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왜곡의 역사 -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 바트 어만 (지은이),강주헌 (옮긴이)청림출판2010-05-17원제 : Jesus, Interrupted: Revealing the Hidden Contradictions in the Bible
- 392쪽
이 책의 원서/번역서
Jesus, Interrupted (Hardcover) Hardcover
책소개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가 이번에는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다. 역사 비평적 방법을 통해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다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던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목차
프롤로그 열린 마음으로 성경의 실체에 다가가기
1장 | 성경을 읽는 또다른 방법
신앙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 역사비평론이 밝힌 성경의 모순 | 신학교에서 배우고, 교회에서 잊히다 | 신의 책인가, 인간의 책인가
2장 | 성경 속 모순 고찰하기
예수는 언제 숨을 거두었을까 |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수수께끼들 | 복음서마다 다른 예수의 행적 | 예수의 수난과 부활 사건의 미묘한 차이 | 바울의 서신서와 어긋나는 바울의 행적 | 성경 속 모순의 의미
3장 | 다른 관점, 다른 믿음, 다른 메시지
예수의 죽음에 대한 다른 해석 |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들 | 바울과 복음서 저자의 충돌 |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여러 차이들
4장 | 누가 성경을 기록했을까
복음서는 누가 썼을까 | 신약성경 속 위작의 존재 | 위작 생산은 작은 산업이었다
5장 | 역사적 예수를 찾아서
예수에 관한 초기 자료들 | 예수는 종말론적 예언자였다 | 부활과 기적이 정말 있었을까
6장 | 성경은 어떻게 완성됐을까
하나도 남지 않은 신약성경의 원전 | 배제된 종파, 살아남은 종파 | 정전에서 빠진 외전들 | 정경의 결정 과정 | 초대교회의 정통과 이단 | 이단 판정에 사용된 무기들 | 인간적인 과정으로 탄생한 성경
7장 | 기독교인이 만들어낸 것들
고통받는 메시아 | 기독교의 반유대적 성향 | 예수의 신성 | 삼위일체 교리 | 천국과 지옥 | 서구 문명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
에필로그 믿음은 가능한가
옮긴이의 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주
접기
책속에서
프린스턴은 오히려 성경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물론 내가 자진해서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나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발버둥 쳤다. 내 믿음을 지켜달라고 기도했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진실로 헌신한다면 진리에도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이 점점 명백해졌다.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는 해석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믿던 대로 진리가 나를 인도할 것이란 믿음을 고수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은 진실일 뿐이었고, 진실이 아닌 것은 진실이 아닐 뿐이었다.
_프롤로그 “열린 마음으로 성경의 실체에 다가가기” 중에서 접기
역사비평적 접근법은 성경의 저자들이 우리 시대가 아닌 그들의 시대와 공간에서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전제는 지금과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비평적 방법론은 저자들이 어떤 의도에서 그런 글을 썼는가를 찾아내려 애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마다 고유한 글쓰기 방식이 있었으리라 가정한다. 신약성서에서 마태복음의 저자는 누가와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마가복음도 요한복음과 다르다. 모든 책이 다르고, 모든 책에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모든 메시지가 귀담아 들을 만하다.
_ 1장 “성경을 읽는 또다른 방법” 중에서 접기
성경은 이해관계를 초월해 객관적으로 쓰인 역사책이 아니다. 성경에 포함된 어떤 책도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법정의 재판관인데 목격자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목격자의 증언도 100퍼센트 사실이라고 가정하지 않는 지점에서 판단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또는 모두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따라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신약성서와 같은 고대 문헌도 마찬가지다. 증언과 역사적 사실이 충돌한다면, 모든 목격자가 옳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의 말이 가장 사실에 가까운지 찾아낼 방법을 알아야 한다.
_ 2장 “성경 속 모순 고찰하기” 중에서 접기
예수가 두 복음서에서 말하고 행하며 경험한 모든 것을 짜 맞추어 하나의 포괄적인 이야기로 만들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담긴 메시지가 완전히 사라진다. 예수는 누가복음의 예수처럼 확신에 찬 모습이므로 마가복음의 예수처럼 깊은 고뇌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또 마가복음의 예수처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때문에 누가복음의 예수처럼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절망에 찬 절규를 내뱉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고 온몸을 맡긴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가 마지막에 남긴 말마저 완전히 다른 뜻을 갖게 된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까지 이런 식으로 짜깁기하면 예수가 괴상망측하게 합성된 인물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의 이야기에 접근하면 결국 저자의 양심을 빼앗는 짓이고, 저자가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던 의미까지 빼앗게 된다.
