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중마방 (古鏡重磨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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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중마방
문헌
조선전기 문신·학자 이황이 옛 명(銘)·잠(箴) 중에서 수양이 될 만한 것을 뽑아 1607년(선조 40)에 제자인 정구(鄭逑)가 저술한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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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문신·학자 이황이 옛 명(銘)·잠(箴) 중에서 수양이 될 만한 것을 뽑아 1607년(선조 40)에 제자인 정구(鄭逑)가 저술한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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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책 54장. 목판본.
접기/펼치기내용
1744년(영조 20) 영조가 왕실 교육 목적으로 간행하였다. 책 끝에는 편자의 오언시가 있어, 책의 제명이 선철(先哲)의 학문태도를 본받는 것에서 유래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책머리에는 1744년 김재로(金在魯)가 쓴 ‘어제고경중마방편제(御製古鏡重磨方扁題)’가 있으며 영조의 어제시가 있다. 본문에는 고대의 성왕인 은탕(殷湯)의 반명(盤銘)과 주무왕(周武王)의 석사단명(席四端銘) 등으로부터 당송의 명현인 한유(韓愈)의 오잠(五箴), 정자(程子)의 사물잠(四勿箴) 등 23명의 잠·명 76편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끝에는 주희(朱熹)의 고경중마(古鏡重磨)가 자기수양에 지침이 된다는 칠언시와 그 대의를 밝힌 이황의 해설이 있으며, 그 끝에는 책의 요지를 밝힌 이황의 오언시와 그것을 해설한 정구의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이 책은 1744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의하여 간행되어 세자시강원의 교재로 쓴 것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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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
제주일보
승인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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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고영천 오현고 전 교장이 선고(先考)께서 영운공(靈雲公) 할아버지의 유고를 국역해 《영운집(靈雲集)》을 낸 지 30년, 다시 찾아낸 자료를 보완하고 국역을 개정 어문 규정에 따라 바로잡으며 《증보 영운집》을 상재한 게 2021년 5월이었다. 종사(宗史)와 ‘제주학’의 맥을 체계 세움에 적잖이 도움이 돼 가문의 영광이라는 자부심에서 증보판을 낸다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할아버지의 《고경중마방》 필사본을 펴냈다. 작은 노역인가. 고 교장의 줄기찬 집념에 감탄한다.
《고경중마방》은 ‘옛 거울을 닦는 방법’이란 의미다. 선고께서 출간한 《운곡집》의 〈영재공의 말씀과 추억 중에서〉를 옮겼다. 조부님(斗翊)의 영명함을 일찍 알아 증조부님이 못 배운 한을 아들에게서 풀기 위해 남다른 열정을 쏟으셨다 한다.
때마침 뭍에서 김응수 선생(학부국장 역임, 오늘의 교육부)이 내려와 성산면 오조리에 서당을 열자 아들을 그 문하에서 수학게 하면서, 보리쌀 좁쌀 서 말을 매달 몸소 등짐으로 지어 날랐다는 것. 노형리 광평에서 오조리는 동으로 섬 반쪽을 도는 거리다. 다시 선생이 거처를 노형리로 옮기자 타계할 때까지 5년을 사사(師事)케 함으로써 학문과 서법(書法)이 대성해 필묵 단정·호방하니, 그 재능의 탁발(卓拔)함에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다. 할아버지 약관에 최후의 유학자 곽종석 선생의 문하에 보내 학문을 더욱 깊이 하셨다.
그에 그치지 않고, 상경해 휘문의숙(민영휘 설립)에서 신학문을 수학했으며, 상해임시정부에 손을 뻗어 독립군자금 조달책을 맡았다 일경에 체포돼 종로경찰서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애석하게도 29세의 나이로 영면에 드셨다.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행적과 고문을 받았던 기록은 후일 종로경찰서 화재 사고로 소실돼 전해지지 않으니. 애통해 가슴 칠 일이 아닐 수 없다. “할아버님의 학문과 사상은 짧은 생애로 끝내 꽃피우지는 못하였으나, 교육의 목표를 성리학의 토대 위에 서양의 신학문(논리학)을 접목시켜 새로운 교육의 가교(架橋)를 세우고자 노력했던 선각자 중의 한 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 교장은 이렇게 할아버지의 행장(行狀)을 요약해 정리하면서, 시절을 못 만나 당신의 학문과 사상을 꽃 피우고 열매 맺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할아버님에게 《고경중마방》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경전이요, 실천학문의 길라잡이이며, 후세들에게는 이를 기록으로 남겨 ‘삶의 기본을 충실히 하라’ 이르심이다.” 책의 의의를 간결하게 함축해 놓은 대목에 오래 눈이 머물게 한다.
