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1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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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 hrs ·







‘있는 그대로 본다’ ‘있는 그대로를 보라’라는 말을 듣는다.

자신의 주관이나 감각 정서에 사로잡혀 보지 말라는 당위(當爲)나 도덕(道德) 지향의 말이다.

그 뜻은 이해하지만, 과학적이지 않다.

사람은 자기 감각이나 판단을 떠나서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과학적 사고에 가깝다.

나도 상대도 누구도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적 태도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생각이 틀림없다’는 독선이나 아집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태도다.

도덕 지향이나 마음 수련 등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지적 활동과 결합되어야 무리가 없다.

나에게는 논어(論語)가 대단히 과학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큰 보물창고(寶庫)처럼 다가올 때가 많다.

공자가 평생 간직할 말로 추천한 ‘서(恕)’에 대해서도 그런 관점으로 읽힌다.

‘서(恕)’는 평화(平和)와 사이좋음의 출발이다.

논어 제 1편에 나오는 말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나도 상대도 누구도 있는 그대로를 알 수 없다(無知).

더구나 상대로 하여금 나를 알게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상대를 알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 뿐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서로 알아가는 ‘관용’과 ‘서’ ‘사이좋음’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주체는 나이고, 그것이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이니시아티브’다.

이것이 과학적 인식 태도다.


그런데 아무리 이렇게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누가 나를 몰라주거나 오해하면 화가 난다.

그래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양이나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學)만으로는 부족하고 오래된 관성에서 벗어나는 연습(習)이 필요하다.

과학적 태도와 수행(연습)이 서로를 보완해야 자유로운 인간(君子)으로 된다.

논어 첫 장에 나오는 다음 문장이 이렇게 다가온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 學而時習之不亦說乎

인부지이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새벽의 논어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