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4

氣사상 어떻게 볼 것인가 (목회와 신학, 1995년 11월호)

섭리와 경륜 : 氣사상 어떻게 볼 것인가

氣사상 어떻게 볼 것인가

기 사상의 열풍

기 사상은 1980년대에 들어서서 서서히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는데 90년대 이후 최근에는 이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대중화가 더욱 주목되고 있다. 그러한 징후로서 단전호흡이나 기공(氣功)에 대한 책들이 '쏟아진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많이 출판되고 있다. 서점에서 '기(氣)', '단(丹)', '선(仙)', '기공(氣功)'이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는 책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옛날의 도교(道敎) 고전들이 새롭게 번역, 조명되어 출판된 것도 많다. 기 사상과 연관된 풍수지리설 등의 운명술에 관한 책들, 한의학과 관련된 건강비법에 관한 책들이 이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출판되었다. 기 사상 혹은 소위 '선도(仙道)'와 관련된 민족사학(史學)을 통해서 한민족의 우월성과 밝은 미래를 제시하는 책들도 유래없이 많이 보이고 있다.
길거리에서도 기 사상에 대한 관심의 열기를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전호흡이나 기공을 수련하는 도장(道場)임을 나타내는 '기공', '단전호흡'이라는 문구를 건물들의 창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예사 일이 되었다. '선(仙)', '기공(氣功)', '단(丹)'에 대한 강좌 개설을 알리는 광고 포스터를 길거리에서도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번화한 거리에 서있거나 걸어가노라면 금방 사람이 와서 "도(道)에 대해서 들어보셨냐"고 물어본다. 회사나 관공서에서도 건강에 좋다는 명목으로 단전호흡을 수행하게 하는 곳이 있으며 그리스도인들도 아무런 의식없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기 사상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목회와 신학'이 기 사상에 대한 특집을 다루게 되었다는 사실도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기 사상에 관심이 고조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단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데에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는 뉴에이지 운동의 확산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서구에서 기독교의 쇠퇴와 전통적 가치관의 상실 등은 동양의 "신비로운" 사상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고, 뉴에이지 운동이라는 형태로 다시 동양으로 역수입되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 뉴에이지 운동의 과학적 분야인 신과학운동(New Scientist Movement)의 확산도 주목할만한 원인이다.
현대철학의 사조 중에 두드러진 현상이 현대물리학과 분석철학의 성과에 힘입어 형이상학이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즉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을 골자로 하는 현대물리학은 고전물리학에 상응하는 데카르트 식의 기계론적 우주관을 오래 전에 폐기처분하였고, 분석철학은 고전물리학적 세계관에 근거한 형이상학의 논리들을 분해시켜서 무의미한 명제들의 무더기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신과학 운동 측의 과학자들은 현대물리학에 상응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건설하기 위해서 동양의 사상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8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신과학 운동의 서적들이 출판되기 시작하였으며 대학교수들 중에서도 이러한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빛의 입자-파동설에 고무되어서 정신과 물질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는 '기' 개념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엄밀성을 자랑하는 과학자들이 '기' 개념 앞에서는 그 개념에 대한 엄밀한 고찰도 없이, 비과학적 비약의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것은 신기할 정도이다.
둘째, 한국에서의 경제적인 성공은 단지 먹고사는 것을 넘어서 질높은 건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성장지향적이고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스트레스 관리의 문제가 심각해진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80년대에 들어와 경제 개발의 가시적 성과로서 이전에 비해서 윤택한 삶이 제공되었다. 이에 따라 건강에 대한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매우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건강에 대한 사회적 프로그램이나 시설물들, 그리고 건강에 대한 서적류 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바탕으로 기 사상에 근거한 전통적인 '양생술(養生術)'인 '기공', 혹은 '단전호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또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양의학이 들어올 때 그 효능이 과장된 것처럼 한의학에 대한 효능이 과장되는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급속히 변화되어가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불안은 자신의 미래와 운명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켰다. 그 결과 기(氣)와 주역(周易) 사상에 입각한 여러가지 운명술들, 이를테면 풍수지리설, 사주, 관상, 작명, 궁합 등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듯 이러한 운명술에 관한 서적들도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셋째로는 한국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있다. 경제 개발의 성과로 인하여 민족적 자존감이 높아졌고 한민족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높아진 민족적 자존감으로 인하여 민족 전통의 사상과 종교 등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열기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책들이 80년대 이후에 들어와서 유래없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책들은 주로 새롭게 조명된 한민족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한민족 전래의 "심오한" 사상을 알리는 "새롭게 발굴된 비전(秘傳)"에 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책들은 주로 단군(檀君)과 그에 관계된 고대사 및 고대 사상에 관한 것들로서, 이러한 "비전(秘傳)"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낙관하고 우리나라를 세계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나라로 부각시키려는 예언서들도 많이 나와있다. 이러한 "고대의 비전(秘傳)"들은 '선(仙)'이나 '기(氣)'의 개념들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많다.
민족의 자존감을 고양하고 민족 웅비의 꿈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용기와 포부를 심어주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책들은 거의 모두가 한국 민족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하는 선민의식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사실 세계의 무대에서 활개치는 민족 중에 그러한 선민의식이 없는 민족은 없다. 자기 민족의 국민성과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개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민족적 자존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전(秘傳)"의 예언이나 인종적 우월성을 토대로 선민주의에 빠지는 데에는 반인류적 국수주의의 위험이 있다.


