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 Kalia *63회 신학독서회 후기
"풍성한 생명과 생명평화무늬"
제2부 “풍성한 생명”은 8장으로 전개되는 바, 제1장은 “현세의 영원한 생명”이다. 신학 책 치고 하느님(3장)보다 생명에 훨씬 더 많은 분량(8장)을 할애한 것은 이례적이다.
인간의 생명은 관계적 삶이다. 몰트만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 제시하여 서술한다. 그러나 제시한 순서와는 반대로 전개한다.
①땅(지구)과의 관계: 땅의 피조물인 인간은 땅과의 공동체로 산다.
②타인과의 관계: 여기서는 특히 자식과 부모로서의 인류의 세대 간의 연결 공동체의 삶을 언급한다.
③하느님: 하느님의 자녀인 인간은 신적인 삶을 산다.
브뤼노 라투르로 대변되는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은 관계적 인간론(존재론)을 훨씬 정교하게 확장한다. 이 이론은 세계의 모든 존재는 그것이 사회적이든 자연적이든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상호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이론적 방법적 접근법이다.
1.신적인 생명과의 공동체로
이 절의 포인트는 영생이해이다. 영생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기쁘고 슬픈 삶, 사랑받지만 고통도 받는 삶, 행복하면서도 실패한 삶, 그것이 바로 영생의 모습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끝없는” 생명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가득 찬 생명, 곧 넘치는 생명“(요 10:10)이다. 영원이란 인간적인 생명이 신적인 생명으로 질적 승화를 말하는 것이지, 끝없는 생명 연장은 아니다. 신적인 영생의 한 순간을 체험하는 것은 우리가 현세에서 수년의 생명을 더 사는 것 이상이다. 영생의 현재를 신앙 안에서 맛본다.
”믿는 삶은 영생을 가지고 있다“(요 6:47)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요 11:25-26)
영생의 이해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하나님의 ‘긍정’(Ja)”이다. 하나님의 생명 긍정(Lebens Ja)은 영생의 필요조건이다. 94세, 2020년에 출간된 『나는 영생을 믿는다』에서는 하나님의 생명 긍정을 “우리는 죽는 순간에 부활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풀어 밝힌다.
2.산 자와 죽은 자의 공동체로
몰트만은 이전에 세대간의 연대, 세대간의 계약을 강조하곤 했다. 여기서 그는 특별히 산 자와 죽은자의 연대, 혹은 공동체를 강조한다. 영생의 의미지평을 넓히기 위한 증거로 제시하는 것 같다. 몰트만은 동북아 문화권의 조상숭배(祭禮)를 자세히 적시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조상숭배는 하나의 종교예식인가 아니면 생명과 생명 공동체에 대한 존경을 바탕으로 하는 당연한 본분인가? 대답은 후자일 것이다. 몰트만은 세대를 이어가며 맺어지는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공동체를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산 자들의 미래의 희망일 뿐 아니라 죽은 자들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3.지구와의 공동체로
이 부분은 생태계의 위기, 기후 대참사, 지구의 사막화가 확산되는 최근의 경험 속에서 가장 중요하며 그래서 분량도 많다.
이 부분은 목하 생태신학, 지구(가이아)의 신학, 땅의 신학 등으로 논의되고 있다.
①창조의 역사를 근대사관으로 읽는 눈(만물의 영장)에서 생태학의 입장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이때 인간은 하나님의 마지막 피조물이며, 따라서 가장 의존적인 생물체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다른 모든 피조물에 의존해야 하고, 땅과 하늘과 빛을 의존해야 하고, 이 땅의 식물과 짐승 없이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다른 피조물들은 인간 없이도 살아갈 수 있으며, 그런 사실이 수백만 년의 역사를 통해 입증되었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지구헌장 2000)이다.
②<땅>(지구)의 절대적 중요성이다.
땅은 인간의 지배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위대하고 독특한 피조물이다.
지구는 복잡체계를 지닌 항성으로서 생명을 소생시키고 삶의 공간을 제공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땅은 그 전체로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땅은 생명을 생성해내며 인간은 땅의 피조물이며 인간의 고향이다.
하나님은 땅과 특별한 언약을 맺으셨다. 이스라엘의 종교는 땅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땅의 구속의 비밀을 우주적 그리스도에서 발견한다.
몰트만은 ”하늘나라 가게 해주세요“라는 말로 집약된 전통적인 이원론적 구원론을 거부하면서 나는 죽어서 ”하늘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땅을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하는 여관으로 생각하고 나는 땅에 사는 손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땅은 여관이 아니라 집이며 우리는 땅의 손님이 아니라 땅의 주인이면서 청지기이다. 우주선을 통한 지구로부터의 탈출이나 묵시록적 지구의 파국은 ”생명을 적대시하는 허상이요, 파멸의 영성“일 뿐이다.
