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8

알라딘: 아래로부터의 영성 안셀름 그륀

Philo Kalia
29 m  · 
<영성과예술> 첫 zoom강좌를 무사히 마쳤다. 
안셀름 그륀의 <아래로부터의 영성>이다. 

땀이 삐질삐질, 몸이 풀린다. 호스트가 되어 참석자들을 처음 안내했다. 많은 분들이 찾아줘 첫 시간부터 내가 느끼는 방 열기가 더웠다. 강의하느라, 방문자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유 있고 능숙하게 다루는 강사들의 능력이 새삼 돋보인다. 좀 여유를 갖지 못했다. 강의는 50분씩 두 번 하고 마지막 15분은 질의와 대화의 시간이다. 첫 시간이니만큼 열심히 준비했다. 왼 종일 ppt를 만들었다. 53장을 만들었는데 많아서 중간 중간 건너뛰어야 했다. 좀 더 간결하고 약간 널찍널찍하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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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륀이 말하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이란 “하나님께서 성서와 교회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느낌들, 우리의 육체와 이상들, 우리의 상처와 나약함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나의 생각과 느낌, 나의 고통과 질병 속에서 듣고 하나님께서 만든 참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의 한계 지점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위로부터의 영성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요소를 제시하고, 그것은 우리가 실행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요소이며 언젠가는 마침내 채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설정해 놓은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억압하고 이 어두운 부분을 다른 것들에 투영시켜 그것들에 대하여 비난하고 격분하게 된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악을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행위는 다른 이들을 죄인으로 몰아세워 자주 그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잔인하게 대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한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의 특징은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1)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의 새로운 샘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아래로 깊이(삶의 한계상황)내려가야 한다. 말라버린 텅 빈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2)변화를 가져다 주는 힘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의식의 세계, 이 지상의 세계가 아니라 오직 깊은 곳(삶의 새로운 차원)이다. 
(3)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신뢰, 자신을 내맡기는 것, 자신을 내놓는 것, 일이 생겨나도록 두는 것 등을 거치게 된다. 
(4)오직 생명의 소리를 듣는 사람만이, 그 소리를 듣고 순응하는 사람만이 깊은 곳에서 생명의 샘(새로운 지평선, 내면의 세계)을 발견할 수 있다. 

두 가지 질문과 대화가 있었다.

(1)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이른바 신학에서 아래로부터의 방법과 같은 것이 아닌가? 여기서 ‘아래’란 인간의 구체적인 생의 경험에 대한 메타포가 아닌가?
(2)그륀이 ‘아래’라는 말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몸과 육체의 경험을 말하지만 인간의 바닥체험, 가난과 억압과 압제의 체험에서 나오는 고통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륀의 ‘아래’에 과연 밑바닥 인생의 경험이 깔려 있을까? 그 경험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고, 뿐만 아니라 ‘아래’를 말하면서 깊이, 우물, 심연 등의 은유를 많이 말한다. 그렇다면 그륀의 ‘아래’는 ‘안(내면)’, ‘안’으로부터의 영성이 아닌가?







알라딘: 아래로부터의 영성



아래로부터의 영성
안셀름 그륀 (지은이),전헌호 (옮긴이)분도출판사1999-12-01
002. 아래로부터의 영성의 형성 
003. 아래로부터의 영성의 전개 
004.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는 것의 기본 바탕인 겸손과 유머


책속에서



- 자기 자신이 처해 있는 실재적인 상황으로 내려오는 사람,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자리잡은 심연과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의 영역으로,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무능력으로 내려오는 사람, 자신의 인간성과 땅에 밀착해 있는 본성을 대면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게 되고, 참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 바리사이인들은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영성을 추구했다. 이들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었고 자신들의 행위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계명들을 완벽하게 준수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는 행위를 통해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찾고 있었던 사실을 인식하지는 못했다. 접기 - ykk4u