한국에서의 기(氣) 사상의 전개

원래 '기'(氣)라는 개념은 중국에서 발생한 개념이다. 중국 사상사에서 '기' 개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범주 개념이라고 하는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중국사상사에서 '기' 개념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중국사상과 중국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에서 '기' 개념은 자연과 사람, 사회, 도덕정신의 모든 영역에서 그 기초를 제공하여 주는 매우 포괄적이고도 보편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氣'자가 가장 처음 나타나는 것은 중국의 은(殷), 주(周)(B.C.1200-1000)의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에서 이다. 이 글자는 구름의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로서 ' '로 표기되었고 ' '를 거쳐서 '氣'자로 정착되었다. 중국의 [설문해자](說文解字)라고 하는 고대 사전에서는 '氣'의 원래 의미를 '운기'(雲氣)로 규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운기'가 순환하여 바람도 일으키고(風氣), 비도 뿌려서(水氣), 초목과 곡식도 자라는 것을 관찰하였고, 이로써 '기'가 하늘과 땅, 사람과 사물을 구성하는 정미한 물질을 나타낸다는 관념이 생기게 되었다. 또 사람의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과 사람의 몸 안에 유통순환하는 혈기도 '기'라고 생각이 덧붙여졌다. 나아가서 사람의 도덕, 정신이나 자연의 기상도 '기'의 범주 안에서 설명해보려는 발전이 있었다. 중국에서 '기' 개념은 각 시대를 거쳐가면서 더욱 풍부해지고 포괄적이 되어갔으며, 모든 존재와 현상의 기초가 되는 보편적인 개념이 되어갔다. '기' 개념의 보편화로 인하여 '기' 개념은 유교와 도교 등의 거의 모든 중국 전통 사상들에 공유되는 개념이 되었으며 외래 종교인 불교도 기 개념을 수용하고 활용해야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기' 개념이 유입된 것은 유교, 도교 등의 전래와 흐름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원시유교가 전해진 것은 위만조선(衛滿朝鮮 B.C.194-108)시대까지 소급될 수 있으며, 한사군(漢四郡)의 영향으로 고구려는 한대(漢代)의 유교를 수용했다고 하겠다. 소수림왕 2년, 372년에 고구려가 국립대학격인 태학(太學)을 설치하기 이전에도 유교는 사설 서당에서 널리 교육되었다. 백제의 경우도 오경박사(五經博士) 등의 제도를 통해서 유교가 널리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경우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문물에 있어서 다소간 후발국이었으나 통일신라의 초기에만 해도 최치원(崔致遠857-?) 등의 뛰어난 유학자들을 두고 있었다.
도교 사상은 유교보다 훨씬 늦게 유입되었다. 유교 사상에도 '기' 개념이 나타나지만 노장(老莊) 사상이나 도교 사상에서 '기'의 개념은 더욱 유력한 개념으로서 사용되었으므로 한국에서의 기 사상은 도교의 유입과 함께 대중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도교가 공식적으로 들어온 것은 영류왕 7년, 624년에 당고조(唐高祖)가 도사(道士)를 보내어 도덕경(道德經)을 강론한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적인 도교였으며 노장 사상이 전래된 것은 훨씬 이전이었다고 추측된다. 백제의 경우에 노장 사상이 근초고왕(近肖古王) 이전에 이미 유입되어 있었다. 신라의 경우도 최치원의 난랑비(鸞郞碑) 서문(序文)에서 신라의 풍류도가 삼교(三敎)를 포함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휠씬 이전에 도가 사상이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지리설의 경우도 신라 말에 선사(禪師)인 도선(道詵)에 의해서 들어왔다고 하나 사실은 훨씬 이전인 삼국시대에 들어와 있었다고 추측된다. 풍수지리설은 도교에 속한다고 할 수 없으나 기 사상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 개념이 우리나라 대중의 생활에 깊이 침투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불교가 매우 흥왕했으나 유교나 도교도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고려조의 왕건 뿐 아니라 조선조의 이성계도 그들 왕조의 도읍을 정하는데 있어서 풍수지리설에 의존하고 있었다. 즉 불교가 성행했던 시기에도 기 사상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고려말에 성리학이 유입되고 조선 조에 이르기까지 기 개념은 철학적인 이기(理氣)논쟁으로 더욱 세련화되고 정교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유리론(唯理論)과 유기론(唯氣論)이 발생했으며 최한기(崔漢綺)와 같은 경험주의적 기론(氣論)도 생겨났다. 조선 조의 국시는 성리학이었기 때문에 도교 계통의 사상들은 외적으로는 위축되었으나 여전히 민중의 저변에서 깊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력은 동학(東學)이나 증산교(甑山敎) 등으로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의식에 내재된 기 개념

