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8

[김조년] 이상주의를 현실주의로 전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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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이상주의를 현실주의로 전환한다면
금강일보   입력 2022.06.14 

한남대 명예교수

우리가 말을 하다보면 어떤 사람들에게 ‘현실을 모른다’거나, ‘꿈같은 이야기 그만하라’는 소리를 많이 하고 듣는다. 모든 사람들을 두고 볼 때, 현실주의자가 많을까? 아니면 이상주의자가 더 많을까? 한 사람으로 볼 때도 이상과 현실을 오고간다. 아무리 현실주의자라 하여도 이상주의의 요소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상주의자라고 할지라도 현실주의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가 없다. 이상과 현실은 영원히 갈라지기만 하는 것일까? 어느 시점과 지점에서 만날 수가 있는 것일까? 이상과 현실의 경계는 항상 뚜렷할까? 아니면 어디가 어느 것인지 모를 만큼 흐린 경계를 이루는 것일까? 이러한 것들이 애매하다고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어느 곳에선가 이 두 흐름이나 경향이 만나는 점이 있을 것이다. 또는 시간이나 장소가 달라지면서 이상과 현실에 대한 관점과 판단이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달라질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위치가 되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이상이라고 하던 것이 현실이 돼있고, 현실이라고 하던 것들이 이상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참 많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나는 현실에 매몰되어 사는 사람일까? 이상을 먹고 꿈속을 헤매는 사람일까? 때때로 나 자신을 볼 때 참 한심하고 구제불능의 엉망진창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때는 ‘이러면 됐지’ 하는 정도로 회심의 미소를 띨 때도 가끔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면서도 갑갑한 현실에 꽉 길이 막힐 때는 먼 산이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흘러가는 구름이나 들려오는 새소리나 파란 하늘이나 부는 바람을 맞고 본다. 그것들을 잡을 수는 없지만, 잡을 수 없는 그것들 때문에 나는 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이 때 나를 둘러싼 현실이라는 것과 잡을 수 없듯이 멀리 있는 저것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흔히 이상은 밤하늘에서나 볼 수 있는 북극성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것이지만, 곧 내가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갈 길을 인도하여 주는 것이 그것이라고 말한다. 그 때 잡을 수 없는 북극성과 같은 이상이라는 것과 한발 한발 내디디는 현실이란 것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 둘은 만날 수 없이 멀리 있는 것이지만, 현실이란 내 발걸음은 바로 이상이라는 그것을 보고 옮긴다. 여기에서 이 둘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르는 위대한 스승들, 특히 석가, 예수, 공자, 노자 등이 추구했던 삶, 해탈과 구원, 초월과 비움, 사랑과 자비, 부처가 되고 그리스도가 되며 신이 되고 도가 되는 것은 꿈같은, 아니 꿈도 꿀 수 없는 이상만일까? 아니면 손에 잡힐 듯이 모든 사람이 경험하고 맞이할 수 있는 현실일까? 때때로 그러한 것들을 말하고 가르친 그들이 허황되고 엉뚱한 것처럼, 그들의 말과 생각을 따르고 현실에서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때때로 ‘안개밥 먹고 구름똥 싸는 놈’이라고 치부할 때가 많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만 먹고 사는 이상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상주의자들의 말을 실현가능한 것이라고 믿으면서 살고 싶다. 현실을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들을지라도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자와 젖소가 함께 풀밭에서 놀고, 독사와 어린아이가 모래장난을 하며 놀고, 철천지원수끼리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고 믿으면서 살고 싶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니 아주 강력한 힘을 동원하여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 그런 정책을 펼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본성은 선한 것이니 스스로 펼 수 있도록 열어두라고 한다. 때때로 이 둘은 인간현실과 인간현상을 제대로 본 듯이 보이다가도, 그것들도 어느 한 면만을 본 것이지 라고 생각한다. 인간본성이 악한지 선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 사례들을 놓고 그렇게 판단하고 믿을 뿐이라고 나는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들 중 어느 것에 내 관심과 눈을 돌리는가에 따라서 내 삶이 완연히 달라지는 것을 본다.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믿음이 현실을 이끈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본성은 선하다는 편에 내 패를 던지기로 했다. 어차피 삶은 어느 것에 내 패를 걸 것인가 하는 노름판이다.

그래서 인간 사이에 적대관계는 없다는 것, 나라와 민족과 종교들 사이에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적은 없다는 것, 이제까지 역사상에 나타난 온갖 적대관계의 전쟁들은 헛것에 사로잡힌 꼭두각시 노름이었다는 것을 나는 믿고 싶다. 그래서 온갖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서로 으르렁대며 험악한 소리와 함께 아주 강력한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겠다는 현실성 없는 놀음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온 세계를 파괴할만한 핵무기를 소유한들 무엇하겠는가? 한 때 남북이 서로 총구를 맞대고 싸웠지만, 철천지원수로 남을 필요는 없다. 강력한 무기로 사람들의 삶이 증진되며 평화세계가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속히 힘대결을 끊고, 기싸움을 버리고, 허늘하게 웃으면서 사이좋게 살자하면 좋겠다. 무기산업을 청산하고, 맘을 부드럽게 먹고, 말을 사랑스럽고 살갑게 하고, 빈몸으로 어깨동무하자고 서로 초청하면 좋겠다. 혹시 남북이 전쟁훈련을 한다면, 서로 상대방의 군사책임자와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관람하게 하고, 핵발사체가 있는 곳을 상호방문하여 관찰하게 하고, 가장 비밀스런 곳을 서로 공개하는 꿈이 현실이 된다면, 그래서 무력이나 국경이 없는 평화세계가 올 것이라는 이상주의를 현실주의 자리에 앉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드러움이 강강함을 이긴다는 노자의 말이 현실이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