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7

아둘람온라인공동체 |YoungMin Jung [도대체 신학이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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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Min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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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신학이 왜 필요한가...??]

신학...철학, 법학, 의학과 함께
찬란했던 그 시절
신학은 학문의 여왕이라 했다.
아~ 옛날이여...
신학이 교회를 위한 학문이라고..??
그러면 교회밖의 사람들에게는
무슨 가치나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어떤 의미도 그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 가는 것...”
(가수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 가사 ㅎㅎ)

이번에 한국에서 구입한 일본신학자 후쿠이 토모아키의 [신학을 다시 묻다-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 를 읽고있는데
괴테가 쓴 [파우스트]에 주인공 파우스트가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세계를 가장 내밀한 곳에서
통괄하는 힘이 무엇인가?
그것을 알고싶다.
모든 작용력과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을 보고싶다.”
[파우스트 382-84행]

철학이나 법학, 의학을 배웠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는
참된 앎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신학을 접하자
그는 한탄한다.
“아아, 신학마저도!”
[파우스트 356행]

한 때 서구 신학자들에게 신학함은
자신의 구원에 관한 ‘증언으로서의 신학’을
추구함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비그리스도인에게
또는 기독교가 제시하는
‘증언의 진리성’을 받아드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학은 아무런 연관없는
탁상공론이 되어 버린단 말인가?

하지만 신학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적 진리를 전제하고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거나
혹은 그 내용이해를 돕는 학문이라는
전통적 정의가 무색하게
이제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신학은 시대착오적인 자가당착이요

폐기처분되어야 할 낡은 유물이 아니라
고물이 되어버렸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후카이 토모아키는 신학은 마치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맹장과 같다고 했지만
나는 오늘 날의 수 많은
기독교신자에게 신학이란
복음의 진리를 일부러
어렵게 만들어버리며 딴지와
태클을 걸어대는 세속화된 간첩(?)이
되어버렸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런 건 신학자들이나 관심있는 거니
그들끼리 싸우라고 해!....’
‘이건 너무 신학적인데요.
이렇게 긴 설명을 참고 들어줘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잡다한 신의 이름이
8백만가지도 더 된다는 일본사회...
‘신가쿠’(신학 神學)을
‘신가쿠’ (진학 進學) 으로 알아듣는
일본사회...
 
게다가 신학이란 말을 평생
들을 필요도 없으며
몰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없는 신학....
그 속에서 신학을 하는
후카이 토모아키는 말했다.
 
“...신학은 종교 그 자체가 아니며
신앙의 대상 또한. 아니다.
그 점에서 신학은
그리스도교 교리나
신조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예수는 참된 하느님이시며,
참된 인간이시다” 라는
고백(칼케돈 신조)은
그리스도 교회의 교리다.
또한 교회는 사도신경과 같은
신조를 갖고있다.
신학은 이 교리와 신조를 연구하고
해설하지만 그 자체가
교리나 신조는 아니며
이를 만들어 내지도 않는다”

“의학이 병원이라는,
법학이 법정이라는
‘실천의 장소’를 갖고 있듯
신학은 교회라는 실천의 장소를 갖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많은 사람이
신학을 사변적인 것만을
취급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실제 신학은
구체적인 현장을 가진
뚜렷한 실천적인 학문이다. “

생태여성신학과 토착화신학, 흑인신학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민중신학자
아시아 해방신학자, 조직신학자인 나에게
신학은 지극히 현실적인 미국/한국의
정치, 사회, 종교, 문화적 현실을 해석하며
파생되는 온갖 문제에 대처하게 해주는
매우 탁월하고 유용한 학문적 도구이다.
 
최소한 나에게 만큼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며 매일 매일의 삶과
깊게 관련된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자주 듣는다...
조직신학이 신앙을 조직적으루다가
‘베려’ (?) 버리게 만든다고....
하지만 내가 섬기던 개척교회
예수행교회의 성도님들께서는
모두 한결같이 2019년부로 나를
놓아주시며 신학자의 길로
가라고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셨다!