20세기에 들어와서 기 개념은 '개화'나 '근대화'에 밀려서 대중의 주된 관심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와서 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단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사회주의적 '양생'(養生)의 개념에 연관되어서 기공(氣功)과 주역(周易)에 대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기에 대한 이러한 관심의 유무(有無) 이전에 '기'(氣)라는 개념은 매우 일상적인 용어를 통해서 한국인의 의식에 깊이 침투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신적인 의욕이나 정신적인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고, 또 몸이나 건강의 상태, 정신적이면서 동시에 신체적인 측면을 포함한 전인(全人)에서 느껴지는 상태를 나타내는 데도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게다가 '기세(氣勢)를 올리다' 등 어떤 힘이나 활동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나 '소금기', '기름기' 등과 같이 어떤 느낌이나, 감지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데도, '공기(空氣)', '대기(大氣)' 등과 같은 물질적인 기체와 연관되어서도 사용된다. '곡기(穀氣)' 등의 개념은 신진대사의 물질로서 기 개념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기(磁氣)', '전기(電氣)' 등은 물리적인 힘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서 볼 때 기(氣)는 정신적, 생물적, 물질적인 모든 영역에서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는 그 개념적 성격으로 볼 때 정신도 물질도 아니다. 근세 서양철학의 이원론적 개념에 익숙한 서양의 동양 사상 연구자들은 '기'라는 개념을 번역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서양의 이원론적 개념들에 입각해서 물질, 질료, 에테르 등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결국 기는 정신도 물질도 아닌 무엇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기의 중국 발음 그대로 '치'(ch'i)라고 사용하였다. 최근에 기를 번역한 용어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에너지'라는 개념이다. 많은 학자들은 '에너지'라는 개념이 기를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사실 우리 말에 나타나는 기 개념들의 용법은 에너지나, 에너지의 상태, 그리고 에너지의 감지 상태를 나타낸다 해도 무난하다. 그러나 기의 사상은 아직까지는 물질적 에너지에서 생체적 에너지로 그리고 정신적 에너지로 상호 변환되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는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신과학 운동(New Scientist Movement) 측의 과학자들이 이러한 에너지의 변환 과정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은 과학적 체계라기 보다는 정신 에너지와 생체 에너지, 그리고 물질 에너지 사이에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가설에 입각한 하나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불과하다.
기는 하나의 단순한 개념이지만, 그 적용의 영역이 넓으며 포괄적으로 많은 사실들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개념이다. 뿐만 아니라 단지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어떤 사상의 포괄성, 단순성, 경험성이 곧 그 사상의 진리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사실 모든 사상은 논리적 합리성과 포괄성을 추구한다. 그리고 어떤 사상이 결정적으로 한 사람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사상이 그 사람의 실존적 경험들을 얼마나 잘 설명해주느냐에 달려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들을 만족스럽게 설명해주는 사상 체계가 가장 확실한 진리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동일한 현상을 다르게 설명하는 다양한 사상 체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상의 합리성과 포괄성, 경험성 만으로는 그 사상이 진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기 사상은 신인(神人) 동일철학