너의 추락이 너를 교육하는 선생이 될 것이다. (Dorotheus 41) 40p - :Dora



저자 및 역자소개
안셀름 그륀 (Anselm Gru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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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독일 뢴 융커하우젠에서 태어나 1964년 뷔르츠부르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차흐 대수도원에 들어갔다.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상트 오틸리엔과 로마 성 안셀모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뉘른베르크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뮌스터슈바르차흐 대수도원의 재정 관리자로 일했다. 현재는 피정 지도와 영성 지도, 강연과 저술을 주로 하고 있다. 그는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우리 시대 최고의 영성 작가다.
저서로 《당신은 나의 천사》, 《마음을 선물하세요》, 《다시, 새롭게 시작하세요》, 《생일 축하해요!》, 《내 마음의 주치의》, 《결정이 두려운 나에게》, 《딱! 알맞게 살아가는 법》, 《안셀름 그륀의 기적》, 《지친 하루의 깨달음》, 안셀름 그륀 신부의 ‘작은 선물’ 시리즈인 《축복》, 《천사》, 《쉼》, 《쾌유》, 《치유》, 《평온》, 《감사》, 《오늘》, 《고요》, 《위로》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안셀름 그륀의 의심 포용하기>,<인생이라는 등산길에서>,<안셀름 그륀의 종교란 무엇인가> … 총 1006종 (모두보기)

전헌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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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교에서 석(가운뎃점)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85년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뒤 대구의 하양성당 등에서 주임신부로 일했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대학 학장으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학회 회장으로서 한국가톨릭신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신학대학원 원장, 가톨릭사상연구소 소장이기도 합니다.
『가능성과 한계』 『인간, 그 전모』 『자연환경, 인간환경』 『태양을 먹고사는 아이들』 『식물이 여행을 포기한 까닭은?』 『내가 우주보다 더 위대하다고?』와 같은 환경 관련 책을 많이 써왔습니다. 번역한 책으로는 『넉넉함 가운데서의 삶』 『코모 호숫가에서 보낸 편지』 『다시 찾은 마음의 평안』 『참 소중한 나』 등이 있습니다. 접기


최근작 : <우리의 식탁은 얼마나 풍족할까?>,<가능성과 한계>,<원칙과 변칙 그리고 반칙> … 총 4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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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의 영성


ㅇ신부님 추천으로 왜관에서 직구한 책. 위에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게 아닌 나 스스로 변화되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영성. 탑 다운 top down이 아닌 버텀스 업bottoms up이 영성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죄 고통 늪 시련 어둠이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길이 된다. 좋은 것이 옳은 것이 되려면 덕행으로써 가능한데 이 또한 은총이 작용해야 한다. 방법은 오로지 기도. 자주 습관적으로 간절하게 기도하기. 주님께 겸손하게 나의 모든 것을 바치기. 심지어 성적인 욕망 조차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나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기.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첫 걸음이다.
두려움과 불안과 어리석음이 오더라도...

당신의 깊은 뜻과 나의 쓰잘데기 없는 고집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비워주소서.


아래로부터의 영성의 세 종류의 길. 1)생각과 느낌들과의 대화 2)밑바닥까지 아래로 내려가 더 이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최종점에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 3)하느님께 완전히 항복하는 것. 나의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하느님의 좋으신 섭리와 품에 나를 완전히 맡기는 것.

너의 추락이 너를 교육하는 선생이 될 것이다. (Dorotheus 41) 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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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7-10-19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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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는 영성

<만약 네가 하느님을 알고 싶으면 먼저 너 자신에 대하여 알도록 해라>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현장을 아는 것, 더 나아가서 자신의 무의식 세계까지 살펴봄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갈수 있다." 책 서두에 지은이가 말하는 봐다. 이런 의식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을 설명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이러한 것에서 훨씬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지닌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쳤을때,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기 위한 마음의 문을 열어 나갈 수>있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겸손, 자신의 낮춤등을 거론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의미를 말하는 사람은 아니다. 저자는 사람을 그리 아름답게 보지않지만 따스하게 보고 이것을 지적하고 이끌려한다. 사람은 어떤 거창한 목표와 종교적지침으로도 삶을 살아갈수는 있지만 그것의 문제가 만만치 않음지적하고 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위선과 문제점을 짧지만 깊게 지적한다.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 문득 생각났는데 귀한것은 천한것에 본이있고 높은것은 낮은것에 기초한다는 말이 그것인데..저자는 아래라고 지칭하는 인간의 현실적, 가장 치열하고 모든것이 뒤엉켜 있는 바닥을 주시한다.