_ 3장 “다른 관점, 다른 믿음, 다른 메시지” 중에서 접기
네 복음서는 익명으로 쓰였고, 저자들 중 누구도 자신이 목격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마태복음’처럼 복음서 제목에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사실 그 제목들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다. 즉 복음을 다른 식으로 해석한 권위자가 누구인지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편집자가 덧붙인 제목이다. 복음서가 처음 쓰였을 때 현재의 제목이 아니었다는 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마태복음을 쓴 저자는 자신의 책에 ‘마태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ew’이란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마태복음’이란 제목을 붙인 사람들이 그 복음을 마태가 썼을 거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저자들은 복음서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_ 4장 “누가 성경을 기록했을까”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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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바트 어만 (Bart D. Ehrma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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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성서학자 중 하나로 그리스도교의 역사·문헌·전통에 대한 뛰어난 해설가다. 어만의 저작은 옹호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서 계속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 『예수 왜곡의 역사』,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를 비롯해 3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CNN, NBC 및 역사채널(History Channel) 같은 텔레비전과 미 공영라디오(NPR) 프로그램에 출연해 복잡한 성서의 세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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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헌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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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뛰어난 영어와 불어 번역으로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키스 해링 저널》, 《문명의 붕괴》,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등 100여 권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강주헌의 영어번역 테크닉》 등이 있다.
최근작 : <그 깊은 떨림>,<편집자로 산다는 것>,<스펀지 영단어 Sponge Words> … 총 42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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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다시 브랜딩을 생각하다>,<오늘부터 뉴욕으로 퇴근합니다>,<포스트 코로나 일상의 미래>등 총 307종
대표분야 : 경제학/경제일반 3위 (브랜드 지수 294,988점), 리더십 4위 (브랜드 지수 81,057점), 트렌드/미래예측 5위 (브랜드 지수 97,70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과연 진짜 예수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읽히며 가장 존경받는 책, 성경.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배어 있으므로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로 성경에는 그 어떠한 오류도 없을까?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예수가 스스로 삼위일체를 말하고 저 하늘 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설교했을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바트 어만의 최신 화제작 《예수 왜곡의 역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는,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인 현실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주장을 내놓았다. 바로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상 성경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극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생애가 네 복음서의 교묘한 짜깁기에 불과하며, 신약성경 27권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은 8권뿐이라고 주장한다.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나 그들의 동역자로 알려진 마태와 마가, 누가 등이 아니다. 또한 고통받는 메시아나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천국과 지옥 같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모두 예수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 기독교인의 발명품일 뿐이다.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 예수와 제자들이 가르친 종교와 지금의 기독교가 전혀 다른 종교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제멋대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순에 가려진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찾아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성경이 쓰인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의 맥락에서 의도했던 내용이 지금 해석되는 내용과 다를 가능성은 없을까?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원래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네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마태복음의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할 때 누가복음의 예수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가 죽은 일시에 대해서조차 각각 다르게 말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유월절 아침 9시에 죽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 하루 전날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런 각각의 사례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도발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단 문헌의 대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체는 독자들이 성경에 담긴 인간의 해석과 실수를 추적해 나가는 데 매력적인 나침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실수가 빚어낸 신의 책 다시 읽기
도대체 왜 성경 저자들은 예수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 저자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예수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이 중요한 쟁점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써냈다. 일례로 요한복음이 나머지 세 복음과 달리 예수를 인간에서 신으로 격상시킨 것은 예수 사후에 발달된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바울 공동체처럼 일찍부터 예수가 신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 공동체도 있지만, 마태나 마가 공동체처럼 받아들이지 않은 공동체도 있었다.
