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7

유쾌한 불교 ゆかいな仏教 | 오사와 마사치.하시즈메 다이사부로 | 알라딘

유쾌한 불교 | 오사와 마사치.하시즈메 다이사부로 | 알라딘


유쾌한 불교 - 대담으로 만나는 불교의 요체
오사와 마사치,하시즈메 다이사부로 (지은이),김보라,김태진,이하늘 (옮긴이)북드라망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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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의 저명한 두 사회학자가 불교란 어떤 종교이며, 어떻게 2천5백 년 동안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역사·사회·철학·종교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대화를 나눴다. 오사와의 집요한 질문과 하시즈메의 적절한 답변의 형식이 마치 잼세션처럼 펼쳐지며, 한 편의 불교재즈를 듣는 기분이다.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는 점,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 부파불교로부터 대승불교로 전환하게 된 과정, 대승의 논리구조와 보살의 의미 등 불교와 관련한 다종다양한 주제가 이어져, 읽다 보면 불교의 큰 줄기를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붓다와 예수 그리스도의 비교를 통해 두 종교의 특징도 선명하게 드러낸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시초의 불교
불교를 정의하다│그리스도와 붓다│깨달음은 어째서 공허해 보이는 걸까?│부처보다 깨달음이 중요하다│예언자와 붓다│불교와 힌두교│안티 힌두교│카스트로부터의 해방│불교는 왜 사라졌는가

제2장 초기의 불교
일체지(一切智)와 전지(全知)│‘고’(苦)란 무엇인가│죄인가 괴로움인가│무엇이 ‘고’인가│니르바나(열반)와 신의 나라│열반은 천국인가│인간들이 다투는 이유│승가의 역설│승가의 개인주의│무상하다는 것│불교의 핵심│미니멀리즘과 철학 마니아│적극적 자유에 대하여│‘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문답이냐 명상이냐│자비란 무엇인가

제3장 대승교로
불탑신앙기원설│왜 스투파인가│붓다를 찾다│다르마란 무엇인가?│원래 대승이란│붓다로 돌아가라│대승은 뛰어나다│대승의 논리구조│이타행

제4장 대승교라는 사고
석가불은 특별한가│다불사상(多佛思想)│아미타의 ‘본원’│인과론과 자유의지│인과론의 곤란함│10년 전의 자신│극락은 예비학교다│붓다와 불국토│보살의 작용│현기증 효과의 매혹│보살은 세속적 금욕일까?│수기란 무엇인가│보살의 자비│마르크스주의와 불교│회향이란 무엇인가│깨달음은 극한이다│공(空)이란 무엇인가│진리의 상기설│언어와 공

제5장 대승교에서 밀교까지
나가르주나│부정신학인가?│『반야심경』에 대해│프로세스를 소중히 여기다│칸트의 초월론│불성에 대하여│자리(自利)와 이타(利他)│유식에 대하여│유식론은 현대적이다│발심의 효력│진구의 유식론│불교는 독아론인가?│『대승기신론』을 둘러싸고│붓다가 인간이라는 것│Σ붓다의 비밀│삼신론에 대하여│밀교와 그 배경│탄트리즘이란│불교의 끝

결론: 지금, 불교를 생각하다
후기 /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책속에서


불교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깨달음’이라는 사고방식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깨달음’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① 지식이다. 그것은 개인의 정신활동입니다. ② 그 지식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그보다 커다란 지식은 없으므로, 그 지식 안에는 이 우주의 모든 것이 포섭되어 있습니다. 의외의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③ 그 지식을 말로 할 수 있는가 하면, 할 수 없다. 말은 깨달은 사람, 깨닫지 못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 직전에 있습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도 일반적으로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보통의 말의 용법 안에 깨달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깨달은 사람도 말로써 그것을 전달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불교의 ‘깨달음’이 메시지가 아니고, 따라서 도그마도 될 수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불교 신앙의 핵심은 “부처는 깨달은 게 틀림없다”라고 확신하는 것. 그 확신이 전부입니다. 이로부터 불교의 모든 성질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1장 시초의 불교 중에서) 접기
이것에 집중하고 있는 불교는 신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신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죠. 인간은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완벽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신념인 거죠. 이것을 확인하면, 불교는 일신교와 무관합니다. 신을 경배하기만 하는 힌두교와 적대관계이죠. 인민은 정부가 없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교와도 다릅니다. 신과 인간이 협력하여 행복해지자고 말하는 신도와도 다릅니다. 합리적으로 자립한, 개인주의적 인간중심주의라고 볼 수 있죠. 이렇게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간중심주의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에 불교의 본질과 붓다의 본성이 있습니다. (제1장 시초의 불교 중에서) 접기
불교는 도그마가 아니므로 그러한 노력을 막지 않습니다. 아비달마의 교설은 나름대로 잘 만들어져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불교는 그러한 사고실험을 장려하거든요. ‘인간이나 사물에 대해서 사고하는 것은 훌륭하다. 비즈니스나 권력이나 욕망을 추구하는 것보다 낫다’, ‘순수하게 지적으로 생각하라. 그때 깨달음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오타쿠 응원단인 셈입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이, 제로로 돌아와 세계를 대하는 상태가 되겠지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는 오타쿠의 길이 있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그렇게 모인, 인도의 취미를 그대로 드러낸 오타쿠 무리가 부파불교라고 생각합니다. (제2장 초기의 불교) 접기
“석가가 거기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별로 근거랄 게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말이죠. 석가가 우연찮게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는데, 이 활동에는 불교에 내재하는 근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기독교의 경우 그리스도가 이 세계에 출현하는 것을 그만두거나,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는다면 아마도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이 일련의 사건들에 기독교에 내재된 결정적 필연성이 있지만, 불교의 경우는 석존이 깨닫고 나서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근거는 없죠. 그건 정말 맞는 말입니다.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자기가 없는 사람이 이타행을 할 수는 없어요. 석가모니는 자기는커녕 타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가 있는 것으로 한 이상, 그 게임 속에서는 타자도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타자가 보기에는 자신이 실재하고 있다는 식의 미망의 상태에 있는 것이므로, 그것이 아니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자비입니다.” (제3장 대승교로 중에서) 접기
불교에서 인과관계의 법칙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기독교나 서양에 비해서도 불교에 있어 인과율은 사활을 걸고 있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수행하거나 계를 지키거나 정진하는 등 포인트를 번 덕분에 당신이 마침내 성불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즉 당신이 선인을 쌓은 덕분에 바로 당신에게 성불이라는 선과가 나왔다는 것을 말할 수 있으려면 보통의 인과관계와는 다른 것을, 자유로운 선택이나 자유의지 등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서양철학 이상으로 불교에서도 인과관계와 자유의지를 어떻게 양쪽 모두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이죠. (제4장 대승교라는 사고 중에서) 접기
불교라는 것이 방편이라는 것을 중시하여, 어떤 방편이라도 좋다는 방향성으로 가는 것은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도그마가 없기 때문이죠. 깨달음을 목표로 한다는 것만 있고, 게다가 그 깨달음이 무엇인지도 미지수인 채로 열려 있습니다. 불교 쪽이 파스타보다 더 자유도가 크다고 생각해요. 파스타라면 아무리 그래도 햄버그스테이크를 내면서 파스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불교는 괜찮죠. 깨달음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은 무엇인가? 알
지 못한다. 깨닫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석존의 깨달음이 계기가 된 ‘깨달음을 둘러싼 언어 게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게임은 게임의 정의가 되는 ‘깨달음’이 공백인 채여서, 그 윤곽을 그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확산되고 확장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게임에 조금이라도 인과적으로 관여한다면, 그것은 불교 운동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불교는 중심에 깨달음이라는 커다란 ‘공백’(空)이 있는 운동인 겁니다. (제5장 대승교에서 밀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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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오사와 마사치 (大澤眞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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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일본 나가노현 출생. 사회학자. 도쿄대학 대학원 사회학 연구과 박사과정 졸업. 사회학 박사. 지바대학 조교수, 교토대학 교수 역임. 고등학생 입학 때 이미 실존주의를 고민하는 글을 써내 선생님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사회과학 연구회에 영입되어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자본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등을 읽고 토론하며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에 빠져들었다. 도쿄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뒤, 독창적인 사회이론을 펼치며 일본 사회학의 흐름을 이끌어왔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베버에서 종교와 자본주의, 내셔널리즘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은 늘 학문의 경계를 넘나든다.
주요 저서 『내셔널리즘의 유래』로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자유라는 감옥 ―책임·공공성·자본주의』으로 가와이 하야오 학예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책의 힘』, 『경제의 기원』, 『불가능성의 시대』, 『〈자유〉의 조건』 등 사상과 사회를 넘나드는 다수의 저서를 발표했다. 현재는 개인 사상지 『오사와 마사치 THINKING 「O」』를 발행해 독자들과의 대담이라는 형식으로 현대사회에 대해 활동적·이론적으로 고찰하는 글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 문예지 『군조』에 평론 「〈세계사〉의 철학」을 연재해 장기적인 사유 프로젝트로 발전시켜왔다. 접기

최근작 : <유쾌한 불교>,<불가사의한 아메리카>,<경제의 기원> … 총 156종 (모두보기)

하시즈메 다이사부로 (橋爪大三郞)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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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가나가와현 출생. 사회학자. 도쿄대학 대학원 사회학 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1995~2013년 도쿄공업대학 교수. 저서로 『불교의 언설전략』(게이소쇼보), 『수상한 기독교』(오사와 마사치와 공저, 고단샤 현대신서) 등 다수.

최근작 : <유쾌한 불교>,<불가사의한 아메리카>,<신기한 수학 나라 넘버랜드> … 총 59종 (모두보기)

김보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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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강학원에서 공부하는 청년 백수. 니체, 불교와 과학, 인류학 등을 공부했다. 함께 배우는 삶이야말로 나도 이롭고 세상도 이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배우는 사람으로 명랑하게 살아가고 싶다.



김태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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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종교, 문화 등에서 나타난 신체와 관련된 담론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다. 요즘은 동국대 일본학과에서 정치나 사상을 가르치며, 여기저기서 함께하는 공부의 인연을 만들고 있다. 함께 번역한 책으로는 『생의 철학』, 『철학과 국가』, 『번역된 근대』 등이 있다.



이하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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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강학원에서 공부했던 청년. 전문 번역가는 아니지만 남산강학원과의 인연으로 일본어 번역팀에서 일본어와 철학 등을 공부했다. 현재는 자유롭게 공부하며 살아가는 백수.


오사와 마사치(지은이)의 말
3월 11일 쓰나미와 원전 사고로 인해 할 말을 잃은 일본인에게 불교는 어려움을 극복할 실마리를 시사해 왔을까요? 아쉽게도 그렇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불교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죠(그렇게 보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왜 불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까요? 불교가 무능할 리는 없습니다. 불교에는 2500년간 축적된 인식과 실천이 있으니까요. 불교 쪽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면, 우리 쪽에서 불교에게 물어봅시다. 불교, 당신은 누구입니까? 불교, 당신은 지금까지 어떻게 생각해 왔습니까? 불교, 당신에게는 세계가 어떻게 보입니까? 불교, 당신은 어떤 실천을 제안합니까?… 이런 질문들을 우리가 해보는 겁니다! 불교 쪽에서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불교에게 응답을 강요해 봅시다. 대답하게 해봅시다. 이런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 이 책, 하시즈메 다이사부로 선생님과 저 오사와 마사치의 대담입니다.

역자후기
이번 책을 번역하면서 또 한 번 불교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승가’라든지, ‘자비’, ‘보살’ 등은 나에게 자명한 진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대승이 출현하게 된 맥락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 자비는 필연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사실 좀 충격을 받았다. 너무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건 아닌가 싶었고, ‘불경스럽다(?)’고 느끼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불교를 절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저자의 수다(?)를 따라 역사적으로 불교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2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 변주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질문도 하면서 불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독자분들은 어떻게 이 책을 만나게 되셨고, 또 어떻게 읽으실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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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해탈은 어렵지 않다>,<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등 총 182종
대표분야 : 고전 21위 (브랜드 지수 211,335점), 청소년 인문/사회 30위 (브랜드 지수 31,038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불교, 당신은 누구입니까? ― 불교의 핵심을 꿰뚫는 두 사회학자의 유쾌한 대담!

일본의 저명한 두 사회학자가 불교란 어떤 종교이며, 어떻게 2천5백 년 동안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역사·사회·철학·종교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대화를 나눴다. 오사와의 집요한 질문과 하시즈메의 적절한 답변의 형식이 마치 잼세션처럼 펼쳐지며, 한 편의 불교재즈를 듣는 기분이다.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는 점,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 부파불교로부터 대승불교로 전환하게 된 과정, 대승의 논리구조와 보살의 의미 등 불교와 관련한 다종다양한 주제가 이어져, 읽다 보면 불교의 큰 줄기를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붓다와 예수 그리스도의 비교를 통해 두 종교의 특징도 선명하게 드러낸다.
또 불교에 대한 철학적 문제, 무상, 고(苦), 무아, 공(空), 중관, 유식 등 난해한 개념들, 인도 초기불교에서 동아시아 대승불교까지 전래되는 흐름과 사람들이 불교를 만나는 과정, 자유를 향하는 불교의 인생관까지, 불교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그것을 하나로 꿰는 본질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두 학자의 노력이 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제대로 빛을 발한다. 불교를 둘러싼 지적 자극이 가득한 대담집.

『유쾌한 불교』 옮긴이 인터뷰

1. 왜 “유쾌한” 불교인가요? 제목에 어떤 의미 혹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지요?

태진: 질문을 듣고 보니 정작 ‘유쾌하다’는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네요. 저자 두 분이 같이 작업했던 전작 『수상한 기독교』에서는 ‘수상하다’는 제목을 썼었는데요. 기독교가 주는 ‘수상함’은 왠지 이해가 갈 듯도 합니다. 무언가 기독교가 만들어 내는 세계관이 지금 우리의 가치관을 만들어 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데 있어 일종의 수상한 낌새를 찾아냈던 것이지요.
이번 책은 불교의 엄근진한 면 말고도 유쾌한 지점이 있음을 보여 주지요. 두 분은 요즘 뉴진스님 유행에 대해서 어떻게 보세요? 요즘 불교가 젊은 세대에게 굉장히 힙한 종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 유쾌함이란 것이 단순히 재미있다는 말 정도로 그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보기엔 뉴진스님이 건드린 부분도 그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무언가 우리의 삶을 가볍게, 날쌔게, 자유롭게 해주는 부분이 있는 것이지 않을까요?

