 왔구나라는 깨달았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누구나 자기가 겪어봐야안다. 굳이 말한다면, 사랑은 내가 하고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내가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고, 사랑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



-평소 ‘가장 잘 다스리는 것은 다스리지않는 것’이라고 한 까닭은.

“일제시대 <성서조선>을 낸 양정고 교사 김교신 선생님의 별명이 면도날이었다. 법도를 정확하기 지키는 분이었다. 딸이 고등학교에 졸업하고 화장품을 바르고 싶어하는데 김교신이 ‘아름다움이란 찍어발라서 되는게 아니고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라고 하니, 크림 하나를 서랍에 감추어두고 몰래 조금씩 바르곤했다. 이를 발견한 김교신이 마당에 있던 바위를 향해 크림병을 집어던지자 크림이 바위를 뒤덮었다. ‘봐라, 저 바위가 예뻐졌냐’고 호통을 쳤다. 그 며칠 뒤 김교신이 친구의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갔다. 자기 딸과 비슷한 또래의 친구딸이 자기 딸과는 달리, 싱글벙글하고 평안한 얼굴을 하고, 정성껏 손님 대접을 하는 것을보고, 그는 일기장에 ‘오늘 하늘 같은 아버지를 보았다’고 썼다. 자신이 아버지로서 뭘 잘못했는지 알았다는 것이었다. 하늘은 누르지않는다. 억압해 다스리는 것은 잘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평소 ‘힘들 것 같아도 가장 쉽고 편한 건 좁은 길’이라고 한 이유는.

“해보니까 그렇더라. 사람들은 지려 하지않는다. 이기려고 눈이 벌겋다. 그게 대세고, 큰길이다. 그러나 예수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면 망한다고 했다. 대세를 거역하라고 했다. 그게 좁은 길이다. 세상은 강자와 약자가 함께 살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은 나보다 강하든지 약하든지 둘 중 하나다. 약자에게 져주는게 진정한 강자다. 할아버지가 손주와 씨름해서 벌러덩 나자빠진다고 손주가 할아버지를 멸시하지않는다. 상대가 나보다 강하면 마지못해 지지말고, 속시원히 져주라. 깨끗이 항복해라. ‘네가 이겼어. 네 마음대로 해라’는게 예수가 가는 좁은 길이다. 죽음으로써 사는 방법이다.”





순천사랑어린학교 공동체원들과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이현주 목사. 사진 순천사랑어린학교 제공

-강연요청이 오면 ‘그 때까지 안죽고 있으면 갈께’하면서, 삶을 계획대로 사는 것과 달리, 되는대로 사는듯한 인상을 주는데, 계획성있는 삶을 살지 않는 까닭이 있나.

“칼 융이 오전 인생과 오후 인생을 구분했다. 오전인생은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사는 삶이다. 오후인생은 큰 존재에 굴복하고 항복한 삶이다. 사랑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 기독교 신자로서, 사랑을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신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이 무슨 계획을 세우나. 그리스도가 계획이 있으시겠지. 나는 따를 뿐이다. 오전의 삶엔 내가 주인공이었다. 내가 예수를 열심히 믿어야했다. 그러나 오후엔 그런 내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과 젊은이한테는 그러라고 안그런다. 아이들에게는 디펙 초프라의 말대로, 가랑잎처럼 바람 부는대로 쓸려가지말로 매처럼 바람을 거슬러서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라고 한다. 젊은시절엔 매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나같은 나이엔 가랑잎같은 오후 인생이 참 편하다. 나는 바람을 믿는다. 여기는 ‘하늘을 따른다’는 순천(順天) 아닌가.”



-<관옥 이현주의 신약일기>에서 예수님의 어투를 반말이 아닌 존대말로 고친 이유는.