<더 이상 내려갈곳이 없는 막다른 곳인 지옥, 모든 친교가 단절된 곳, 아무것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곳, 철저히 고립되어 극심하게 외로운곳, 바로 그곳에서 회개가 시작되고, 그곳에서 예수가 사람들의 손을 잡아 삶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그러고 보면 저자는 어떤 회심이나 회개를 말하면서도 삶을 계속 하나님과 살아가는 것을 염두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 고단한 삶에 어떤 표어처럼 가지고 있는 삶의 기조나 신조가 아닌 매순간 일어나고 그것 한가운데 지금있는 사람의 현실을 보고 거기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말하니 말이다.

<높은 이상적 요소들을 추구하면서 자신을 높은 수준으로 들어높이고 시도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어두운 부분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 저자가 지적한대로 사실이라면 어두운 부분, 언급하기 꺼리는 권력,돈, 성,자기중심성등을 일단 피하지 말고 보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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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2005-02-18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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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두움을 빛으로 변화시키는 책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거룩함이란 종교적인 개념은 위로부터의 영성이었다.

그것을 지키고 나아가고자 나는 나 자산을 하찮게 여기게 되었고, 높은 곳을 향한 손짓에 주변의 낮은 것들을 보지 못하였다.

이 책은 낮은 자리(고통, 불행, 어려움, 가난, 실패) 등의 경험을 하느님이 주신 은총으로 변화시키는 책이다.

기존의 개신교가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인 패러다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하며, 참된 하느님과 나를 이해하도록 이 책은 도움을 주고 있다.

작은 책으로 이렇게 깊은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만족해 보기는 처음인것 같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나 신앙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앤소니 드 멜로의 책으로 나는 한번 깨어났고, 또 안셀름 그륀의 이 책으로 나는 자유함을 얻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꼭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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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2008-10-1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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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사다리는 맨 아래 칸부터 오른다

천국의 사다리가 있다.

신이 놓으신 사다리다.

신은 나에게 어서 오라고 하신다.

거기 사다리를 타고 얼른 올라오라고 하신다.



이 사다리를 타려면?



맨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거기서 땅을 딛고 한 칸 한 칸씩 올라야 한다.



사다리는 언제나 바닥에 있다.

두 발로 든든하게 땅을 디디고 서 있다.

그것은 허공에 매달려 있지 않다.



허공에 매달려 있다면?

그것은 가짜다.

내가 내 마음대로 매단 썩은 동아줄이다.

그것으로는 천국에 오를 수 없다.

한 발짝도 신에게 갈 수 없다.



나는 결국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바닥까지 추락할 것이다.

거기 거친 맨 바닥에서 진짜 사다리를 발견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에서 배우는 천국의 사다리 오르는 법 일곱 가지!




1. 너부터 알라




- 만약 네가 하느님을 알고 싶으면 먼저 너 자신에 대하여 알도록 하라.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 우리는 우리의 인간 존재로 내려옴으로써 하느님께로 올라갈 수 있다.




2. 무의식의 심연으로 내려가라




-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현장을 아는 것, 더 나아가서 자신의 무의식 세계까지 살펴봄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

- 겸손은 융에 의하면 무의식 세계와 관계할 것을 요청한다.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 세계를 거부하여 부수어버리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과장해 부풀어올리는 행위에 빠져들게 된다. 자신을 순교자, 예언자 또는 성인과 같은 전형적인 이상적 존재로 추앙받는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교만한 자는 흔히 윤리적으로 비참한 처지에 빠져들거나 죄 속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아래로 완전히 추락하는 과정을 겪어야만 치유될 수 있다.