보라: 유쾌하다는 제목 자체가 이 책에 대해서 많은 걸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요. 그건 불교가 유쾌하기 때문이고, 두 저자의 대담이 유쾌하기 때문입니다. ‘불교’ 하면 세상으로부터(일명 ‘속세’라고 하죠) 멀리 떨어져 은둔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하셨듯이 정적이고, 진지하고 엄숙하다는 느낌을 받죠. 하지만 불교는 2500년 동안 끊임없이 인류가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길을 내온 실천적인 종교입니다. 심지어 불교 자신도 끊임없이 혁신을 해오면서 마치 생명이 진화하듯 다양하게 변해 왔습니다. 그런 불교의 지혜와 기운을 받아 보자! 하고 『유쾌한 불교』라는 제목을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불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어쩐지 조심스럽게 마련이죠. 혹여 불경스러운(?) 대화가 되지 않을까 어쩐지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듯이 불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경계하고, 사유하고 탐구하는 것을 중요시하죠. 두 분 또한 불교에 대해 거침없는 질문들을 쏟아 냅니다. ‘불교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대승이나 밀교 등은 별개의 종교나 운동이 되는 길을 택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대체 왜 불교로 자신들을 정의할까?’ ‘깨달음에 내재적인 매력이 없지 않을까(?!)’ 등등 불교에 대해,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솔직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이단 로켓, 도라에몽, 유명한 족집게 학원, 복권 등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저자들이 드는 예시들도 생생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지점이 다른 종교 관련 책들과 달리 유쾌함을 만들어 내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하늘: 일본에서는 불교가 상당히 대중화되어 있고, 역사가 깊습니다. 6세기 무렵 불교가 전파되었다고 하니 삼국시대 때 불교가 들어와 20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랑 비슷한 감각일 것 같네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절에 한 번쯤은 가본 적이 있고, 스님들을 만나 본 적이 있잖아요? 일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불교는 친숙하면서도 어딘가 낡고 한물간 느낌이 있습니다. 덧붙여 한국과 다르게 일본에서 불교는 장례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무언가 어둡고 엄숙한 느낌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시즈메 선생님과 오사와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교는 “골동품 가게 앞에 놓인 낡은 가구”처럼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저자들은 불교에 대한 그런 선입견을 던져 버리려고 합니다. “사실 불교는 우리의 이미지처럼(혹은 일본 사람들의 이미지처럼) 어둡고 낡은 것이 아니다! 불교는 지금 현재 우리한테도 산뜻하고 즐거운 가르침을 줄 수 있다!”랄까요? 불교라는 골동품을 닦아 “훌륭한 고급가구”로 바꾸는 과정. 아마 그런 과정이 굉장히 유쾌하기에 ‘유쾌한’ 불교가 된 것 같네요

2. 두 학자의 팟캐스트를 듣는 느낌인데요, 즉흥적인 대담인데도 불교에 대한 상당한 내공과 통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사와 마사치, 하시즈메 다이사부로는 어떤 면에서 강점이 있는 분들인지, 그리고 이분들의 대화의 특징 같은 건 어떠한지 알 수 있을까요?

하늘: 두 분의 대화는 주로 오사와 선생님의 질문과 하시즈메 선생님의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사와 선생님의 질문이 상당히 솔직하고 예리해요. 그래서 뭔가 종교라는 이미지 때문에 궁금하지만 물어보기에는 어려웠던 질문들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하시즈메 선생님도 그런 질문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잘 답변해 주시고요. 예를 들어 “깨달음이 공허하다면 우리는 왜 깨달음을 추구해야 하는가? 깨달음에는 대체 무슨 메리트가 있는가?”하는 솔직한 질문도 가볍게 나온달까요? 그런 질문과 답이 아주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보라: 예. 오사와 마사치 선생님이 불교의 ‘밖’에서 질문을 던진다면, 하시즈메 선생님은 불교 ‘안’에서 답을 하는 방식으로 대담이 이뤄지는데요. 오사와 선생님은 아주 흥미로운 질문으로 대담을 이끌어 갑니다. 이를테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는 물론이고 막스 베버, 에른스트 카시러, 이사야 벌린 등 다양한 사상가의 개념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데요. 그 질문 덕분에 불교의 어떤 면이나 개념이 다른 것과의 비교 속에서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또 “삶에 ‘고’(괴로움)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런데 왜 불교는 왜 ‘일체개고’(一切皆苦), 즉 모든 것은 괴로움이라고 하는 걸까요?”와 같이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질문을 던져, 가려운 곳을 긁어 주기도 하죠;

태진: 예. 오사와 마사치와 하시즈메 다이사부로는 각각 일본에서 손꼽히는 사회학자, 종교학자시죠. 오사와는 말씀하신 대로 ‘외부’의 입장에서 계속 딴지를 겁니다. 불교를 다른 종교와 비교하고, 사회적 현상과 결부시키고,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을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이를 하시즈메가 받아서 정리하고 답합니다. 유독 일본에서는 이렇게 대화를 나눈 것들을 책으로 펴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물론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쓴 것보다는 정리나 이야기의 흐름이 끊겨서 읽기 어려운 면도 있지만, 오히려 이때 대화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중요하겠지요. 아마 두 분이 따로 책을 썼더라면 이와 같은 책이 나오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대화라는 것이 책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종의 재즈의 잼 세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창의적인 방식의 연주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요.

하늘: 예. 저도 잼 세션의 비유가 재밌었는데요. 잼 세션은 기존의 정형화된 음악연주에서 벗어나 즉흥적으로 순간순간 합을 맞춰 가면서도 지나고 보면 멋있는 작품이 완성되는 연주 방식이잖아요? 하시즈메 선생님과 오사와 선생님도 즉흥적으로 대화를 해가며 대담을 완성해 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즉흥적이기 때문에 답변을 듣고 바로 궁금한 것이 생각나서 질문하고, 그것을 또 답변해 주는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들은 상당히 생동감 있습니다. 독자분들도 그런 생동감 넘치는 대화를 느껴 보시면 좋겠네요
3. 불교는 종교로서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 문화적으로도 그 깊이와 품이 넓어 불교를 알고자 하면 망망대해를 마주한 느낌입니다. 이 책의 내용과도 관련해서 이런 불교에 어떻게 처음 접근하면 좋을지 역자 선생님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태진: 불교를 너무 어렵게 대하기보다는 왜 그랬던 거지?라는 상식적인 질문에서 시작하는 게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불교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불교의 핵심은 불교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석가모니 부처라는 사람이 깨달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인정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이건 단순히 어떤 위대한 종교가나 사상가의 이야기만이 아닌, 그 논리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잘 보여 주듯이 불교라는 종교가 어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맥락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지요. 그럴 때 우리는 불교를 단순히 도그마로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늘: 일단 꼭 『유쾌한 불교』를 읽어 보세요. 불교가 궁금하신 분들이 입문하시기에 정말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유쾌한 불교』의 두 저자가 불교를 탐구할 때 단순히 ‘종교적’으로 접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직접 어떤 수행을 하거나 절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수행법이 어떤 욕망과 조건 위에서 나왔는지, 또 무엇을 위해 나왔는지, 그리고 ‘절’(승가)이라는 공간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나왔는지 알려 줍니다. 그러니까 사회문화적으로 불교라는 사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죠. 종교에 대한 이미지는 아무래도 ‘믿음’이나 실제로 행동하는 ‘윤리’의 영역이 강조되는 측면이 있는데 『유쾌한 불교』는 그것보다는 배경과 맥락을 조금 더 알아 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유쾌한 불교』가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저는 어떤 종교를 공부할 때는 맥락과 배경을 토대로 공부하는 방법이 좋은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유쾌한 불교』면 더 좋고요.)

보라: 태진 샘이 말씀하신 것처럼 ‘왜 그랬던 거지?’라는 질문을 가지고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을 시작으로 2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는데요. 그러다 보니 경전은 물론 해설서도 많고 다양해서 정말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는지, 어떤 질문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자 하셨는지, 더불어 2500년의 시간 동안 불교를 이어 오고 전해 온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결국 불교의 많은 가르침과 실천은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유쾌한 불교』로 시작하시는 걸 저도 추천드리고 싶네요ㅎㅎ

4. 책 전반에 걸쳐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하며 논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보편종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기독교와 비교했을 때 불교의 어떤 특성이 잘 드러날까요?

하늘: 우선 하시즈메 선생님이 ‘비교종교학’에 일가견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비교종교학은 종교들의 교리, 사상, 인물, 문화적 배경 등을 서로 비교해 가며 윤곽을 그려 나가는 학문이므로, 책 전반적으로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와 불교를 비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전혀 엮이지 않을 것 같은 종교들을 하시즈메 선생님과 오사와 선생님의 힘을 빌려 대조해 보는 맛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기독교는 질문자분의 말대로 보편종교이기도 하고, 이전에 오사와/하시즈메 선생님의 『수상한 기독교』라는 저서에서 대담을 나눈 적이 있어 더욱더 쉽게 예시를 드셨을 걸로 예상됩니다.

태진: 아무래도 우리가 기독교에 친숙하기 때문에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기독교와 비교해서 이해하는 면이 있지요. 물론 이는 기독교라는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양의 철학이 바탕하고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 즉 존재론, 인식론과도 관련될 것입니다. 우리가 신을 이해할 때, 종교를 이해할 때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렌즈를 통해 이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요. 그런 점에서 불교 역시도 기독교적 렌즈를 통해서 이해하다 보니 뭔가 오해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 책에서는 “왜 불교는 인도에서 사라졌는가?” “부처는 왜 이렇게 많은가?” “사랑과 자비는 무슨 차이인가?” “구원받는 것과 성불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통해 기독교와의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불교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면이 있습니다.

보라: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가 불교는 인간의 힘이랄까요, 능력을 믿는 종교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 이상적인 상태를 실현하는 건 신만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인간이, 인간인 채로 부처가 됩니다. 그래서 인간을 넘어서는 상태에 인간 스스로 도달할 수 있고, 또 누구나 도달할 수 있다고 불교에서는 주장합니다. 대담에도 나오는 예시지만, 어떤 수학이나 과학적 진리를 누군가 ‘깨달았다’고 생각해 보죠. 그 사건은 특수한,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들이 증명하고 발견하기 전부터 그 진리는 본래부터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재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깨달음을 수학적 진리와 동일하게 여길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이 불교에서 깨달음은 인간의 보편적인 가능성이라고 여깁니다.

하늘: 저도 그 부분이 재밌었습니다. 이 책에서 기독교와 불교는 각각의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먼저 기독교의 신자들이 예수를 믿고 따를 때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은 예수의 ‘말과 행동’ 그 자체입니다. 그의 말과 행적이 곧 신의 뜻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잘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하느냐가 관건이었던 거죠. 반면 불교에서 부처를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불교도들에게 부처의 말과 행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처가 말과 행동으로 다가가고자 했던 핵심 즉, ‘깨달음’입니다. 깨달을 수만 있다면 심지어 부처의 ‘말과 행동’을 버려도 된다고 하는 것이 불교죠. 이것은 마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데 아인슈타인의 행적을 공부하는 게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필수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깨달음이라는 건 무엇일까요? 왜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고 싶어 하는 걸까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유쾌한 불교』를 읽어주세요

5. 이 책과 관련해 독자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보라: 저는 이 책이 불교를 이해하기에도 좋은 책이지만, 인간을 이해하기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종교와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요. 대승은 어떻게 출현하게 됐는지를 시대적 맥락에서 살펴본다든지,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며 국가별로 상이한 권력의 배치를 논한다든지, 불교를 중심으로 인간과 사건을 이해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저자가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들을 음미하면서, 유쾌한 두 저자의 대담을 따라가 보시길 바라요. 불교만이 아니라 사람을,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기분이 드실 겁니다.

하늘: 불교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꼭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종교 입문서라고 하면 조금 딱딱할 수 있지만 이 책은 단순히 읽는 맛이 아니라 두 저자의 대담을 담은 대담집이기 때문에 ‘듣는 맛’이 살아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더 쉽게 재밌게 읽고 들을 수 있답니다. 독자분들이 이 책을 시작으로 불교를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태진: 불교를 접근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일종의 교리서와 같은 방식, 명상이나 수양법 차원에서의 접근,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교훈서로서의 불교 등등요. 저도 불교에 관한 책을 많이는 아니지만 꽤 읽었는데요. 읽을 때마다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구석에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 같은 게 있었는데요. 무언가 저와 같은 느낌을 가지셨던 분들께 불교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들이 번역하면서 느꼈던 즐거움, 유쾌함을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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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해서 뿐 아니라, 어떻게 다른 종교나 철학과 비교하고 질문하는지를 배운 흥미진진한 책이었어요. 두분의 유쾌한 대담과 자연스럽고 명랑한 번역에 빨려들어 끝까지 읽게되었어요.
soul-an 2024-10-09 공감 (1) 댓글 (0)
Thank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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ゆかいな仏教
by 大澤 真幸, 橋爪 大三郎 

4.0 4.0 out of 5 stars (89)


ブッダはキリストと何が違うのか?

知っているようでいて、実はよく知らない仏教。
「仏教のスピリット」を知れば知るほど
勇気をもって、前向きに、ゆかいに生きられる!

葬式仏教と揶揄されたり、「禅問答」のように、やたら難解なイメージがつきまとったりの、日本の仏教。もともとの仏教はでも、自分の頭で考え、行動し、道を切り開いていく、合理的で、前向きで、とても自由な宗教だった!
日本を代表する二人の社会学者が、ジャズさながらに、抜群のコンビネーションで縦横に論じ合う、仏教の真実の姿。日本人の精神に多大な影響を与えてきた仏教を知れば、混迷のいまを生きるわれわれの、有力な道しるべが手に入る!


【目次】

まえがき 大澤真幸

第一章 はじまりの仏教
仏教を定義する
キリストとブッダ
覚りはなぜ空虚にみえる
ブッダよりも覚りが大事
預言者とブッダ
仏教とヒンドゥー教
アンチ・ヒンドゥー教
カーストからの解放
仏教はなぜ消えた

第二章 初期の仏教
一切智と全知
苦とはなにか
罪か苦か
何が苦なのか
ニルヴァーナと神の国
涅槃は天国か
人が争う理由
サンガの逆説
サンガの個人主義
無常ということ
仏教の核心
ミニマリストと哲学マニア
積極的自由について
「覚り」とはどういうことか
問答か瞑想か
慈悲とはなにか

第三章 大乗教へ
仏塔信仰起源説
なぜストゥーパなのか
ブッダを探す
ダルマとはなにか
そもそも大乗とは
ブッダに戻れ
大乗は優れている
大乗のロジック
利他行

第四章 大乗教という思考
釈迦仏は特別か
多仏の思想
阿弥陀の「本願」
因果論と自由意志
因果論の困難
十年前の自分
極楽は予備校である
ブッダと仏国土
菩薩のはたらき
めまい効果の魅惑
菩薩は世俗内禁欲か
授記とはなにか
菩薩の慈悲
マルクス主義と仏教
廻向とはなにか
覚りは極限である
空(くう)とはなにか
真の想起説
言葉と空

第五章 大乗教から密教まで
ナーガールジュナ
否定神学なのか
般若心経について
プロセスを大事にする
カントの超越論
仏性について
自利と利他
唯識について
唯識論は現代的
発心の効力
のび太の唯識論
仏教は独我論か
『大乗起信論』をめぐって
ブッダが人間であると
Σブッダの秘密
三身論につい
密教とその背景
タントリズムとは
仏教の果て
結び いま、仏教を考える

あとがき 橋爪大三郎
読書案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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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와 마사치와 하시즈메 다이사부로의 저서 <유쾌한 불교>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유쾌한 불교> 요약 및 평론

<유쾌한 불교>는 <이상한 기독교>로 반향을 일으킨 사회학자 오사와 마사치와 하시즈메 다이사부로가 불교의 지적 골격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대담집이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 불교는 장례식이나 제사 때나 찾는 형식적 '장식'으로 전락했으나, 두 사회학자는 근원적인 초기 불교로 거슬러 올라가 고타마 싯다르타가 제시한 사유의 급진성과 자유로움을 파헤친다.

저자들은 불교의 본질을 '신 없는 종교', 즉 철저한 합리주의와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실천적 인식론으로 규정한다. 유일신 신앙이 인간의 한계를 '죄'로 규정하고 신의 구원에 매달린다면, 불교는 삶의 제약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고(苦)'로 파악한다. 따라서 이 고통은 외부 초월자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 무지와 집착을 걷어내는 사유 훈련을 통해 개인이 직접 제거할 수 있는 과제다. 붓다는 숭배해야 할 절대자가 아니라 먼저 깨달음에 도달한 선구자이자 훌륭한 지도자라는 관점이다.