“예수는 ‘해라’하는데, 사람들은 존대말을 한다는 것은, 예수는 차원 높고, 우리는 낮은 차원이라는 번역자의 마음이 들어있다. 예수는 ‘나를 따르라’고 했다. 다른 차원에 있으면 예배해야지 따라갈수는 없다. 같은 차원에 있어야 따를 수 있다. 종교라는게 예수께서 원치않는 자리에 모셔놓고는 따르지는 않는다. 종교라는게 대체적으로 하는 게 그런짓 아닌가.”



-외딴 고지에서 성경을 다시 보면서 느낀 예수관이 그 전과 변한 게 있는가.

“옛날엔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다만 교회에서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고 하는데 내가 잘못했으면 내가 죄를 받아야지 왜 남이 죄를 받는지 대속론이 용납이 되지않았다. 그래서 목사가 되어서는 그런 설교는 안했다. 내가 아는 예수는 삶의 길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신학적으로는 길을 앞서 가며 이끌어주는 맏형이다. 예수는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면 산다는 것을 가르주신 분이다. 살려고 발버둥치며, 그 과정에서 남을 짓밟고 이기면 죽고, ‘내가 죽을께 너는 살아’라고 하는 자가 진정으로 사는 자라는 것을 가르쳐준 스승이다.”



-신앙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신앙생활도 아이가 성장하는 것과 같다. 처음엔 먹고싶은 것, 갖고 싶은 걸 달라고 조른다. 좀 더 성숙해지면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자각하게 된다. 기도도 처음엔 말로 하다고, 다음엔 굳이 말하지 않고 묵상으로 한다. 데 데레사 성인은 말로하는 기도는 밭에다 물을 길어 붓는 것과 같다고 했다. 묵상기도는 밭에 수로를 내서 땅을 적시는 것으로, 관상기도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 때가 되면 수로를 낼 필요 없이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이다.”



-기도를 밥 먹듯이 하라고 한 이유는.

“밥을 안먹으면 죽듯이 기도를 안하면 살 수 없다. 실은 말로 하는 기도만이 기도가 아니다. 몸은 한순간도 안쉬고 기도하고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쉬지않는다. 숨이야 말로 진짜 기도다. 우주와 나를 끊임없이 소통케하는 것이 숨이다. 지금도 쉬지않고 우주와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개신교 다원주의자로 손꼽히는 변선환 교수로부터 배웠는데, 변교수가 종교재판에서 잘렸을 때 어땠나.

“종교재판 며칠 뒤 찾아가니 아직은 학교에 계셨다. 그래서 ‘축하드립니다’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고 했다. 그래서 말씀 드렸다. ‘생각해보세요. 선생님과 제가 감리교 신자 아닙니까. 감리교 왕초가 요한 웨슬리인데 웨슬리는 성공회에서 좇겨나지않았습니까. 우리 개신교의 왕초는 루터인데, 그는 천주교에서 파문 당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왕초 중의 왕초인 예수님은 유대교에서 사형을 당하지않았습니까. 잘리고 파문을 당한 예수-루터-웨슬리-변선환 라인의 제자라는게 자랑스럽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래도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면, 부흥사들이 화낼 거 아닙니까’라고 하니, ‘너는 뭐라고 할래’라고 묻기에, ‘기독교 안에도 구원이 있다’고 할것이라고 말하자 껄껄껄 웃으셨다. 실제 변선생님이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한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게 말이 되려면 기독교 밖에서도 구원을 받아봤어야하는데, 변선생님은 기독교 밖을 나가본적이 없는 분이다. 그냥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을걸’ 정도로 했으면 그렇게 당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종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종교는 제일 높은 가르침이라고 하지않은가. 가장 높고 깊은 가르침이지만 스승을 따르는 사람들은 스승만큼 의식 수준이 높지 못하다. 그래서 인간을 억압하기도 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박해하고 폭행하고, 억압하며 못난 짓, 못된 짓도 많이 한다. 하지만 모자란 놈들도 그렇게 모자란 짓하면서 배워나가면 된다.”





