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5 h ·
어제 폭염이었지만, 선풍기도 필요없을 정도로 시원한 한낮의 고운동에서 강영구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세균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인간이 이길 수 있을까?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백신 같은 기능적 방법으로 가능할까?
극복의 길은 결국 사랑ㆍ양보ㆍ겸손의 길이라는 강 신부님의 이야기에 동의하면서, 나는 각자도생의 차가운 거리두기로는 자칫 생태파시즘 앞에 스스로를 노출할 수 있다는 위험을 지적하였다.
우리의 민주주의 안에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의식과 단순소박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행복관의 변화가 그 내용으로 담겨야 한다는 생각들을 나누었다.
예수의 출가와 광야에서의 40일 간의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하산, 12제자와의 만남과 복음 선포 등을 석가의 그것과 비교하며 그 근본이 회통한다는 강 신부님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특히 예수의 깨달음의 핵심이 본인이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을 화제 삼아, 두 길의 선택에 대한 사제로서의 진솔한 고뇌를 말씀하셔서 감동을 받았다.
두 길, '상선벌악(선은 상주고 악은 벌한다)'과 '동체자비'의 길에서 결국 어디에 설 것인가라는 선택 앞에 사람의 아들이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때로는 백척간두에 몸을 던지는 결단일 수 있다.
나는 현실적으로 '미움과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가?'라는 인류사의 진보를 향한 질문과 이 두 길 사이의 선택이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미움과 분노 없이'라는 것은 인간의 현실에서 너무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적어도 '휘둘리지 않고' 정도는 목표로 삼아야 지금의 난국과 위기를 넘어 새로운 전환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인자라야 능히 미워할 수 있고, 진실로 인을 구하면 미움이 없다'
라는 내 해석을 말했는데, 보통 해설서들은 '진실로 인을 구하면 악함이 없다'라고 번역을 한다.
미움과 악함이 한자가 같기 때문이지만, 문득 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길도 '상선벌악'의 길이 아닌 '동체자비'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라면 '악이 없다"라는 번역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마지막은 최치원 선생의 피리 대신 강 신부님의 플륫 연주를 들었다.
영화 미션의 주제가 였다는 넬라판타지아였다.
뜻깊은 피서였다.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고운동의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