이처럼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모순과 차이, 잘못된 주장, 불가능한 선언, 해로운 이데올로기까지 모두 찾아낼 수 있다. 성경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전 인류가 반드시 읽고 연구해야 마땅한 책이다. 성경을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고,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모순에 진지한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한층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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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는 책, 시대정신, 예수는 신화다, 그림자정부, 화퍠전쟁,추락하는 한국교회
램브란트 2010-09-16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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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 교회는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교회에서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성서관에 대해서 스스로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읽고 스스로 소화해야 할 책이다.
S.C 고레스 2014-06-1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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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비평적 방법을 통해 맹목적으로 믿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거북이 2013-06-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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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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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왜곡하는 바트 어만
오늘자 한겨레 p.9에 이 책 광고가 실렸고, 나는 오늘 이 책을 구입했다. 책 앞면에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라고 써 있다. 이 책도 이런 류의 다른 책들(헬무트 퀘스터, 버튼 맥, 존 도미닉 크로산)과 마찬가지로 복음서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평범한 안티 기독교 책이다.
이 책 뒷면에 보면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 화제작!"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그렇다면 저자는 고대에 기록된 모든 역사적 자료도 전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정확성과 같은 '현대'의 역사기술학(객관적인 역사기술)의 관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서 복음서에 모순이 있다는 주장은 현대적 편견일 뿐이고 저자의 안티 기독교 성향에 의한 것이다. 과거의 역사기술학은 현대의 역사기술학과 다르다. 복음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전기'의 양식(bios)을 엄밀하게 따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훗날의 해석이다. 바트 어만도 마찬가지다. 바트 어만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일 뿐이다. 또한 역사적 설명에 신앙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편견에 불과하다. 신앙이 제공하는 예수상이 예수의 역사적 실재의 진정한 인식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현재 예수를 왜곡한 책들을 비판하는 책을 쓰고 있다. 최근 발행된 도올 김용옥의 [도마복음한글역주]도 포함된다(나는 도올의 글이 중앙선데이에 연재될 때 신문 홈페이지에 이미 도올 주장의 학문적 오류를 지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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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hema 2010-05-21 공감(13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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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널이 읽히면서 가장 잘못 읽히고 있는 성경에 대한 고찰
저자는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대한 학문적 열정을 가지고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신학도이다. 나아가 저자가 인생을 거의 성경의 영향아래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단순히 반 기독교도라거나 무신론자의 입장이 아닌 그 어느 기독교인 보다 더 성경을 많이 읽었고 연구했다는 점 말이다. 한마디로 저자는 철저한 기독교도이며 동시에 그리스어 성경 전문가이다.
그런 저자가 성경의 문제점, 아니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성경을 교리로 살아가면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기독교의 리더들과 성경의 말씀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성경의 독자들에 대한 깨달음을 주고자 의도한 글이다. 저자는 성경을 연구한 고증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는 점도 기억해두어야 할 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이라는 믿음과는 달리 성경의 이곳 저곳에서 좌충 우돌하는 내용들이 발견되고 있음을 일목 요연하게 제시하고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성경을 어떻게 읽는 것이 성경을 올바로 읽는 방식인지도 잘 알려준다. 흔히 수직적인 독서보다는 수평적인 성경 읽기를 권하고 있다. 저자의 이 주장은 당장에 성경의 문제점들을 독자들이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명료하게 전달해준다. 수평적인 성경 읽기란 서로 다른 책에 쓰여 있으면서 같은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들을 상호 비교하여 읽어보라는 권유이다. 즉, 한 복음서의 어느 부분을 읽고 다른 복음서에서 같은 이야기를 찾아 읽고 대조해보는 것이다. 이런 면밀한 비교하여 읽기는 성경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전혀 이질적인 내용을 감지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기독교도이든 기독교도가 아니든 누구나 쉽게 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수평적인 독서를 하게되면 성경의 모순을 아주 쉽게 찾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경의 권위를 떨어트리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성경도 인간이 쓴 책이며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데이타 축적 방식이 당시에는 전무했고 성경을 쓴 저자는 다른 성경의 저자를 몰랐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신약은 예수가 죽은 후 몇십년 뒤에 씌여지기 시작했고, 저자들마저도 불분명한 책이 더 많은 실정이다. 구전되고 구전되다가 어느 누군가가 기록물로 남긴 것이 신약성경의 성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설사 오류좀 있기로서니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성경의 진정한 모습을 왜곡하는 일이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셩경의 경외심은 이해의 경외심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무지의 경외심에서 깨어나는 순간의 그 위험함을 상상해보시라...
