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생애구술사, 개인의 삶과 기억이 역사가 된다
생애구술사, 개인의 삶과 기억이 역사가 된다
입력 2013-03-04
나의 개인적 삶이 역사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신문을 보고, 누구와 무엇을 먹고, 장을 어디에서 보고, 어떤 옷을 입는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이런 사소한 일상이 역사로 기록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애구술사는 개인의 삶과 기억을 구술의 과정을 통해 역사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100인 열전을 기획하며, 대구 중구도심재생문화재단과 연구공동체 ‘두루’가 그 첫 성과물로 12권의 생애사 열전을 탄생시켰다. 192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활, 문화, 정치, 종교, 교육 등 대구의 근·현대사를 열네 분의 삶과 시선으로 기록한 것이다.
나는 ‘곡주사’의 ‘이모’로 불리는 정옥순씨(78)의 구술작업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한 개인이 어떻게 도도한 역사의 물결 속으로 합류해 가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씨실과 날실이 엮여 천을 짜듯.
자식들 공부시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했던 한 식당 아주머니가 연민의 마음으로 삶의 굽이굽이에서 다른 선택을 하고, 결국 폭력에 저항하는 대열에 서 있게 됐다. 이를 통해 그녀는 ‘우리들의 곡주사 이모’가 됐다. 이러한 과정을 구술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지나온 시간의 총체가 하나의 나무라면, 역사로 기록되는 것은 나무 둥치와 굵은 뿌리, 줄기, 꽃의 종류다. 그런 역사 안에서는 잔가지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비에 떨어지는 꽃잎의 모습은 알 수 없다. 이보다는 나뭇잎의 떨림과 몸속으로 흐르는 수액의 모양을 볼 수 있고 이를 알도록 하는 것이 생애구술사 작업이다.
지금까지 역사는 권위있는 권력자나 역사가가 붙인 이름으로 기록되고 기억되어왔다. 그래서 다양한 개개인의 삶은 하나의 역사적 이름 아래로 편재된다. 하지만 생애구술사는 거꾸로 개인적인 이야기와 경험을 통해 담론을 생성해 내기 때문에 거대담론의, 중심의 역사 담론을 해체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이름을 생산해 낸다. 박제에 빛깔과 향기와 생기를 불어넣듯이.
이은주 <문학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