우주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대 희랍의 자연철학자들도 논의해 온 것이다. 희랍 철학자들은 우주의 본질을 '아르케'( )라고 불렀다. 우리가 기를 우주의 아르케로 간주한다고 해서 안될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에 대하여 몇가지 경험적 사실 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동일한 경험적 사실에 대하여 다른 이론적 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한의학의 효능은 곧 '기'의 실재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서양의학도 마찬가지지만 한의학도 과학이기 전에 임상경험에 입각한 기술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의학의 임상경험적 효능이 곧 기의 존재 입증이나 음양오행론의 과학성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의 실재성에 대한 증명은 좀 더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기의 개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 사상이 어떠한 논리 구조를 가지며 궁극적으로 어떤 결론을 유도하는가 하는 것이다.

기를 에너지로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무신론적 사고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기 사상에서는 무(無)로 부터 유(有)가 창조된다고 하는 식의 유신론적 사고는 있을 수가 없다. 사실 우주에 존재하는 것 중에 에너지체가 아닌 것은 없다. 에너지, 곧 질량 보존의 법칙에 의하면 에너지체는 에너지가 아닌 것에서 나올 수가 없다. 에너지는 오직 에너지에서만 나오며, 물질의 생성이나 소멸 등은 단지 에너지의 변환에 의한 에너지 형태의 차이일 뿐이다.

기 사상에서 이러한 에너지의 법칙을 벗어나는 초월적인 존재를 가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 사상에서 모든 존재는 에너지의 연속체로서 일자(一者)이며, 이 연속된 일자(一者)를 벗어난 초월적인 비에너지체는 가정되지 않는다. 만일 신(神)이 일종의 에너지체로서 존재한다면, 그 신도 에너지의 연속체인 '전체적 일자'(全體的 一者) 안에 속하며,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실재들과 본질적으로 대등한 존재 중 하나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神)은 이미 창조주로서의 유일신이 아니다. 그는 시공의 제한에 묶여 있는 여러가지 잡다한 신(神)들 중 하나일 뿐이다.