성경은 무오하며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경의 귀한 말씀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아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이웃을 도우며 스스로 신에게 떳떳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신자이든 아니든간에 과연 나는 예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가 이 책의 핵심이이라고 느껴진다. 이 책을 읽었다고, 성경이 그동안 알고지내던 그런 성경이 아니었다며 실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고 믿음이 흔들릴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책의 목적도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저자는 유신론자이면서 이 책을 연구하여 섰고, 전혀 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성경에 죽고 성경에 사는 그런 신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셩경의 좋은 말씀을 따르며 살이가는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전에 죽고 경전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좋은 말씀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르며 생활해 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참된 삶이란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써있는 귀중한 말씀을 존중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살아가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핵심이라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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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1-03-25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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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왜, 어떻게 신이 되었을까?
'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로버트 퍼시그 ' ... 내가 일찌감찌 모셔두고도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말이다. 사람들은 숨겨진 진실과 마주쳐야 할 때 가장 망설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을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다. 그게 무얼까? 궁금해하며 다가보는 부류가 있는가하면 아니야, 그렇지 않을거야 그럴리가 없어 라며 애써 모른 척하는 부류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바트 어만은 전자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것은 정말 명쾌하다. 기독교를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는 철저한 기독교인이다. 다른 어떤 이의 믿음보다도 더 강한 믿음을 가진 존재일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개인적인 나만의 판단으로 볼 때 그의 그런 선택은 옳았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종교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그의 믿음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전작 <성경 왜곡의 역사>를 먼저 읽었다. 궁금했기에 망설임없이 다가갔고 그의 작품으로 인해 막혀있던 궁금증도 어느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나는 무신론자다.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나만의 종교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형식과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나도 편파적인 상징성만 강조하는 현대 종교의 모습에서 환멸을 느낄때도 종종 있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그 상징적인 틀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모습이 어설프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하나님은 성경을 쓰지 않았다. 성경은 여러 사람이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성경은 하나의 시각에서 쓰이지 않았다. (370쪽)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알고 싶었기에 나름대로는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로써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모든 것은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리고 그 시대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편리하도록..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성경은 신화일까? 아니라면 그냥 문학작품으로써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일까?
신앙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역사적인 증거를 들이대는 그의 반론은 듣기에 거북하지 않았다. 뭔가 불완전하다면 차라리 그런쪽으로라도 접근해가는 방식이 더욱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모든 모순들을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신학교에서 모두 배운다는 사실이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목회자의 길을 걷는 교회에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조차도 묻고 있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건지를.. 무조건적인 반론이 아니다. 그가 하는 말들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가 성경 속에서 찾아내는 모순들이 그렇다. 감히 묻고 싶어진다. 진실한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여, 과연 당신도 그처럼 성경을 꼼꼼하게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무조건적인 믿음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가 언제 죽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그런 부분에 대해 한번이라도 의심을 품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복음서마다 다른 예수의 행적에 관한 부분은 다시한번 읽게 되기도 한다. 설마하는 마음에서..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 사실 과학적인 논리를 들이대자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성경속에 내재되어있는 모순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물일곱권으로 되어있는 신약성서중에서 단 여덟권만이 정확한 저자를 알 수 있다는 말은 사실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이미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전제를 달고 시작한 것이기에.. 그가 찾아낸 복음서의 차이점들조차 왠지 당연한 이치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복음서들은 누가 썼을까?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벗겨지는 진실들이 내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놀라움보다는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보다는 그래,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고 있는 모든 말들이 신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역사비평적인 접근 방식인 까닭이다. 시대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다른 마음을 가지고 바라다보게 되니 당연히 다른 메세지를 전달할 수 밖에 없었을거라는 말이다. 그러니 성경의 위작생산은 작은 산업이었고 그것이 수익을 내지 못했을 경우에는 당연히 사라졌을거라는 말에도 백배공감할 수 밖에...
