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3

일선님과 야마기시 관계 1993-94

유상용 글 210903


 반아님을 통해 들어서 어머니 일선님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1990년도 여름에 미국 글랜아이비 공동체에서 진행된 아트어브리빙세미나에 참석하고 그대로 남아서 91년 겨울까지 글랜아이비와 선라이즈렌치 두곳에서  일년반 동안 지내다가 귀국하여 92년 1월 야마기시공동체에 들어갔습니다.

일선님과는 그 세미나를 함께 했었습니다. 유진 반아 김선화 세분이 통역을 맡았고 어머님의  진지한 참여는 기억나지만 그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92년도에 야마기시에 들어갔으니까 일선님은 93년 또는 94년도 봄쯤에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 라고 하는, 입문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한국에는 그런 종류의 영성ㆍ이상사회 추구의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에미서리, 야마기시, 동사섭, 이 세가지 프로그램은 참가자가 서로 권하면서 받고 있던 시절이었고, 에미서리 세미나 때나 그 뒤 제가 미국 체류할 때도 야마기시즘에 대해서 알게 되셨기 때문에, 저를 비롯해 여러사람들에게 야마기시특강을 권유 받으셨을 거라 짐작하지만 정확한 권유자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오늘, 예전 일선님의 특강에 진행스탭으로 들어갔던 분에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냐고 물어보니, 제가 특강 후반에 참가자와 공동체식구들 교류회에서 어머님께 들은 내용과 같은 것을 얘기하셨던데, 8일간의 특강 도중에도 몇번이나 말씀하신 것이,

"나는 평화를 찾아 브라질로 캐나다로 미국으로 지구를 반바퀴를 돌았는데, 이제 360도를 돌아 이곳에서 평화로운 이상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발견하니 기쁩니다. 그렇게 먼길을 돌아 다시 출발한 곳에 왔네요."

하고, 깊은 느낌을 분명한 어조로 얘기하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 뒤로 다시 야마기시공동체를 방문하셨던 적은 없었고, 몇년뒤 반아님이 연구 인터뷰를 위해 야마기시공동체에 오셔서 3일간 머물며 공동체식구들의 인터뷰를 했던 게 생각납니다.