논의는 소승(상좌부)의 개인 해탈에서 출발해 대승불교의 보살 사상, 그리고 중국과 일본을 거치며 변용된 밀교와 선종의 구조로 확장된다. 저자들은 칸트,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등 서구 근현대 철학과 현대 물리학의 개념을 자유자재로 끌어와 '공(空)'과 '연기(緣起)'를 명쾌하게 번역해 낸다. 실체적인 '자아'가 존재한다는 착각을 깨부수는 과정은 허무주의로의 침잠이 아니라, 오히려 고정된 규범과 억압에서 벗어나 세계를 경쾌하고 유쾌하게 긍정하는 힘이 된다는 점을 밝힌다.

본서의 탁월한 미덕은 종교적 외피와 묵직한 도덕주의를 걷어내고, 불교를 '세계에 대한 명징한 탐구 체계'로 복원한 데 있다. 신학적 금기나 초월적 도그마가 없기에 가능한 사유의 유연성을 드러냄으로써, 특정 문화권에 얽매이지 않고 보편적 인간 실존을 성찰하려는 세계인에게 매우 매력적인 지적 도구를 제공한다.

다만 사회학적 통찰과 철학적 비유가 지나치게 경쾌하게 전개되다 보니, 역사적 불교가 각 사회의 기득권이나 권력 구조와 결탁했던 어두운 제도사적 굴곡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변용을 설명할 때 나타나는 일본 중심적 문화 해석의 틀 역시 비판적으로 걸러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종교를 맹목적 신앙이 아닌 주체적 삶의 기예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지적 쾌감과 통찰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세진님, 저자들이 다룬 불교의 '고(苦)'와 서구 일신교의 '죄(罪)'에 대한 비교 분석이나, 붓다의 합리주의적 측면에 대해 더 깊이 나누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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橋爪大三郎·大澤真幸 <ゆかいな仏教> — 불교는 왜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닌가

<ゆかいな仏教>은 <ふしぎなキリスト教>에서 기독교를 사회학적으로 해부했던 하시즈메 다이사부로와 오사와 마사치가 이번에는 불교를 대상으로 벌인 대담이다. 초판은 2013년 산가신서에서 나왔고, 이후 문고판과 전자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출판사가 내세우는 핵심 질문은 간단하다. “붓다는 그리스도와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불교는 실제로 어떤 종교인가?”이다. Samgha Shinsha

이 책은 불교사 개설서라기보다 두 사회학자가 불교의 논리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다시 묻는 책이다. 그래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 공(空), 유식(唯識), 화엄, 선, 정토에 이르는 복잡한 사상사가 나오지만, 중심 질문은 늘 하나다.

“불교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종교인가?”

1. 붓다는 무엇을 발견했는가

저자들이 보는 불교의 출발점은 매우 급진적이다.

인간은 고통받는다. 그런데 그 고통의 원인은 외부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붙잡는 방식에 있다. 우리는 사물과 자아가 고정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

여기서 불교의 기본 명제들이 나온다.

무상(無常), 무아(無我), 연기(緣起)이다.

‘나’라는 독립적이고 영속적인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망이 생기고, 욕망 때문에 집착하며, 집착 때문에 괴로워진다.

따라서 붓다의 해법은 세상을 고쳐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경험하는 나 자신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와의 가장 큰 차이다.

기독교에서는 세계는 하나님이 만든 실제 세계이며,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세계를 창조한 절대자도, 인간을 구원하는 절대적 타자도 필요하지 않다.

구원은 기본적으로 <깨달음>이다.

2. 붓다와 그리스도는 어떻게 다른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비교 가운데 하나가 붓다와 예수의 차이다.

예수는 기독교에서 처음부터 특별한 존재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된 존재다.

반면 싯다르타는 처음에는 인간이다.

그 인간이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된다.

즉 방향이 반대다.

그리스도는

신 → 인간

으로 내려온다.

붓다는

인간 → 깨달은 존재

로 올라간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이상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원리적으로 모든 인간이 붓다가 될 가능성을 가진다.

이 점에서 하시즈메와 오사와는 불교에 독특한 평등주의가 있다고 본다. 출생이나 민족이나 신의 선택이 아니라 깨달음의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을 소개하는 여러 서평도 이런 차이를 핵심으로 지적한다. 日刊ゲンダイDIGITAL

3. 윤회와 업 — 불교는 무엇에서 인간을 해방하려 했는가

불교는 진공상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인도의 윤회 사상과 카스트 사회 속에서 등장했다.

사람은 죽어 다시 태어나고, 현재의 상태는 과거의 업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념은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는 기능도 했다.

하지만 붓다는 여기서 매우 독특한 길을 선택한다.

좋은 업을 쌓아 다음 생에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아예 윤회의 바퀴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목표다.

이것이 열반이다.

따라서 불교는 윤회를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윤회의 체계 전체를 부정한다.

이 점에서 불교는 인도 사회에 대한 매우 급진적인 비판이기도 했다.

왕이든 브라만이든 천민이든 모두 욕망과 무명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4. 그런데 ‘나’가 없다면 누가 윤회하는가

여기에서 오사와가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불교는 무아를 주장한다.

그런데 윤회를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시 태어나는가?

영혼이 없다면 업은 누가 이어받는가?

이것은 불교 사상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다.

하시즈메와 오사와의 대담이 흥미로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들은 경전을 경건하게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교의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을 계속 공격한다.

그 결과 연기론, 유식론, 업론이 등장한다.

개체가 동일하게 계속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과관계의 연쇄는 이어진다.

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에 불을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두 불꽃은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아무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불교가 말하는 인간의 연속성은 이런 관계적 연속성에 가깝다.

5. 대승불교라는 거대한 전환

초기불교의 이상은 출가 수행자였다.

욕망의 세계에서 벗어나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모든 인간이 출가할 수는 없다.

농사를 짓고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이 문제에서 대승불교가 출현한다.

대승불교는 개인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수행을 넘어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의 이상을 내세운다.

자기가 먼저 열반에 들어가는 대신 다른 존재가 깨달을 때까지 이 세계에 머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불교의 결정적인 방향전환이 있다.

초기불교가

<이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

이었다면, 대승불교는 점차

<이 세계 속에서 깨달음을 실현하는 길>

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관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 같은 존재가 등장하면서 불교는 대중종교로 발전한다.

6. 공(空)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가

대승불교의 핵심은 공이다.

그러나 공을 허무주의로 이해하면 안 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독립적이고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보면, 부모, 언어, 사회, 음식, 기억, 신체, 타인과의 관계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를 찾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그것도 아니다.

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것이 연기이며 공이다.

이 관점에서 불교는 서양철학의 ‘존재론’과 매우 다른 방향으로 간다. 서양철학이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묻는다면 불교는 오히려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조건들에 의해 그렇게 보이는가?”를 묻는다. 일부 독자들이 이 책을 불교 자체보다도 서양철학과 불교를 비교하는 철학적 대담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note(ノート)

7. 유식 — 우리가 보는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책의 난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부분이 유식(唯識)이다.

우리는 보통 바깥에 객관적인 세계가 있고, 인간의 의식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유식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의식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색깔도, 냄새도, 의미도, 심지어 ‘나’라는 존재도 의식작용과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하시즈메와 오사와는 이 문제를 서양철학의 인식론과 연결한다.

칸트, 베르클리,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등 여러 철학자가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의 대화에는 실제로 서양철학자와 사회이론가들이 광범위하게 동원된다. Ichijyo Book Review

그래서 <ゆかいな仏教>는 일반적인 불교 입문서보다 훨씬 철학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목의 ‘ゆかい’와 달리 독자는 상당히 힘들어진다. 최근의 한 서평 역시 이 책이 제목처럼 단순히 유쾌하다기보다 “난해하고 기괴하지만 깊다”고 평가한다. note(ノート)

8. 화엄 —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화엄사상에서는 연기론이 우주적인 규모로 확대된다.

하나의 존재는 다른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부분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부분이 있다.

화엄에서 유명한 ‘인드라망’의 이미지는 이를 표현한다.

무수한 보석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고, 각각의 보석에는 다른 모든 보석이 비친다.

개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개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관계 자체가 존재방식이 된다.

이 지점에서 불교는 단순한 개인 수행법을 넘어 매우 거대한 존재론으로 발전한다.

저자들은 바로 이 과정에서 불교가 얼마나 복잡한 지적 체계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9. 선불교 —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선불교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깨달음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가?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경전을 읽기만 하면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래서 선불교는 스승과 제자의 직접적 만남, 좌선, 공안, 선문답을 강조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같은 역설적인 표현도 여기서 나온다.

교리를 믿는 순간 그 교리에 다시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시즈메가 이전부터 불교를 일종의 ‘언어게임’으로 분석해온 점도 이 책에서 중요하다. 깨달음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깨달았는가 아닌가”를 서로 확인하는 독특한 의사소통 체계라는 것이다. Read and Write Blog

이 해석은 매우 사회학적이지만 동시에 논쟁적이다.

10. 이 책의 핵심: 불교는 ‘믿음’보다 ‘방법’에 가깝다

두 저자의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불교가 기독교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종교라는 점이다.

기독교에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타자가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

반면 불교의 핵심에는 그런 초월적 존재가 없다.

붓다가 대신 구원해주는 것도 아니다.

붓다는 길을 발견한 사람이다.

따라서 불교의 핵심은

“이것을 믿어라”

라기보다

“직접 해보라”

에 가깝다.

명상하고, 관찰하고, 집착이 어떻게 생기는지 보고,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산가신사 역시 이 책에서 제시되는 초기불교의 성격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길을 개척하는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종교”라고 요약한다. Samgha Shinsha

11. 그러나 실제 불교는 정말 그렇게 합리적인가

여기가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이다.

두 사회학자가 재구성하는 ‘불교’는 상당히 철학적인 불교다.

그러나 역사 속의 불교는 그렇게 합리주의적인 종교만은 아니었다.

불상에 기도하고, 관음보살에게 소원을 빌고, 아미타불의 구원을 믿고, 사후세계와 지옥을 믿고,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것도 불교다.

또한 불교 교단은 국가권력과 결합했고, 토지를 소유했으며, 전쟁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붓다의 사상>

<불교 철학>

<역사적 불교>

<민중의 불교>

를 구별해야 한다.

이 책은 첫째와 둘째에는 강하지만 셋째와 넷째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불교계 내부에서 이 책이 비판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초기불교의 교리와 수행을 사회학적 논리로 지나치게 재구성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note(ノート)

12. <ふしぎなキリスト教>과 비교하면

두 책을 같이 읽으면 상당히 재미있다.

<ふしぎなキリスト教>의 중심은

<초월적 타자>

였다.

God이 있고, 인간은 그 God과 관계를 맺는다.

반면 <ゆかいな仏教>의 중심은

<자아의 해체>

이다.

궁극적인 실재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나’라는 주체 자체가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주 단순하게 대비하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불교
하나님깨달음
창조연기
영혼·인격무아
죄무명·집착
구원해탈
하나님과 인간세계와 자아의 관계
믿음수행·깨달음
역사윤회
부활열반

물론 실제 두 종교는 이 표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러나 하시즈메와 오사와가 무엇을 밝혀내려 하는지는 잘 드러난다.

평론 — <ゆかいな仏教>는 불교 입문서라기보다 ‘불교라는 사고실험’이다

<ふしぎなキリスト教>가 비교적 명확한 구조를 가진 데 비해 <ゆかいな仏教>는 훨씬 산만하고 어렵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중심축이 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예수는 누구인가?”

“구원은 무엇인가?”

를 따라가면 전체 구조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다.

불교에는 그런 중심점이 없다.

붓다는 심지어 자신에게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교리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자아도 실체가 없고 세계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렇다면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이미 불교적으로 곤란한 질문이 된다.

바로 이 난점이 이 책의 재미이다.

그러므로 제목의 ‘ゆかい’는 단순히 재미있다는 의미라기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아>, <세계>, <존재>, <종교>라는 개념을 하나씩 뒤집어보는 지적 유희에 가깝다.

세진님이 최근 읽으신 아베 마사오, 변선환, 이정배의 종교간 대화와 연결하면 특히 중요한 문제가 하나 보입니다. 기독교–불교 대화는 단순히 “하나님과 공은 비슷한가?”를 비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두 종교는 애초에 <구원받는 주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전혀 다르게 구성합니다.

기독교에서는 마지막까지 하나님 앞에 서는 ‘나’가 남습니다.

불교는 바로 그 ‘나’의 실체성부터 의심합니다.

그래서 아베 마사오가 기독교의 케노시스(자기비움)와 불교의 공을 연결하려 했던 작업도 단순한 비교종교학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종교의 존재론을 연결하려는 매우 어려운 시도였던 것입니다.

그 점에서 <ゆかいな仏教>는 <ふしぎなキリスト教>의 단순한 ‘불교판’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 권을 함께 읽었을 때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기독교를 기준으로 보면 불교는 종교 같지 않고, 불교를 기준으로 보면 기독교는 절대적 타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종교처럼 보입니다.

두 사회학자가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준 것은 바로 그 <서로 번역되지 않는 차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Samgha Shin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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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Japan

  •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8, 2015
    ゆるめの書名とは裏腹に、中身はなかなかの本格派です。
    『ふしぎなキリスト教』(講談社現代新書)において、キリスト
    教についての思考を展開した橋爪氏と大澤氏が、本書では仏教
    に迫ります。

    大澤氏が問い、橋爪氏が応じるという前書と同じ形式です。
    前書では橋爪氏の鮮やかな回答ぶりが印象的でしたが、本書で
    は大澤氏の原理原則への執拗な拘りが、仏教の本質に迫る問い
    となっていて見事です。

    対話の流れは、仏教全般、初期仏教、大乗教、密教と、インド
    仏教に関して、時代に沿って進んで行きます。
    そこから見えて来るのは、ブッダや覚りという「空」を中心と
    した、ドグマが無いので異端も無い、実に多様な思想です。

