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1

朴趾源 - Wikipedia 일어 한역

朴趾源 - Wikipedia

朴趾源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パク・ジウォン
朴 趾源
生誕1737年3月5日
朝鮮国、漢城府
死没1805年12月10日
朝鮮国、漢城府
職業思想家
子供朴宗儀、朴宗采、朴宗幹
親父:朴師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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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趾源
各種表記
ハングル:박지원
漢字:朴趾源
発音:パク・ジウォン
日本語読み:ぼく しげん
ローマ字:Park Ji-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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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趾源(パク・ジウォン、ぼく しげん、1737年3月5日 - 1805年12月10日)は、李氏朝鮮時代の思想家。字は仲美、号は燕巌[1]。本貫は潘南朴氏。

人物

朝鮮王朝の英祖13年3月5日にソウルの一流両班の子弟として誕生した。保守化した空論の朝鮮儒教を批判した二大朝鮮実学者である[2]。著書『両班伝』において、朝鮮の儒学者や知識人や両班を痛烈に風刺する。しかし、両班や知識人それ自体を否定しているのではない[3]。

清による侵略戦争の丙子の乱と丁卯胡乱によって、李氏朝鮮では反清感情が渦巻いているなか、清の先進文物を積極的に取り入れることを提唱した[4]。

いまの人々が、まことに攘夷がしたいなら、なによりもまず中華の遺法をことごとく学び、まず、わが民衆の愚純を変革することだ。農耕、養蚕、製陶、冶金から工芸、商業までことごとく学びとる。人が十回やるなら己は百回やって、まず、わが人民に利益を与え、わが人民に棍棒を作らせて相手の堅甲と利兵を撻たせることが可能になってこそはじめて、中国は観るべきところはないといってよい。わたしは下等の士である。わたしはこう言いたい。壮観は瓦礫にある。壮観は糞壌にあると[5]。

このように朴趾源は、清から見習おうという思想を唱える。当時の朝鮮人は、清に頭を下げながらも、内心では小中華思想からくる野蛮人と侮蔑しており、両班は「朝鮮こそが明の正統継承者」と認識していたが、清を野蛮人とみなす風潮では生まれることができない思想を朴趾源が生み出したのは、朴趾源自身が両班から疎外されていたからである[6]。しかし、清から先進文物を取り入れることを提唱したが、性理学に反する思想と侮蔑・誹謗され、受け入れてもらえなかった[4]。

著作に赴京使(朝鮮燕行使)随行での紀行文『熱河日記』がある。乾隆帝晩年に、皇帝の別荘がある東北部の熱河(現在の承徳市)に向かった記録である。

李氏朝鮮時代の紀行文の主要なものを集めた『海行摠載』の中でも評価は高く、金台俊は著書『朝鮮漢文史学』(1931年)で、朝鮮通信使で江戸時代の日本へ渡った、申維翰『海游録』とともに「朝鮮紀行文学の双璧」とした[7]。

実学思想の文学作品

儒者批判や医者批判や巫女批判で両班の馬鹿にして笑いものにした作品がある。短編小説では以下を執筆した[8]。

  • 『両班伝』
  • 『許生伝』
  • 『虎叱』

日本語訳

脚注

  1. ブリタニカ国際大百科事典『朴趾源』 - コトバンク
  2. 知の攻略「韓国」作品社56頁
  3. 岸本美緒、宮嶋博史『明清と李朝の時代』中央公論社〈世界の歴史 (12)〉、1998年4月1日、339頁。ISBN 4124034121。
  4. “朴趾源”. KBSワールドラジオ. 2011年3月18日. 2016年11月1日時点のオリジナルよりアーカイブ.
  5. 岸本美緒、宮嶋博史『明清と李朝の時代』中央公論社〈世界の歴史 (12)〉、1998年4月1日、340頁。ISBN 4124034121。
  6. “老論-植民史観 事大主義と連結された人脈”. ハンギョレ. 2009年7月8日. 2016年11月2日閲覧.
  7. 申維翰・姜在彦 1974, p. 327
  8. 知の攻略「韓国」作品社57頁

参考文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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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박지원
朴趾源
탄생1737년 3월 5일 조선국 , 한성부
사망1805년 12월 10일 조선국 , 한성부
직업사상가
어린이朴宗儀, 朴宗采, 박종간
부모아버지: 박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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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趾源
각종 표기
한글 :박지원
한자 :朴趾源
발음:박지원
일본어 읽기:나 시겐
로마자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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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趾源(박지원, 나 시겐, 1737년 3월 5일 - 1805년 12월 10일 )은 이씨 조선 시대 사상가 . 글자 는 나카미, 호 는 燕巌[ 1 ] . 본관 은 반남 박씨 .

