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땅 ‘덴마크’를 윤택하게 한 종교인 ‘니콜라이 그룬트비’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보도본부 | 이연선 pro
승인 2018.12.15
[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이연선]
▶ 니콜라이 그룬트비(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
▶ 출생-사망 / 1783.9.8 ~ 1872.9.2
▶ 국적 / 덴마크
▶ 활동분야 / 역사가, 신학자, 정치가, 시인
▶ 주요저서 / 북구 신화(1808)
메마르고 척박했던 덴마크를 개척해 세계적으로 살기 좋은 국가로 만드는 데 공헌하여 중흥의 아버지로 불렸다.
- 어려서부터 함양한 종교적/국제적 신념
니콜라이 그룬트비는 춥고 메마른 땅이었던 덴마크 셸란 지역의 작은 섬마을에서 덴마크의 국교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렇게 집안의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종교적 마인드를 지니게 된 니콜라이는 어려서부터 종교 활동에 활발한 부모님과 여러 나라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고국인 덴마크와 주변의 여러 나라의 상황을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었고, 6세 때 덴마크로 다시 돌아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었다.
- 농촌 목사를 통해 깨달은 ‘교육’의 중요성
집안에 종교적 분위기에 따라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한 니콜라이는 졸업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루터교 목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1808년 <북유럽의 신화>라는 시집을 발표해 종교인이 아닌 시인으로 처음 입문해 명성을 얻기도 했다. 이후 농촌마을 교회에서 농민들의 신앙을 지도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대리 목사에 임명되었으며 코펜하겐의 구주 교회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니콜라이는 가난한 농민의 삶에 연민과 책임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교육의 필요성에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니콜라이의 종교활동뿐 아니라 이후 정치적인 입문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국민의 나아진 삶 위한 실질적 종교 역할에 대한 고민
1825년 유리파의 대표자로 대학교수인 클라우젠이 ‘가톨릭교 및 신교’를 저술 발표하자, 니콜라이는 바로 ‘교회의 대답’이란 저서를 발표했다. 틀에 얽매인 신앙을 강요하기보다 신앙의 자유를 호소한 책으로 이 책을 통해 니콜라이는 국민에 더욱 실질적이 도움이 되는 종료가 필요함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피력하기 위한 표현들이 다소 강하고 거칠었기에 7년간 설교 금지 처분이 내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공백의 시간을 니콜라이는 허투루 보내지 않고 그동안 문학에 더욱 전념해 폭넓은 사상을 지니게 되었다.
- 실용적 교육의 필요성 절감, ‘생활학교’ 주장
니콜라이는 젊은 시절 다양한 활동을 하며 견문을 넓히기 위해 영국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그리고 영국 여행을 통해 당시 월등한 선진국이었던 영국 국민들의 여유로운 삶에 큰 감명을 받았는데, 특히 당시 덴마크 교육의 중점이던 인문주의적 경향이 실제 삶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덴마크 청소년들의 교육을 일컬어 ‘죽음의 교육’이라는 표현까지 한 것을 보면 당시 받은 깨달음이 얼마나 컸는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니콜라이는 덴마크에서 점차 교육 개혁에 관심을 두었고 ‘생활학교’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설립을 호소하였다.
- 소농 제도 확립에 기여하다
니콜라이는 1848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방의 의무, 신앙, 언론, 출판, 집회 등의 자유를 위하여 지도적 발언과 행보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 가며 다음 선거에도 당선, 그때부터는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도들을 마련해 나갔다. 대표적으로 니콜라이는 토지 문제에 있어서 누구나 자기 나라에서 토지를 소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역설하고, 덴마크 소농 제도 확립에 기여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특히 국민 생활을 개선하려 하고 이 목적을 위하여 국민 고등학교의 창설을 주창하여 설립되어 국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등 메마른 땅 덴마크를 개척해서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나라로 만든 데 크게 공헌했다.
조국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예부터 전하는 민족정신과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하여 국민부흥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니콜라이 그룬트비. 그는 일생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땅을 사랑하자"라고 호소하며 세계적 농업국, 평화적인 문화국가 ‘덴마크’ 건설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그렇게 조국 덴마크를 개척하였고 덴마크를 세계적인 아름다운 나라로 개혁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니콜라이 그룬트비는 "덴마크 중흥의 국부(國父)"라 일컬어지며 현재까지도 덴마크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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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시선뉴스] 메마른 땅 ‘덴마크’를 윤택하게 한 종교인 ‘니콜라이 그룬트비’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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