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스리랑카의 간디_A. T. 아리야라트네 A. T. Ariyaratne : 네이버 포스트
[미리보기] 문명, 그 길을 묻다
#10. 스리랑카의 간디_A. T. 아리야라트네 A. T. Ariyaratne
이야기가있는집
2018.03.14. 18:02406 읽음
[미리보기] 문명, 그 길을 묻다
#10. 스리랑카의 간디_A. T. 아리야라트네 A. T. Ariyaratne
이야기가있는집
2018.03.14. 18:02406 읽음
첫 인터뷰 대상자가 정해지기 이전부터 마지막 인터뷰이는 스리랑카의 아리야라트네 박사라고 마음에 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2013년 목련이 흐드러지던 봄날,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에서다.
참여불교와 해방 신학의 세계 리더들이 현대를 진단하는 컨퍼런스에서 사르보다야 Sarvodaya 운동이 50여 년 동안 그 나라 마을의 3분의 1이 참여하는 공동체 운동으로 성장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구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주목하는 운동이고, 이들의 실천 덕목은 불교의 팔정도라고 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고전적인 방식이 21세기 극도의 경쟁에 몰려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안운동으로 버티고 있다니 믿기 어려웠다.
내로라하는 아시아, 유럽, 북남미 지성들에게서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발표를 마친 아리야라트네를 쫓아갔다. 팔정도(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 로 초국가 자본에 대항하며, 농촌 산업화에 맞서 소농의 경제 자립을 질적 성장을 이뤄냈냐고,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그렇다”라고 답했다.
나는 “그쪽 공동체는 어떻게 인간의 욕망을, 내가 더 갖고 싶은 그 질긴 욕구를 다스리느냐고 재차 물었다. 아리야라트네는 “가능하다”라고 말하며 알고 싶으면 스리랑카로 와서 보라고 했다.
사회적 우선순위가 이윤을 높이는 무한경쟁을 묵인하는 경제 성장에 있는 우리의 오늘, 아리야라트네는 사람도 같이 살피자고 말한다.
“ 길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그 길을 지나갈 사람까지 고려하자는 거지 요. 잘 닦인 새 도로가 개통됐어요. 그런데 그 길목을 이용해 사람을 통제하고 죽인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래요. 역사는 넘치도록 그런 일을 해왔죠.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길을 놓으면서 동시에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만들고 자비심을 길러내는 일까지 해야 합니다.
당장의 돈 흐름을 살리겠다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땅도 주고 권리도 팝니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고 보면 그 결과가 독이 되어 파고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급하게 집어 먹은 돈이 여기저기서 부정과 부패도 만들지 만, 무엇보다 치명적인 결과는 가난이에요. 초국가적 기업들은 성장이 아닌 가난을 만들고 떠납니다.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 성장지수만 높이죠. 결국에는 빈곤만 남습니다. 정부는 그들의 로비를 받습니다. 기업의 위법적인 활동을 막아야 할정부가 오히려 기업의 힘, 돈의 힘에 휘둘립니다. 한국의 언론은 어떤가요? 영국은 98퍼센트의 언론이 단지 두세 개의 거대 자본 기업의 이익에 따라 보도합니다. 그들 기업은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 탈세자들입니다. 행정, 사법 권력이 돈줄들과 한 통속입니다.
세상은 반드시 부처님이 가르쳤고 예수님이 가르쳤던, 또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가르치는 그쪽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물질주의적 접근만이 아니라 물질 적인 개발에 정신적인 개발까지 둘 다 이뤄야 하죠. 이것이 첫 번째 할일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의 정치적인 정책들, 사회적인 정책들이 사람을 살려내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세 번째는 이들이 정의를 위해 일하도록 힘을 조직해내야 합니다.
이윤이 아닌 정의가 사회적 우선 순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단단한 힘을 세워내야 합니다.”
아리야라트네가 말한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정하는 기준은‘정의’였다. 바로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그런데 정의는 이윤을 만들 수 있을까?
지속적으로 이윤을 내지 못하면 경제 자체를 지탱할 수 없다고 현재의 한국 정부는 말한다. 다른 나라의 정부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상식이라고 믿는다. 이에 대해 아리야라트네에게“정의가 이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해 물었다.
“
왜 우리가 꼭 이윤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무엇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고요?
지속 가능한 부자? 지속 가능한 가난?
그동안 우리에게 적용된 시스템은 잘못되었습니다. 체계를 바꿔야 해요.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당신이 있는 지역은 고도로 자본화된 곳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 최고의 자본주의 수입이 있고, 그 수입이 평등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거죠. 매우 부자인 사람들, 중간 계급 그리고 다수는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일 거예요.
거기에는 평등이 없습니다. 당신이 말하길 지속 가능한 경제라고 했죠? 부자들은 골프도 치고 요트도 타고 여유를 부릴 수 있어요. 자본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좋아요. 그런데 부자가더 부자가 될 때, 더 부자가 더욱더 부자가 될 때,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집니다. 그리고 부자는 그 권력을 누리죠. 가난한 사람들은 힘이 없어요.
그래서 세상에는 늘 부자와 권력 있는 자들 그리고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어온 거죠. 이런 뿌리가 모든 종류의 자살, 살인, 강간, 범죄, 뇌물, 폭력, 부패를 만들고, 군대를 증강시켜왔습니다. 핵무기까지요.