책을 읽으면서 예수가 종말론적인 예언자였다고 강론하는 부분에서 나는 잠시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들이대는 모든 정황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성경이 완성되어지는 과정들... 초대교회의 정통성과 이단이 생겨나게 되는 배경들... 그렇게하여 살아남게 되는 종파와 배제된 종파들이 각자 처하게 되는 상황들... 그들이 제시했던 모든 근거들은 다분히 주관적이었다는 거였고, 중요한 것은 신약성서의 원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거였다. 그리하여 지극히 인간적인 정서에 맞춰지는 과정으로 탄생하게 되는 성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이 자행했던 유대인 대학살이 그런 차원에서 생겨난 일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분개할 일이다. 그들의 신이 그토록이나 선함을 주장했다면서, 그들의 신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면서 그들은 그렇게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속에서 언급되어진 말이기도 하지만 출애굽의 과정속에서 나타났던 모든 일들 또한 말할 수 없이 잔인했었다.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오로지 나만! 을 외쳐대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싶다. 왠만한 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를 제외하고!
마지막장에서 그는 기독교인이 만들어낸 것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훗날 예수를 따른 사람들을 지배한 믿음과 관점이 예수의 종교 자체와 사뭇 달랐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는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여러 해석과 교리, 관점과 기준 등이 경쟁했고, 갈등과 다툼을 겪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탄생한 것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역사적·문화적인 의미를 지닌 인간의 발명품이었다. 아마도 서구 문명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358쪽) 이토록이나 명쾌한 답을 보여주면서 에필로그를 통해 그가 다시한번 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가능한가? 그의 말을 빌어보자면 가능하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강하고 깊은 믿음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떠났을 뿐이지 자신의 믿음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상징적인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일 뿐이었다. 믿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기독교를 통해 세례를 서너번은 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내노라하는 교회에서 성찬식이라는 것도 몇 번씩 겪어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말처럼 구원을 받았을까? 하지만 너무나도 형식적인 그런 행위들이 내게는 아무런 의미조차 전해주지 못했다. 나를 인도했던 사람의 마음속에 기쁨을 선사할 수 있었다는 것만이 유일한 나의 위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교회의 정식구성원으로 자리매김했는가? 보다시피 그렇게 되지 못했다! 보여지는 것, 보여질 수 있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 종교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 자신의 종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종교일 뿐이지 타인의 종교와 연관성을 갖지는 못한다. 형식적이고 보다 자극적인 상징성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우선은 아닐까? 기독교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 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잘못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단지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책임질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진실한 기독교도로써 바트 어만은 왜 이런 책을 써야만 했을까? 내심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 궁금증을 접었다. 바트 어만과 같은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보면서. 1인시위를 했던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당시 학교를 상대로 했던 소송에서 그는 이겼다. 실로 값진 승리였다. 미션스쿨이라 할지라도 기도나 예배를 모든 학생들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안건이었다. 그 학생에게 나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하나님 자체에 대한 의문은 없다. 다만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바트 어만의 말처럼 이미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박제되어진 예수가 아니라 진실로 살아있는 예수를 보게 될 날이 오기는 올까? 예수가 어떻게해서 신이 되었는가를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반감보다는 이해가 한발 앞섰던 시간이기도 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일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믿음이 더 돈독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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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 2010-06-2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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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장단점
학자들은 성경을 보다 더 깊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고고학, 역사학, 문학 등 여러 방법으로 성경의 증명과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내적으로는 비평학적 접근에 따라 문학비평, 본문비평, 양식비평, 역사비평, 자료비평, 편집비평 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을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방법들은 취지는 좋지만 여러 문제점을 낳았다. 이 방법들로 인해 성경 텍스트의 맥락이 해체 되어 본래의 메시지를 잃게 되었다. 특히 성경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그것에 의문이 제기 되기도 한다.
'예수 왜곡의 역사'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된 바트 어만의 두 번째 책이다. 바트 어만은 성서비평학자로 이 책에서 역사적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한다. 예수에 대한 비평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성경에 대한 이 접근법은 이제 국내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해석이 아닌 복음 중심의 설교만 들어온 평신도들은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접근법으로 느껴질 것이다. - 바트는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책에서 바트는 예수에 대한 해석 과정에서 실수가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성서비평을 통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먼저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와 관련된 모순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네 복음서와 신약 사이에 나타나는 충돌을 증거 한다. 이어 예수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경의 완성 과정 등을 추적한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 그동안 역사적 예수가 어떻게 왜곡 되었는지 밝히고, 예수에게 입혀진 옷을 하나하나 걷어낸다.