기 사상은 기본적으로 범신론적인 사고 체계이다. 기 사상에 의하면 기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이며 모든 사물에 내포되어 있다. 우주의 모든 것이 기로 되어 있으며, 기를 떠나서는 어떤 존재도 실재할 수 없다. 물론 기로 되어 있지 않은 초월적 신이 있어서, 무(無)로 부터 기(氣)를 창조하고 그 기로써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한다면, 유신론과 기 사상은 반드시 배치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 사상들 가운데서 이러한 종류의 생각은 발견되지 않는다.
기 사상에 있어서 기는 유기체적이며 전체적 일자(全體的 一者)인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적인 실재이다. 결국 기 사상에서는 우주 자체가 신적(神的) 궁극자이며 따라서 기 사상은 범신론적 사상이라 할 수 있다. 기 사상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의 일부분으로서 유기체의 유지에 역행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인간은 우주의 궁극자인 기의 질서, 즉 우주 에너지의 질서에 자기 자신을 동일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간에 내재한 궁극자인 기가 우주의 궁극자인 기와 동일화될 때 인간은 완성되며 궁극적인 존재로서의 자각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 사상이 '인간이 곧 하나님'(창3:5)임을 주장하는 신인(神人) 동일(同一)철학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기와 음양 오행
기 사상은 음양(陰陽)이나 오행(五行)의 개념을 수용하여 더욱 정교한 이론을 전개한다. 음양은 원래 주역(周易)에 나타나는 개념이고 오행은 상서(尙書)의 홍범(洪範)에 나타나는 개념으로서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농경 사회의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즉 농경사회에서는 해와 달의 변화가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사람들은 해가 뜨면 활동을 시작했으며 해가 지면 활동을 마치고 쉬었을 것이다. 밤은 낮보다 더욱 위험하고 무섭게 보였을 것이다. 음(陰)보다 양(陽)에 가치적 우위를 두는 사고 방식은 이러한 원초적 생각으로 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또 인간은 물, 나무, 쇠, 불, 흙의 다섯 가지 물질이 인간의 삶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동시에 필수불가결한 물질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이 다섯가지 물질이 만물을 이루는 기본적인 원소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위력을 실감했으며 해와 달의 순환을 아는 사람이 더욱 안전하며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을 살펴 그 변화를 알고 인간에 미치는 영향력을 알아내는 것은 부귀와 영화를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국가와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성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하늘을 관찰하던 인간은 다섯 개의 중요한 별을 발견하고 다섯가지 물질의 이름을 그 별들에게 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섯가지 별들은 다섯가지 물질이 가지는 속성을 가지며, 지상의 물질들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아가서 인간은 스스로를 자연계의 다른 존재와 구별하여 "소우주"로 간주하고, 인간의 구조와 대우주의 구조가 상응한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오행의 개념은 인간과 연관하여 더욱 발전하였고, 그 결과 오장(五臟), 오관(五管), 오색(五色), 오미(五味), 오음(五音), 오상(五常), 오륜(五倫) 등의 개념이 생겨났다.
음양과 오행은 기의 성질을 나누는 일종의 범주(範疇 category)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의 개념만으로는 기의 여러가지 다양한 변화를 설명하고, 각각 다른 성질의 기 상호간의 작용과 현상을 설명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기의 성질을 좀 더 세분화하는 범주 개념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 범주 개념에 입각하여 기의 변화와 운동 법칙을 세우고자 했을 것이다.
음양은 천지(天地), 부모(父母), 열한(熱寒), 청탁(淸濁), 장부(臟腑), 수화(水火), 주야(晝夜) 등 대립적인 사물, 성질, 경향, 특성을 의미한다. 즉, 모든 사물의 변화와 운동을 음양이라는 두가지 기(氣)의 대립과 통합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오행은 수, 목, 화, 금, 토의 상극(相克)과 상생(相生)을 통해서 사물의 변화와 운동을 설명한다. 상생은 사물을 변화 발생시키는 것이고 상극은 사물의 변화와 발생을 제약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상극은 목극토(木克土), 토극금(土克水),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 등의 서로 거스르는 관계를 나타내며, 상생은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등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氣)나 음양, 오행 등의 개념을 우리의 세계관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단지 이러한 개념들을 사용하여 세계관을 전개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을 사용해서 형성된 사상 체계가 성경적 권위와 세계관에 도전한다는데 있다. 우리는 기 사상이 전개되면서 풍수지리, 점성술, 운명술, 신선술 등 성경이 금하는 것을 배태시킨 것을 본다. 그러므로 혹시 기, 음양, 오행 등의 개념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검으로써 잘못된 사상들과 이 개념들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려야 한다. 만일 기의 개념적 성격상, 성경이 금하는 이러한 술수들(術數)과 불가피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면 차라리 기 개념을 수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공과 초능력
기공은 원래 도교(道敎)에서 사용하는 수련법의 일종으로서 도인(導引), 토납(吐納), 행기(行氣), 포기(布氣), 내단(內丹)이라고도 한다. 기공이라는 말은 청대 말(淸代末) 무도가(武道家)의 일부에서 사용하였는데, 1956년 하북성 북대하(北戴河)에 기공요양원을 연 유귀진(劉貴珍)이 고전(古典)에 나와 있는 많은 용어를 조사한 뒤 새로이 학술용어로 정한 것이라 한다.
기공은 크게 경기공(硬氣功)과 연기공(軟氣功)으로 나눈다. 경기공은 무술기공으로서 기를 단련하여 초인적인 힘을 기르는 것이다. 연기공은 의료적인 기공으로서 기를 가다듬어 병을 고치거나 건강을 촉진시키고,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다. 연기공은 내기공(內氣功)과 외기공(外氣功)으로 나누어지는데 내기공은 자기 내부에서 기를 돌리는 것이고 외기공은 자신의 기를 몸 밖으로 방사하여 타인을 치료하는 것이다. 경기공이 생체 에너지로써 물질 에너지를 지배하는 것이라면, 연기공은 정신 에너지로써 생체 에너지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공은 초능력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러한 초능력을 특이공능(特異功能)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초능력에 대한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같다.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위하여, 왜 초능력을 개발하고 활용하고자 하는가의 문제이다.