그러므로 신학연구차
한국에 나와있는 나

지금 이 순간도 그들에게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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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을 다시 묻다 -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  | 비아 제안들 시리즈  
후카이 토모아키 (지은이),홍이표 (옮긴이)비아2018-02-26원제 : 神學の起源 - 社會における機能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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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독일 근대 사상 연구자이자 신학자 후카이 토모아키의 신학 입문서. 그리스도교가 인류사에 등장한 이후 2,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리스도교 신학이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감당해왔는지 또한 신학은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이른바 세속화 시대, ‘신학무용론’이 등장한 이 시대에 작게는 신학의 의미, 넓게는 그리스도교의 의미를 되짚는 저작이다.

오늘날 무수한 사람들이 교회의 기능과 의미에 대해 묻는다. 심지어 인류와 사회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리스도교 교회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해서는 더욱 날카로운 시선을 보낸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에 무관심하며, 교회에 다니는 이들조차 그리스도교 신학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해 질문한다. 세속화 시대와 근본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신학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후카이 토모아키는 우리에게 거꾸로 되묻는다.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신학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인류사에 그리스도교는 실질적으로 어떠한 흔적을 남겨왔는가? 그리고 신학은 어떠한 기능을 해왔는가? 저자는 역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며 그리스도교와 신학에 대한 파편적인 평가와 비판에 응답하고자 한다. 40여권의 저서와 역사를 출간하며 현재 일본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신학자로 꼽히는 저자를 통해 한국을 포함한 비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와 신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될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01. 아아, 신학마저도! -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전통적인 ‘신학 제 분야 해제’라는 답 / 신학 ‘입문’ / 우리 시대의 신학관 / ‘신학’이라는 학문의 사회사 / 이 책의 구성과 목적

02. 왜 “예수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고 가르쳤지만, 이 땅에 생겨난 것은 교회”였던 것일까?
신학은 왜 필요하게 되었나? / 종말의 지연 / ‘하느님 나라’ 사상의 대개조 / 신학의 탄생 / 두 개의 신학관

03. 그리스도교적 유럽의 성립과 신학
중세라는 무대 설정 / 유럽의 그리스도교화 / 중세 신학의 탄생과 ‘바로 옆의 철학’ / 신학 논쟁으로서의 보편논쟁 / 과학으로서의 신학 / 신학과 정치 / 중세 신학의 종언

04. 종교개혁과 중세의 몰락
중세의 끝과 근대의 시작 / 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사건들 / 종교개혁의 쇠퇴 과정 / 신학과 내셔널리즘

05. 17세기 영국의 개혁과 신학의 시장화
영국 국교회와 청교도 / 청교도의 등장과 신학의 성격 변화

06. 레 미제라블 - 프랑스 혁명과 신학
교회적이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그리스도교의 등장 / 그리스도교를 교회로부터 끊어내기 / 종교의 사사화로서의 세속화와 신학의 새로운 모습 / 대혁명으로부터 라이시테까지의 여정 / ‘교회의 신학’과 ‘교회를 혐오하는 그리스도교 신학’