    多様であるが故に複雑でもあるので、仏教の全体像を掴むのは
    骨が折れます。
    そこを本書では、大澤氏の執拗な懐疑と橋爪氏の適切な回答に
    より、仏教の大筋が見えて来ます。
    単なる入門書には留まらない深さがあ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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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27, 2013
    対談方式になっており、気楽に肩こらず読むことができてお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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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28, 2015
    いつか読むでしょう。宗教はわかっていたいけれど、信じる宗教はな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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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15, 2022
    仏教を分かり易く知りたい方の最初の一冊
  • Reviewed in Japan on May 27, 2014
     『不思議なキリスト教』の対談コンビが、仏教について論じ合う。前著がそのタイトルにも表れているように、全知全能の唯一神を結局は信じられない二人が、キリスト教を理解するために知的な逸脱も冒して論じ合ったのに対し、仏教については好意的というかおおいに共感されているようだ。特に橋爪氏は仏教徒と言ってもいいほど深くコミットされているように見受けられた。
     大澤氏が質問を投げかけ、橋爪氏がそれに答え、大澤氏がそれを受けてさらに展開していくという形で対談は進む。釈迦の思想から始まり初期仏教を経て大乗教への展開という流れに沿って検討が加えられる。
     大澤氏はあえて仏教から距離をとって、基本的なコンセプトを俎上にのせその意味を問いかける。比較宗教学的な視点が新鮮だった。一神教の神の全知全能とブッダの一切知、預言書と覚者、一神教の天国と涅槃などが比較されることで、仏教の特徴が浮かび上がってくる。
     お二人の知識と思考の掛け合いに引き込まれて一気に読んでしまった。しかし一度読んで頭に入るようなものではない。くりかえし読んで味わいたいと思う。
     仏教には数多くの宗派があって非常にバラエティに富んでいる。ひとつひとつ見ていくと全くまとまりがないように思えてくるのだが、それらを貫く核心は、「ゴーダマ・シッダールがブッダ(覚者)である」と認めているということで、それが仏教の定義とされる。
     釈迦が「覚った」ことはすべての仏教徒が認めながら、その内容については釈迦のみが知ることで他の誰にもわからない。言葉で明示できないからだ。あるいは言葉で示そうとしたら裏切られるという関係の中でしか指し示せないのが「覚り」であるという。
     まことに厄介でもあり愉快でもあるが、ここから豊穣にして果てのない思索が2500年、続いているのである。本書もまたその流れに掉さす一冊であろう。
     日本の仏教についての対談も予告されている。非常に楽しみ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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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October 27, 2014
    仏教をわかりやすく解説しようとする熱意が大澤氏から伝わってくるが、その説明の図式がキリスト教との対極に仏教を(無理やり)対地させるやり方で、そのための理屈がその前に(延々と)続くのに閉口した。前作『ふしぎなキリスト教 (講談社現代新書)』ほどの切れ味のある「問い」になっていない気がする。紙幅の割に仮説自体が妥当と受け取れないところが多かった(過ぎたるは及ばざるが如し:校正のしすぎじゃないの?)。
    それでも、「如来」「菩薩」「二諦」「中観」「唯心」などをクリアカットに説明してくれるところは、やはり橋爪、大澤ペアだけがなせる技だと思う。「仏教とは、ゴーダマシッダールタが覚ったと信じること」という定義はさすがだった。
    思った通り、通読するのに時間がかかったが、読後に手元には大きなものが残った。我々現代日本人は果たして仏教のなにを知っているのか。神格化した形式だけしか知らないのではないか。このままだと我々はどこから来たのかいよいよわからなくなる。
    この本を読んで、自分自身を振り返って仏教を、より深く知る必要があると強く感した。ハイデガーのいうヨーロッパプラトニズムの猛威へ全面的に対抗する有力な解にもなるとも思ったからだ。儒教はその解にはなりえない。そのためには、仏教側からの真摯で真面目な働きかけがさらに重要と思った。立ち上がれ!仏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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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August 22, 2014
    「不思議なキリスト教」のような出来を期待して買ったのだが、なんのなんのとてもとてもつまらない代物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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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5, 2013
    大乗仏教は釈迦の言葉を材料にして、大衆を救うために作られた宗教です。
    だから釈迦の言葉で入っていても、文脈が初期仏教と大きく違っているし、釈迦の思想が大胆に改変されています。
    『ゆかいな仏教』も「伝統的で正統派の大乗仏教の書」だと言えます。
    また従来の大乗仏教にはないオリジナルな主張が語られています。
    でも『ゆかいな仏教』は古代インド中心の対談になっているので日本仏教についてはオマケ程度にしか語られていないのが残念。
    是非、『ゆかいな仏教 「日本仏教編」』を出して欲しい。
    宗教と哲学について博識の二人が古代インド仏教の誕生から変化を大乗仏教を中心に縦横無尽に語っていて、この本を要約するのはとても難しい。
    この本は橋爪大三郎が主役で、大澤真幸は聞き役に回っている。
    だから橋爪氏が「仏教の本質」について語っている部分を抜き書きしてみます。    

    通説に対する懐疑宣言 ↓
    仏教の本質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る、初期仏教のさまざまな要因のうち、どこまでがほんとうに仏教の本質だと確証できるのか、私は疑問に思います。仏教の概説書に書いてあるからといって、通説を丸呑みにはできないのです。 76頁

    その理由 ↓
    でも、ゴータマ・ブッダがこのように考えていたのか、私は疑問に思っています。最初は、もっとシンプルな考えだった。「輪廻」「解脱」はあとから付け加った。インドの民衆にアピールするための、ヒンドゥー教対策です。でもその結果、仏教は大きな困難を背負い込むことになったのです。 略 ゴータマ・ブッダが、輪廻や解脱をまともに信じていたという証拠はどこにもない。 74頁

    通説に対する懐疑 ↓
    仏教徒は、出家と在家に分かれているけれど、出家と在家に分かれたのが、仏教の本質どうかも疑わしいところです。 76頁

    その理由 ↓
    でも考えてみれば、釈尊ほどのひとであれば、出家しなくても覚れたはずだ。出家は、覚りにとって必要でなかったと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覚れるのであれば、出家しなくても別にかまわない。こういう論理をもともと内包していたわけだから、出家主義の部派仏教に対して、大乗仏教が出てきてもふしぎではない。 115頁

    主張 ↓
    大乗の中心的な概念は、菩薩です。菩薩とは、仏教の、在家修行者のことです。 161頁

    主張 ↓
    大乗は在家修行だから、小乗の戒律は採用しない。 167頁

    主張 ↓
    私は菩薩だと自己主張できる、という効果があって、これが大乗教ですよ。どんな職業のひとも、どんなカーストのひとも、その場所でブッダになるための修行ができますよ。するべきですよ。在家者のままでいいんです。サンガの出家修行は最後の最後のトッピングだから、これは無視しなさい。 215頁

    主張 ↓
    同じように、無常とか輪廻とか苦とか、仏教を修飾しているいろいろな基本概念とされるものは、取り外してしまえると私は思う。なぜかと言えば、仏教はドグマでできていないからです。ドグマでできていないから、本質的なところは最初に言ったように、ゴータマ・シッダールタという個人が、自分の力で「覚り」(最高の真理) に到達した、だから、私もやればできる。これだけが本質で、これ以外の部分は全部、派生的なことがらだと思う。 115頁

    『ゆかいな仏教』を語る時の態度 ↓
    「ジャムセッションを聴いて、「楽譜どおりに演奏しろ」「作曲者をはっきり示さないとだめじゃないか」と思うひとがいる。われわれの対談を、「テキトーにしゃべっているだけ」「間違いが多い」と言うひとがいる。ジャムセッションや対談が、どんなものか知らないのだ。 377頁

    ★

    「釈迦は本当は輪廻を信じていない。輪廻は在家向けの方便という」衝撃な主張は明治以降の近代人に多くあります。
    例えば『誤解された仏教 (講談社学術文庫)』(秋月龍ミン:著)、『仏教の真実 (講談社現代新書) 』(田上太秀:著)

    だから橋爪氏の主張も明治以降の近代人の系譜に繋がっていて、珍し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
    しかし「釈迦は出家しなくても悟ることが可能だった」・・という主張は橋爪氏のオリジナルだと思います(オリジナルだから素晴らしいというわけではない・・ので注意してください)。
    また「菩薩」を在家に限定したり(出家は菩薩ではないことになる!)、
    「大乗のルール」は「小乗(部派仏教)のルール」を採用しない・・という主張も橋爪氏のオリジナルな主張だと思います。
    仏教史の通説では「大乗のルール」は「小乗(部派仏教)のルール」を採用しないというルールは、日本の最澄が始めたことになっています(日本式仏教のオリジナル・ルール)。
    参考 『鑑真 (岩波新書) 』(東野治之:著) 、『思想の身体 戒の巻 』(松尾剛次:編著)

    橋爪氏の発想の元になったのは、本書でも紹介されている平川彰の大乗仏教在家起源説(大乗仏教は在家が作った)です。でも橋爪氏は哲学者の立場から平川説をより大胆に主張しています。また本書では平川彰の大乗仏教起源論が紹介されています(144頁〜)。
    しかし1960年代に平川説が発表されてから後に都合の悪い事実がたくさん見つかり、日本仏教学会から厳しい批判にさらされています(海外では平川説は全く知られてない)。
    参考  『ブッダと仏塔の物語』(杉本卓州:著)、『座標軸としての仏教学』(勝本華蓮:著)、『シリーズ大乗仏教 全10巻』(高崎直道:監修)特に第1巻の佐々木閑の論考。

    追記: 
    この本では、橋爪氏は歴史学者(科学者)として語っているのではなく、哲学者として語っていることに注意すべきです。
    哲学者と言ってもいろんなタイプがありますが、哲学者の代表としてはニーチェを連想すれば良いと思います(ニーチェも釈迦について語っています)。
    参考 『キリスト教は邪教です! 現代語訳『アンチクリスト』 (講談社+α新書) 』(適菜収:翻訳)、橋爪博士はニーチェの釈迦論に強く影響を受けている気がします(推測)。

    哲学者として語るという意味は、歴史的事実よりも自分の感性の方を基盤にして、論理的に考えて語るということです。
    他のレビューを読みますと、「橋爪大三郎が釈迦の思想を勝手に改変していてけしからん!」というのがあります。
    たしかに科学者(歴史学者)として語るならそれは許されません。しかし哲学者は科学者ではありません。そして哲学者は自分の感じたモノを論理的に組み立てて語るが仕事です。
    そして哲学者が論理的に組み立てた釈迦像が歴史的な釈迦像と違っていても不思議ではありません。
    また古代インドで生まれた大乗仏教は釈迦の思想を大胆に変更して来ました。だから「釈迦思想の変更を許さない」というのは、大乗仏教の否定にも繋がります。
    また橋爪氏が宗教家と違う点は、論理的な整合性を重視するかどうかにあります。宗教家は論理的な整合性を重視する必要はありませんが、哲学者は論理的な整合性を重視します。

    歴史的な事実を重視し、尚且つ論理的な整合を重視した仏教研究本を読みたい人には、佐々木閑や宮元啓一の本がオスス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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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8, 2016
     橋爪先生は、本書76頁で、仏教の開祖である< ゴータマ・ブッダ >の言いたかったことを< せんじ詰める! >のであれば、次のように解釈できる!と主張しています。

     < すべてのネガティブな思い込みを捨て、積極的に前向きに、正しく生きていこう! >

     この< 生に対して非常に前向きな仏教解釈 >を、大澤先生と< 龍樹 >というか< ナーガールジュナ >の『 中論 』について議論している本書268頁以下で、< 空の思想 >や< 縁起の理法 >と絡めながら敷衍(ふえん)している!のですが、そこでの議論に< 猛烈に感動 >してしまいました。

     この268頁以下を読むためだけでも、< 本書は買う価値がある! >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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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5, 2014
    著者達は以前に『ふしぎなキリスト教』というデタラメ本を出しているが、
    これはそれの仏教版である。
    信仰云々以前に、歴史的事実の基本的間違いや日本語として破綻した文章が
    多すぎて読むに耐えない。

    そもそも著者達が論じる対象としているのは「ぼくのかんがえたぶっきょう」で
    あって「仏教」では無い。
    だから、一般論的・最大公約数的に正統とされている仏教の観点から間違いを
    指摘することすら不可能である。

    この本を読んで「仏教がわかった」とか書いている方々は、この本の著者達同様に
    基礎資料や客観的事実をきちんと確認することができない(自主規制)であるとしか
    言えない。

    こんな本を読んで仏教のことがわかるはずがない。
    せめて、『蝉丸Pのつれづれ仏教講座』くらいは読んでほしい。
    (こんなゴミ本と比較すること自体、蝉丸P師に失礼だと思う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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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October 28, 2016
    その名を知る割には、信仰上の位置付けがイマイチわからない「菩薩」に理解が深まりました。前世におけるゴータマ・ブッダ(菩薩=修行中の立場)がなぜ大乗仏教でフィーチャーされたか。在家信者中心の私たちにとっての仏教の思想の変遷が見えてきます。
    仏教における「救い」と一神教のそれとの違い、神という存在のない宇宙観、実在を否定し続けるときに残るものは何か。社会学、哲学、ときに数学の引用によって分かりやすく解説がなさ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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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9, 2014
    橋爪大三郎の本は面白い。
    山本七平の再来の様だ。これからも期待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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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July 29, 2018
    仏教の特徴、あゆみ、思想やオリジナリティ、幅広く語られる仏教の話はとても分かりやすいかつ興味深いので、仏教をより現代目線で知りたい人には読む価値は十分あります。

    一方、頻繁に比較されるキリスト教の誤った理解は注意要。著者二人が仏教に詳しいものの、明らかにキリスト教がまったくわかってなくて、ユダヤ教、キリスト教、イスラム教の思想と価値観は全然違うのに、「全部は一神教として、部分的に異なるが、基本一緒」みたいなスタンスで語れるのは大問題。

    例:「キリスト教は神様から「他人を愛するべき」の命令に従うだけ。他人を愛しようとしても、それは本当の愛ではなく、あくまで自分が神様から愛されるためだけです」。(橋爪)
    残念ながら、その逆。聖書にも明らかに書いてあるように→他人を愛できない人は神様を愛しないと等しい。神様を愛したい・愛されたいなら、まず他人を誠実に愛するしかない。いわゆる、他人を愛するはすべて、神様にたどり着くほかの方法がない、とキリストが明白に説明しておいた。
    橋爪さんの問題は、キリスト教とイスラム教の違いわかってないからそう言ってしまいます。
    イスラムの場合、人間は不自由。すべて起こること、幸運・不幸はアッラーが独裁的に決める。
    そもそもMUSLIMの意味は「神様の奴隷」、だからイスラム教にとっては自分の命、他人の命、その物自体価値がない。すべてはアッラーのためだけだ。だから平気で他人を殺せるわけ、だから平気でテロで自殺することもできる。唯一大事なのは、アッラー、そしてアッラーの楽園へ行くこと。その方法はアッラーの命令(聖CURAN)に従うことになる。

    一方、キリストの教えは神様=愛、だから神様を知りたいなら、たどり着けないなら、すべての人間を愛する他ならない。確かに、中世にて、イスラム教の影響がされて、楽園と地獄の思想が政治的に加わったが、本来のキリスト教にはそれは存在しない。本来のキリスト教には愛ある世界(楽園)と愛を拒む世界(地獄)しかない。それに、どれを選ぶのは死後の神様ではなく、今生きている私たちです。常に愛する・愛しないとの選択肢が私たちにあります。だから、キリスト教による人間は完全に自由で、神様のため、神様の命令などを従うわけない。

    また、「キリスト教だからこそ、資本主義が生まれた」(橋爪)。
    まず、どのキリスト教の話をするかによります。それは常識ですが、資本主義はプロテスタントの思想から生まれた。カトリックなら、ありえない話だったからこそ、キリスト教=資本主義と言えない。本来、カトリックにはお金をたまるのは罪で、お金を利子で貸すもタブーでした。だから、中世の人はお金にタブーのないユダヤ人に借りてたわけ(だから、現在の最も大きな銀行はすべてユダヤ人が作った組織)一方、プロテスタントは仕事はすべてで、これで得たお金を利用するのは罪、との思想の下で、稼いだお金を働かせるべき(=資本による投資)の価値観にたどり着いたが、それはプロテスタントの独特なライフスタイルと価値観に基づいて、カトリックとまったく違う考え方に当てはまる。

    結論として、キリスト教も仏教と同じぐらい、複雑で派によってずいぶん異なるので、橋爪さんの適当かつ誤っている解釈でキリスト教を語るのは問題。

    それを除けば、仏教に関する内容はとても興味深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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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August 24, 2018
    橋爪&大澤コンビの対談本は『ふしぎなキリスト教』以来ですね。期待にたがわず知的興奮に今回も駆られ一気に読みました。と言っても古今東西の哲学者、宗教者等の言葉が引用されるので難しかったのですが、質問役の大澤教授が常に読者を念頭に置き事前解説をされてくれていますのでどうやらこうやら投げ出さず読み終えたということでしょうか。