“땅아, 너는 열려서 구원의 싹이 나게 하고,
공의가 움돋게 하여라”(사 45:8)
이 땅의 생명에 동참함으로써 우리는 우주적 생명을 맛보게 된다. 땅의 영성을 일깨우는 것은 근대의 자연정복이라는 “힘의 교만”이 아니라 “우주적 겸허”이다. 진정한 자연과학자는 자신이 연구한 것을 상업화하려 하지 않고, 아직은 연구가 끝나지 않은 자연의 비밀 앞에서 놀라며 “우주적 겸허”의 진실을 깨닫는다.
몰트만의 이 부분은 최근 부상하는 지구학 및 인류세의 만남과 그들과의 신학적 대화의 공간을 넓힐 것이다.
[[생명평화무늬]]. 이 멋지음(디자인)은 지리산살리기운동을 주도한 한살림운동가 이병철 선생이 2003년 한글 ‘멋짓는 사람’ 안상수 교수에게 부탁하여 탄생한 것이다. 다음은 안상수의 설명이다.
“심볼 가운데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네발 달린 생명이고 아래는 사람이고 왼쪽은 물에 사는 생명입니다. 이 물고기 모양은 하늘에 사는 생명인 새의 몸뚱이가 됩니다. 해와 달은 생명의 우주적 속성을 그린 겁니다. 생명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 한 몸입니다. 우주생명의 유기적 전일성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돼지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게 되고, 물이 오염되어 물고기가 죽으며 사람도 죽고, 닭이 폐사되면 사람에게도 영향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 생명은 다른 생명의 희생 속에서 생명을 유지해 나가지요. 그러니까 다른 생명 속에 우리의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무늬 가운데 위는 푸나무인데, 사람은 모두 풀의 열매, 풀잎, 풀뿌리, 풀 줄기를 먹고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맨 위에 있는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맨 아래에서 다른 생명을 모시는 존재라는 겁니다. 이것이 우주가 보내는 신호입니다. 이 메시지를 받아서 잘 따라가는 것이 평화입니다.“
조성환 교수의 설명이다.
이 무늬는 인간이 다른 존재와 단절된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인간은 심지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즉 그들을 먹음으로써 살아간다.
이 무늬는 ‘먹고 먹힘’의 관계가 잘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머리가 중심에 위치한 것은 우월성의 표현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는 ‘공통’의 사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 부분이 희색이며 텅 비어 있다. 虛心의 상태인 것이다. 그 허심의 상태에서 관점이 인간 이외의 존재로 향하며, 그래서 비인간 존재와의 연결과 연대가 가능해진다.
-조성환, 『K-사상사』, (91-9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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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un Na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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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
Taechang Kim
글쎄요. 다양하게 말씀된 것을
근본적으로 <은혜철학>으로
재구성한 원광대학불교연구원
의 이주연연구원과 은혜신학으로 개신하려는 예일대학신학대학원의 윌리스 젠킨스교수의 생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 자신의 입장입니다.
Philo Kalia
Taechang Kim 은혜가 신학의 전유물이 아니라 철학에서 공유해가니 은혜의 세상입니다.
Taechang Kim
Philo Kalia 예. 종래의 은혜 또는 은총론과는 결이 만히 달라서 하느님과 인간과 여타의
천지만물들 사이가 相恩互恵
의 관계로 相和相通하는 과정
을 통서 사랑과 감사가 삼차원 삶(하늘삶 땅삶 사람삶)의 뿌리내림-꽃핌-열매맺음이 된다
고 저나름으로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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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
Philo Kalia
Taechang Kim 넓어진 은총론을 하느님께서 보시면 이제서야 천지만물의 섭리가 되어가는구나, 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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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글쎄요. 다양하게 말씀된 것을
근본적으로 <은혜철학>으로
재구성한 원광대학불교연구원
의 이주연연구원과 은혜신학으로 개신하려는 예일대학신학대학원의 윌리스 젠킨스교수의 생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 자신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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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Taechang Kim 은혜가 신학의 전유물이 아니라 철학에서 공유해가니 은혜의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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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
Taechang Kim
Philo Kalia 예. 종래의 은혜 또는 은총론과는 결이 만히 달라서 하느님과 인간과 여타의
천지만물들 사이가 相恩互恵
의 관계로 相和相通하는 과정
을 통서 사랑과 감사가 삼차원 삶(하늘삶 땅삶 사람삶)의 뿌리내림-꽃핌-열매맺음이 된다
고 저나름으로 정리해 봅니다.
Philo Kalia
Taechang Kim 넓어진 은총론을 하느님께서 보시면 이제서야 천지만물의 섭리가 되어가는구나, 하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