인물

조선 왕조 영조 13년 3월 5일 서울 일류 양반의 자제 로 탄생했다. 보수화된 공론의 조선유교를 비판한 2대 조선실학자이다 [ 2 ] . 저서 『양반전』에 있어서 조선의 유학자나 지식인 이나 양반 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그러나 양반이나 지식인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3 ] .

청 에 의한 침략전쟁 의丙子의 난 과丁卯胡乱에 의해 이씨 조선에서는 반청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가운데 청의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제창했다 [ 4 ] .

지금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씹는 소리를 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우선 중화의 유법을 배우고, 우선, 우리 민중의 어리석음을 변혁하는 것이다. 농경, 양잠, 제도, 야금부터 공예, 상업까지 배우게 된다. 사람이 10회 한다면 자신은 100회 하고, 우선 우리 인민에게 이익을 주고, 우리 인민에게 동봉을 만들게 해 상대의 견갑과 이병을 찢게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야 처음으로 중국은 볼 만한 곳은 없다고 해도 좋다. 나는 아래와 같은 선생님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장관은 잔해에 있다. 장관은 대변에 있다고 [ 5 ] .

이처럼 박령원은 청나라에서 견습하자는 사상을 주창한다. 당시의 조선인은, 청나라에 머리를 낮추면서도, 내심에서는 소중화 사상 으로부터 오는 야만인 과 모욕하고 있어 양반은 「조선이야말로 명의 정통 계승자」라고 인식해 하지만 청을 야만인으로 간주하는 풍조에서는 태어날 수 없는 사상을 박령원이 만들어낸 것은 박령원 자신이 양반에서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6 ] . 그러나 청에서 선진문물을 도입하는 것을 제창했지만, 성리학 에 반하는 사상과 모멸·비방되어 받아들이지 못했다 [ 4 ] .

저작에 부경사( 조선연행사 )수행에서의 기행문 『아타가와 일기』가 있다. 건류 제 만년에, 황제의 별장이 있는 동북부의 열하(현재의 승덕시 )를 향한 기록이다.

이씨 조선시대의 기행문의 주요한 것을 모은 『해행유재』 중에서도 평가는 높고, 김대순 은 저서 『조선한문사학』 ( 1931년)으로, 조선통신사 로 에도 시대 의 일본 에 건너온, 신유 『해양록 』과 함께 「 조선기행 문학 의 쌍

실학 사상의 문학 작품

유자 비판이나 의사 비판이나 무녀 비판으로 양반의 바보로 해 웃음으로 한 작품이 있다. 단편 소설에서는 다음을 집필했다 [ 8 ] .

  • 『양반전』
  • 『허생전』
  • 『호랑이다』

일본어 번역

각주

  1. 브리타니카 국제대백과사전 ' 박지원 ' - 코트뱅크
  2. 지의 공략 '한국' 작품사 56페이지
  3. 기시모토 미오 , 미야지마 히로시『명청과 이조의 시대』중앙 공론사 <세계의 역사(12)>, 1998년 4월 1일, 339쪽. ISBN 4124034121.
  4. KBS 월드 라디오 . 2011년 3월 18일. 2016년 11월 1일 시점의 오리지널 보다 아카이브.
  5. 기시모토 미오 , 미야지마 히로시『명청과 이조의 시대』중앙 공론사 <세계의 역사(12)>, 1998년 4월 1일, 340쪽. ISBN 4124034121.
  6. “노론-식민사관 사대주의와 연결된 인맥” . 한겨레 . 2009년 7월 8일 . 2016년 11월 2일 열람 .
  7. 신유모, 姜在彦 1974 , p. 327 
  8. 지의 공략 '한국' 작품사 57페이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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