    仏教と一神教のユダヤ教、キリスト教、イスラム教の相違は『ふしぎなキリスト教』、『世界がわかる宗教社会学入門』で一応学習済みでしたが新たな観点の分析もあり飽きませんでした。
    今回の対談は『ふしぎなキリスト教』の時よりも質問役の大澤教授の突込みがするどく、橋爪教授があとがきで「じつにスリリングだった」と述懐されていますが迫力がありましたね。
    対談というよりも対論という感じでした。

    原始仏教時代のいわば利己的出家仏教(サンガ)、釈迦本位の部派仏教。いわゆる小乗仏教と700年後の大乗仏教の相違。出家を要せず在家のまま、すなわち日々のビジネスをしながら、「自利」だけでなく「利他」(福祉)を重視する菩薩修行という大乗仏教の出現が仏教史においては宗教改革的意義を持つ出来事だったとの理解ができただけでもこの本を読んだ甲斐があったと思いました。

    大乗仏教の根本哲学でもある「唯識」論、<外界の対象なるものは、実は、心が作った虚妄である。それらは、それ自体としては実在せず、むしろ「空」だ>は、難しいのですが、唯識論の独創的な部分である「アーラヤ識」の考え方が、現代の最先端の哲学や物理、神経生理学、生物学の利己的遺伝子の考え方に相通ずるものがあるとの見解は興味あるものでした。

     幾代にわたって輪廻転生を続ける生命体、前世の記憶もないのに同じ生命体と規定するのが無意識の底にある「アーラヤ識」。人間は死んでも魂が輪廻転生するんだと言いたくなりましたが、仏教では「霊魂」の存在は否定されているんですね。

    因みに世界の創造主は、ユダヤ教、キリスト教、イスラム教では「神」(God)ですが、仏教では創造主の規定はないんですね。「分からないものはわからない」、仏教は合理的なんです。

    そして仏教には最後の審判のような神の救済は無いんです。覚とりを得て仏陀になり、輪廻を解脱し、苦の無いニルバーナ(涅槃)に入るには自力実行しかないんです。阿弥陀仏信仰では極楽までは誰でも連れて行ってくれるそうですが、極楽は予備校みたいなもので仏陀になるには難しい勉強を阿弥陀様のもとでしなければならないんです。

    さて般若心経にある「色即是空 空即是色」などの「空」も論議されているんですが、哲学を学んだこともない生涯学生気分の私の頭は空転するだけでした。

    今日の一句    秋深しアーラヤ意識の点滅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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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13, 2013
    このお二人は、「不思議なキリスト教」でも過激に飛ばしてしていましたし、中国をめぐる鼎談でも鋭い意見を述べ合っていましたが、今度もいいですね。面白いしためになる。このふたりは現代日本の知の巨人であります。買うべ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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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May 19, 2014
    最初に以下の指摘や問題提起には同感である。
    (1) 『先に述べたような多くの困難に直面している日本人に対して、仏教は、何か決定的なヒントや洞察を提供してきただろうか。』(p.5)
    (2) 『そもそも仏教について一番不思議に思うことは、仏教が何であるかを定義するような条件や性質が殆ど無いことです。仏教を一般的に定義する条件は、限りなく無に近いように見えます。』(p.17〜18)
    (3) 『議論の端緒を拓く上でも、まずは仏教とは何かを簡単に定義しておく必要がある。』(p.20)
    ***

    しかし、以降の論理展開には幾つかの問題を指摘せざるを得ない。
    (A) 『私は、仏教の中身で仏教を定義することを考えてみたい。絶対に外せないポイントを考えてみると、ゴータマ・シッダールタがブッダであること』(p.22)の最後の部分は、『人間ゴータマ・シッダールタが仏陀ゴータマに進化したこと』と正しく表現すべきである。
    (B) 『仏教にとって、シッダールタの人生よりもずっと大事なのは、シッダールタの覚りの内容です。』(p.26)という表現も、『仏教にとって大事なのは、シッダールタの覚りの内容ではなく、覚りに至る方法である。』と言うべきである。具体的には、四聖諦や菩提分法である。
    (C) 『「覚り」の性質を考えてみると、(1) 知識である、 (2) その知識は最高に素晴らしい、 (3) その知識を言葉にできない。ゆえに、「ブッダは、覚ったに違いない」と確信することが全てなのです。 』(p.30)、および『仏教に関して不思議に思うことは、覚りの内容が、つまり何が覚られたということが不可知のままにされていることです。』(p.30)は、覚りの内容が不可知であるのに、覚りの性質を列挙するという矛盾を犯している。覚りの性質を一言で表現すれば、「人間が仏陀に進化する」となる。
    ***

    さて、仏陀ゴータマ(以下、釈尊と表現する)の説法をパーリ仏典(主に相応部経典)や漢訳経典(主に雑阿含経典)から読み解くと、<釈尊の教法の真義>が浮かび上がって来る。それは言葉で表現(定義)することができ、その言葉に従って正しく実践することが可能である。

    <釈尊の教法の真義>とは、「自分に正直な凡夫が聖者になり、聖者は釈尊と同等のブッダ(阿羅漢)になる」ことである。釈尊は自分に正直な凡夫を見つけ出し、彼らを聖者に導いたのである。その聖者とは凡夫の心にブッダの心が共存する者である。凡夫の心の無知(すなわち、欲界の「痴」)がブッダの心(すなわち、欲界の「智」)に置き換われば、第一段階の聖者「預流(シュダオン)」に進化する。この「預流」にならなければ<釈尊の教法の真義>は絶対に理解出来ないのである。釈尊が説法を最初は躊躇した理由がここにある。逆に、真の聖者が減少した釈尊滅後の仏教で<釈尊の教法の真義>が徐々に失われたのも、そのためである。

    凡夫を聖者にするのは、『心の量子トンネル現象』である。ブッダの心が凡夫の心に染み込む量子トンネル現象は、欲界の「痴」=「身見+疑惑+戒取」=「三結(三煩悩)」を取り除く過程で始まる。一度、『心の量子トンネル現象』が開始すれば、その影響が継続し、やがて欲界の「貪」と「瞋」が減少して第二段階の聖者「一来(シダゴン)」となる。さらに、欲界の「貪・瞋・痴」=「身見+疑惑+戒取+欲貪+瞋恚」=「五下分結」が消滅すれば第三段階の聖者「不還(アナゴン)」になる。「不還」になれば、欲界との縁が切れるので、人間界(欲界)への輪廻転生はない。欲界との縁が切れた「不還」は、間もなく、第四段階の聖者「阿羅漢」(=第一段階のブッダ)になる。
    ***

    パーリ仏典を読むと、釈尊の指導方法が次のように三段階で構成されていることが分かる。
    <第1段階:因果業報(善因楽果・悪因苦果)の道理を説く>
    第1段階は凡夫が自らの「邪見(=因果の道理を否定すること)」に気づく段階。
    (A) 施与慈善の話(施論) … 無財の七施など
    (B) 戒律道徳の話(戒論) … 道徳的な生活など
    (C) 幸福な天国に生まれる話(生天論) … 施と戒がもたらす来世への願望など
    <第2段階:因果の道理を正しく信ずる段階(随信行)で始まる「欲の禍患と離欲の功徳」を説く>
    第2段階は凡夫が自らの自己中心的な「我見」に気づく段階。

    <第3段階:釈尊の教法の真義を説く:ここからが釈尊の直接指導>
    (D) 欲界の「痴」である「三結(煩悩)」=身見+疑惑+戒取を理解(随法行)すれば、第一段階の聖者「預流」に進化する。ブッダの心がトンネル現象によって凡夫の心に入り込むのである。
    (E) 凡夫の心とブッダの心が共存する聖者(預流、一来)が、欲界の貪・瞋・痴を断じた不還になれば、やがて阿羅漢(第一段階のブッダ)となる。
    ***

    最後に、故ブッダダーサ比丘が見出したように、釈尊が用いる<法(ダルマ)>こそが覚りの内容である。その「法」は、<自然(五蘊)+自然の法則(縁起)+自然の法則に従った義務(八正道)+その義務を実践して得られる結果(四沙門果)>という「真理」からなる。

    これが分かれば、『仏教における「苦」に対応するのは、キリスト教における「罪」である。』(p.86)の対比を次のように述べることが出来る。すなわち、「真理」を知らないことに気づくのが「苦」であり、「真理」を知らないことに気づかないのが「罪」である、と。だから、釈尊が指導する「苦」の乗り越え方(p.88)とは、「真理」である「法」を理解し、実践して「智慧」を体得すること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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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8, 2013
    ほんとうに面白い本でした。
    面白いといっても、ゲラゲラ笑えるということではもちろんありません。
    ものごとの本質を根源的に考えるという知的ないとなみの面白さ。スリルと興奮。
    それを存分に味わわせてくれる、実に「ゆかいな」本なのです。

    まえがきで大澤氏も述べています。
    「私にとって、橋爪さんとの対談は本当に楽しい。
    純粋に、まったく純粋に、知的な探求のために対談することができるからである」。
    この言葉に偽りがないであろうことは、本書を読めばわかります。どちらも真剣勝負なのです。
    スカしたり、嘲笑したり、姑息な虚飾表現でごまかしたりという知的な学者どうしの対談にありがちなものがいっさい無い。
    まさに「一本を狙いに行く柔道」(大澤)を見せてくれる、すがすがしい本だといえます。

    大澤氏の疑問の提起の仕方は実に刺激的です。
    「仏教の理論とされているものの多くは、どうしてそれが仏教という枠組みの中で提起されなくてはいけないのか、
    どうして『ブッダの覚り』と関係しているかのように論じなければいけないのか、外から見ているとよくわからない」

    「そもそも」「なんで」という問いを考えさせたら随一の学者が大澤氏です。
    それに対して「教師役」の橋爪氏も真正面から受けて立つ。
    読みの浅い人たちは、「橋爪は終始教える側に立って、何を威張っているんだ」と言うかもしれない。
    でもそれはまったく違います。
    橋爪氏からしたら「教師役」を放棄する方が楽でしょう。
    でも彼は一貫してその役割を甘えることなく引き受けている。
    それが、この本のミソであり、またユーモアでもあるのです。

    いろいろと書きましたが、こんな理屈よりも、まずとにかく読んで楽しんでほしい本です。
    これからおそらく、専門家と称する人たちが、木を見て森を見ない「重箱の隅つつき」的な批判をしてくることでしょう。
    しかし、どのような批判も、それが本質に触れているものでない限り、無意味なものです。

    なぜなら、この本は、仏教「を」考える本では断じてないからです。
    この本は、仏教「で」考える本であり、仏教「とともに」考える本なのです。
    いままでどの専門家や仏教者がそのような本を書いてきたでしょうか。
    専門家のひとたちは、この本をとっくりと読んで考えてほしい。
    そして、批判をするなら、この本をこえる「ゆかいな」仏教の本を書いていただきたいと願います。

    生意気なことを書いてすみません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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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24, 2022
    釈迦、ブッダ、如来、菩薩、聞いたことある言葉の真なる意味を体得できた。より深く仏教のことを知りたい、という衝動に駆られています。こんなにも魅力的で、よくできていて、素晴らしい宗教が、我が国日本にこんなに身近にあるのにも関わらず、何も知ることのないまま今までを過ごしてきてしまったことを後悔。
  •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26, 2021
    原始仏教と今の仏教は大きく違います。今の日本の仏教界でも沢山の宗派があってお互いに相手のことを仏教と認めない団体もあります。誰かが、特定の考え方を仏教であると認めてくれるわけでもない。その辺りを無視して、「仏教の定義がはっきりしない」「ブッダの悟りがなになのか明らかになっていない」という話を繰り返すだけ。
  •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31, 2019
    仏教に関する大まかな理解は得られたが、それにしても橋爪とかいう人は本当に学者なのか?大澤真幸はそこそこ知識もあり議論を丁寧に整理してくれるのだが、橋爪とかいう人は随所随所で意味不明で支離滅裂なことを言っているのに自分で気づかないのだろうか。大澤の質問に応えるまでの流れが迂遠すぎる。橋爪のところを読むのは別な意味で疲れるのだが。
  • Reviewed in Japan on June 10, 2018
    タイトルから概論であると認識し、仏教の全体像をつかもうと手にしたのですが、これは仏教を俯瞰させることを目的とした本ではありません。それぞれの話に間違いはないのでしょうか、この書籍を愉快に楽しむには、事前学習が必要です。

    悪い本では決してないのですが、タイトルが奇をてらっていると感じ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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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26, 2017
    「ふしぎなキリスト教」が非常に面白かったので、こちらも購入。ただ、「ふしぎなキリスト教」ほどは分かりやすくなかったです。ただ、比較宗教学とはかくあるべし、というのが少し伝わってきました。ただ、仏教の真髄を理解できたかというと出来てはいないというのが正直なところです…
  •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3, 2014
    《臨済録――無仏無衆生、無古無今、無修無証、無得無失》

    わしの見地からすれば、仏もなければ衆生もなく、古人もなければ今人もない。

    得たものはもともと得ていたのであり、時を重ねての所得ではない。

    もはや修得の要もなければ証明の要もない。

    得たということもなく、失うということもない。

    いかなる時においても、わしにはこれ以外の法はない。

    たとい、なにかこれに勝る法があるとしても、そんなものは夢か幻のようなものだと断言する。

    わしの説くところは以上に尽きる。

    (入矢義高訳注 『臨済録』 岩波文庫P55~56より)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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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May 19, 2014
    (1) 全知と全能のアポリア
     全知全能の一神教のGodが予定を変更できるか、という問題。
     普通に考えれば、神が全能だとすると、神は予定の変更だってできるに決まっています。では、たとえば、こんな状況ではどうか。予定説に想定されているような神が、「大澤は、最後の審判のときアウトだな」と決めていたとする。大澤は救済されず神の国に入ることができない、と予定されているわけです。ところが、ダメだった大澤が、たとえば橋爪さんとよい対談なんかしたりしてなかなかいいことをするので、神は、「やはり大澤を合格にしてやろうかな」と予定を変更する。こういうことはありうるだろうか、と考えてみる。もちろん、ありうる、と思いたくなる。だいたい、多くの人は、善いことをしたり、信仰に篤い生活を送ったりするときに、こういうことを期待しているでしょう。
     しかし、よく考えてみると、この、神の予定の変更は変です。どうしてかというと、神は全知だからです。全知の神は、大澤が、橋爪さんとどんな対談をするか、最初から見通していたはずです。神は、そうしたことを見通し、知った上で、最後の審判における大澤の判決も決めていたはずだ。神にとっては、予期がはずれて、「おお、意外といい対談をしているじゃないか」なんて思うようになるはずがない。というわけで、全知であるとすれば、神が予定を変更できるはずがない。しかし、この結論もまたおかしい。われわれ人間でさえも、予定なんていくらでも変更できるのに、全能の神にそれができないとは。
     このように、全知と全能の間には葛藤がある。しかし、仏教には、こんな矛盾はない。ブッダは一切智ではあるけれども、全能ではないからです。ブッダは全能である必要はない。それは、ブッダは世界をつくったわけではないからですね。そういう意味で、仏教は一神教よりも整合性が高いとも言えますね。
    (2) 「56億7千万年後」と言ったら、「今でしょ」と言ったことになる。(p207)
     次にブッダになるのは弥勒菩薩なんですが、それは約56億年後の人類を救済する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る。しかし、この世では56億年後でも、時間の感覚のない向こうの世界では、弥勒菩薩の修行期間はもっと短いあっという間のことかも知れない。例えばアインシュタインの相対論では、光の世界では時間は止まる。
    (3) 因果律と自由意志のアポリア
     「因果律を徹底すれば、命なんてかりそめの記号ですから、ライオンはライオンという幻で、ウサギはウサギという幻で、ライオンがウサギを食べたって、幻が幻を食べたにすぎない。」(p201)
     病気も死も事実ですが、幻でもあるとも言えます。肉体は魂が一時期まとう衣だとすれば、病気も死も幻とも言えます。人間が動物を殺してその肉を食べ続けるのも、幻だから許せる世界だとも解釈できます。
     また、皆自分のことで精一杯、皆自分のことが可愛い、皆自分のことしか考えていない。『脳はこんなに悩ましい』には、他人の不幸は蜜の味とか、脳の報酬系はお金が増えれば増えるほど喜ぶとか、装置として脳はそういう仕掛けになっていると書いてあります。これは意識して改善すべきことでもありますが。「本当は、どこにも悪人はいないのだということ……お互いに、ある人間関係の問題状況における俳優を演じ合って、その葛藤を通じて学び合っている、ということにすぎない」『生きがいの創造[実践編]p117』。
     人は自由意志で判断行動しているというのが現実世界の決まりですが、精神世界も考えた広いとらえ方では、「他人の不幸は蜜の味」とかいう縛りを与えて、その中で修行しているとも考えられます。嫉妬心、自分のことが可愛い、他人の不幸は蜜の味、脳はお金もブランドも大好き、このような一見マイナスな仕組みの縛りの中では、人間関係や愛を学ぶのにむしろ好都合かも知れません。肉体やお金や人間関係に縛られた環境で、我々は「思い通りにならないこと」を通じて学んでいて、それが人間として生きる目的・意義・意味なのでしょう。
     病気の自分、死を目前にした自分、しかし、これは肉体という仮の衣をまとった魂の仮の姿。病気も死も現実とも言えるし、もっと広く見れば、幻とも言える。死ぬのは嫌だ健康でいたい、と思うのも事実で、この自由意志も正しい見方ですが、因果的にはすべては幻とも言え、精神世界で見ると、病気も死も演じている世界にも見え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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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3, 2013
    『ゆかいな仏教』。副題は「ブッダはキリストと何が違うのか?」。対比するキリストの方は実はあまり詳しくは書いて無く、同じ著者たちの『ふしぎなキリスト教』(講談社現代新書)を読まないとよく分からない。(まあ、それを読んでる前提で話しているかも・・。)