성서비평을 처음 접해본 믿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동안의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에 빠지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거나 경우에 따라 믿음을 버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믿지 않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던 이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따라서 믿는 독자들, 특히 신학적 지식과 고민이 전무한 독자에게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하지 않는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말이다. 어설픈 지식으로 혼란에 빠져 믿음을 버릴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러한 결과에 자신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대신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쉽게 동조하지 않고, 객관적 사고를 견지 할 수 있는 믿음의 독자라면 지식과 믿음의 확장을 위해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한국 교회의 교육 상황을 생각 했을 때 그럴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바트는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을 공격하거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저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소신에도 불구하고 성서비평을 가르치고, 전하는 그의 저의가 의심이 된다. 그가 말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에필로그의 그의 저의가 드러나 있다. - 특히 그가 불가지론자라는 사실로 인해 의심은 가중된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자신은 근본주의자였다고. 그러나 이제는 불가지론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성서비평을 공부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여 불가지론가 된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단지 그것을 공부한 이후에 별도로 하나님에 대한 물음과 회의로 자신의 믿음을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한 말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성서비평에 대한 옹호와 그것을 가르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아무튼 객관적 신학 지식과 - '객관적'이라는 말의 분명하지 않은 한계 설정에 문제가 있지만 - 견고한 믿음이 - '견고한'이라고 하면 상당히 보수적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 있다면 이 책을 읽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책을 통해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믿음의 더 넓고, 큰 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을 다각도로 연구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그 성과는 존중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의 단점은 분명히 지적 되어야 한다.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해 예수와 제자들의 생존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배경 등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성경 이해의 바탕을 튼튼히 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논리적, 이성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학으로 인한 믿음의 손실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한 연구 방법으로 하나님의 본래 메시지를 잃게 되고, 믿음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점은 우려 할 만 한 일이다.
성서비평, 특히 역사비평은 성경에 담긴 역사적 사건과 나아가 성경의 순수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성경의 실재성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변별한다는 점에서는 그 시도를 높이 평가 할 만 하다. 그러나 그것을 변별 할 자료가 부족하거나 없을 경우 그 실재성을 입증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더욱이 이성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성적이지 못한 성경적 내용과 증거는 거짓으로 평가한다는 점에 맹점이 있다.
바트는 역사학자의 역할을 "어떤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을 확률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 속 대부분의 사건들은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일어날 확률이 적거나 혹은 제로이다. 따라서 그 사건들은 모두 부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앙, 곧 믿음은 이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믿음은 객관적 자료와 일어날 확률로 입증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믿음을 입증 할 수 있다면 믿음의 순수성은 사라진다. 그때에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이해'에 불과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과 같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렇다고 성서비평이 반대되고, 증단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속 시도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믿음을 변별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지 믿음의 보조적 도구로써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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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디닥 2010-06-2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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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 어만 <예수 왜곡의 역사> 비평 (1)