3. 완벽에 멍들지 말라




- 완벽한 존재로서 완벽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의 밭에서는 오직 걱정에 가득찬 밀들만 자라게 된다.

- 이상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이상에 일치하지 못하는 자신의 실제 상황에 대하여 자주 자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적으로 분열되고 병들게 된다.





4. 겸손하라




- 겸손은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덕행이 아니라, 인간이 그 안에서 성숙해 가는 하나의 체험이다.

- 겸손하지 않을 때 하느님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조건을 채워주는 분으로 보기 쉽다. 그러므로 신비가들은 겸손을 강조한다. 겸손 없이는 신비가들이 자신을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위험에 쉽게 빠져 든다. 겸손 없이는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과 우리 자신과의 차이를 쉽게 잊어버린다.




5. 바닥부터 올라라




- 아우그스티누스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사다리"로 보았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내려오셨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통하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듯이 하느님께로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교부들은 이 사다리의 양쪽 두 기둥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또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해석하고 있다. 베네딕도 성인은 영혼과 육신을 이 사다리의 두 기둥으로 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육신과 영혼 안에 하나의 사다리를 놓으셔서 우리가 당신께 올라가도록 하셨는데, 우리가 겸손 안에서 먼저 아래로 내려갈 때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6. 고통과 불행과 외로움을 받아들여라




- 우리는 큰 어려움을 겪을 때 실존에 대한 진정한 체험을 할 수 있다.

-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우리가 천사가 아니고 육체를 가진 존재로 이 땅 위에 태어난 존재란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우리가 육체를 지녔기 때문에 가지는 불행은 우리를 천국에다 매달아 놓는다.

- 만약 당신이 외롭다면,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충분히 겸손하다면 당신은 결코 외로울 리 없습니다. 자신의 권력과 위신보다 더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아래로 내려와서 겸손하게 되는 법을 배워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결코 혼자 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융)

- 불안과 걱정은 우리가 잘못 설정한 삶의 방향을 드러내면서 그것이 잘못 설정된 것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 우리가 억압하거나 한쪽으로 밀쳐두는 것들은 한편으로 우리의 생명력이기도 하기 때문에, 억압하는 것과 한쪽으로 밀쳐두는 것이 많을수록 그만큼 우리의 생명력을 활기를 잃게 된다.




7. 믿고 내맡겨라




- 말라버린 텅 빈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아래로 내겨가는 길은 신뢰, 자신을 믿고 내맡기는 것, 자신을 내놓은 것, 일이 생겨나도록 두는 것 등을 거치게 된다.

- 아래로부터의 영성에는 언제나 세 종류의 길이 있다. 첫째 길은 생각과 느낌들과의 대화다. 둘째 길은 밑바닥까지 아래로 내려가 더 이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최종점에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셋째 길은 하느님께 완전히 항복하는 것, 나의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하느님의 좋으신 섭리와 품에 나를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다.

- 유머는 '초월에 대한 하나의 표지'다.





- 자기 자신이 처해 있는 실재적인 상황으로 내려오는 사람,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자리잡은 심연과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의 영역으로,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무능력으로 내려오는 사람, 자신의 인간성과 땅에 밀착해 있는 본성을 대면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게 되고, 참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 바리사이인들은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영성을 추구했다. 이들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었고 자신들의 행위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계명들을 완벽하게 준수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는 행위를 통해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찾고 있었던 사실을 인식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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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k4u 2016-08-0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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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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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릭 201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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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다니요! (버럭! 버럭버럭!)




ㅠ.ㅠ

마립간님, 훌륭한 서재에서 괜히 버럭 거리며 소리질러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리 어려운 명제를 제시하고서는 어.렵.지.않.습.니.다, 라고 하시면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저는 뭐란 말입니까!!! ㅠ.ㅠ

논지없이.. 그냥 지나가다 책 한권 추천하고 그냥 갈랍니다.