    「仏教の真髄を知れば、勇気をもって、前向きに、ゆかいに生きられる。」という趣旨のネーミングだそうだ。橋爪氏のあげる仏教の4つの特徴:1)個人主義的、'2)自由主義的、'3)合理的(因果論)、'4)理想主義的。→これは、「現代的」で、なかなかに「前向き」なのではないか!!

    対談形式で、大澤氏がトスを上げると、橋爪氏が強烈なシュートを決める・・という役割分担だ。対談なので、口語のわかりやすい表現だが、なかなか深い内容が語られている。橋爪氏の論文(『仏教の言語戦略』)の内容などが噛み砕かれて解説されているのかな?近・現代の数々の哲学者の思考も縦横無尽に引用されている。まあ、自分でこれだけの哲学者の著書を読み進むのはまず不可能だろうから、「道案内」と思い、ありがたくすがることにする。

    仏教が、それら近・現代の哲学に照らしてもなかなかに整合性のある体系があるんだというのは発見だ。この本では「はじまりの仏教」、「初期の仏教」、「大乗教へ」、「大乗教という思考」、「大乗教から密教まで」、「いま仏教を考える」という章立てで仏教を分析している。

    お釈迦様の出自が、インドの階級制では一番上のバラモン階級ではなかったので、当然、「階級にかかわらず」というアプローチが前面に出るので、それが、仏教が広い層の人々に受け入れられる要素となっているというのは、納得!

    また、巧みな比喩で、「なるほど、そういう事か!」と感心させられる。例えば、「極楽は予備校である」。・・阿弥陀仏は、成仏させてあげることはできないが、極楽に往生させるのはできる。・・その「予備校」で勉強すると、けっこうな率でニルヴァーナ大学に入る・・。

    「点数」を重ねていけばいつかは成仏するのだろうけど、そうすると、「輪廻」がないと、「時を経ていつかは成仏」という構図にはならない。(輪廻を通じてのポイント持越し制度)。いずれにせよ、「発心」が大事とか・・。

    まあ、この本に触発されて、色々勉強してみよう(こういう心がけも「発心」の一種か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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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8, 2014
    テーマと読み始めは面白いと思ったんですけどね、明快にダメな評論でした。

    とにかく、仏教の一番基本的な部分を勘違いしているから議論の方向が迷走しまくる。「ゆかいな仏教」なのは前提を間違えてるゆえにトンデモな結論になってしまうからゆえである。
     
    仏教を「修行によってポイントを高めていって、一定のポイントを超えたら悟りに至るもの」なんて真面目に仮定しちゃうから、それ以降の議論が全部変な方向に行ってしまっている。そんなポイント制みたいな仏教、インチキ系の新興宗教の教祖以外誰も言わない。

    仏教の本質を誤った上に「キリスト教とは根本的に違う」と断定した上で、ただでさえ過剰表現な大乗仏教の経典の要素をそのまま分析しようとすれば「ゆかい」というかお笑いの世界にならざる得ない。でもそれは「笑い」を目的とした読み物なら意味はあるかもしれないけれど、評論としての価値はない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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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12, 2014
    仏教がインドで生まれたことは、改めて言うまでもない。したがって我が国に入って来るまでに様々な変容を遂げている。入って来てからも、さらに変容している。それだけではない。インド内で仏教自体が大いに変容しているのだから複雑きわまりない。

    そういう状況だから、評者の立場によって言いたいことも様々だろう。だがこの本の目的が、複雑きわまりない仏教を一望の下に整理することにあるとすれば、とても良くできていると思う。私にとっては、明確にしておきたいけどはっきりしていなかったことの幾つかが、以下のように確言されていて参考になった。

    「ブッダが輪廻や解脱をまともに信じていたという証拠はどこにもない」
    「密教に対応するサンスクリット語はない」

    「〜はない」と言い切ることは至難の技。学的蓄積あってのことだろうが、あくまで参考まで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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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1, 2021
    我々、日本人が持つ生活習慣などが仏教から派生していることが楽しく理解できます。
===



우신 소지스트
5.0 out of 5 stars 추천합니다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8, 2015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느슨한 서명과는 반대로 내용은 꽤 본격파입니다.
「신비한 기독교」(고단샤 현대 신서)에 있어서,
기독교 에 대한 사고를 전개한 하시네오씨와 오자와씨가, 본서에서는 불교
에 다가옵니다.

오자와 씨가 묻고, 다리 손톱 씨가 응한다는 전서와 같은 형식입니다.
전서에서는 다리 손톱씨의 선명한 회답만이 인상적이었습니다만, 본서에서는
오자와씨의 원리 원칙에의 집요한 구애가, 불교의 본질에 육박하는 질문이
되고 있어 훌륭합니다.

대화의 흐름은 불교 전반, 초기 불교, 대승교, 밀교와 인도
불교에 관해서 시대를 따라 진행됩니다.
거기서 보아 오는 것은, 붓다나 기억이라고 하는 「하늘」을 중심으로 한
, 도그마가 없기 때문에 이단도 없는, 실로 다양한 사상입니다.

다양하지만 복잡하기 때문에 불교의 전체 이미지를 잡는 것은
뼈가 부러집니다.
거기를 본서에서는, 오자와 씨의 집요한 회의와 다리 손톱씨의 적절한 회답
에 의해 , 불교의 대근이 보여 옵니다.
단순한 입문서에는 머무르지 않는 깊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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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kkun
4.0 out of 5 stars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27, 2013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대담 방식으로되어있어, 편하게 어깨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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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3.0 out of 5 stars 읽지 않습니다.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28, 2015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언젠가 읽을 것입니다. 종교는 알고 싶지만 믿는 종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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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찬
5.0 out of 5 stars 찾고 있던 책을 얻었습니다.
Reviewed in Japan on August 4, 2025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찾고 있던 책이 손에 들어 감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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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
4.0 out of 5 stars 알기 쉬운 한 권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15, 2022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불교를 알기 쉽게 알고 싶은 분의 첫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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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만
5.0 out of 5 stars 비교종교적인 관점이 신선 
Reviewed in Japan on May 27,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이상한 기독교'의 대담 콤비가 불교에 대해 논의한다. 전저가 그 타이틀에도 나타나고 있듯이, 전지전능의 유일한 하나님을 결국은 믿을 수 없는 두 사람이,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 지적인 일탈도 무시하고 논의한 것에 대해, 불교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라고 하는 가운데 공감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다리 손톱씨는 불교도라고 해도 좋을 만큼 깊게 커밋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
 오자와 씨가 질문을 던지고, 다리 손톱 씨가 거기에 대답하고, 오자와 씨가 그것을 받아 더 전개해 나가는 형태로 대담은 진행된다. 석가의 사상으로 시작하여 초기 불교를 거쳐 대승교로의 전개라는 흐름에 따라 검토가 더해진다.
 오자와 씨는 굳이 불교로부터 거리를 잡고, 기본적인 컨셉을 俎上에 얹어 그 의미를 묻는다. 비교종교학적 관점이 신선했다. 일신교의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붓다의 일체지, 예언서와 각자, 일신교의 천국과 涅槃 등이 비교됨으로써 불교의 특징이 떠오른다.
 두 사람의 지식과 사고의 갈등에 끌려가 단번에 읽어 버렸다. 그러나 한번 읽고 머리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반복해서 읽고 맛보고 싶다.
 불교에는 수많은 종파가 있어 매우 버라이어티가 풍부하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전혀 정합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을 관철하는 핵심은, 「고다마 시다르가 붓다(각자)이다」라고 인정하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그것이 불교의 정의로 된다.
 석가가 '깨웠다'는 것은 모든 불교도가 인정하면서 그 내용에 대해서는 석가만이 아는 것으로 다른 누구도 모른다. 말로 명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말로 나타내려고 하면 배신당한다는 관계 속에서 밖에 가리킬 수 없는 것이 「기억」이라고 한다.
 진짜 귀찮아도 유쾌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풍요로워 끝이 없는 사색이 2500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또한 그 흐름에 갇히는 한 권이 될 것이다.
 일본 불교에 대한 대담도 예고되고 있다. 아주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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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6
4.0 out of 5 stars 오자와 씨의 말 (주석)이 끔찍합니다.
Reviewed in Japan on October 27,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불교를 알기 쉽게 해설하고자 하는 열의가 오자와씨로부터 전해져 왔지만, 그 설명의 도식이 기독교와의 대극에 불교를 (무리하게) 대지시키는 방식으로, 그를 위한 이굴이 그 전에 (연속) 계속되는데 닫혔다. 전작 『신비한 기독교(코단샤 현대 신서)』 정도의 예리함이 있는 「문의」가 되어 있지 않은 생각이 든다. 종이 폭에 비해 가설 자체가 타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는 곳이 많았다(지나치게는 미치지 않지만 : 교정의 지나치지 않아?).
그래도 '여래', '보살', '이하', '중관', '유심' 등을 클리어컷에 설명해주는 곳은 역시 다리발, 오자와 쌍만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란, 고다 마시다르타가 깨었다고 믿는 것」이라고 하는 정의는 과연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통독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독후에 수중에는 큰 것이 남았다. 우리 현대 일본인은 과연 불교의 무엇을 알고 있는가. 신격화한 형식만 밖에 모르는 것은 아닐까. 이 상태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드디어 모르게 된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불교를 더 깊이 알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느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유럽 플라토니즘의 맹위에 전면적으로 대항하는 유력한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교는 그 해가 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불교 측으로부터의 진지하고 진지한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어서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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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곤
5.0 out of 5 stars 예상치 못한
Reviewed in Japan on August 22,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이상한 기독교」와 같은 완성을 기대해 샀는데, 아무것도 매우 지루한 대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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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보
5.0 out of 5 stars 기존의 석가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불교를 만들기 위해 철학자 다리 손톱 오사부로는 대담하게 주장한다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5, 2013
Format: Paperback Shinsho
대승불교는 석가의 말을 재료로 하여 대중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교입니다.
그래서 석가의 말로 들어가도 문맥이 초기 불교와 크게 다르고, 석가의 사상이 대담하게 개변되고 있습니다.
「유카이 불교」도 「전통적이고 정통파의 대승 불교의 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대승 불교에는 없는 오리지널 주장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카이 불교』는 고대 인도 중심의 대담이 되어 있으므로 일본 불교에 대해서는 덤 정도 밖에 말하지 않은 것이 유감.
부디, 「유카이한 불교 「일본 불교편」」을 내놓으면 좋겠다.
종교와 철학에 대해 박식의 두 사람이 고대 인도 불교의 탄생으로부터 변화를 대승 불교를 중심으로 종횡무진하게 말하고 있어, 이 책을 요약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책은 다리 손톱 오사부로가 주역으로, 오자와 마유키는 듣고 역으로 돌고 있다.
그러니까 다리 손톱씨가 「불교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을 뽑아 써 봅니다.    

통설에 대한 회의선언 ↓
불교의 본질이라는 것이 되어 있는, 초기불교의 여러가지 요인 가운데, 어디까지가 정말 불교의 본질이라고 확증할 수 있을까, 나는 의문으로 생각합니다. 불교의 개설서에 쓰여 있다고 해서 통설을 삼킬 수는 없습니다. 76쪽

그 이유 ↓
에서도, 고타마·부다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나는 의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더 간단한 생각이었습니다. 「윤회」「해탈」은 나중에 덧붙였다. 인도의 민중에게 어필하기 위한, 힌두교 대책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 불교는 큰 어려움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약 고타마 부처가 윤회와 해탈을 제대로 믿고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74 페이지

통설에 대한 회의 ↓
불교도는 출가와 재가로 나뉘어져 있지만 출가와 재가로 나뉘어진 것이 불교의 본질인지 의심스러운 곳입니다. 76쪽

그 이유 ↓
라도 생각해 보면, 석존 정도의 한 사람이라면, 출가하지 않아도 깨어났을 것이다. 출가는 기억에 필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깨어난다면, 출가하지 않아도 따로 상관없다. 이런 논리를 원래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가주의 부파 불교에 대해 대승 불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115쪽

주장 ↓
대승의 중심적인 개념은 보살입니다. 보살이란 불교의 재가수행자입니다. 161쪽

주장 ↓
대승은 재가 수행이기 때문에, 소승의 계율은 채용하지 않는다. 167 페이지

주장 ↓
나는 보살이라고 자기 주장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있고, 이것이 대승교예요. 어떤 직업의 사람도, 어떤 카스트의 사람도, 그 장소에서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을 할 수 있어요. 해야 합니다. 재가자 그대로 괜찮습니다. 상가의 출가 수행은 마지막 마지막 토핑이기 때문에 이것은 무시하십시오. 215쪽

주장 ↓
같이, 무상이라든가 윤회라든가 쓴다든가, 불교를 수식하고 있는 여러가지 기본 개념으로 여겨지는 것은, 제거해 버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불교는 도그마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그마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인 곳은 최초로 말했듯이, 고타마 시다르타라는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기억」(최고의 진리)에 도달했다, 그래서, 나도 하면 할 수 있다. 이것만이 본질로, 이 이외의 부분은 전부, 파생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115쪽

『유카이 불교』를 말할 때의 태도 ↓
「잼 세션을 듣고, 「악보대로 연주하라」 「작곡자를 분명히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의 대담을, 「텍토로 말하고 있을 뿐」「잘못이 많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잼 세션이나 대담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377쪽

★

「석가는 사실은 윤회를 믿지 않는다. 윤회는 재가용의 방편이라고 한다」 충격적인 주장은 메이지 이후의 근대인에게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해된 불교(코단샤 학술 문고)』(아키즈키 류민:저), 『불교의 진실(코단샤 현대 신서)』(다카미 타이슈: 저)

이기 때문에 하시네 씨의 주장도 메이지 이후의 근대인의 계보에 연결되어 있어 드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석가는 출가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었다”··라고 하는 주장은 다리 손톱씨의 오리지날이라고 생각합니다(오리지날이니까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이므로 주의해 주세요).
또 「보살」을 재가에 한정하거나(출가는 보살이 아니게 된다!),
「대승의 룰」은 「소승(부파 불교)의 룰」을 채용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주장도 하시네 씨의 오리지날인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사의 통설에서는 「대승의 룰」은 「소승(부파 불교)의 룰」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룰은, 일본의 최청이 시작된 것이 되고 있습니다(일본식 불교의 오리지날·룰).
참고 『감진(이와나미 신서)』(히가시노 치유키:저), 『사상의 신체 계명의 권』(마츠오 고지:편저)

다리 이발씨의 발상의 기초가 된 것은, 이 책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히라카와 아키라의 대승 불교 재가 기원설(대승 불교는 재가가 만들었다)입니다. 하지만 다리 손톱씨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히라카와설을 보다 대담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본서에서는 히라카와 아키라의 대승 불교 기원론이 소개되어 있습니다(144페이지~).
그러나 1960년대에 히라카와설이 발표되고 나서 나중에 형편이 나쁜 사실이 많이 발견되어, 일본 불교 학회로부터 엄격한 비판에 노출되어 있습니다(해외에서는 히라카와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 『부다와 불탑의 이야기』(스기모토 탁주:저), 『좌표축으로서의 불교학』(카츠모토 화련:저), 『시리즈 대승 불교 전 10권』(다카사키 직도:감수) 특히 제1권의 사사키 섬의 논고.