어린시절 교회를 다닐 때, 이런 책들은 절대로 읽지 말라는 어른들과 형누나들의 무언의 압박속에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결국 나의 그 무한한 의문들과 질문들과 호기심은 교회밖으로 뛰쳐나가게 했고 온갖 세상 모든 학문들을 접하고 완전히 내 몸에 스며들게 하였다. 그렇게 오랜세월 철저한 무신론자로, 유물론자로, 구조주의자 포스트모던의 괴물이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살다가, 그들조차 아무런 해답을 가지지 않은 공허한 외침이라는 것을 깨달고 결국 다시 기독교에 귀의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후 신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고 나선, 정말로 이렇게 성경이나 예수 비판 혹은 역사적 예수를 언급하며 온갖 별의별 자신만의 상(象)을 만들어내는 이런 현대 기독교 비판 책들의 주제들은, 이미 오래전 심지어 몇백년전에 이미 온갖 치열한 신학적 논쟁으로서 이미 끝난 문제였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신학은 너무나 방대하여 일반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에 이런 책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대중을 오도하게도 혹은 선동하게도 하는 것도 물론이다)
나 같아도 내가 무신론자라면 이러한 '예수는 없었다', '예수는 똥을 쌌다', '사실 예수는 신화다', '예수는 마리아와 결혼했다', '예수는 짜집기이다' 등등과 같은 주제로 수 많은 책을 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증명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말 같다 붙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것들이 세간에 자극적이고 충격을 주기에 책도 이슈화시키기 그만큼 쉬우며 대중이 나의 책을 소비하게 하는 것도 매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케팅의 일환으로서) 사실 이 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인 나조차도) 이런 책들이 더욱더 많이 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라면 믿을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독교신앙과 신학은 공부하면 할 수록 그 깊이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요즘 나는 신이 진실로 '너네들이 이 성경이라는 신의 계시가 진리인지 아닌지 따져 볼 만큼 따져보라!'라고 던져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정녕 성경이 진리라면 어떠한 철학과 사상적 매스에도 꿋꿋히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살아남았기에 현재도 믿는 것이다. 이슬람은 그것이 두려워 철저히 코란을 번역도 금지하고 감시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런 책이 이슈가 되는 걸 한편으로 굉장히 즐거워한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예수는 신화다', 오교수의 '예수는 없다' 혹은 러셀의 모든 책들, 그리고 고전으로는 해석학의 슐라이어마허와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같은 위대한 책들을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기독교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모든 사상과 철학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니체인 것이다) 차라리 기독교가 믿기 어려울정도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아예 무신론으로 돌아서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신의 뜻에도 별로 합당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쩡쩡하게 믿는 사람들이 왜 믿어야 하는 지도 모른채 현재 교회를 망쳐놓고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또한 반대로 이번엔 무신론을 맹목적으로 믿고 싶어하는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제발 (그들 스스로도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책이 나오면 마치 자신이 비판하는 기독교인처럼 맹목적으로 아무 필터링도 없이 믿어버린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즉, 자신들도 똑같이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으려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능한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는 진실성에 입각하여 뭐든지 바라보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
그렇다면 앞으로 이 책의 주요 논점을 천천히 살펴보며 비평적 관점에서 포스팅할 예정이다.
오늘은 피곤해서 이만~ㅋ
http://blog.naver.com/917ph/220207372041
- 접기책소개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가 이번에는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다. 역사 비평적 방법을 통해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다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던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책속에서- 프린스턴은 오히려 성경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물론 내가 자진해서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나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발버둥 쳤다. 내 믿음을 지켜달라고 기도했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진실로 헌신한다면 진리에도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이 점점 명백해졌다.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는 해석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믿던 대로 진리가 나를 인도할 것이란 믿음을 고수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은 진실일 뿐이었고, 진실이 아닌 것은 진실이 아닐 뿐이었다.
_프롤로그 “열린 마음으로 성경의 실체에 다가가기” 중에서 접기 - 역사비평적 접근법은 성경의 저자들이 우리 시대가 아닌 그들의 시대와 공간에서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전제는 지금과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비평적 방법론은 저자들이 어떤 의도에서 그런 글을 썼는가를 찾아내려 애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마다 고유한 글쓰기 방식이 있었으리라 가정한다. 신약성서에서 마태복음의 저자는 누가와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마가복음도 요한복음과 다르다. 모든 책이 다르고, 모든 책에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모든 메시지가 귀담아 들을 만하다.
_ 1장 “성경을 읽는 또다른 방법” 중에서 접기 - 성경은 이해관계를 초월해 객관적으로 쓰인 역사책이 아니다. 성경에 포함된 어떤 책도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법정의 재판관인데 목격자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목격자의 증언도 100퍼센트 사실이라고 가정하지 않는 지점에서 판단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또는 모두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따라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신약성서와 같은 고대 문헌도 마찬가지다. 증언과 역사적 사실이 충돌한다면, 모든 목격자가 옳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의 말이 가장 사실에 가까운지 찾아낼 방법을 알아야 한다.