'선한 전쟁'이라 하셨는데.. 전쟁 자체가 선할수는 없는거 같기도 하고~ 그냥 얼핏 떠오른 책 한권은(실제로는 28권이지만 ;;;) '바람의 검심'이지요. 만화책인데 읽으셨겠지요?
'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된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러한 '힘'의 승리만이 옳은 것일까? 라는 문제제기를 받았던 책이지요. 음..음... 저는 그랬다구요. ;;;

=============

그리고 소장함을 살짝 훑어봤는데 간간이 기독교 서적이 보이더군요. 혹시 개신교 신자인지, 아니면 그에 관심이 있으신 건지, 다른 분에게 선물받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오래전에 읽고 참 좋았다, 라고 생각했던 책을 추천해드리려고요.(어디까지나 제 기준에 따른 추천인거, 아시죠? ^^;)



<아래로부터의 영성>이라는 책입니다.

"이 작은 책자에서 필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영성의 양극, 즉 참된 자아를 찾아나가는 길과 하느님을 찾아나가는 길을 서술하려고 한다. 참된 자아와 하느님을 찾아나가는 일은, 한편 우리가 처해 있는 구체적 현실로 내려감으로써, 다른 한편 실패와 무능의 체험을 참된 기도의 장소로,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는 기회로 삼음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한편 인간이 자신의 참된 모습에 도달하기 위해 걸어가는 치유 효과를 지닌 길이요, 다른 한편 실패의 체험을 넘어 기도로 나아가게 하는 길이다. "저 아래 깊은 곳에서 구원을 향해 소리치면서"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나가도록 인도하는 길이다"[시작하는 말에서]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이 책은 신앙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며 믿음과 상관없이 읽도록 쓴 책입니다. 아예 이 책에는 예수에 관하여 미리 전제하고 들어가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에 관한 역사적 진리를 찾고자 하나, 이것도 우리의 주목적은 아닙니다. 방법이 역사적이지 목적이 그런것은 아닙니다... 정작 절실한 이 책의 목적이요 지은이의 관심사인즉 바로 사람들입니다. 바야흐로 하고많은 사람들이 나날이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현실이 문제요, 멀지 않아 훨씬 더 크나큰 고통이 닥치리라는 전망이 문제인 터입니다. 이 문제에 대답이 될 만한 것을 찾자는 것이 지은이의 목적입니다 [머리말에서]

===== 책 추천해주세요!! 했는데, 추천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슬프더라구요(저는요 ㅠ.ㅠ).
그래서 이렇게 슬쩍 책 디밀고 갑니다.

번창한 이벤트 되시길~!!!

구경꾼 치카 ^_________^
====

아래로부터의 영성
프로필
강산들꽃
2016. 7. 2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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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의 영성

작가
안셀름 그륀
출판
분도출판사
발매
199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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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사다리가 있다.

신이 놓으신 사다리다.

신은 나에게 어서 오라고 하신다.

거기 사다리를 타고 얼른 올라오라고 하신다.



이 사다리를 타려면?



맨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거기서 땅을 딛고 한 칸 한 칸씩 올라야 한다.



사다리는 언제나 바닥에 있다.

두 발로 든든하게 땅을 디디고 서 있다.

그것은 허공에 매달려 있지 않다.



허공에 매달려 있다면?

그것은 가짜다.

내가 내 마음대로 매단 썩은 동아줄이다.

그것으로는 천국에 오를 수 없다.

한 발짝도 신에게 갈 수 없다.



나는 결국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바닥까지 추락할 것이다.

거기 거친 맨 바닥에서 진짜 사다리를 발견할 것이다.



1. 너부터 알라



- 만약 네가 하느님을 알고 싶으면 먼저 너 자신에 대하여 알도록 하라.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 우리는 우리의 인간 존재로 내려옴으로써 하느님께로 올라갈 수 있다.