덧붙여서: 
이 책에서는, 하시네 씨는 역사학자(과학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로서 말하고 있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철학자라고 해도 여러가지 타입이 있습니다만, 철학자의 대표로서는 니체를 연상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니체도 석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 『기독교는 사교입니다! 현대 어역 『안티크리스토』(코단샤+α신서)』(적채수:번역), 다리 손톱 박사는 니체의 석가론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추측).

철학자로서 말한다는 의미는 역사적 사실보다 자신의 감성을 기반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리뷰를 읽으면, 「다리 손톱 오사부로가 석가의 사상을 마음대로 변경하고 있어 굉장히!」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확실히 과학자(역사학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용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철학자는 과학자가 아니다. 그리고 철학자는 자신이 느낀 물건을 논리적으로 조립해 말하지만 일입니다.
그리고 철학자가 논리적으로 조립한 석가상이 역사적인 석가상과 달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또한 고대 인도에서 태어난 대승불교는 석가의 사상을 대담하게 변경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석가 사상의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승 불교의 부정으로도 연결됩니다.
또한 다리 손톱이 종교가와 다른 점은 논리적인 무결성을 중시할지 여부에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논리적 무결성을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철학자들은 논리적 무결성을 강조한다.

역사적인 사실을 중시하고, 또한 논리적인 정합을 중시한 불교 연구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사사키 한과 미야모토 케이이치의 책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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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축
5.0 out of 5 stars 다리 손톱 선생님은, 본서에서 <생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불교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8, 2016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다리 손톱 선생님은, 본서 76페이지에서, 불교의 개조인 <고타마·부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신지 채운다! >이라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모든 부정적인 추억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제대로 살아가자! >

 이<생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불교 해석>을, 오자와 선생님과<용수>라고 할까<나걸 주나>의『중론』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본서 268페이지 이하로,<하늘의 사상>이나<연기의 이법>이라고 얽히면서 깔개(후에) 하지만 거기서의 논의에 <맹렬하게 감동> 해 버렸습니다.

 이 268페이지 이하를 읽기 위해서만, <본서는 살 가치가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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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장 팬
1.0 out of 5 stars 읽을 가치가없는 쓰레기 책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5,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저자들은 이전에 '신비한 기독교'라는 데타라메 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은 그것의 불교판이다.
신앙운전 이전에 역사적 사실의 기본적 실수나 일본어로 파탄된 문장이
너무 많아 읽을 수 없다.

원래 저자들이 논하는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나의 칸가에타부쿠쿄」이며
「불교」는 아니다.
그래서 일반론적·최대공약수적으로 정통으로 여겨지는 불교의 관점에서 실수를
지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 책을 읽고 '불교를 알았다'라고 쓰는 분들은 이 책의 저자들처럼
기초자료와 객관적 사실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자주 규제)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런 책을 읽고 불교를 알 수는 없다.
적어도, 「스기마루 P의 얽힌 불교 강좌」정도는 읽어 주었으면 한다.
(이런 쓰레기 책과 비교하는 것 자체, 매미 P사에게 실례라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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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여래
5.0 out of 5 stars 사회학·철학·수학에서 본 불교의 대담본
Reviewed in Japan on October 28, 2016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그 이름을 아는 것 보다는, 신앙상의 자리매김이 이마이치 모르는 「보살」에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전세에 있어서의 고타마·부다(보살=수행중의 입장)가 왜 대승 불교로 피처되었는가. 재가신자 중심의 우리에게 있어서 불교의 사상의 변천이 보입니다.
불교에 있어서의 「구원」과 일신교의 그것과의 차이, 신이라는 존재가 없는 우주관, 실재를 계속 부정할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학, 철학, 때로는 수학의 인용에 의해 알기 쉽게 해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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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03t
5.0 out of 5 stars 좋은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9,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다리 손톱 오사부로의 책은 재미있다.
야마모토 칠평의 재래 같다. 앞으로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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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4.0 out of 5 stars 불교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대화이지만, 기독교의 오해 해석은 문제입니다.
Reviewed in Japan on July 29, 2018
Format: Paperback Shinsho
불교의 특징, 아유미, 사상이나 독창성, 폭넓게 말할 수 있는 불교의 이야기는 매우 알기 쉽고 흥미롭기 때문에, 불교를 보다 현대 시선으로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한편, 자주 비교되는 기독교의 잘못된 이해는 주의 요. 저자 두 사람이 불교에 익숙하지만 분명히 기독교가 전혀 모르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사상과 가치관은 전혀 다르지만, "전부는 일신교로서, 부분적으로 다르지만, 기본 함께"같은 스탠스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큰 문제.

예: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명령을 따를 뿐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기 때문입니다.” (다리 손톱)
불행히도, 그 반대. 성경에도 분명히 쓰여 있듯이→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타인을 성실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도착하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그리스도가 명백하게 설명해 두었다.
다리 손톱의 문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 버립니다.
이슬람의 경우 인간은 부자유. 모두 일어나는 일, 행운·불행은 알라가 독재적으로 결정한다.
원래 MUSLIM의 의미는 '하나님의 노예', 그래서 이슬람교에게는 자신의 생명, 타인의 생명, 그 물체 자체 가치가 없다. 모든 것은 알라를 위해서만이다. 그러니까 태연하게 타인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태연하게 테러로 자살할 수도 있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알라, 그리고 알라의 낙원에 가는 것. 그 방법은 알라의 명령 (성 CURAN)을 따릅니다.

한편,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하나님=사랑,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도착할 수 없다면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확실히 중세에서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낙원과 지옥의 사상이 정치적으로 더해졌지만, 본래의 기독교에는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래 기독교에는 사랑 있는 세계(낙원)와 사랑을 거부하는 세계(지옥)밖에 없다. 게다가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은 사후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우리입니다. 항상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 선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 의한 인간은 완전히 자유롭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 등을 따르지 않는다.

또, 「기독교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태어났다」(다리 발톱).
첫째, 어떤 기독교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상식이지만 자본주의는 개신교의 사상에서 태어났다. 카톨릭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기독교=자본주의라고 할 수 없다. 본래 카톨릭에게는 돈을 쌓는 것은 죄였고, 돈을 이자로 빌려주는 것도 금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중세의 사람들은 돈에 금기없는 유대인들에게 빌렸다. 의 사상 하에서, 벌어들인 돈을 일하게 해야 하는(=자본에 의한 투자)의 가치관에 도착했지만, 그것은 개신교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에 근거해, 가톨릭과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에 적용된다.

결론적으로 기독교도 불교만큼 복잡하고 파에 따라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다리 손톱의 적당하고 잘못된 해석으로 기독교를 말하는 것은 문제.

그것을 제외하고 불교에 관한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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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학생 기분
5.0 out of 5 stars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Reviewed in Japan on August 24, 2018
Format: Paperback Shinsho
다리 손톱&오자와 콤비의 대담본은 「신비한 기독교」 이래군요. 기대에 따라 지적 흥분에 이번에도 달려 단숨에 읽었습니다. 라고 해도 고금 동서의 철학자, 종교자등의 말이 인용되기 때문에 어려웠습니다만, 질문 역의 오자와 교수가 항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사전 해설을 해 주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이렇게 던지지 않고 읽어 마쳤다고 하는 것입니까.

불교와 일신교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차이는 '신비한 기독교', '세계를 아는 종교 사회학 입문'에서 일단 학습이 끝났지만 새로운 관점의 분석도 있어 질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대담은 '신비한 기독교' 때보다 질문 역의 오자와 교수의 돌입이 하는 대로, 다리 손톱 교수가 후기로 「실제로 스릴이었다」라고 술회되고 있습니다만 박력이 있었습니다.
대담보다는 대론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원시 불교 시대의 이른바 이기적 출가 불교(상가), 석가 본위의 부파 불교. 이른바 소승불교와 700년 후의 대승불교의 차이. 출가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재가 그대로, 즉 나날의 사업을 하면서, 「자리」뿐만 아니라 「이타」(복지)를 중시하는 보살 수행이라는 대승 불교의 출현이 불교사에 있어서는 종교 개혁적 의의를 가지는 사건이었다고의 이해가 생긴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카이가 있었다.

대승불교의 근본철학이기도 한 '유식'론, <외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실은 마음이 만든 허망이다. 그들은 그 자체로는 실재하지 않고 오히려 '하늘'이다>는 어렵지만, 유식론의 독창적인 부분인 '아라야식'의 사고방식이 현대의 최첨단의 철학이나 물리, 신경생리학, 생물학의 이기적 유전자의 사고방식과 상관되는 것이 있다는 견해는 흥미있는 것이었다.

 수대에 걸쳐 윤회전생을 계속하는 생명체, 전세의 기억도 없는데 같은 생명체로 규정하는 것이 무의식의 바닥에 있는 '아라야식'. 인간은 죽어도 영혼이 윤회전생한다고 말하고 싶어졌습니다만, 불교에서는 「영혼」의 존재는 부정되고 있네요.

덧붙여서 세계의 창조주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는 「신」(God)입니다만, 불교에서는 창조주의 규정은 없네요. 「모르는 것은 모른다」, 불교는 ​​합리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에는 마지막 심판과 같은 하나님의 구제는 없습니다. 각성을 얻어 부처가 되어, 윤회를 해탈해, 쓴 없는 닐바나(도둑)에 들어가려면 자력 실행 밖에 없습니다. 아미타 불신앙에서는 극락까지는 누구나 데려가 준다고 합니다만, 극락은 예비교같은 것으로 불타가 되기는 어려운 공부를 아미타님의 아래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약심경에 있는 「색 즉 시공 하늘 즉 시색」등의 「하늘」도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철학을 배운 적도 없는 평생 학생 기분의 나의 머리는 공전할 뿐이었습니다.

오늘의 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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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88
5.0 out of 5 stars 재미있는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13, 2013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이 두 사람은 "이상한 기독교"에서도 과격하게 날고 있었고, 중국을 둘러싼 고담에서도 날카로운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좋네요. 흥미 롭습니다. 이 두 사람은 현대 일본의 지식의 거인입니다.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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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ekatrek
2.0 out of 5 stars <석존의 교법의 진의>를 알면 불모의 논의가 영원히 계속된다
Reviewed in Japan on May 19,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
우선 이하의 지적이나 문제제기에는 동감이다.
(1) '앞서 말한 것처럼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일본인에 대해서, 불교는 ​​뭔가 결정적인 힌트나 통찰을 제공해 왔을까. (p.5)
(2) '처음 불교에 대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교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조건이나 성질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불교를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조건은 무한히 가깝게 보입니다. '(p.17~18)
(3) '논의의 단서를 개척하는데 있어서도 우선 불교란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정의해 둘 필요가 있다. '(p.20)
**

그러나, 이후의 논리 전개에는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A) '나는 불교의 내용으로 불교를 정의하는 것을 생각해보고 싶다.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를 생각해 보면, 고타마 시다르타가 붓다인 것」(p.22)의 마지막 부분은, 「인간 고타마 시다르타가 불타고타마로 진화한 것」이라고 올바르게 표현해야 한다.
(B) 『불교에 있어서, 시다르타의 인생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시다르타의 기억의 내용입니다. '(p.26)라는 표현도 '불교에게 중요한 것은 시다르타의 기억 내용이 아니라 기억에 이르는 방법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사성 포기나 보리 제분법이다.
(C) 『「기억」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1) 지식이다, (2) 그 지식은 최고로 훌륭하다, (3) 그 지식을 말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상처는, 깨달음에 틀림없다”라고 확신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p.30), 그리고 '불교에 관하여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억의 내용이, 즉 무엇이 깨어났다는 것이 불가지한 채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p.30)은 기억의 내용이 불가지인데도, 기억의 성질을 열거한다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각성의 성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간이 부처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불타고타마(이하, 석존이라고 표현한다)의 설법을 파리 불전(주로 상응부 경전)이나 한역 경전(주로 잡아함경전)으로부터 읽어 풀면, <석존의 교법의 진의>가 떠오른다. 그것은 단어로 표현 (정의) 될 수 있으며, 그 단어에 따라 올바르게 연습 할 수 있습니다.

<석존의 교법의 진의>는 "자신에게 정직한 범부가 성자가 되고 성자는 석존과 동등한 부다(아라한)가 된다"는 것이다. 석존은 자신에게 정직한 범부를 찾아내 그들을 성자에게 인도한 것이다. 그 성자란 범부의 마음에 붓다의 마음이 공존하는 자이다. 범부의 마음의 무지(즉, 욕계의 '치')가 붓다의 마음(즉, 욕계의 '치')로 바뀌면, 제1단계의 성자 '예류(슈다온)'로 진화한다. 이 「예류」가 되지 않으면 <석존의 교법의 진의>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석존이 설법을 처음에는 주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참 성자가 감소한 석존멸 후 불교에서 <석존의 교법의 진의>가 서서히 잃어버린 것도 그 때문이다.

범부를 성자로 만드는 것은 '마음의 양자 터널 현상'이다. 붓다의 마음이 범부의 마음에 스며든 양자 터널 현상은 욕계의 '치'='신견+의혹+계취'='삼결(三煩悩)'을 없애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일단 '마음의 양자 터널 현상'이 시작되면 그 영향이 계속되고, 이윽고 욕계의 '탐'과 '검'이 감소해 제2단계의 성자 '일래(시다곤)'가 된다. 게다가 욕계의 '탐·감·치수' = '신견+의혹+계취+욕탐+추악' = '오하 분결'이 소멸되면 제3단계의 성자 '불환(아나곤)'이 된다. 「불환」이 되면, 욕계와의 인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인간계(욕계)에의 윤회 전생은 없다. 욕계와의 인연이 끊어진 '불환'은 곧 제4단계의 성자 '아라한'(=제1단계의 부다)이 된다.
***

파리 불전을 읽으면, 석존의 지도 방법이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단계: 인과업보(선인악과·악인고과)의 도리를 설명한다>
제1단계는 범부가 스스로의 「사견(=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단계.
(A) 시여
자선의 이야기(시론) … 무재의 칠시 등
(B) 계율도덕의 이야기(계론) … 도덕적인 생활 등 시와 계가 가져오는 내세에 대한 욕망 등
<제2단계: 인과의 도리를 바르게 믿는 단계(수신행)로 시작하는 '욕심의 환환과 이욕의 공덕'을 설득한다
.