순천사랑어린학교 설립자로서 제자이자 자식과도 같은 김민해 목사(왼쪽)과 함께 한 이현주 목사. 사진 조현 기자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교회가 예수를 소외시키는게 가장 큰 문제다. 예수라는 이름을 팔아 살지만, 실제 예수가 설 곳이 없다. 예수가 교회에 들어올려고 하면 그냥 하늘로 올려보내버리고 만다. 리처드 로어가 예수가 이 시대에 다시 온다면 또 한번 십자가에 매달릴 것이라고 했다. 타종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말이다.”



-목사로서 다양한 종교경전을 공부하며 느낀 차이는 무엇인가.

“그런 관점을 갖고 읽은게 아니어서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지 모르겠다. 불경을 읽어보니 마음이 편하고 공감되는게 많아 그냥 읽고, 다른 경전들도 그랬다. 돌이켜보면 20대 때 예수에게 일방적으로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당신이 허락하든 허락하지않든’이라고 했다. 그후 그분께서 진정으로 나를 만나려거든 이 분들도 만나보라고, 공자도 노자도 붓다도 추천해준 것 같다. 그 책을 읽으며 예수와 나 사이가 멀어진다고 생각했다면 더이상 읽지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렸다. 돌이켜보면 예수께서 자신을 더욱 알고 가까이 오도록 그 분들을 소개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무위당 장일순은 어떤 분이었다.

“이 지상에서 경험한 마지막 선생이었다. 그 뒤론 스승이 없었고, 예수만이 남았다. 지리산 천왕봉에 가려면 많은 봉우리를 넘어야하듯이 마지막 봉우리가 무위당이었다. 무위당은 내가 뭘해도 오케이를 했고, 부정적인 말씀을 일체 하지않았다. 마흔살 때 아내 말고 다른 여자와 스캔들이 생겨 힘들고 어려웠을 때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다른 말씀은 한마디도 없이 툭 치더니 ‘일 저질렀구만. 괜찮아. 수습 잘해. 잘하면 일 안저지른 것보다 더 나아’라고 했다. 내가 교회에서 쫓겨났다고 하면, ‘왜 쫓겨날 짓을 했느냐’고 물어야 내가 말이 길어질텐데, ‘자네가 목사질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 분은 관점이 달랐다.”



-장일순은 가톨릭 신자로서 동학의 해월 최시형을 사숙해 한살림운동을 펼쳤는데, 그 분의 종교를 어떻게 보나.

“종교인으로 출발했지만, 종교의 울에서 벗어난 분이다고 믿는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독교 신자의 목표가 있다면 기독교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본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의 운명이다. 종교는 하나의 틀일 뿐이다.. 번데기 같은 틀이다. 애벌레가 고치 속에 들어간 것은 그 속에서 영원히 살려고 그런게 아니다. 봄이 되면 나비가 되어 날려고 들어간 것이다, 한 종교의 울타리에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다. 크리스찬의 목표는 크리스찬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장일순이 그런 분이었다.”



-권정생 선생은 어떤 분이었나.

“이오덕 선생님이 ‘얼마 안있으면 죽을 사람이나 빨리 만나보라’고 소개해줘서 만났다. 여섯살이 많아서 형이라고 불렀다. 평생 중병을 앓아 본인도 얼마 못살지알았는데 70살이 되었다. 그래서 ‘형을 살게한 에너지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글을 안썼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 형은 늘 열이 있어서 하루에 원고지 열장 이상 쓰기 어려웠다. 글이 권정생의 천직이었다. 천직은 에너지를 뺏어가는게 아니라 에너지를 주는 일이다. 형은 죽을 때까지 형노릇을 해주었다. 죽기 얼마전 나를 가만히 보더니, ‘거, 남 가르칠려고 하지 마래이’라고 했다. 무위당도 ‘남이 묻지 않은 말에 답하지 말라’고 했다. 남을 가르치려 드는 나를 바로잡아준 유언들이다. 참 고맙게 생각한다.”