07. 실용주의로서의 신학
‘자발적 결사’로서의 국가, 미국 / ‘브로드웨이’에서의 신학? / 실용주의와 신학

08. 신학의 현실성
교회에서의 신학 / 신학은 필요한가? / 철저한 상대화

집필 후기

옮긴이의 말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이 장에서는 먼저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보려 한다.
P. 36 시대별로 신학이 놓였던 사회 상황을 분석하면 그 당시 신학이 무엇으로 존재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마찬가지로 시대별로 신학이 놓인 사회 상황을 분석하면 신학에 영향을 준 시대정신의 특징이나 지배적인 사상이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 점에 주목해 신학이 과거에 무엇으로 존재했는지, 그리고 현재는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살피려 한다.  접기
P. 61 예수는 신학 저작을 남기지 않았고 현세를 긍정적으로 조정하거나 제도로서 종교 단체를 규정하는 가르침도 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예수의 제자들, 특히 이후 예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각 시대의 문화권에서 발전한 다양한 학문이나 상식을 어떻게든 연결해야만 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경우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헬라 사상과 헬라어를 사용해 어떻게든 헬라 문명이라는 세계에 번역해야만 했다. 그들은 이를 위해 이미 사용되고 있던 ‘신학’이라는 말을 선택했다. 따라서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종교 공동체 내부에서는 자신들이 믿고 있던 내용을 동시대 문화 환경에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고 외부를 향해서는 예수가 전한 가르침을 사상적, 문화적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맡았다.  접기
P. 78 이처럼 그리스도교화된 사회의 구조에서, 그리스도교는 세계의 모든 구조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체계, 즉 신학이 필요했다. 중세 신학은 이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 시기 신학은 오늘날로 치면 정치학임과 동시에 사회학이었으며 철학임과 동시에 도덕이고, 자연을 설명하는 과학이기도 했다. 즉 신학은 모든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이론과 사고방식을 제공했다.  접기
P. 128~129 청교도 교회의 등장은 국교회가 독점하던 종교 시장에 균열이 났음을 뜻한다. 좋게 보면 국가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시장에 새로운 민간 업체가 도전장을 내민 것에 견줄 수도 있다. 영국 국교회의 경우 시초부터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었기에 자유롭게 경쟁을 한다 해도 시장 구조는 청교도 교회에게 불리했다. 게다가 국교회는 법으로 강제력... 더보기
P. 146 이렇게 종교는 교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프랑스) 혁명정부의 통제 아래 놓였다. 무엇이 바뀐 것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의 장소가 바뀌었다. 그리스도교는 ‘교회’에서 ‘인간’, ‘인간의 마음’이라는 곳으로 장소를 옮겨 갔다. 인간의 내면, 혹은 마음은 근대 시기 가장 전형적인 ‘종교의 장소’다. 그 전까지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 혹은 서유럽 전체, 한 국가 등 전체 사회의 공공성과 연관되어 있었으며 사회 전체의 윤리를 다루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그리스도교는 ‘개인’으로, ‘개인의 내면’으로 그 활동 장소를 옮겼고 이에 따라 신학도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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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후카이 토모아키 (深井智朗)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64년생. 도쿄신학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독일 아우구스부르크대학교에서 19세기 독일 개신교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Dr. Phil., 교토대학교 대학원에서 20세기 신학사에서의 신인식 문제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릿쿄대학교 대학원 등의 외래 교수, 세이가쿠인대학교, 긴조가쿠인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토요에이와조가쿠인대학교 교수 및 동 학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독일 근대 사상사 연구자이자, 지성사 및 사회사적 관점에서 신학을 성찰하고 비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의 의미를 되새기려 하는 신학자이다. 40여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해 현재 일본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학자로 꼽힌다. 지은 책으로 『초월과 인식』超越と認識(나카무라 하지메상 수상), 『하르낙과 그의 시대』ハルナックとその時代, 『사상으로서의 편집자』思想としての編集者(한울, 2015) 등이 있으며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하르낙의 『그리스도교의 본질』, 트뢸치의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판넨베르크의 『세속화된 세계에서의 그리스도교』 등을 일본어로 옮겼다. 접기
최근작 : <신학을 다시 묻다>,<사상으로서의 편집자 (반양장)>,<사상으로서의 편집자 (양장)> … 총 4종 (모두보기)
홍이표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연세대에서 신학과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동대학원에서 신학석사(Th.M.)를, 교토대학(京都大學)에서 문학석사(M.L.)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교토대 박사과정(사상문화학 전공)을 수료하였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학박사(Ph.D.) 학위를 받은 뒤, 메이지가쿠인대학 그리스도교연구소 협력연구원, 교토대학 강사 등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감리교 선교사로 도일한 후, 가가와 목사의 고향이자 첫 활동의 무대였던 일본기독교단 효고교구를 거쳐 교토교구 탄고미야즈교회(丹後宮津敎會) 주임목사로 활동했다.
최근작 : <아시아 공동체와 평화> … 총 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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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신학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신학과 사회, 신학과 역사는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아왔는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왕성한 학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학자 후카이 토모아키의 흥미로운 그리스도교 역사 읽기