저의 기억은 이런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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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일선님] 야마기시즘과의 관계의 정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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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카나다에 사시던 일선님은 1993-4년에 한국에서 행해지는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 라고 하는, 입문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 참석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는데, 그 이상에 대해 모른다.
- 일선님에 대한 기억을 한국 야마기시 공통체 전 멤버 유상용님을 통해 당시 참석자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나는 평화를 찾아 브라질로 캐나다로 미국으로 지구를 반바퀴를 돌았는데, 이제 360도를 돌아 이곳에서 평화로운 이상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발견하니 기쁩니다. 그렇게 먼길을 돌아 다시 출발한 곳에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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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4년의 어머니 일기와 편지들을 찾아보아야겠다.
- 어머니 일선님의 "영적 순례"에 대하여 더 잘 알고 싶다.
- 일본, 미국에서도 여러가지 워크숍에 참석하셨다는 건 아는데, 그 경험을 스토리로 만들 정보를 충분히 찾을 수 있을까?
- 내가 죽기 전에 정리하여 남겨놓을 만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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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년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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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일선님 이야기] 유품 정리 시작
- 카나다, 토론토에 40년 이상 사시다고 제주도로 재 이민 하시고, 몇년 사시다가 돌아가진 어머니의 유품 중, 일기, 편지, 서류, 앨범, 과 같은 종류의 물건을 장남이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가 맡기로 했다. 그래서 3달 전에 큼직한 박스 3개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지 마자 열고, 묘지를 가지지 않기로 한 어머니의 재의 병만 끄냈지만, 다른 유품들은 바쁘게 정리할 필요도 없고, 할 일이 많아서 건디리지 않고 둔지 2달이 되었다.
- 아내의 눈치를 받은 것도 있고 해서, 어제는 드디어 유품 정리를 시작했다. 세 박스의 물건들은 모두 끄네어 우선 종류별로 나누었다. 일기장 공책이 약 30개, 앨범이 크고 작은 것들이 약 20개, 또 앨범에 넣지 않고 플라스틱 봉지에 정리 되지 않고 덩어리로 있는 사진들이 20개 정도, 그리고 외 할아버지 이종만에 관한 서류들, 오래된 가족의 서류들, 오래된 부모님들의 여권들, 그리고 많은 편지 뭉치들이 있다. 편지뭉치들은 편지, 포스트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가 년도별로 이미 분류되어 있고, 중요한 편지 대상은 인물 별로 모아져 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하신 것 이다.
- 언제인가 천천히 내용을 하나씩 들처보며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으로 다시 나누고, 찾기 쉽게 이름을 부처 놓으려고 한다. 앨범에 있는 사진이나, 정리되지 않은 사진들도, 부피를 줄이기 위해 언제인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나누고, 중요한 것들은 모두 스캔을 하고 연도별 내용별로 폴더에 넣고, 스토리가 될만한 것은 파워포인트나, 피디에프의 형태로 슬라이드를 만드려고 한다. 거기에 한글을 못 읽는 우리 대가족의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가족사의 자료로 말들려고 한다.
- 외 할아버지 이종만에 관한 연구도 나의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그에 관한 연구는 가족사로만이 아니라 일제시대에 식민지 조선의 사회와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이해하려는 것이 나의 의도이다. 일제 시대에 일본 유학을 한 부모님들에 관해서도 그들 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지식인들의 이야기로 더 공부해 보려 한다. 아버지는 일제 시대에 공대를 나오셨기 때문에 그 시대의 조선인 엔지니어들에 대하여 알고 싶게 되었고, 광산업을 하시던 기업가인 외 할아버지가 평양서 새운 학교가 해방후에 김일성 대학의 공학부로 되었다는 이야기에 대하여도 더 조사를 해 보아야겠다. 이종만 연구에 관해서는 채워야 할 일들이 많은데, 가장 비어 있는 시대가 한국전쟁 직전에 행방불명으로 되었다가 30년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북한에 살아 계셨다는 것, 그리고 여러가지 중요한 직들을 맡았다는 것, 그 역사에 대하여는 알려저 있는 것이 너무 적은데, 그 조사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과제로 남아있다.
- 부모님들과 관계된 서류를 들치는 사이에 아버지 어머니의 일본 대학 졸업장과 성적표들이 발견되었다. 아버지는 동경제대 공학부 1940년도 졸업, 어머니는 일본 여자 대학 가정학부 1943년도 졸업. 전시기에 조선인으로서 일본서 대학을 다시셨다. 어떤 경험을 하셨을까? 부모님으로서가 아니라 일본연구를 하는 나에게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80년대에 돌아 가셨고, 어머니와는 그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 한 것이 어머니가 80대 후반 이어서 기억의 문제도 있기도 하고, 충분한 디테일이 있는 스토리가 역어지지 못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쉬울 뿐이다.
- 어머니에 관해서는 자서전을 쓰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자서전 준비과정에서 어머니의 일기에 대하여 알게 된 내가, 파뭇혀 있던 그 일기장들의 중요성을 알고 5년 인가 전에, 돈과 시간을 드려 30여 권을 모두 스캔을 하였는데, 그 때 스캔을 하며 빨리 읽은 일기를 이제 다시 자세히 읽으며 그 내용에 나오는 중요한 이야기들을 추구하여 어머니의 영적 저니 (spiritual journey)를 따라가 보는 것이 내가 하려는 또 하나의 과제이다. 어머니와 수십 년을 떨어저서 살았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던 어머니의 삶에 대해 그 일기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어머니와 교류하던 사람들의 편지들을 드려다 보고, 어머니가 읽으셨던 책들을 읽어 볼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 때문에, 이런 일을 내가 하려고 하는 것 이기는 하지만, 어머니의 영적 여정에 대한 나의 관심은 단지 그가 나의 어머니였기 때문 만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어머니의 영적 여정에는, 외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처럼, 누구에게 알려저도 좋을 만한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 뿐 아니라, 나 개인으로서는 어머니가 걸은 길을 걸어 보려는 것은 나 자신의 영적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