-기독교장로회의 설립자인 장공 김재준, 그리고, 장공의 제자로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문익환 목사와 공동성서 번역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장공의 아들과 내 여동생이 결혼해 사돈이 됐다. 여동생 부부가 여기 내려와 살고있다. 장공은 워낙 말씀이 없으시지만 내 신학교 졸업식 때 오셔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공동성서 번역 때 문익환 목사님 밑에서 심부름했는데, 가끔 나한테 당신의 시를 읽어보라고 했다. 처음엔 윤동주 시의 습작 느낌이 났는데, 명동사건으로 감옥에 갔다가 나와서는 시의 격이 달라져있었다. 그래서 곰이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됐다더니. 문목사님이 감옥에 다녀오더디 시인이 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화와 불안과 두려움이 많은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나.

“그런 감정들은 물리쳐 싸워 이겨야할 것들이 아니다. 불안을 경험해보지않으면 편안을 모른다.”



-그처럼 코로나도 이겨야할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병은 태초부터 같이 살아온 것이다. 생명이 언제 안아픈 적이 있었나. 만약 눈알이 노랗게 되면 노란 것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간이 나쁘다는 신호구나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간이 안좋으면 간만 문제 삼을게 아니라, 맨날 술 먹고 피로하게 한 내 습관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봐야지 드러난 것만 봐서는 병을 근치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코로나는 인류를 돕기 위해 왔다. 아직도 방역 차원에서 없애버리려고만 하지말고, ‘우리가 뭘 잘못했나. 어떤 삶을 고쳐야하나를 일러주는 신호로 봐야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했을 때 병은 저절로 물러가게 된다. 옛말에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코로나는 잡어먹으려 온게 아니라, 정신 차리라고 온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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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09972.html?fbclid=IwAR3MUIZCvrad_vEeyB1IWcvueQEvLPAICD7aFCyzd02C7YPp1F3MEnwcCBE#csidx3fb6127f2772b10bb43dc325fb23401

김용옥·박맹수·백낙청 '동학의 길'을 찾다…창작과비평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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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 수록
특집 '촛불 5년, 새로운 진전을 위하여' 통해 이후의 방향성 모색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2021-08-30

창작과비평 가을호© 뉴스1

계간지 창작과비평이 이번 가을을 맞아 동학의 길을 묻는 특별좌담과 촛불혁명의 새로운 진전을 내다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특별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에는 철학자 김용옥을 비롯해 박맹수와 백낙청이 함께했다. 이들은 서구 중심의 고답적 사유를 격파하는 뜨겁고 실천적인 토론을 나눴다.


특집 '촛불 5년, 새로운 진전을 위하여'에서는 촛불혁명의 중요한 계기가 될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지난 5년을 돌아보며 촛불의 동력을 짚으면서 이후의 방향성을 모색했다.

이외에도 천안함사건을 다루는 방식, 팬데믹 시대의 동물권, 문학 비평과 창작 등 또다른 읽을거리도 담았다.

신작 시는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은 남현지를 비롯해 강은교, 김미령, 박성우, 안주철, 이규리, 이설야, 임선기, 장미도, 장승리, 조인호, 최지인의 시를 담았다.

소설은 최은미의 장편소설 '마주' 세번째 분량과 함께 단편소설에 강화길의 '복도' 김려령의 '기술자들' 손보미의 '불장난' 등이 실렸다. 특히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은 성혜령의 '윤 소 정'을 눈여겨볼만하다.

평론에는 한기욱의 '한국 근대를 살아냈을 뿐'을 비롯해 ' 박소란의 '나는 왜 너인가' 김주원의 '휴머니즘의 외부와 열림의 존재론'이 실렸다.

창비 편집위원 백지연 문학평론가는 "(코로나19 대유행에는) 차별받는 소수자의 삶에는 한 사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잠복해 있다"며 "촛불시민이 열어놓은 변혁의 상상력을 보편적인 과제로 인식하고 연대해야 하기에 이번호를 통해 새로운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을 만들어나가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밝혔다.

◇ 창작과비평 193호 (2021년 가을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창비/ 1만5000원.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