_ 2장 “성경 속 모순 고찰하기” 중에서 접기 - 예수가 두 복음서에서 말하고 행하며 경험한 모든 것을 짜 맞추어 하나의 포괄적인 이야기로 만들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담긴 메시지가 완전히 사라진다. 예수는 누가복음의 예수처럼 확신에 찬 모습이므로 마가복음의 예수처럼 깊은 고뇌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또 마가복음의 예수처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때문에 누가복음의 예수처럼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절망에 찬 절규를 내뱉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고 온몸을 맡긴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가 마지막에 남긴 말마저 완전히 다른 뜻을 갖게 된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까지 이런 식으로 짜깁기하면 예수가 괴상망측하게 합성된 인물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의 이야기에 접근하면 결국 저자의 양심을 빼앗는 짓이고, 저자가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던 의미까지 빼앗게 된다.
_ 3장 “다른 관점, 다른 믿음, 다른 메시지” 중에서 접기 - 네 복음서는 익명으로 쓰였고, 저자들 중 누구도 자신이 목격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마태복음’처럼 복음서 제목에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사실 그 제목들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다. 즉 복음을 다른 식으로 해석한 권위자가 누구인지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편집자가 덧붙인 제목이다. 복음서가 처음 쓰였을 때 현재의 제목이 아니었다는 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마태복음을 쓴 저자는 자신의 책에 ‘마태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ew’이란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마태복음’이란 제목을 붙인 사람들이 그 복음을 마태가 썼을 거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저자들은 복음서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_ 4장 “누가 성경을 기록했을까” 중에서 접기
추천글- 바트 어만이 내놓은 또 하나의 충격작 《예수 왜곡의 역사》는 예수와 성경에 얽힌 거짓과 진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 뉴욕 타임스
- 성경의 진실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는 《예수 왜곡의 역사》는 동조와 비판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보스턴 글로브
출판사 소개- 최근작 : <다시 브랜딩을 생각하다>,<오늘부터 뉴욕으로 퇴근합니다>,<포스트 코로나 일상의 미래>등 총 307종
- 대표분야 : 경제학/경제일반 3위 (브랜드 지수 294,988점), 리더십 4위 (브랜드 지수 81,057점), 트렌드/미래예측 5위 (브랜드 지수 97,70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과연 진짜 예수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읽히며 가장 존경받는 책, 성경.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배어 있으므로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로 성경에는 그 어떠한 오류도 없을까?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예수가 스스로 삼위일체를 말하고 저 하늘 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설교했을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바트 어만의 최신 화제작 《예수 왜곡의 역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는,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인 현실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주장을 내놓았다. 바로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상 성경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극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생애가 네 복음서의 교묘한 짜깁기에 불과하며, 신약성경 27권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은 8권뿐이라고 주장한다.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나 그들의 동역자로 알려진 마태와 마가, 누가 등이 아니다. 또한 고통받는 메시아나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천국과 지옥 같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모두 예수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 기독교인의 발명품일 뿐이다.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 예수와 제자들이 가르친 종교와 지금의 기독교가 전혀 다른 종교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제멋대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순에 가려진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찾아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성경이 쓰인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의 맥락에서 의도했던 내용이 지금 해석되는 내용과 다를 가능성은 없을까?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원래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네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마태복음의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할 때 누가복음의 예수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가 죽은 일시에 대해서조차 각각 다르게 말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유월절 아침 9시에 죽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 하루 전날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런 각각의 사례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도발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단 문헌의 대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체는 독자들이 성경에 담긴 인간의 해석과 실수를 추적해 나가는 데 매력적인 나침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실수가 빚어낸 신의 책 다시 읽기
도대체 왜 성경 저자들은 예수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 저자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예수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이 중요한 쟁점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써냈다. 일례로 요한복음이 나머지 세 복음과 달리 예수를 인간에서 신으로 격상시킨 것은 예수 사후에 발달된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바울 공동체처럼 일찍부터 예수가 신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 공동체도 있지만, 마태나 마가 공동체처럼 받아들이지 않은 공동체도 있었다.
이처럼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모순과 차이, 잘못된 주장, 불가능한 선언, 해로운 이데올로기까지 모두 찾아낼 수 있다. 성경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전 인류가 반드시 읽고 연구해야 마땅한 책이다. 성경을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고,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모순에 진지한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한층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접기북플 bookple100자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