초능력 신봉자들은 모든 인간에게 신적(神的)인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나는 기적도 모든 사람에게 잠재된 신적 능력의 발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사 초능력이 모든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초능력이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여부조차 논란이 될 정도로 은폐되어 있다면, 거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기공 외에도 선이나 요가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초능력자가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수행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귀신들림이나 환각, 망상, 자살, 불안, 의심, 수면장애, 우울, 공포, 주의불능 등 정신질환에 걸리는 사람이 많은데, 거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소위 "초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담은 모든 다른 피조물을 관찰하고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적으로도 하나님과 직통으로 교통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타락한 죄인이 초능력을 가지고 영원히 산다고 가정해보라.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아마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초능력을 갖는 것은 마치 극악무도한 범법자가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연약하고 타락한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강하게 되기를 갈망한다. 초능력은 강해지기를 원하고 세상의 고통을 부정하기 원하는 인간에게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능력을 신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이 곧 신적 존재"라는 생각에 젖어있음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잠재된 초능력을 개발한 초인(超人)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물론 성경은 예수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와 같이 육신을 가지고 있었고 감정도 가지고 있었다. 예수는 죄가 없는 분이셨으므로 어쩌면 타락하기 전의 인간이 가졌던 모든 능력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세와 대결했던 애굽 술객들의 능력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능력을 능가할 수 없었던 것처럼(출8:18,19), 예수의 기적에는 초능력자들이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 즉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초능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제한해 놓으신 것을 인간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사단에게 속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단의 힘을 빌어서 초능력을 구하는 것이 된다. 사단은 호기심 많고 연약한 인간에게 초능력을 경험케 하는 미끼를 던지면서 서서히 자신의 올무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실제로 초능력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초혼(招魂)과 같은 심령술이나 점성술 등을 지지하고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초혼, 점성술 등을 하나님이 어떻게 엄격히 금하였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신18:10-11, 17:3, 4:19, 사47:13-14)

물론 초능력을 현상을 소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초능력이 반드시 심령술 등과 연관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氣) 사상의 체계에 따른다 해도 초능력과 심령술은 서로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 즉 기의 사상 체계에 있어서는 귀신도 일종의 기로 된 존재이며, 따라서 기를 흡입하는 기공이나 단전호흡의 수행 과정 중에 귀신이 들락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공의 수행을 통한 초능력 현상에는 신접, 혹은 귀신들림의 현상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우주에는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인 사단과 귀신들이 있다. 사단은 인간이 성공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단은 결코 아무런 댓가 없이 우리가 초능력을 갖도록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사단의 잔당까지 완전히 결박하고, 우리의 육신이 영광스럽게 변하여(빌3:21) 영생을 누리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마 그 때에 우리는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그 능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광화된 육신과 소위 "초능력"을 갖게 된다고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과 같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초능력의 추구는 '인간은 모두 죄인'(롬3:23)이라는 사실로 부터 '인간은 모두 신적 존재'(창3:5)라고 하는 거짓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돌린다. 초능력의 체험은 사람들을 교만과 죄악에 붙잡아 놓고, 결국은 죄사함과 구원을 얻지 못하는 길로 인도한다. 우리는 다음의 성경 구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2:9,10)