얼마 전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사라졌어요. 아주 많은 사람이 실종됐 고, 조종사들은 오늘날 기술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 다. 그러면서 조종사를 의심하더군요. 만약 그렇다면 이는 생겨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건데, 그 조종사의 마음이 그의 업무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마음을 두지 못한 거죠. 집안에 우환이 있든지 돈을 빌려야 하든지 분노에 휩싸여 있든지 마음이 그곳에 없었던 거예 요. 왜? 그도 고통받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일부니까요. 개인이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안정을 이룬 사회를 만드는 것 역시 국가가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몫입니다.”
그는 조종사의 불안에 대해 언급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그 나라 시민의 재산뿐 아니라 불안한 마음까지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긍정심리학의 태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렇게 말했다.
“ 빈부의 차가 크면 국민이 우울하다.”
우울은 심리학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인데, 경제적으로 바꿔 말한다면생산성 저하일 것이다. 앞서 리처드 윌킨슨 편에서도 드러났듯 불평등의 기울기가 큰 지역은 전체적으로 스트레스 수치가 높고, 이는 면역력 저하, 사회적 의료비용 증가, 폭력과 범죄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실제 증거가 나와 있다. 여기에 한 국가의 권력을 차지한 정당이 해야 할 중요한 지점이 드러난다.
국가를, 자치 단체를 책임지는 권력을 이양받은 사람은 그들의 지지 세력뿐 아니라 반드시 집단 전체의 재산과 심리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점이다. 각 정당은 반드시 지지 세력의 재산과 권리, 안도 감을 위해 권력 투쟁을 해야 한다. 또한 전체의 이익을 살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지지 세력을 포함한 전체가 허약해지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선장은 왜 속옷 바람으로 탈출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였을까? 이를 인명 구조에 온몸을 받쳤던 아르바이트 승무원과 비교하여 개인의 인격 수준으로 판가름하기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드리워진 무력 감이 짙다. 상대적 저임금에 비정규직인 선원들은 그들만의 건너지 못하는 절망의 깊이가 있을 것이며,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검은 해무 같은 우울의 막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강연에서 겪은 일이다. 현대미술 아티스트들이 제시하는‘나’ 를 만나고‘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주는 의미에 대한 이야 기를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세상이 돌아가는 판을 읽어내며 시대의 진행에 속도를 붙이거나 제동을 거는 작업에 대해 전달했다. 강연이 끝나고 한 청년이 내게 물었다.작가님이 말씀하신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그런 행위 예술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걸까요? 젊은 시절, 예술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의식 있는 예술을 하게 된 걸까요?”
그러게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자기 길을 갈 수있었을까? 잠시 멍청히 있던 내게, 앞서 하워드 가드너 편에서 언급했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했던 말이 울렸다.
“ 인간의 역사 속에는 어느 한시기 문예부흥의 꽃 시절이 있었는데, 그건 그 시절 유독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 하고 싶은 욕구를 드러낼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다만 이를 후대에서‘르네상스’라 이름 지어 구분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주변이 인정할 만한 정도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낼수 있는 그런 장치가 되어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 굶어 죽지 않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돈 없어 병원 못 가 죽지 않는 그런 사회 말이다.
이런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인 요건을 갖춘 나라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중진국부터 많을 것이지만, 이를 이뤄내는 나라는 국민총생산과는 별개로 정치적 선택을 해낸 나라들뿐이다. 누구나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는 쿠바, 협력을 통해 창의성이 끌어내는 교육을 받는다는 덴마크, 경제적 자립이 보장된 당당한 노인의 나라 프랑스 등이 그럴 것이다.
아리야라트네가 말하는 국가의 의무는 국민들이 활기차게 살도록 두루 살피는 정의로운 통치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도록, 원한 맺지 않도록 함께 사는 사회이다. 진영으로 나뉜 우리의 반목이 더 깊어 지고 무기력이 더 깊어지면, 곧 다가올 미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A. T. 아리야라트네(A. T. Ariyaratne, 1931년생)는 스리랑카 최대 민중 조직인 사르보다야 운동의 창시자로‘, 스리랑카의 간디’로 불린다. 1958년에 그는 고등학교 교사로 스리랑카 오지 마을로 교육운동을 떠났다. 하지만 마을의 상황은 그를 학교에 묶어두지 않았고, 식수 설비, 화장실, 주택, 도로, 에너지원 확보 등의 일을 하며 마을의 자립을 이끌도록 했다. 사르보다야는 이렇게 시작되어 50년이 지난 지금 1만 5,000개 마을로 확대됐다. 이들이 만든 무상 유치원만 해도 4,335개가 넘는다.
1990년대부터는 평화와 갈등 해소, 경제개발 부작용에 집중해왔고, 현재는 타밀 반군과의 갈등이 남은 스리랑카 북부 마을에 집중한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참여불교와 간디 사상을 뿌리로 두고 있다. 아리야라트네는 1969년 막사이사이상, 1996년 간디 평화 상, 2007년 스리랑카 국민 훈장 등 많은 상을 받았고 그 상들을 명상센터 한쪽 방에 모아 두었는데, 줄지어 겹겹이 쌓여 방을 채울 정도다.
22만 리 길을 다니며 세계 지성 11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지혜와 지구의 지속 가능에 대한 미래 진단을 이끌어낸 재미 저널리스트. <경향신문>을 통해 소개되었던 ‘문명, 그 길을 묻다’ 를 통해 11인의 석학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8년 동안 불교방송 PD로 일하며 시사· 교양·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한국방송대상 교양 우수작품상(1998), 한국방송대상 연예오락 우수작품상(2000)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저자 안희경
출판 이야기가있는집
발매 2015.07.27.