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4

임천고치: 산수화론의 교과서 강판권 교수



임천고치: 산수화론의 교과서
강판권 교수
조회수: 4,814
등록일: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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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는 자연 생태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담고 있다. 중국 북송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는 산수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숲과 샘을 의미하는 ‘임천’은 물러나 거주하는 곳, 은자가 사는 곳,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을 뜻한다. 곽희의 산수화 이론서인 『임천고치』는 이후 중국과 한국 산수화의 교본이었다. 『임천고치』 중 권 1의 ‘산수훈(山水訓)’은 작품의 핵심이다. 군자가 산수를 아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곽희에 따르면 군자가 산수를 사랑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항상 마음이 두는 것은 언덕 동산에서 인간의 본성을 기르는 것이고, 늘 즐기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풍경인 천석(泉石)에서 휘파람 불며 노니는 것이고, 늘 힘쓰는 것은 고기 잡고 땔 나무하며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것이고, 늘 가까이하는 것은 우짖는 원숭이와 하늘 나는 학이다.

내가 곽희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산수 보존이 인간의 삶에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는 곧 인간의 본성이고, 산수는 인간 본성의 어머니다. 인간이 산수를 훼손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본질을 허무는 것과 같다. 누구나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한 이유는 숲과 계곡이 곧 자신의 원초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근의 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 이유는 산이 방역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이 방역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숲과 계곡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숲이 울창한 우리나라의 산은 코로나19 시대에 매우 중요한 방역 자산이다. 문제는 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다.

『임천고치』에는 산수에 대한 관점, 즉 ‘삼원설(三遠說)’을 소개하고 있다. 삼원은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바라보는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 뒤를 엿보는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平遠)이다. 삼원은 산수를 그리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이론이다. 산을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그만큼 산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내가 『임천고치』에서 주목하는 또 하나는 화면상의 산(山)·목(木)·인(人)의 크기에 대해 상대적 관계를 설명한 ‘3대(三大)’다. ‘삼대’는 산수와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의 이 같은 인식은 생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