“이 책은 일종의 ‘학문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제가 이러한 시도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신학은 분명 ‘교회의 학문’이지만 교회라는 담을 넘어 지속해서 사회의 영향을 받았고 또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라는 컨텍스트는 신학의 텍스트를 낳고, 그렇게 나온 신학의 텍스트는 다시금 사회라는 컨텍스트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상호 관계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신학이라는 학문이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감당해 왔는지, 특히 그 변천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능과 의의에 의문을 표하는 모든 이에게 신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어판 서문 中

독일 근현대 사상 연구자이자 신학자인 후카이 토모아키의 신학 입문서. ‘비그리스도교계’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자’라는 위치에서 일반 독자와 그리스도교인 독자 모두를 염두에 두고 쓴 신학 입문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교가 2,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리스도교 신학이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감당해왔는지 또한 사회는 신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한다.
오늘날 무수한 사람들이 교회의 기능과 의미에 대해 묻는다. 심지어 인류와 사회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리스도교, 혹은 교회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시선은 더욱 싸늘하다. 한편에서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무관심하며, 교회에 다니는 이들조차 그리스도교 신학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해 질문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세속화 시대와 근본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신학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은이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피고 이와 맞물려 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성격을 바꾸어왔는지를 탐구하면서 저 질문에 응답한다. 예수의 죽음 이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발생한 ‘신학적 물음’이 어떻게 신학이라는 학문으로 정착하는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뒤 서유럽 세계로 확장하는 흐름과 맞물려 어떻게 그 성격이 변화하는지, 그리스도교 유럽의 붕괴 이후 신학은 어떻게 전환했는지, 그리고 근대 세계 출현 이후 새롭게 바뀐 모습은 어떠한지를 살핀다. 이를 통해 흔히 생각하듯 신학은 고정불변의 학문, 초월적인 영역에만 관심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교회, 사회와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학문, 지극히 현실적인 학문이라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40여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하며 현재 일본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신학자의 저작답게 역사와 신학에 대한 다채로운 지식과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접할 수 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서구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와 신학이 어떠한 기능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교양서적으로,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신학에 대한 새로운 형식의 입문서로 다가갈 수 있는 저작이다. 그리스도교와 신학에 대한 파편적인 평가와 비판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 신학이란 무엇인지, 오늘날 신학의 기능과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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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들이 신학의 역사를 개괄하기에도 아주 좋은 책입니다.
˝기독교 사회가 아닌 일본에서 신학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는 질문을 가지고, 답을 찾기 위해 초대교회부터 유럽-미국으로 이어지는 신학의 역사를 훑어봅니다. 한국교회도 같은 질문을 가지고 답을 모색해야할 때 아닐까요  구매
햇살보다 2018-03-2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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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술술 읽히는 문체와 저자의 깊은 성찰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탁월한 신학 입문서. 전공자의 입장에서도, 이제 막 신학의 세계에 들어선 사람에게도 깊이 생각할 거리를 주는 보기드문 책이라 봅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구매
parksinbu 2018-03-2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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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필요한가? 새창으로 보기 구매
김지방
어제 오전 12:05 · 
기독교사회가 아닌 일본의 대학에 신학과가 필요한가?

도쿄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저자는 이런 질문을 가지고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개괄한다.

초대교회는 왜 신학을 만들어야 했는가? 중세 유럽사회는 왜 신학에 매달렸나?

(종교개혁 이후) 독일에서, 영국에서, 프랑스와 미국에서 당대의 신학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모두 8차례 일본의 일반인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강연한 내용이라 그런지 잘 읽힌다. 수많은 신학자가 언급되지만 주석이 충실하게 돼 있어서 신학을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들도 읽어나가기 어렵지 않다.

저자가 결론에서 하는 얘기가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서 내가 가지는 질문과 닿아 있어서 앞으로 그의 사상이 어떤 경로로 뻗어갈지 궁금해졌다.