단(丹)과 선(仙)
단전호흡은 원래 도교(道敎)의 단정파(丹鼎派)에서 말하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양생술(養生術)의 하나였다. 단정파는 한나라 초기에 형성된 것으로 유황, 수은, 등 약물을 화롯불에 주련하여 만든 단사(丹砂)를 복용함으로써 장생하고 나아가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외편(外篇)에는 단(丹)을 만드는 법을 기록하고 있다. 포박자에서는 구전금단(九轉金丹)이라는 단약을 먹으면 하늘을 날으는 신선(神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주장은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금을 체내에서 축적함으로써, 몸의 노화를 막아 장수하고 나아가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수은 중독과 같은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에 점차 잘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체내의 단전(丹田)이라는 곳에 외부에서 끌어당긴 기를 쌓고 정(精), 기(氣), 신(神)을 길러서 장생 불사의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더욱 보편화되었다. 한말(漢末)의 위백양(魏伯陽)은 전자를 외단법(外丹法), 후자를 내단법(內丹法)이라고 구분하였다. 이 내단법은 태식(胎息), 토납(吐納), 도인(導引) 등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식물(食物)을 주셨으며(창1:30, 2:16, 3:19, 9:3),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생명체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체를 유지하거나 연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음식물 외에 다른 생체 에너지를 흡입할 필요가 없다. 죄로 인하여 죽게 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다시 영생을 약속받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욕심을 내어 스스로 영원히 살기 위해서 우주의 기, 즉 소위 "생체 에너지"를 흡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여,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3:24) 성경은 이처럼 인간적 방법으로 영생하는 길을 하나님이 막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신 것은 원죄를 가지고 영생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지 단순히 인간이 영원히 사는 것에 배가 아파서 그러셨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가 먼저 처리되지 않고 영생하는 것은 영원한 재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영생할 수도 없고 영생해서도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영생의 길이 되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만일 죄 문제의 해결 없이 영생을 추구한다면 사단의 올무에 걸리게 될 것이며, 결국은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많은 황제들이 영원히 살기 위하여 단약(丹藥)을 복용하다가 오히려 수은 중독으로 단명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의학이 나갈 방향
기 사상들 가운데 가장 경험적이고 실제적으로 인간의 생활에 도움을 주어왔던 것이 바로 한의학이다. 한의학은 인간을 대우주에 상응하는 소우주로 간주하는 유기체론에 입각해 있으며 국부(局部)적 해부학의 발전에 바탕을 둔 서양의학과는 다른 발달의 경로를 거쳐왔다. 물론 한의학도 수많은 임상(臨床)경험을 통해서 형성되었겠지만 이론적으로는 기와 그 범주 개념인 음양, 오행의 사상에 뿌리박고 있다. 따라서 한의학은 단지 인간의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의학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기의 세계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한의학은 경험과학으로서의 성격을 넘어서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서양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의학의 형이상학적 특성으로 인하여 한의학이 자연과학적 실증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저해되어 왔고, 따라서 과학성을 결여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한다. 그러나 서양의학자들의 이러한 비판은 치우친 감이 있다. 사실 한의학은 서양의학에 못지 않은 풍부한 임상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인체 내에 기가 흐르는 통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곧 경락이라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경락의 이상을 질병의 본질로 보며 경락의 이상 상태를 개선하는 것을 치료로 간주한다. 경락은 침구의학의 토대이며, 침과 뜸은 경락의 이상 상태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한의학에서는 내장의 생리와 병리는 항상 경락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외부의 변화와 영향은 항상 경락을 통하여 내장에 전달된다고 본다.
한의학에서는 병의 원인이 신체 외부의 기와 신체 내부의 기가 감응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외부의 나쁜 기(氣), 즉 외사(外邪)가 몸 속에 침입하여 음양이 평형된 올바른 기의 운행을 저해함으로써 병이 발생한다고 본다. 내부의 원인으로 인하여 올바른 기가 결핍된 상태를 '허'(虛)라고 하는데 이때 외사가 침범하면 병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허할 때에는 기를 보강해 주는데 이를 '보'(補)라고 한다. 또 몸 안에서 올바른 기가 외사(外邪)와 저항하는 것을 '실'(實)이라 한다. 이 때에는 외사를 쫓아내는데 이것을 '사'(瀉)라고 한다. 그러나 내부에 허사(虛邪)가 없으면 외사(外邪)와 감응하지 않아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의학의 의서(醫書)이면서 도교의 고전인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는 기(氣)가 막히는 것이 병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모든 악의 근원으로서 간주된다. 그리하여 양생(養生)의 방법으로서 호흡법, 즉 정기(精氣)를 몸 안으로 모아들여 몸 속에서 빠짐없이 돌리는 "도인행기"(導引行氣)의 방법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한의학은 단순히 의학에 머물지 않고 도교류의 단전호흡술 및 신선술 등과 연결된다. 그러나 설령 기(氣)가 실재하고 체내에 기의 통로인 경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우주의 기를 끌어당겨(導引) 신선(神仙)을 추구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의학은 기 사상과 연관되어 있는 신비주의와의 연결 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된다. 한의학은 결단코 경험의학으로 남아야지 소위 "도"(道)나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신비술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생명의 길은
우리는 어떠한 인간적 노력이나 도(道) 닦는 수련을 통해서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인의 상태로 영생하지 못하도록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셨다는(창3:24)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