<제3단계:석존의 교법의 진의를 설한다:여기부터가 석존의 직접지도>
(D) 욕계의 「치매」인 「삼결(煩悩)」=신견+의혹+계취를 이해(수법행)하면, 제1단계의 성자「예류」로 진화한다. 붓다의 마음이 터널 현상에 의해 범부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다.
(E) 범부의 마음과 붓다의 마음이 공존하는 성자(예류, 일래)가, 욕계의 탐·검·색치를 끊은 불환이 되면, 이윽고 아라한(제1단계의 붓다)이 된다.
***

마지막으로, 고부다다사 히오카가 발견한 것처럼, 석존이 이용하는 <법(달마)>이야말로 기억의 내용이다. 그 「법」은, <자연(五蘊)+자연의 법칙(연기)+자연의 법칙에 따른 의무(팔정도)+그 의무를 실천하여 얻은 결과(사사문과)>라는 「진리」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알면 '불교의 '고'에 대응하는 것은 기독교의 '죄'이다. '(p.86)의 대비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진리」를 모르는 것을 깨닫는 것이 「고」이고, 「진리」를 모르는 것을 깨닫지 않는 것이 「죄」라고. 그러므로 석존이 지도하는 '고'의 극복 방법(p.88)이란 '진리'인 '법'을 이해하고 실천하여 '지혜'를 체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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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모씨
5.0 out of 5 stars 순수한 지식의 탐구를 즐길 수 있는 책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8, 2013
Format: Paperback Shinsho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흥미롭다고 해도, 게라게라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없습니다.
사물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생각한다는 지적인 사촌의 재미. 스릴과 흥분.
그것을 마음껏 맛보게 해주는, 실로 「유기한」책입니다.

머리에 오자와 씨도 말합니다.
"나에게 다리 손톱과의 대담은 정말 즐겁다.
순수하게, 완전히 순수하게, 지적인 탐구를 위해 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둘 다 진지한 승부입니다.
스카 하거나, 조소하거나, 숨막히는 허식 표현으로 속임하거나 하는 지적인 학자끼리의 대담에 흔히 있는 것이 일절 없다.
바로 "하나를 노려가는 유도"(오자와)를 보여주는, 멋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자와 씨의 의문 제기 방법은 정말 자극적입니다.
“불교의 이론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왜 그것이 불교라는 틀 안에서 제기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왜 『부다의 기억』과 관계하고 있는 것처럼 논해야 하는지, 밖에서 보고 있으면 잘 모른다

.
그에 대해 "교사 역"의 다리 손톱 씨도 정면에서 받고 서 있다.
얕은 사람들은 "다리 발톱은 시종 가르치는 쪽에 서서 무엇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다릅니다.
다리 손톱 씨로부터 하면 「교사 역」을 포기하는 것이 편하겠지요.
하지만 그는 일관되게 그 역할을 달지 않고 맡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의 미소이며, 또 유머이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썼습니다만, 이런 리굴보다, 우선 어쨌든 읽고 즐겨 주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앞으로 아마 전문가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않는 '무거운 상자의 구석구석'적인 비판을 해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비판도 그것이 본질에 닿지 않는 한 무의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불교 '를' 생각하는 책에서는 거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불교 '에서' 생각하는 책이며, 불교 '와 함께' 생각하는 책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전문가와 불교자가 그러한 책을 썼습니까?
전문가 중 한 명은 이 책을 철저히 읽고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비판을 한다면, 이 책을 넘는 「유카이」 불교의 책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건방진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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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샤모
5.0 out of 5 stars 불교는 훌륭합니다! 한마디.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24, 2022
Format: Paperback Shinsho
석가, 붓다, 여래, 보살, 들었던 말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할 수 있었다. 보다 깊게 불교를 알고 싶다는 충동에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매력적이고 잘 되어 있고 훌륭한 종교가 우리 일본에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지금까지를 보내 버린 것을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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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300
2.0 out of 5 stars 모두가 찬성하는 '불교'의 범위는 없다는데 무리한 논의가 이어진다.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26, 2021
원시 불교와 지금의 불교는 크게 다릅니다. 지금의 일본 불교계에서도 많은 종파가 있고 서로 상대를 불교로 인정하지 않는 단체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특정 사고방식을 불교라고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 근처를 무시하고, 「불교의 정의가 분명하지 않다」 「불처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반복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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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고객
4.0 out of 5 stars 다리 손톱이 어쨌든 안된다.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31, 2019
불교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는 얻어졌지만, 그렇다 해도 다리 발톱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학자인가? 오자와 마유키는 거기 지식도 있어 논의를 정중하게 정리해 주는 것이지만, 다리 발톱이라고 하는 사람은 곳곳 곳곳에서 의미 불명하고 지리 멸열인 것을 말하고 있는데 스스로 눈치채지 않는 것일까. 오자와의 질문에 응할 때까지의 흐름이 너무 멀다. 다리 발톱을 읽는 것은 다른 의미로 피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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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droid
3.0 out of 5 stars 유쾌한 것도 아니다.
Reviewed in Japan on June 10, 2018
Format: Paperback Shinsho
타이틀로부터 개론이라고 인식해, 불교의 전체상을 잡으려고 했습니다만, 이것은 불교를 부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책이 아닙니다. 각각의 이야기에 실수는 없을까요, 이 책을 유쾌하게 즐기려면 사전 학습이 필요합니다.

나쁜 책에서는 결코 없지만 타이틀이 이상하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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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3.0 out of 5 stars 음...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26, 2017
Format: Paperback Shinsho
「신비한 기독교」가 매우 재미 있었기 때문에, 이쪽도 구입. 다만 '이상한 기독교' 정도는 알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비교 종교학과는 어쨌든 있을 수 있어, 라고 하는 것이 조금 전해져 왔습니다. 다만, 불교의 진수를 이해할 수 있었는가 하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정직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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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Customer
3.0 out of 5 stars 더 '유카이나' 불교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3,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
《임제록――무불 무중생, 무고무 지금, 무수 무증, 무득 무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부처도 없으면 중생도 없고, 고인도 없으면 지금 사람도 없다.

얻은 것은 원래 얻고 있었고, 시간을 거듭한 소득이 아니다.

더 이상 습득의 필요도 없으면 증명의 필요도 없다.

얻었다는 것도 없고, 잃는다는 것도 없다.

언제든지 나에게는 다른 법이 없습니다.

어쨌든 이것을 이길 법이 있다고 해도 그런 것은 꿈이나 환상의 것이라고 단언한다.

내가 말하는 곳은 이상으로 다한다.

(이리야 요시타카 번역 『임제록』 이와나미 문고 P55~56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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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약 엉덩이
5.0 out of 5 stars 인과율과 자유의지의 아폴리아, 전지와 전능의 아폴리아.
Reviewed in Japan on May 19,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
(1) 전지와 전능의 아폴리아
 전지 전능의 일신교의 God가 예정을 변경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보통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전능하다고 하면, 하나님은 예정의 변화라도 할 수 있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 예를 들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떨까. 예정설에 상정되어 있는 것 같은 신이, 「오사와는, 마지막 심판 때 아웃이구나」라고 결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자와는 구제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았던 오자와가, 예를 들면 다리 손톱씨와 좋은 대담 뭔가 하거나 꽤 좋은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역시 오자와를 합격으로 해줄까」라고 예정을 변경한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물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거나 신앙에 얌전한 생활을 할 때 이런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 하나님의 예정의 변화는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이기 때문입니다. 전지의 신은, 오자와가, 다리 손톱씨와 어떤 대담을 할까, 처음부터 전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전망하고 알고 나서 마지막 심판에서의 오자와의 판결도 결정했을 것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예상이 벗어나서 「오, 의외로 좋은 대담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될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지라면 하나님이 예정을 변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결론도 재밌다. 우리 인간조차도 예정은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 그것이 할 수 없다고는.
 이처럼 전지와 전능 사이에는 갈등이 있다. 그러나 불교에는 이런 모순은 없다. 붓다는 전혀 아니지만 전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는 전능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부처가 세계를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일신교보다 무결성이 높다고도 말할 수 있네요.
(2) 「56억7천만년 후」라고 하면, 「지금이겠지」라고 말한 것이 된다. (p207)
 다음에 붓다가 되는 것은 미륵 보살입니다만, 그것은 약 56억년 후의 인류를 구제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56억년 후에도 시간의 감각이 없는 그 밖의 세계에서는 미륵 보살의 수행 기간은 더 짧은 순식간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서 빛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멈 춥니 다.
(3) 인과율과 자유의지의 아폴리아
 「인과율을 철저히 하면, 생명은 굳이의 기호이기 때문에, 라이온은 사자라고 하는 환상으로, 토끼는 토끼라고 하는 환상으로, 라이온이 토끼를 먹었다고, 환이 환상을 먹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p201)
 병도 육체는 영혼이 한때 기다리는 옷이라고 하면 병도 죽음도 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을 죽이고 그 고기를 계속 먹는 것도 환상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는 세계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모두 자신의 일로 힘껏, 모두 자신의 것이 귀여운, 모두 자신의 것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다. 『뇌는 이렇게 고민하다』에는, 타인의 불행은 꿀의 맛이라든지, 뇌의 보수계는 돈이 늘어날수록 기뻐한다든가, 장치로서 뇌는 그러한 장치가 되어 있다고 써 있습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개선해야 할 일이지만. “실제는 어디에도 악인은 없다는 것…
 사람은 자유의지로 판단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 세계의 결정입니다만, 정신 세계도 생각한 넓은 파악 방법에서는, 「다른 사람의 불행은 꿀의 맛」이라고 하는 묶음을 주고, 그 중에서 수행하고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질투심, 자신이 귀엽다, 타인의 불행은 꿀의 맛, 뇌는 돈도 브랜드도 사랑해, 이러한 일견 마이너스 구조의 묶음 중에서는, 인간 관계나 사랑을 배우는데 오히려 편리할지도 모릅니다. 육체나 돈이나 인간관계에 얽매이는 환경에서 우리는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것'을 통해 배우고 있어 그것이 인간으로서 사는 목적·의의·의미일 것입니다.
 병의 자신, 죽음을 눈앞에 한 자신, 그러나, 이것은 육체라는 가의 옷을 입은 영혼의 가의 모습. 병도 죽음도 현실이라고도 할 수 있고, 더 넓게 보면 환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죽는 것은 싫은 건강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로, 이 자유 의지도 올바른 견해입니다만, 인과적으로는 모두는 환이라고도 할 수 있고, 정신 세계에서 보면, 질병도 죽음도 연기하고 있는 세계에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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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스
5.0 out of 5 stars 과연! ! 그런 일인가・・・.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3, 2013
Format: Paperback Shinsho
『유카이 불교』. 부제는 「부다는 그리스도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 대비하는 그리스도 쪽은 실은 별로 자세하게는 쓰지 않고, 같은 저자들의 「신비한 기독교」(고단샤 현대 신서)를 읽지 않으면 잘 모른다. (뭐, 그것을 읽고 있는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불교의 진수를 알면, 용기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유카히 살 수 있다.」라고 하는 취지의 네이밍이라고 한다. 다리 손톱씨가 주는 불교의 4가지 특징: 1) 개인주의적, '2) 자유주의적, '3) 합리적(인과론), '4) 이상주의적. →이것은, 「현대적」으로, 좀처럼 「전향」인 것이 아닌가! !

대담 형식으로, 오자와 씨가 토스를 올리면, 하시네 씨가 강렬한 슛을 결정한다··라고 하는 역할 분담이다. 대담이므로, 구어의 알기 쉬운 표현이지만, 좀처럼 깊은 내용이 말해지고 있다. 다리 손톱씨의 논문(『불교의 언어 전략』)의 내용 등이 씹혀서 해설되고 있는 것일까? 근·현대의 수많은 철학자의 사고도 종횡무진하게 인용되고 있다. 뭐, 스스로 이만큼의 철학자의 저서를 읽어 진행하는 것은 우선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도안」이라고 생각해, 고마워하기로 한다.

불교가 그들 근·현대의 철학에 비추어도 좀처럼 정합성 있는 체계가 있다는 것은 발견이다. 이 책에서는 '시작 불교', '초기 불교', '대승교에', '대승교라고 하는 사고', '대승교부터 밀교까지', '지금 불교를 생각한다'라는 장서로 불교를 분석하고 있다.

석가님의 출자가, 인도의 계급제에서는 최상의 버라몬 계급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 「계급에 관계없이」라고 하는 어프로치가 전면에 나오므로, 그것이, 불교가 넓은 층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납득!

또, 능숙한 은유로, 「과연, 그런 일인가!」라고 감탄하게 된다. 예를 들면, "극악은 예비 학교이다".・・아미타불은, 성불시켜 줄 수는 없지만, 극락에 왕생시키는 것은 할 수 있다.・・그 「예비교」에서 공부하면, 꽤 비율로 닐바나 대학에 들어간다・・.

'점수'를 거듭해 가면 언젠가는 성불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면 '윤회'가 없으면 '시간을 거쳐 언젠가는 성불'이라는 구도가 되지 않는다. (윤회를 통한 포인트 이월 제도). 어쨌든, 「발심」이 중요하다든가··.

뭐, 이 책에 촉발되어, 여러가지 공부해 보자(이런 마음가짐도 「발심」의 일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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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u
2.0 out of 5 stars 분명히 불교를 착각하는 사람들의 대화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8,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
테마와 읽기 시작은 재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명쾌하게 안 좋은 평론이었습니다.

어쨌든,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논의의 방향이 미주 버린다. 「유카이 불교」인 것은 전제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톤데모인 결론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불교를 「수행에 의해 포인트를 높여가고, 일정한 포인트를 넘으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진지하게 가정해 버리니까, 그 이후의 논의가 전부 이상한 방향으로 가 버리고 있다. 그런 포인트제 같은 불교, 인치키계의 신흥 종교의 교조 이외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불교의 본질을 잘못한 가운데 “기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단정한 뒤, 다만 과잉표현인 대승불교의 경전의 요소를 그대로 분석하려고 하면 “유카이”라고 할까 코미디의 세계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웃음」을 목적으로 한 독서라면 의미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평론으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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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모 서
5.0 out of 5 stars 불교를 일망하고 정리하는 팁에.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12, 2014
Format: Paperback Shinsho
불교가 인도에서 태어난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까지 다양한 변용을 이루고 있다. 들어오고 나서도 더욱 변용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인도 내에서 불교 자체가 크게 변용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평자의 입장에 따라 말하고 싶은 것도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복잡한 불가능한 불교를 한눈에 정리하는 것에 있다면 매우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명확하게 해 두고 싶지만 분명하지 않았던 것의 몇개가, 이하와 같이 확언되어 있어 참고가 되었다.

"불처가 윤회나 해탈을 제대로 믿고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밀교에 대응하는 산스크리트어는 없다"

"~는 없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지극한 기술. 학적 축적이 있었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참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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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batom23
5.0 out of 5 stars 불교를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1, 2021
Format: Paperback ShinshoVerified Purchase
우리, 일본인이 가지는 생활 습관 등이 불교로부터 파생하고 있는 것을 즐겁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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