"신학은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에게 진정한 상대화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고 신학은 현대 사회의 관용 없는 그릇된 절대주의, 그 반대편에 있는 무절제한 상대주의, 그리고 그 양쪽에 잠복해 있는 자기절대화 모두를 거부하고 비판한다. .... 그리스도교가 본래 가지고 있던 모습과 사회적인 기능을 회복하는 일에 신학이 기여함으로써 신학은 오늘날 세계에 말을 건네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현대인, 특히 대한민국에서 사는 대다수는 초월에 대한 믿음이나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나'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나' 바깥의 세계와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나 바깥의 세계를 인정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SNS나 미디어를 통해 바깥의 세계를 만나는 것 같이 착각하지만 사실은 자신과 같은 시각의 무수한 변주를 보면서 "음 나와 같은 생각인 사람이 많군=내가 맞군"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더 크다.

굳이 타인을 만나야 할까? 왜 낯선 세계와 조우해야할까?

지난 대통령선거 때 일이다. 사전투표 첫날 투표를 하고 온 사람들 중 일부가 "후보자들 이름 사이에 빈틈이 없어서 엄청 긴장하면서 도장을 찍었다"고 온라인에 올렸다. 후보자 이름 사이에 빈틈이 없으면 공식투표용지와 다르기 때문에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누군가 지적하자, 많은 사람들이 "나도 같은 경험을 했다"면서 무효표를 만들기 위한 음모일지 모른다고 흥분했다. 이들은 "바로 몇시간전에 내가 투표하고 왔는데, 분명히 후보자들 이름 사이에 빈틈이 없었다"고 확신하고 맹세했다. 투표조작 우려가 점점 커졌다. 하지만 사전투표 이틀째에는 그런 보고를 한 사람이 없었고, 최종투표 뒤 개표에서도 그런 표는 나오지 않았다. 후보가 많아서 칸이 좁아졌는데, 신중하게 투표하느라 긴장한 사람들이 착각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더 큰 진실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 착각을 주고 받으며 잘못된 확신을 키웠을 뿐이었다.

낯선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자폐적 나르시즘에 머무는 미숙한 존재가 되기 십상이다.

초월적인 세계가 있든 없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So I don't care).

내가 보기에는, 어떤 면에서 현대(한국)인은 자신의 세계에서 신의 존재를 지우면서 타인의 존재마저 삭제해버렸다. 나보다 더 큰 어떤 존재-그것이 생명이든 세계이든 에너지든 우주든-앞에 나를 상대화시키는 경험은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한대로 관용없는 절대주의나 극단적인 상대주의의 오류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다.

그런 길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학이 이 시대에 해야하는 역할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깊이 공감이 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비기독교사회에 사는 우리는 이 지점에 머물지 못하고,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친다.

그 구원의 길이 굳이 기독교의 야훼여야 하는가? 그것이 굳이 예수이어야 하고, 그 세계를 교회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도 우리는 비기독교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오늘 한국(과 일본)의 모든 기독교인에게 놓여진 질문이다.

물론 기독교 신앙을 장식으로 걸고 있지 않는 한 기독교인들은 저마다 이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답들을 함께 내어놓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교회에선 정해진 답만을 말하기를 바라고, 신학은 그런 교회에 복무하기만을 요구 받고 있다.

기독교인도 아닌 일반인들이 신학자와 이런 강연회를 가지고 또 그 내용을 책으로 정리해 펴내는 일본사회와 교회의 힘이 조금 부럽다.




신학은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에게 진정한 상대화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고 신학은 현대 사회의 관용 없는 그릇된 절대주의, 그 반대편에 있는 무절제한 상대주의, 그리고 그 양쪽에 잠복해 있는 자기절대화 모두를 거부하고 비판한다. .... 그리스도교가 본래 가지고 있던 모습과 사회적인 기능을 회복하는 일에 신학이 기여함으로써 신학은 오늘날 세계에 말을 건네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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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보다 2018-03-31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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