2. 무의식의 심연으로 내려가라



-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현장을 아는 것, 더 나아가서 자신의 무의식 세계까지 살펴봄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

- 자기 자신이 처해 있는 실재적인 상황으로 내려오는 사람,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자리잡은 심연과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의 영역으로,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무능력으로 내려오는 사람, 자신의 인간성과 땅에 밀착해 있는 본성을 대면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게 되고, 참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 겸손은 융에 의하면 무의식 세계와 관계할 것을 요청한다.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 세계를 거부하여 부수어버리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과장해 부풀어올리는 행위에 빠져들게 된다. 자신을 순교자, 예언자 또는 성인과 같은 전형적인 이상적 존재로 추앙받는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교만한 자는 흔히 윤리적으로 비참한 처지에 빠져들거나 죄 속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아래로 완전히 추락하는 과정을 겪어야만 치유될 수 있다.



3. 완벽에 멍들지 말라



- 완벽한 존재로서 완벽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의 밭에서는 오직 걱정에 가득찬 밀들만 자라게 된다.

- 이상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이상에 일치하지 못하는 자신의 실제 상황에 대하여 자주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적으로 분열되고 병들게 된다.

- 바리사이인들은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영성을 추구했다. 이들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었고 자신들의 행위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계명들을 완벽하게 준수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는 행위를 통해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찾고 있었던 사실을 인식하지는 못했다.



4. 겸손하라



- 겸손은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덕행이 아니라, 인간이 그 안에서 성숙해 가는 하나의 체험이다.

- 겸손하지 않을 때 하느님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조건을 채워주는 분으로 보기 쉽다. 그러므로 신비가들은 겸손을 강조한다. 겸손 없이는 신비가들이 자신을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위험에 쉽게 빠져 든다. 겸손 없이는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과 우리 자신과의 차이를 쉽게 잊어버린다.



5. 바닥부터 올라라 



- 아우그스티누스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사다리"로 보았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내려오셨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통하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듯이 하느님께로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교부들은 이 사다리의 양쪽 두 기둥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또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해석하고 있다. 베네딕도 성인은 영혼과 육신을 이 사다리의 두 기둥으로 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육신과 영혼 안에 하나의 사다리를 놓으셔서 우리가 당신께 올라가도록 하셨는데, 우리가 겸손 안에서 먼저 아래로 내려갈 때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6. 고통과 불행과 외로움을 받아들여라



- 우리는 큰 어려움을 겪을 때 실존에 대한 진정한 체험을 할 수 있다.

-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우리가 천사가 아니고 육체를 가진 존재로 이 땅 위에 태어난 존재란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우리가 육체를 지녔기 때문에 가지는 불행은 우리를 천국에다 매달아 놓는다.

- 만약 당신이 외롭다면,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충분히 겸손하다면 당신은 결코 외로울 리 없습니다. 자신의 권력과 위신보다 더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아래로 내려와서 겸손하게 되는 법을 배워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결코 혼자 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융)

- 불안과 걱정은 우리가 잘못 설정한 삶의 방향을 드러내면서 그것이 잘못 설정된 것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 우리가 억압하거나 한쪽으로 밀쳐두는 것들은 한편으로 우리의 생명력이기도 하기 때문에, 억압하는 것과 한쪽으로 밀쳐두는 것이 많을수록 그만큼 우리의 생명력을 활기를 잃게 된다.



7. 믿고 내맡겨라



- 말라버린 텅 빈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아래로 내겨가는 길은 신뢰, 자신을 믿고 내맡기는 것, 자신을 내놓은 것, 일이 생겨나도록 두는 것 등을 거치게 된다.

- 아래로부터의 영성에는 언제나 세 종류의 길이 있다. 첫째 길은 생각과 느낌들과의 대화다. 둘째 길은 밑바닥까지 아래로 내려가 더 이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최종점에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셋째 길은 하느님께 완전히 항복하는 것, 나의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하느님의 좋으신 섭리와 품에 나를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다.

- 유머는 '초월에 대한 하나의 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