원문은 필사본을 그대로 옮겼고 번역문은 여러 유학자들이 펴낸 자료를 취합, 재구성하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일만 예순넉 자를 풀어내 인명·지명·고사·고전에 말밑새김(주석)을 달았다.
내용이 명(銘) 54편, 잠(箴) 12편, 찬(贊) 4편으로 구성되었다. 책을 엮은 고 교장의 육성에 간곡함이 묻어나온다. “어렵다, 진부(陳腐)하다 폄(貶)하지 말고 힘써 배우고 익힘으로 심신을 도야해 깨달음을 얻었으면 큰 기쁨이겠다.”
요즘처럼 옛것에서 일탈해 달아나는 세상에 선조의 행적을 오늘에 재조명하는 후손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학식이 깊어야 하고 조상을 기리는 정신이 깃들지 않고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뜻깊은 일을 고영천 교장이 이뤄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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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천 오현고 전 교장이 선고(先考)께서 영운공(靈雲公) 할아버지의 유고를 국역해 《영운집(靈雲集)》을 낸 지 30년, 다시 찾아낸 자료를 보완하고 국역을 개정 어문 규정에 따라 바로잡으며 《증보 영운집》을 상재한 게 2021년 5월이었다. 종사(宗史)와 ‘제주학’의 맥을 체계 세움에 적잖이 도움이 돼 가문의 영광이라는 자부심에서 증보판을 낸다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할아버지의 《고경중마방》 필사본을 펴냈다. 작은 노역인가. 고 교장의 줄기찬 집념에 감탄한다.
《고경중마방》은 ‘옛 거울을 닦는 방법’이란 의미다. 선고께서 출간한 《운곡집》의 〈영재공의 말씀과 추억 중에서〉를 옮겼다. 조부님(斗翊)의 영명함을 일찍 알아 증조부님이 못 배운 한을 아들에게서 풀기 위해 남다른 열정을 쏟으셨다 한다.
때마침 뭍에서 김응수 선생(학부국장 역임, 오늘의 교육부)이 내려와 성산면 오조리에 서당을 열자 아들을 그 문하에서 수학게 하면서, 보리쌀 좁쌀 서 말을 매달 몸소 등짐으로 지어 날랐다는 것. 노형리 광평에서 오조리는 동으로 섬 반쪽을 도는 거리다. 다시 선생이 거처를 노형리로 옮기자 타계할 때까지 5년을 사사(師事)케 함으로써 학문과 서법(書法)이 대성해 필묵 단정·호방하니, 그 재능의 탁발(卓拔)함에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다. 할아버지 약관에 최후의 유학자 곽종석 선생의 문하에 보내 학문을 더욱 깊이 하셨다.
그에 그치지 않고, 상경해 휘문의숙(민영휘 설립)에서 신학문을 수학했으며, 상해임시정부에 손을 뻗어 독립군자금 조달책을 맡았다 일경에 체포돼 종로경찰서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애석하게도 29세의 나이로 영면에 드셨다.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행적과 고문을 받았던 기록은 후일 종로경찰서 화재 사고로 소실돼 전해지지 않으니. 애통해 가슴 칠 일이 아닐 수 없다. “할아버님의 학문과 사상은 짧은 생애로 끝내 꽃피우지는 못하였으나, 교육의 목표를 성리학의 토대 위에 서양의 신학문(논리학)을 접목시켜 새로운 교육의 가교(架橋)를 세우고자 노력했던 선각자 중의 한 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 교장은 이렇게 할아버지의 행장(行狀)을 요약해 정리하면서, 시절을 못 만나 당신의 학문과 사상을 꽃 피우고 열매 맺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할아버님에게 《고경중마방》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경전이요, 실천학문의 길라잡이이며, 후세들에게는 이를 기록으로 남겨 ‘삶의 기본을 충실히 하라’ 이르심이다.” 책의 의의를 간결하게 함축해 놓은 대목에 오래 눈이 머물게 한다.
원문은 필사본을 그대로 옮겼고 번역문은 여러 유학자들이 펴낸 자료를 취합, 재구성하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일만 예순넉 자를 풀어내 인명·지명·고사·고전에 말밑새김(주석)을 달았다.
내용이 명(銘) 54편, 잠(箴) 12편, 찬(贊) 4편으로 구성되었다. 책을 엮은 고 교장의 육성에 간곡함이 묻어나온다. “어렵다, 진부(陳腐)하다 폄(貶)하지 말고 힘써 배우고 익힘으로 심신을 도야해 깨달음을 얻었으면 큰 기쁨이겠다.”
요즘처럼 옛것에서 일탈해 달아나는 세상에 선조의 행적을 오늘에 재조명하는 후손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학식이 깊어야 하고 조상을 기리는 정신이 깃들지 않고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뜻깊은 일을 고영천 교장이 이뤄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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